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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18화 (118/251)

118화― 협상의 미끼(2)

“그런데, 설마 네가 하고 있는 생각이 그 아이를 이용해 사파의 분란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이미 짐작하고 계셨습니까?”

검성이 먼저 입을 열자, 천통자는 표정을 살짝 굳히며 답했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 이미 짐작하고 있어 놓고는 모르는 척 내게 질문을 하다니…….’

천통자의 표정에 지켜보던 약선은 재미있다는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고, 검성의 표정이 의외로 심각하자 약선은 끼어들려다가 물러서야 했다.

검성의 표정을 확인한 천통자도 조금 놀란 듯 검성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침묵이 잠깐 흘렀다.

“이것은 너의 뜻이냐? 아니면 비천의 생각이냐?”

“저의…… 생각이었고, 본회(本會)에서도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검성이 은연중에 내뿜고 있는 기운에 천통자는 눈치를 살폈다. 한눈에 봐도 검성이 화가 나 있음을 알 수 있었기에 천통자는 최대한 조심하려 했다.

“유인경 그 아이를 사왕련에서 죽이려 했다고 들었다.”

“네…… 살수들에게 쫓기는 것을 이 소협이 구해 줬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 아이가 이 일에 전면으로 나서는 것을 사왕련이 가만히 있지 않겠구나?”

“그럴 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미 사파에서는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까요.”

천통자는 검성이 왜 위압적으로 나오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유인경 그녀를 특별하게 여기시는 것인가? 이러면 예상과 다른데…….’

천통자는 심경이 복잡한 듯 계속 검성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윤후와 유인경이 서로 호감을 가지긴 했으나, 관계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분명 이 일에 유인경이 전면적으로 나서게 된다면 유인경은 사파에 의해 무사하기 힘들게 분명했다. 하지만 비천이나 천통자 모두 자신들의 대의(大義)를 위해 유인경을 희생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유인경은 사왕련으로부터 잃은 모든 것을 되찾고 싶어 할 게 분명했다. 복수를 꿈꾸고 있음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기에 그녀를 말로 쉽게 꾀어낼 수 있다고 여겼는데 의외로 검성이 반대하고 나서자 천통자는 난감해졌다.

“비천에서는 유인경을 희생시키더라도 이번 회담에 이용하겠다는 거구나?”

“그렇죠…… 그녀가 위험하긴 하겠지만, 저희가 지켜 줄 생각입니다…….”

검성의 위압적인 모습에 천통자는 말을 더듬었고 등에 식은땀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말을 나누고 있을 뿐인데…… 이런 위압감이라니…….’

천통자는 약선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내 보았으나 그녀가 자신을 편들어 줄 리는 만무했다. 약선 또한 검성이 의외의 모습을 보이자 조금은 당황하는 눈치였다.

“유인경. 그 아이는 윤후가 처음 무림에 나와 만난 사람이다. 그 아이를 희생시키는 그런 작전에는 동의하기 힘들군.”

“하지만…….”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뭐라 대꾸를 하고 싶었지만 검성과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주눅이 들어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천통자로서도 이렇게 물러나긴 힘들었다.

“검성께서 반대하시는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사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현재 상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유 소저를 이용하는 것뿐입니다.”

“…….”

천통자는 검성이 말이 없자 숨을 고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리 검성과 약선이 나선다 한들 사파에선 회담에 나서지 않을 게 분명합니다. 그들로서는 정파와의 회담에서 딱히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천통자의 말은 검성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자신이 무림맹의 요청으로 사파와의 회담에 나선다 한들 사파에서 거부한다면 만남조차 힘들 게 분명했다.

“하지만 흑월도존의 손녀인 유인경의 존재를 이용한다면 그들을 회담장으로 끌어낼 수도 있고, 그녀의 존재로 인해 사파가 붕괴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천통자는 피를 토하듯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그러는 동안에도 시시각각 검성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 아이를 이용해 사파를 붕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사왕련의 결속이 약하다는 거냐?”

