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출동(出洞)
천통자가 다녀간 뒤, 검성은 약선과 이야기를 나누고는 바로 이윤후가 수련을 하고 있는 동굴로 향했다. 수시로 검성이 이윤후의 수련 상황과 가벼운 대련까지도 봐주고 있었다.
이윤후도 굳이 동굴에 머물며 폐관에 가까운 수련 상황에 들지 않아도 되었지만 무림 초행에서 자신의 한계를 보았던 터라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검성도 이윤후가 조준혁에게 손을 써 보지도 못하고 패한 것에 마음을 두고 있음을 알고 그가 얼마나 강한지 이야기해 주었으나, 이윤후는 자신 때문에 사부인 검성의 이름에 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더욱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 이윤후의 마음이 기특하여 검성은 더욱 이윤후의 수련을 확실하게 지도해 주고 있었고. 오절과의 싸움에서 깨달음도 이윤후에게 알려 주기 위해 자신의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파직― 파지직―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뇌정의 파편이 번뜩이고 있었고 그로 인해 동굴 내부에는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동굴 외벽이 녹아 내릴 정도의 열기라…… 수준이 한층 더 올랐구나.”
검성은 느껴지는 열기를 뚫고 동굴 안으로 향했고, 동굴 외벽이 흘러내리듯이 녹아 내린 것을 보고는 감탄을 했다. 불과 며칠 전 왔을 때만 해도 멀쩡했던 외벽들이 이윤후의 수련에 의해 녹았다가 굳었다가를 반복한 것이었다.
이윤후가 있는 곳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열기가 느껴졌고 뇌정의 파편들 역시 번뜩이고 있었다.
촤자작―
검성이 넓은 동굴의 중앙에 들어서자마자 한 줄기 섬광이 폭사되어 왔고, 검성은 가볍게 왼손을 내뻗었다.
파밧―
검성이 왼손을 휘젓자 그를 향해 날아든 섬광이 흩어지듯이 사라졌다.
“제법 환영인사가 과해지는구나.”
검성은 섬광이 날아든 곳을 응시하며 말했다. 그곳에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는 자신의 제자 이윤후가 있었다.
“나름 성과가 있어 자신감 있게 날린 비뢰섬(飛雷閃)이었는데, 너무 쉽게 막으시는군요.”
이윤후는 한월검을 갈무리하며 검성을 향해 다가왔고 검성도 다가오는 제자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작정하고 날린 것도 아니지 않느냐?”
“작정하고 날렸어도 쉽게 막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녀가신 지 이틀이 지나지 않은 거 아닌가요?”
이윤후는 검성이 자신의 수련을 봐주고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온 것이 의아했다. 보통 검성은 삼 일마다 자신의 수련을 봐주기 위해 방문을 해 오고 있었는데, 다녀간 지 이틀 만에 검성이 방문하자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동굴 안이라 밤낮도 모르지 않느냐?”
검성은 이윤후의 말에 조금 놀라며 물었다. 검성은 삼 일 주기로 이윤후의 수련을 확인하고 새로운 것을 알려 주고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이윤후가 머물고 있는 동굴이 야명주로 인해 그리 어둡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밝지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동굴 안에서는 밖이 밤인지 낮인지 모를 정도가 되기에 시간과 날짜의 구분을 하기 힘들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윤후가 시간을 확실히 확인하는 모습에 검성은 놀란 것이었다.
“처음엔 저도 구분하지 못했지만, 누구의 도움으로 알 수 있게 되었죠.”
이윤후는 멋쩍게 웃음을 보이다가 검성이 궁금한 듯 자신을 바라보자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수련에 들어가고부터 백아가 날마다 동굴 밖에서 정오와 자정에 꼭 울더군요. 처음엔 그것이 정오와 자정에 우는 것도 몰랐는데 약선께서 제 몸을 봐주러 오셨을 때 이야기해 주셨어요. 백아가 정오와 자정에 꼭 울어서 산의 짐승들이 날마다 떨고 있다고요.”
“아…… 그랬던 거 같기도 하구나.”
검성도 백아가 우는 소리를 날마다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백아가 어지간히 널 보고 싶은 모양이구나.”
