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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26화 (126/251)

126화― 난세영웅(亂世英雄)(1)

“창룡단은 남궁세가를 지키는 검이다. 상대가 누구든 남궁세가를 위협하는 자는 우리 창룡단이 용서하지 않는다.”

“창룡무적(蒼龍無敵)!”

창룡단주 남궁염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고, 창룡단원들과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그의 외침에 화답을 하듯 외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미후왕이 홀로 나타나면서 처졌던 남궁세가의 분위기가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남궁세가는 이제 힘이 없다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구나?”

미후왕은 창룡단주 남궁염과 자신을 포위한 창룡단을 바라보고는 기분 좋은지 미소를 보였다. 자신이 수십의 검수에 의해 위험한 지경에 이르러 있다는 것은 전혀 안중에 없는 듯했다.

촤앗―

미후왕은 어울리지 않은 적색 도포의 소맷자락을 펼치며 손을 내밀어 자세를 취했다.

“내가 용건이 있는 것은 너희들이 아니나, 이렇게 내 앞에 나섰으니 상대를 먼저 해 주마.”

자세를 취한 미후왕의 전신에서는 엄청난 기운이 발산되었다. 창룡단의 몇몇 검수는 기운에 이기지 못해 물러설 정도였다. 워낙 패도적인 기운이라 무공을 익힌 사람들에게도 위압적이었다.

남궁염은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창룡단원들을 모두 번갈아 쳐다보았다. 자신과 함께 희생될 모두를 다시 한번 눈과 가슴에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이미 남궁염은 이 자리에 나설 때 죽기를 각오했다.

하지만 그때, 창룡단원을 지나 남궁염의 곁으로 이윤후가 다가왔다.

“물러나 주시죠.”

사생결단의 결의를 다지던 남궁염이나 창룡단원은 이윤후의 말에 순간 어리둥절했다.

“저 사람은 저를 찾아온 듯하니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윤후의 단호한 말에 남궁염은 물론 숨죽이며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놀랐다.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고 하나 상대는 사왕련의 사왕 중 일인이었다.

“제 탓에 남궁세가에 큰 실례를 범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제가 처리하게 해 주십시오.”

이윤후는 예의를 차리며 간곡하게 남궁염에게 이야기했고, 남궁염은 살짝 당황하여 남궁나연을 바라보았다.

“창룡단주는 물러서세요.”

지켜보던 남궁나연의 명이 떨어지자 남궁염도 어쩔 수 없이 물러났고, 그의 손짓에 미후왕을 포위하고 있던 창룡단도 살짝 물러나 외부 손님을 지키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나연아, 저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되겠느냐?”

남궁염은 남궁나연의 곁으로 가 물었으나,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윤후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저분이 우리를 생각해 스스로 나섰으니 지켜보기로 해요. 당숙께서는 혹시 저분이 위험해진다면…… 남궁세가의 전력을 다해서라도 구해야 해요.”

“그래. 알겠다.”

남궁나연의 말에 남궁염은 자신의 당질이 어느새 많이 자랐음을 느꼈다. 한눈에 보기에도 남궁나연이 이윤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가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무슨 생각이 있으니 나선 거겠지. 검성의 제자라면 아무리 상대가 미후왕이라고 한들 쉽게 패하진 않을 거야.”

남궁염의 말에 남궁나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눈은 여전히 이윤후를 쫓고 있었다.

“제법 배포가 큰 녀석이구나?”

미후왕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선 이윤후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칭찬입니까?”

“칭찬이라고 해 두지. 너를 만나러 오긴 했다만 스스로 이렇게 나설지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여차하면 남궁세가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생각으로 왔다만, 이렇게 네가 나서는 바람에 남궁세가는 이 세상에 조금 오래 남아 있게 되었구나.”

미후왕의 광오한 말에 모여 있던 정파의 사람들과 남궁세가의 무사들은 진저리를 쳤다. 하지만 미후왕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는 않았다.

혈왕문주일 때 미후왕은 산서 일대를 주름잡던 금검보를 혼자서 무림의 역사에서 소멸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그 일로 인해 혈왕문이 없어지는 계기를 주었지만, 그 당시 정파 무림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절 찾는 이유나 말씀해 주시죠. 뭐 대충 어떤 사연일지는 짐작은 가지만요.”