“네. 사파는 현재 사마련의 체제에서 사왕련으로 이름만 바뀌었다고 볼 수 있는데, 독고진이 전면으로 나서게 되면서 그전의 흑월도존을 따르던 인물들은 사왕련과 등을 졌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무력 충돌 없이 갈등이 봉합되면서…… 서로 출혈은 없었지만 여전히 독고진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하는 것은 아니지요. 유인경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사왕련의 일부가 그녀의 편이 되어 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군. 유인경이 자객에 의해 죽을 뻔했고, 그것이 독고진의 짓임을 알게 되면 분명 사파는 갈라진 채 충돌할 거라는 뜻이지?”

“네.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천통자는 검성이 자신의 이야기에 동감을 해 주는 듯하자 조금은 자신감이 생긴 채 말을 이어 가기 시작했다.

“현재 사파는 사왕련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사상누각(沙上樓閣) 그 자체일 뿐입니다. 사파는 이전부터 정파에 대한 원한이 있어 사왕련의 뜻과 같이하고는 있지만 독고진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흑월도존을 해하고 그의 손녀인 유인경마저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바람에 흩날리는 모래처럼 사라질 겁니다.”

“그 정도로 흑월도존의 인망이 두터웠다는 이야기겠군.”

검성은 흑월도존을 실제로 대하지는 못했지만 들을수록 그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파의 힘은 오절이 있을 당시도 약하지 않았다. 그저 사파끼리 뭉치지 않아서 정파에게 밀릴 뿐이었다.

오절의 명성과 힘을 업은 채 정파의 다수 문파들이 횡포를 일삼을 때도 자신들이 뭉칠 생각조차 안 하던 곳이 사파였다. 그런 사파를 한데 뭉친 흑월도존이 어떤 자인지 검성이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흑월도존이 나타나 사파를 한데 뭉치려 한다고 행보를 보일 때도, 정파는 물론 저희 비천회도 그의 행동을 미련하다고만 생각했지 전혀 대응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힘으로 사파일통을 이룬 이는 적지 않았으나 모두의 마음을 얻어 오랜 기간 사파를 한 울타리로 모은 것은 흑월도존이 처음입니다. 그가 천하일통을 꿈꾸었다면 그것마저 이루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천하일통이라. 무림일통이 아니라 천하를 사로잡을 만한 인물이었다고 보는 것인가?”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더욱 흑월도존을 만나 보고 싶어졌다. 검성도 천통자가 장난기 있는 인물이긴 하나 지금 현재 분위기에서 자신에게 허언을 할 인물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천하일통의 인물이라는 말은 천자(天子)의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쉽게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 비천에서는 흑월도존이 죽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냐?”

“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독고진이 자신의 은인인 흑월도존을 두고 실권을 잡으려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흑월도존은 무림맹주였던 우금에 의해 중독되었는데 목숨을 부지하긴 힘들었을 겁니다. 대외적으로는 병상에 있는 것으로 되어 있긴 합니다.”

천통자의 대답에 검성의 눈이 반짝였고 갑자기 약선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거죠?”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약선은 검성이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조금 놀란 듯 물었다. 그녀는 검성의 눈빛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렇게 원하던 검성의 눈빛이었으나 막상 바라봐 주니 부끄러웠다.

“이번 회담에 그대의 도움이 확실히 필요할 거 같군.”

“그게 무슨 말이죠?”

검성의 갑작스러운 말에 약선은 물론 천통자도 어리둥절했다.

“천통자의 말을 듣다 불현듯 생각난 것인데…… 사파의 사왕련에서 이번 회담 제의 자체를 거부할 것이라고 한다면, 그쪽에서 거부하기 힘든 것을 제의하면 되지 않겠소.”

검성은 약선과 천통자를 번갈아 보면서 이야기했고, 그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검성의 모습에 더욱 궁금해했다.

“그들이 거부하기 힘든 것이라뇨? 유인경 말고 다른 대안이 있으시다는 것입니까?”

천통자는 검성의 말을 기다리지 못하고 질문했다.

“이미 네가 말한 것에 정답이 있었는데 모르겠느냐?”

“제가요? 무엇을……?”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더욱 궁금했고 검성이 뜸을 들이자 괜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저도 궁금하니 얼른 이야기해 줘요.”

