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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21화 (121/251)

121화― 재대결(再對決)(1)

북해빙궁의 지하 수련실.

빙궁의 궁주만이 출입이 가능한 지하동은 무고(武庫)와 서실(書室) 그리고 수련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현재 단지경의 안내를 받은 검성과 이윤후 그리고 조준혁, 유인경이 수련실에 들어와 있었다.

수련실 입구 문이 닫히자 밀폐된 공간이 되었다. 천장이 높고 외벽은 어두운 암석으로 되어 있는 듯했으나, 마치 거울처럼 모습이 반사되고 있었다.

“마치 거울로 가득한 방에 들어온 거 같아요!”

수련실로 들어서자 유인경은 감탄을 했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외벽을 만져 보기도 했다. 놀라기는 검성과 이윤후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단지경의 허락으로 수련동을 사용해 보았던 조준혁은 담담하게 놀라는 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빙궁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군. 그런데 익숙한 공간이야…….”

“사부님, 장가철장과…….”

지하의 입구로 내려올 때부터 검성은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윤후는 그 이유를 능히 알 수 있었다.

“그렇군. 장가철장의 천무고와 구조가 비슷해.”

검성은 이윤후의 말에 이전에 방문했었던 장가철장의 천무고를 떠올렸다. 검성은 워낙 오래전에 방문한 탓에 바로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윤후는 최근에 다녀온지라 빨리 알아챌 수 있었다.

장가철장의 천무고와 아주 같지는 않았지만 지하로 내려오는 계단과 들어오는 방법, 아래에 방의 구조 등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도 신장(神匠)이 만든 곳인가…… 상월(霜月)이 빙궁의 의뢰로 만들어진 검이니, 이곳을 신장이 만들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한데…….’

검성은 이윤후가 가진 상월검을 힐끗 바라보고는 생각했다. 상월검은 제련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빙정(氷晶)을 이용해 만들어진 검으로, 북해빙궁이 신장에게 특별히 부탁했던 무기였다.

검성이 생각에 빠진 사이 유인경은 외벽이 신기한지 계속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고, 조준혁은 어느새 대결을 위한 준비를 차분하게 하고 있었다.

단지경은 검성과 이윤후가 조금 이상한 반응 보이자 보고는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너도 준비하도록 해라. 설욕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느냐?”

검성은 조준혁이 살짝 눈을 감고 명상에 빠진 듯해 보이자 생각을 털어 버리고는 이윤후에게 말했다. 이에 이윤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가 되면 말씀해 주시지요.”

단지경은 양쪽을 바라보고는 이야기했고, 그의 말에 조준혁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전 준비되었습니다.”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조준혁이 앞으로 한 발짝 나서자, 이윤후도 질세라 앞으로 나섰고, 그와 함께 검성과 유인경은 살짝 물러나 섰다.

“내 옆에서 떠나지 않도록 해라.”

“네. 알겠어요.”

검성이 유인경을 챙겼고, 그런 검성의 배려에 유인경은 들떠 있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마주 보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이 소협이 이길 수 있을까요?”

이윤후의 등을 바라보던 유인경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검성에게 물었다. 유인경은 이윤후가 조준혁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을 직접 본 사람이었기에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전과는 다를 거다. 그때의 윤후는 내공이 일천하여 무공을 제대로 쓸 수 없었기에 저 아이와 겨루는 일조차 버거웠던 것이다.”

“내공이 일천하다니요? 이 소협이요?”

유인경은 검성의 말에 놀라 되물었다. 유인경은 이윤후가 내공이 낮을 거라고 전혀 의심조차 못했었기에 놀란 것이었다.

“윤후가 무공을 배운 것은 고작 오 년 남짓이다. 제대로 된 내공이 있을 턱이 없지. 거기에 무림인으로서 늦은 시작을 했었고 말이야. 내가 윤후의 내공을 증진시켜 줄 생각을 못 했다. 그런 상태에서 상승무공만 익힌 윤후는 모든 무공을 사용할 수는 있으나, 제대로 활용을 할 수가 없었지.”

“아…… 그래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했던 것이군요.”

유인경은 그제야 이윤후가 조준혁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이해가 갔다. 사실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는데 궁금증이 풀린 기분이었다.

