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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17화 (117/251)

117화― 협상의 미끼(1)

“남궁세가 덕분에 무림의 평화가 지켜지겠군요.”

모옥 안으로 들어온 천통자는 검성과 안명 사이에 있었던 일을 들을 수가 있었고, 비천의 제안을 그렇게 뿌리치던 검성이 이번 일에 나선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내가 나서는 것은 회담을 제안하는 정도까지다.”

검성은 약선이 내어 온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고, 그의 말에 천통자는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검성이 말은 저렇게 하지만 결국 회담이 결렬된다고 해도 사왕련의 지척에 있는 남궁세가를 위해 나설 수밖에 없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된다면 회담이 성사되던 결렬되던 검성은 정사대전의 중심에 있게 될 터였다.

“그건 그렇고, 비천에서는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지?”

검성의 물음에 천통자는 미소를 얼굴에서 감추고는 입을 떼었다.

“심각한 상황이죠. 이미 아실 수도 있지만 정파의 결속력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습니다. 현재 서안에서 정파 수장들의 수뇌부 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뜻이 모이지 않고 있습니다.”

“뜻이 모이지 않는다? 사파에서 이미 도전장을 날린 상황이나 다름없는데 뜻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인가?”

약선은 듣고만 있다가 천통자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약선께서는 무림에 멀어져 계셔서 모르시겠지만 정파의…… 아니, 구파일방의 결속력마저도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습니다. 사왕련에서 황산 일대를 자신의 근거지로 삼겠다는 선언한 것을 두고도 그곳에 가까운 문파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지만 오히려 사왕련과 먼 곳의 문파들은 이 일을 관망하려 들고 있죠.”

“관망(觀望)하려 한다?”

“네. 남궁세가 등 황산 일대의 문파들을 희생시켜서라도 그들의 힘을 가늠하고자 한다는 점이죠.”

그 말에 검성과 약선은 살짝 표정이 찌푸려졌고, 천통자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지나치게 긴 평화 속에 물든 정파들은 그간 자신들의 힘을 기르는 것을 도외시했고, 뭐…… 무림맹의 회의에서 뜻이 모인다 한들 사파의 힘과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소림과 무당이 이 일에 적극적이지 않고요.”

“소림과 무당이 왜 소극적인 대처를 하고 있는 것이지? 아무리 다른 곳들은 변한다 해도 그 두 곳은 다를 것인데…….”

검성은 안명과의 이야기 속에서도 궁금했던 부분을 천통자에게 물었다. 검성은 소림과 무당이 이번 일에 소극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 짐작했고, 비천이라면 그 이유를 알 것이라 여겼다.

“음…… 저희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부분은 아니나 소림과 무당은 더 큰 일을 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더 큰 일을 대비해?”

“네. 소림과 무당은 연이은 사패와 마교의 혈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문파들입니다. 많은 무림인들은 두 문파가 그때의 피해로 인해 소극적으로 변했다고만 알고 있죠.”

“그러니까 숨겨진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거군?”

검성의 질문에 천통자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가 뜸을 들이자 검성의 아미가 찡그려졌다. 천통자는 되레 그 모습을 조금 즐기는 듯이 다시금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소림과 무당은 사패와 마교의 연이은 무림 장악 야욕을 막아 내다가 큰 피해를 입었던 곳입니다. 이 일은 이미 꽤 오래된 이야기지요.”

“마교와의 일전에서는 소림이 큰 희생을 치러야 했고, 무당은 사패 중 불마사(佛魔寺)의 침공 때 큰 피해를 보았다고 듣기만 했었는데…….”

천통자의 말을 하며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았기에 약선이 그의 말에 대해 알고 있다는 듯이 답해 주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오절의 두 사람 이전에 있었던 일이기에 듣기만 했던 일이었다.

“그중 불마사의 침공은 전 무림이 큰 피해를 보았고 비천회 또한 많은 전력을 잃었던 큰 혈겁이었습니다. 무림의 칠 할 이상이 불마사의 행보에 무릎 꿇어야 했고, 무당의 장문인과 칠장로들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불마사의 활불과 동귀어진(同歸於盡)하면서 불마사를 다시 서장으로 몰아낼 수가 있었죠.”

“무당이 그 일로 인해 장문인과 장로들까지 한꺼번에 잃으면서 무당의 절학들이 일부 소실되기도 했지. 예전에 무당에 머물 때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군.”

검성은 무당에 머물며 만상오행공을 창안할 시기에 무당의 인물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중에 불마사의 혈겁에 관한 일도 있었다.