검성이 천통자를 약 올리듯이 말을 하지 않자, 약선이 나섰다. 특히 자신이 관련된 듯하여 더욱 궁금하였다.

“사파에서 이번 회담에 나설 수밖에 없는 조건은 의외로 간단할 거 같소. 바로 그대가 나서는 것이지.”

“제가요? 제가 나선다고 한들 사파에서 회담을 나설 이유가 있나요? 저는 사파와 그다지 친교가 깊지 않아요. 현재 사왕련의 련주와는 더욱 만난 적도 없고요.”

“아니. 그대가 나선다면 그들은 회담 제의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요. 천통자가 말하지 않았소. 대외적으로 흑월도존은 병상에 든 상태라고.”

“아……!”

“그렇군요.”

그 말에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고, 검성이 말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검성의 말씀은 사파가 회담에 나오는 조건으로 흑월도존의 치료를 약선께서 봐주겠다는 약조를 하라는 것이군요?”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개적으로 약선이 흑월도존의 상태를 봐주겠다는 것을 회담 조건으로 내세운다면 사왕련은 절대 거부하지 못하겠지?”

“물론입니다. 거부할 명분이 없습니다. 만일 사왕련에서 거부한다면 흑월도존의 상태를 방관한다는 비난에 휩쌓이게 될 테고, 안 그래도 이미 죽은 것이 아닌지 아니면 애초에 독고진이 흑월도존을 죽인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자들도 있기에 사왕련은 절대로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천통자는 검성의 생각이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사파는 이 제안을 절대로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흑월도존의 상태도 파악할 수도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굳이 유인경을 이용할 것도 없이 일이 풀릴 수도 있겠군요.”

천통자도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그라고 한들 어린 유인경을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방법이 그녀를 이용하는 것밖에 없었기에 냉정해질 수밖에 없었고, 나름 그녀를 끝까지 도울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대안은 있는 것이 좋으니 그 아이도 미리 설득해 놓도록 해라.”

“네? 그 일을 탐탁지 않아 하셨던 것이 아닙니까?”

천통자는 검성의 말이 의외인 듯 물었다.

“어차피 결국엔 그 아이를 이용해 사파를 분열시키려 할 것이 아니냐? 할 거면 제대로 하도록 해.”

“그거야 그렇지만…….”

천통자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었다. 이미 모든 앞을 내다보는 검성의 모습에 놀라기도 지칠 지경이었다. 어차피 검성의 말처럼 약선을 이용해 이번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결국엔 유인경을 이용해 사파의 분열을 야기해야 했다.

흑월도존의 생존이 불확실한 상황이니 회담장에 사파를 끌어낸다고 한들 좋은 결과를 끌어내긴 힘들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하책(下策)이지만 사패와의 싸움에 사파를 끌어들이기 힘들다면 사파의 분열을 시키기 위해 유인경을 전면에 내세울 예정이었다.

“무림맹과 조율하는 것은 네가 맡도록 해라. 우리의 뜻을 전하고 일을 진행하도록 말이다.”

“네. 제가 바로 그쪽이랑은 이야기하죠. 대신 유인경을 데려오는 일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나도 한번 만나 보고 싶으니 말이야.”

천통자는 검성이 바로 나서 주자 조금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표정을 감추었다. 이미 유인경을 만나 한 차례 의견을 나누었던 터라 확답을 듣는 것은 다음 만남 때 하려 했는데, 그것을 검성에게 맡긴 것이었다.

‘유 소저도 검성과 이 소협을 본다면 결단을 내리는 데 더 편할지 모르겠군.’

천통자는 검성과 이윤후가 그녀를 보호한다면 일이 더 쉽게 풀릴 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최대한 유인경을 지원해서 사파를 분열시킬 예정이지만, 비천회에서는 그녀의 안전을 끝까지 책임져 주긴 힘들었다.

최악의 경우 그녀를 희생시킬 생각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아예 검성에게 그녀를 맡기자는 판단을 천통자는 한 것이었다. 죄책감도 덜 수가 있었고, 그녀도 더욱 안전할 거라는 그의 판단이었다.

물론 자신의 마음이 편하자고 하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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