오절 중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검성의 제자가 일방적으로 밀렸다는 건, 아무리 상대가 북해빙궁의 대주라 할지라도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이윤후가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 준 적은 많지 않았다. 쌍사련 지욱과의 대결도 심각해지기 전에 지욱이 상월검에 놀라 물러난 것이었다. 지욱이 제대로 덤볐다면 이윤후는 그에게 졌을 것이 분명했다.

내공이 없는 상태의 이윤후였기에 조준혁과 진지한 대결에선 막기에 급급했었다.

“그럼, 한 가지 약속을 해 주시겠습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검성과 유인경은 조준혁의 목소리에 그를 보았다. 조준혁은 검성에게 시선이 가 있었다.

“내게 말인가?”

“네. 검성께 약조를 받고 싶습니다.”

조준혁은 단호한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말해 보게. 들어 보고 판단하지.”

검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조준혁은 잠깐 단지경을 보았다가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검성께서는 이 소협과 저와의 대결이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 맞습니까?”

“그렇다네.”

“그럼, 제가 이 소협을 이긴다면 저에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주십시오.”

조준혁은 사실 다시 한번 검성과 겨루고는 싶었지만 도전하는 것에 명분도 없었고 실력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참고 있었다.

하지만 검성이 유인경과 대화하는 것을 보고 조금 마음이 상한 상황이라 이렇게 질러 본 것이었다.

조준혁은 이미 이윤후가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의 대결에서 이윤후는 자신의 검을 막기 급급했고, 그게 바로 반년 전의 상황이었다.

이윤후가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고는 하나 짧은 시간에 자신과 같은 수준의 경지에 오를 일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검성의 말이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느껴졌다.

“좋다. 네가 이긴다면 내가 상대해 주지.”

“감사합니다.”

검성이 가볍게 허락하자 조준혁의 얼굴에는 미소가 퍼졌고, 단지경은 조준혁의 행동에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조준혁이 검성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하나 지금 상대는 이윤후였다.

“이제 말은 그만하고 준비하도록.”

단지경의 말에 이윤후와 조준혁은 거리를 살짝 두었다. 이윤후가 먼저 예를 취했고, 조준혁도 답례를 했다.

“이전에는 제가 조 대주님을 실망시켜 드렸는데, 오늘은 다를 것입니다.”

다부진 이윤후의 말에 조준혁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이전과 다를 것은 알고 있지만, 나 역시 그때와는 다를 것입니다.”

조준혁은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고, 이윤후도 상월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두 사람이 검에 손을 가져가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단지경이 따로 시작의 구호를 할 필요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단지경도 물러나 검성의 곁으로 갔고, 이윤후와 조준혁이 보여 줄 대결을 기다렸다.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십니까?”

단지경은 서로 마주 본 채 긴장감만 흐르는 두 사람을 가리키며 검성에게 물었다.

“저 아이의 실력이 나와 대결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윤후에게 질 것이다.”

“설마요……?”

검성의 담담한 대답에 단지경보다도 더 놀란 유인경이 자신도 모르게 되물었다. 유인경은 빙궁에 머물면서 빙궁의 고수들에 대해 단채영에게 많이 들었고 조준혁의 무용담도 많이 들었다.

현재 빙궁은 두 세력으로 파벌이 갈려 있지만, 사실상 빙궁의 최고수가 눈앞의 조준혁이라는 것이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런 고수를 반년 만에 따라잡았다는 건 상식에서 벗어난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검성이 조준혁과 이윤후의 무공 수위를 동일선상에 놓고 이야기하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윤후는 나의 무공의 모든 것을 단 오 년의 기간 동안 모두 익힌 아이다. 무공을 제대로 펼칠 수만 있다면 현 무림에 윤후의 상대는 많지 않을 것이야.”

검성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단지경과 유인경은 그런 검성의 평가에 살짝 의심이 들긴 했지만 검성이 허언을 할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더욱 이윤후의 실력이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을 서로 노려보고 있을 뿐,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왜 저리 노려보고만 있는 것이죠?”

“서로 발검(拔劍)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데 빈틈이 보이지 않아 움직이지 못하는 듯하군요. 찰나의 틈이 승패를 가르는 법이니까요.”