“저도 보고 싶긴 하네요.”
“보고 싶으면 봐야지. 나와 함께 갈 곳이 있으니 여기를 일단 정리하여라.”
“네?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놀라 물었다. 검성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것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수련동을 나가는 것은 예상외의 일이었다.
“무림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네가 도와주어야 할 일이 생겼단다.”
“제가 할 일이요? 제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이라면……?”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어리둥절하며 바라보았다. 사실 무림 경험이 일천한 이윤후로서는 자신이 무림에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무림에 나가서 동행했다고 하던 유인경이라는 아이. 그 아이를 데리고 와야 할 듯하다.”
“유 소저를요? 무슨 일이 생겼기에……?”
이윤후는 계속 질문만 하는 자신의 꼴이 우습다고 생각하여 말을 하다가 멈추었고, 바로 동굴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검성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라 생각했고, 검성을 믿었기에 지금은 스승의 말을 따라 수련동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검성도 그런 이윤후의 마음을 알았기에 묵묵히 이윤후를 지켜보고 있었고, 짐이 많지 않았기에 이윤후의 정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가서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마.”
검성은 말을 하고는 먼저 동굴을 나섰고, 이윤후도 검성의 뒤를 천천히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 * *
자정(子正)이 지난 시각, 화산에도 어둠이 짙게 깔렸고 유독 오늘은 달이 구름에 가려 더욱 어두웠다.
사사삭―
그런 어둠을 뚫고, 어떤 자가 빠른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산을 오르고 있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던 인영이 도착한 곳은 검성이 수련을 하던 폭포의 앞이었다.
그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천존(天尊)을 뵙습니다.”
산을 오른 남자는 폭포 앞에 있던 인물을 향해 부복하며 예를 취했고, 폭포를 바라보고 있던 인물은 돌아서서 부복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움직였나 보군?”
돌아선 인물은 환영신마(幻影神魔)였고, 부복한 사내에게 천존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네. 천존의 예상대로 비천의 천통자가 약선과 같이 살고 있는 인물을 찾아왔고,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하산했습니다.”
“예상대로 움직이는군. 활불께서는 아직 따로 움직임이 없으시고?”
“네. 활불께서는 여전히 지존(地尊)에게 일을 맡기시고는 밖으로의 움직임은 없으시다고 합니다.”
사내의 말에 환영신마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애송이를 활불께서는 너무 믿고 계신 것이 아닌가?”
“그것이…… 활불을 꽤 오래 모셨던 집안이라 그러신 듯합니다.”
환영신마가 조금 화가 난 듯하자 사내는 조금 겁먹은 듯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사내는 불마사의 소속으로, 중원에서 활동하는 환영신마의 지시를 받고 있었다.
환영신마의 이전 명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환영신마의 감정 기복에 따라 여럿이 희생되었기에 사내는 더욱 겁을 먹고 있었다.
불마사는 이전의 무림행에서 무림에 커다란 피해를 주었지만, 불마사 또한 적지 않은 피해를 입어야 했다. 전대 활불이 무당의 장문인과 장로들의 동귀어진 공격에 같이 희생되면서 불마사는 구심점을 잃어 내홍에 휩쌓여야 했고, 내부적으로 종파들이 갈라지고 분쟁이 심화되었다.
이전의 영화를 찾을 길이 없어 보였던 불마사는 새로운 활불이 나타나면서 다시금 뭉치기 시작했고, 갈라졌던 종파들과 이전의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활불의 아래로 모여들었다.
금세 서장의 패권을 다시 잡은 불마사는 비밀스럽게 무림에도 손을 뻗치기 시작했고, 그 계획의 일환이 무림맹의 우금을 이용한 무림 혼란 야기였다.
이전의 불마사라면 하지 않았을 계획이었지만, 활불이 새로이 지정한 천지쌍존(天地雙尊)이 앞장서서 계획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천존 환영신마는 서장의 불마사의 인물들도 알 만큼 악명이 높았던 인물이었지만, 지존으로 지정된 인물은 불마사에서도 반발이 꽤 있었다.