이윤후는 미후왕이 자신을 찾은 이유가 자신의 스승인 검성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정확한 이유나 듣고 싶었다.

“실력을 보고 싶으니 이야기는 널 쓰러뜨린 후에 해 주마!”

촤악―

미후왕은 말을 마치자마자 기를 발산해 내었고, 그의 붉은 도포가 날릴 정도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스르릉―

이윤후도 상월검을 뽑아 자세를 잡았다.

‘권(拳)과 장(掌)을 쓰는 무투술을 쓰는 상대인가? 이런 상대는 처음인데…….’

이윤후는 이제껏 검과 도를 무기로 쓰는 사람들과 대결은 해 보았지만 무투가와의 싸움은 처음이었기에 살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대치가 시작되자 장내는 다시 한번 숨을 죽인 채 둘을 바라보았고, 모두 이윤후의 실력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도 이윤후가 이기길 바라고 있었다.

미후왕이 단신으로 이곳을 오긴 했지만, 남궁세가는 그를 상대로 합공을 해서 죽이기도 잡아 내기도 애매했다. 어떤 방법이든 사왕련에게 빌미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윤후가 미후왕을 이기거나, 승부가 나지 않은 채 끝이 나는 것이 가장 좋았다.

파밧―

대치를 하던 두 사람 중 먼저 움직인 쪽은 미후왕이었다.

파방―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미후왕은 가볍게 일장을 내질렀다. 붉은 도포의 소맷자락이 날리며 이윤후의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어라…… 윽…….”

퍼벙―

“크헉…….”

미후왕의 일장이 이윤후의 가슴 한가운데를 때렸고, 이윤후는 충격으로 뒷걸음질 쳤다.

“무슨……?”

이윤후는 그렇게 큰 타격을 입지는 않았지만, 미후왕의 장법이 자신의 몸에 닿았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는 듯 미후왕을 노려보았다.

“이상한 수법을 쓰시는군요?”

“네가 순진했을 뿐이라 생각된다만.”

미후왕은 크게 웃으며 이윤후를 바라보았고 이윤후는 타격당한 자신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상대가 제대로 공격했다면 가슴이 욱신거리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겠지’

이윤후는 살짝 가슴에 통증은 있었으나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그것은 순전히 미후왕이 손속에 인정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쉽게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겠지.’

이윤후는 다시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검을 미후왕을 향해 겨누었다. 자신에게 큰 타격을 줄 수도 있었음에도 자신을 얕잡아 보고 손속에 인정을 둔 미후왕에게 제대로 실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

“오호라…… 제법…….”

미후왕은 이윤후가 흥분을 가라앉힌 채 평정심을 유지하자 조금은 평가를 달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파의 인물들은 대부분 남의 눈을 신경 많이 쓰기 때문에 이윤후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시험하는 셈치고 단 일격에 이윤후에게 큰 타격을 주지 않은 것이다.

남들 눈에는 굴욕적인 모습으로 보이도록 미후왕이 설계를 했는데, 의외로 이윤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이윤후에게 작은 기대감을 비치며 지켜보던 이들은 더욱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한 수 제대로 배우겠습니다.”

파밧―

이윤후는 외치고는 바로 미후왕에게 달려들었고, 그도 양손에 기를 모으고는 땅을 박차고 나아갔다.

촤악―

촤장―

이윤후의 검이 미후왕의 급소를 노리며 파고들었으나 번번이 허공을 갈랐고, 미후왕은 양발은 땅에 붙인 채 상체만 움직이며 이윤후의 검을 잘 피해 나갔다. 간간이 날카로운 이윤후의 검을 손으로 내질러 막아 내었는데, 검을 튕겨 낸 그의 손에는 상처가 전혀 없었다.

“어떻게 이 소협의 검을…… 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맨손으로 막아 내는 것이죠?”

남궁나연은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남궁염에게 물었다.

“미후왕의 혈왕수(血王手)의 효과입니다.”

“혈왕수요?”

“네. 혈왕문의 문주에게 전해지는 독문무공인 혈왕마라수(血王摩羅手)를 극성으로 익히게 되면 체모가 붉게 변하고 손도 붉은빛으로 변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게 붉게 변한 손은 도와 검도 튕겨 낼 만큼 단단해지는 도검불침이 된다고 듣기만 들었습니다.”