참지 못한 유인경의 물음에 이번엔 단지경이 답해 주었다. 그는 흥미롭다는 듯 이윤후를 살펴보고 있었다. 검성의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준혁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윤후의 무공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스슥―

순간, 이윤후가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왼쪽 발끝을 밀듯이 앞으로 살짝 내밀며 초식의 형(形)을 준비했다. 그 변화에 조준혁도 안력을 돋우며 긴장했다.

유인경은 두 사람의 격돌이 머지않았음을 느꼈다.

파박―

차자장―

누구랄 것도 없이 이윤후와 조준혁이 동시에 움직이며 발검했고,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에서 검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차자자장― 채쟁―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았던 그들은 눈 깜짝할 새에 십여 초 이상 교환했고, 유인경은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의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

촤좡―

금속음이 크게 울리며 엉켜 있던 두 사람이 다시 거리가 벌어졌고, 다시금 조금 떨어진 채 검을 서로에게 겨누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엔 긴 침묵이 이어지지 않았다.

촤자작―

이윤후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뇌정의 파편이 폭사되었다. 짧은 찰나 강맹한 기운이 몰아치자 조준혁도 조금 놀라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비설진폭(飛雪震爆)!”

콰르르릉―

조준혁의 검이 날아드는 뇌정의 파편을 향해 검을 내뻗자 엄청난 폭음과 함께 마치 눈발이 휘날리는 듯한 검기가 몰아치기 시작했고, 두 개의 검기가 부딪쳤다.

콰과과광―

뇌정과 비설.

두 개의 기운이 부딪치자 굉음이 들렸고, 수련동이 흔들릴 만큼 진동이 울렸다.

쿠당탕―

“크헉……!”

기운의 충돌로 인해 이윤후의 신형이 충격으로 뒤로 꼬꾸라졌고 조준혁 또한 충격을 받고 밀려나긴 했지만, 밀려났을 뿐 이윤후처럼 보기 안 좋게 쓰러지지는 않았다.

“이 소협이 패한 것인가요?”

유인경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검성에게 물었지만, 검성은 벌어진 상황에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있었다.

“이 소협이 요란하게 쓰러지긴 했으나 충격이 심하지 않았어요. 기운이 상쇄되면서 그 충격파가 양쪽을 덮쳤는데, 오히려 이 소협쪽이 더 영리하게 그 기운을 흘려 버린 거 같군요.”

유인경의 물음을 답해 준 것은 검성이 아닌 단지경이었다. 단지경도 처음 상황은 이윤후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으나 오히려 그 반대였다.

단지경의 말에 그제야 유인경은 조준혁을 보았다. 멀쩡해 보였던 조준혁의 모습은 처음과 달랐다. 밀려나기만 했다고 생각한 조준혁의 옆구리에 큰 상처가 나 피가 흥건히 묻어나 있었고, 그의 표정도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요란하게 바닥을 뒹굴었던 이윤후는 멀쩡하게 일어나 먼지를 털어 내며 손에 쥔 상월검을 한 차례 바라보고는 조준혁에게 시선을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조준혁의 옆구리 상처의 피가 옷을 적신 것은 물론 바닥까지 흐르자, 이윤후는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사실 이윤후가 펼친 것은 기습에 가까운 공격이었지만, 조준혁이 대응을 잘못하면서 큰 피해를 본 것이었다.

이윤후가 펼친 비뢰섬(飛雷閃)은 상대의 허점을 만들기 위한 초식이었다. 생각 외로 강맹한 기운에 조준혁이 놀라 비설진폭이라는 큰 기술을 사용해 부딪쳤지만, 비뢰섬의 뇌정들은 수많은 조준혁의 검기 속에 사라졌으나 그중 한 개의 뇌정이 조준혁의 옆구리를 관통해 피해를 주었다.

이윤후 역시 날아든 검기를 막기 위해 비뢰광망(飛雷光芒)의 초식을 순간적으로 펼쳐 막아 내며 충격에 뒤로 튕긴 것이었다.

그 결과 이윤후는 큰 피해 없이 먼지를 뒤집어쓰는 정도로 끝이 났고, 반대로 조준혁이 관통상을 입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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