하지만 활불의 이름으로 행한 일에 반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지존은 금세 자신이 왜 활불의 선택을 받았는지 증명해 내었다. 사패 중 하나인 만독곡을 편으로 끌어들였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후 불마사의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천존 환영신마는 우금을 지원하면서도, 사파의 독고진을 비밀리에 도우며 정사파 간의 이간질을 시도했고, 지존은 만독곡과 비밀리에 일을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환영신마는 자신과 이름을 나란히 하고 있는 지존을 탐탁지 않아 했다. 그가 일을 성공시켜 나갈수록 조바심을 내었기에 활불과 가까운 그를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그리고…… 지존이 이것을 천존에게 전하라 하였습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내어 건네었고, 천존은 지존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찌푸려져 있었다. 보고를 하는 사내에게서 거칠게 서찰을 받아 든 환영신마는 이내 인상이 굳어졌다.
‘무슨 내용이 써 있기에 저 노괴(老怪)의 표정이 굳어졌지?’
사내는 서찰을 읽던 환영신마의 표정이 달라진 것에 대해 궁금했으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괜히 성격 나쁜 환영신마를 건드려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흥! 애송이가 감히 나에게 명령을 내리다니 가소롭구나.”
콰직―
화르륵―
환영신마가 서찰을 구기더니 동시에 불길이 일며 서찰이 타올랐고 순식간에 재가 되어 바람에 날려 갔다.
“저기…… 지존이 전하라는 말이 더 있었는데…….”
사내는 예상된 환영신마의 반응에 조금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까지는 아니길 바랬는데…….’
말을 이어 가려던 사내의 어깨가 떨렸고, 환영신마도 그 변화를 눈치채고는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지존이 혹시나 천존께서 서찰을 받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면 전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사내는 말을 하며 살짝 고개를 들어 환영신마의 반응을 살폈는데, 무섭게 쏘아보는 환영신마의 눈빛에 금세 눈을 피해야 했다.
“그 능구렁이 같은 애송이가 내 행동을 예상하고 네게 지시를 했다는 이야기냐?”
서릿발 같은 환영신마의 노성에 사내는 어느새 몸 전체를 떨기 시작했다. 힘이 실린 환영신마의 음성이 그의 내부를 뒤흔들었기에 무공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그였지만 견디지 못하고 충격을 입은 것이었다.
“크흑…… 지존은 천존께서 혹시나 서찰의 내용을 따르지 않을…… 경우에 활불에 대한 도전으로 알겠다고 전하라 했습니다.”
사내는 말을 하고 차마 환영신마를 쳐다보지 못한 채 더욱 몸을 웅크린 채 있었다. 자신의 말을 들은 천존이 얼마나 화를 낼지 알고 있었기에 목숨만 부지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애송이가 감히 나를 말로서 겁박을 하려 드는군. 그것도 활불님의 이름까지 들이대면서 말이야. 좋아, 그놈이 원하는 것을 해 주지. 가서 전하여라.”
“네? 네! 말씀하십시오.”
환영신마가 의외로 화를 내지 않자 사내는 놀라 얼른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서찰에 적힌 것을 행하겠다고 전하여라. 그리고 내가 그 애송이의 말을 듣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란 것을 확실히 전하도록 해라. 난 활불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네. 확실히 전하겠습니다.”
사내는 속으로 안심을 하며 대답을 했다. 사실 처음 이 임무를 지존에게 받았을 때 유서까지 써 두고 온 그였다.
지존은 서찰을 전하면서 천존이 서찰의 내용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낼 것이니 말을 전하라 했고, 그 말을 들은 사내는 낯빛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서찰의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화를 내는 천존에게 지존의 말을 전한다면 자신은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살아 있었고 하늘에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저들을 그냥 지켜보실 생각입니까?”
안심하던 사내는 정신을 차린 듯 환영신마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저들이 나서 줘야 나도 재미있을 것이라 지켜본 것뿐이다. 이 내용은 절대 지존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전하지 말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사내는 환영신마의 말을 선뜻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뜻을 어겨서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마음은 없었기에 바로 대답을 했고, 소속 자체도 환영신마의 명을 따라야 하는지라 이 일은 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