남궁염의 말에 남궁나연은 미후왕의 손을 보았다. 어느새 그의 손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도검불침이라니요? 그건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요?”

“저도 듣기만 했던지라…… 미후왕이 산서의 금검보를 단신으로 무너뜨릴 때 세인들은 적혈마원(赤血魔猿)이라 불렀습니다. 그게 피가 뒤집어쓴 미후왕을 일컫는 말인지 알았는데, 이제 보니 혈왕마라수를 극성으로 익힌 그의 모습을 보고 말했던 것 같군요.”

남궁염은 이제껏 알려진 미후왕의 소문은 과장되었다고 생각을 해 왔는데 지금 보니 오히려 축소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원숭이상의 얼굴을 가진 그를 놀리듯이 사람들은 적혈마원이라 불러 왔는데, 혈왕문을 버리고 사마련에 들어간 그는 오히려 그 명호를 스스로 바꿔 미후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남궁세가는 오늘 이 소협의 승패에 따라 명운이 갈리겠구나…….’

남궁염은 어지럽게 어울리고 있는 이윤후와 미후왕의 움직임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싸움은 어느새 오십여 초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윤후가 공세를 취하면 미후왕이 받아치면서 대결은 장기전 양상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윤후의 실력을 의심하던 사람들은 이 대결에서 그 생각을 모두 지워 버렸고, 사왕련의 사왕과 비등한 싸움을 벌이는 정파 기린아의 탄생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공세를 끊지 않던 이윤후는 두 발을 붙인 채 자신의 공격을 계속 받아 내는 미후왕의 방어에 살짝 부아가 일었고 단숨에 내공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파지직―

이윤후는 지면을 박차고 하늘을 날았다.

백색의 상월검에서 뇌전이 일기 시작했다.

“이것도 그 자리에서 받아 보시죠.”

콰르릉―

뇌명(雷鳴)이 남궁세가 전체를 울렸다.

“비뢰낙일(飛雷落日)!”

마치 번개가 내리치는 듯한 형상으로 큰 한 줄기의 검기가 미후왕을 덮쳤고, 주위 사람들은 그 모습에 탄성을 내질렀다.

콰과과광―

한 줄기의 번개가 그대로 지면에 낙하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사방으로 튀었고, 한바탕 아수라장이 되었다.

“허억…… 헉…… 믿을 수가 없군요.”

이윤후는 숨을 몰아쉬며 흙먼지가 사라지고 땅이 크게 파인 곳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내공을 끌어 올린지라 이윤후도 살짝 무리를 했고 몸에 조금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미후왕은 쓰러진 건가?”

“검성의 제자가 승리한 것인가?”

사람들은 기대감에 다들 흙먼지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이윤후가 펼친 비뢰낙일의 초식에 움푹 파인 땅을 확인하고는 이윤후의 실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다.

하지만 그 감탄은 오래가지 못했다. 깊게 파인 땅에서 누군가 솟구쳐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허허, 이거 몸으로 그냥 받아 낼 수준이 아니었구나?”

솟구쳐 올라온 이는 바로 미후왕이었고, 비뢰낙일의 초식을 정면으로 받아 내고도 큰 상처 없이 멀쩡해 보였다. 달라진 점은 그저 그가 입고 있던 붉은 도포가 넝마가 되어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쫘자작―

“이거 제법 아끼던 옷이었는데 아쉽구나.”

미후왕은 아무렇지도 않게 넝마가 된 도복의 윗도리를 찢어 내었다.

나이가 든 미후왕이었지만 건장한 근육질의 몸이 드러났고, 그의 드러난 상체도 은은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아주 붉은 양손에 비해서는 진하지 않았으나 몸 전체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나름 솜씨를 발휘했는데, 너무 잘 받아 내신 듯하군요.”

이윤후는 어느새 숨을 고르고는 미후왕을 바라보았고 그의 말에 미후왕은 미소를 보였다.

“나름 솜씨를 발휘했다라…… 너도 꽤 능구렁이 같은 구석이 있는 놈이구나?”

미후왕은 충격이 없어 보이는 듯한 모습을 하고는 있었으나, 온몸으로 초식을 받아 낸 탓에 그의 내부는 진탕(震蕩)이 되어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려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선배님께서 물러나 주신다면 제가 막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사회담이 오고 가는 중인데 싸움이 길어지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을 듯하고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마치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로 보일 정도로 친근해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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