“네. 무당은 그 당시 피해로 인해 사람만 잃은 것이 아니라 절세기학들도 소실하면서 이후 무림 행보에 큰 관여를 하지 않은 채 소극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이번 일에 무당이 소극적인 것처럼요. 사람들은 불마사의 혈겁으로 인해 무당이 소극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실상은 조금 다르지요.”

“다른 이유가 있다?”

“네. 사설이 제법 길었으니 바로 말씀드리죠. 무당은 불마사의 혈겁 이후 서장으로 물러난 불마사의 잔당을 계속 주시해 왔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물론 약선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이 되었다.

“무당이 정사의 충돌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이 불마사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군.”

검성은 천통자와의 대화 흐름에서 어느 정도 의도를 파악한 듯 물었다.

“네. 비천에서도 최근 불마사의 근거지인 창도에서 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을 파악했는데, 무당은 이미 그전부터 파악하고 대비하는 듯합니다. 무당의 제자들이 수시로 새외를 둘러보면서 수행을 쌓는 이유도 그런 정보를 얻기 위한 일환이었던 거 같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검성과 약선은 살짝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왕련 쪽보다 불마사의 준동이 무림에게는 더 큰 위기 상황일 수가 있었다.

“문제는 불마사뿐만이 아닙니다.”

천통자의 말에 두 사람은 천통자를 다시 보았고,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최근 만독곡의 동향도 심상치 않습니다.”

“만독곡? 설마 그들이 다시……?”

천통자의 입에서 만독곡의 이야기가 나오자 약선이 표정이 굳어진 채 물었다. 천통자는 약선과 만독곡의 관계를 알고 있었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운남의 작은 마을 하나의 사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일이 있었는데, 만독곡의 짓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사패의 두 곳이 움직인다는 것인가?”

“문제는 그 두 곳이 서로 교류가 있는 듯합니다.”

“불마사와 만독곡이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로군.”

검성은 천통자의 충격적인 말을 다소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천통자의 말에서 두 곳이 같은 이유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놀라지 않았으나 약선은 달랐다.

만독곡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약선이라 만독곡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웠는데, 그들이 불마사와 함께한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사패는 독자적인 존재만으로도 무림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협조한다는 것은 무림에게 있어 재앙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그것도 사패 중 가장 문제인 두 곳의 연합이었다.

북해빙궁은 사실상 무림과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은 곳이었고, 뇌정궁도 무림보다는 도리어 북해빙궁과 세력 싸움을 하는 곳으로 무림과 크게 갈등이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불마사와 만독곡은 달랐다.

불마사가 무림에 진출을 시도한 것은 두 번. 그 두 번의 침공에 무림은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보아야 했다. 그리고 만독곡은 무림인이라면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림인들이라면 기본적으로 호승심(好勝心)이 있어 간계(奸計)를 쓰기도 하지만 직접 겨루고 인정받고 싶어하기 마련이고, 이것은 새외의 인물들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만독곡은 전혀 다른 곳이었다.

그들은 무림인뿐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에게도 독수를 뻗었고, 그들이 움직이는 곳에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들의 독술은 사천당가와 판이하게 달라 전혀 대응할 수 없었고, 크나큰 피해에 황궁이 나서기까지 했다.

“무림맹의 맹주였던 우금이 그 두 곳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 환영신마 그자도 그쪽 사람이라는 것이군.”

천통자는 검성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신마에 관해서도 조금 정보가 들어왔는데, 마저 확인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궁금했으나 일단은 더 캐묻지 않았다. 하지만 환영신마가 사패에 가담하고 있다면 문제가 제법 크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검성과 도후가 동시에 덤비고도 호각을 이루었던 환영신마였고, 잠깐 마주쳤을 때 그의 기도는 여전히 검성이 승리를 자신하기 힘들었다.

그런 그를 일개 하수인으로 쓰고 있다니. 그가 충성을 바치는 곳의 저력을 쉽사리 짐작하기 힘들었다.

“우금 그자가 사패와 연관된 자라면 일이 심각하잖아요. 사패에서 무림을 뒤흔들려는 계략을 펼쳤다는 것인데…… 그동안 사패가 무림을 넘본 일은 많았으나 이런 식의 일은…….”

듣고 있던 약선이 조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고, 그녀의 말에 천통자와 검성 모두 그녀와 같은 마음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사패의 세력은 늘 무림과 대립해 왔고 물리적 충돌이 기나긴 역사 동안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처럼 내부에서 분란을 일으키고 정사를 충돌시키려 계략을 쓰고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우금이 아직도 무림맹의 맹주였고 그의 계획대로 구파일방의 수뇌부가 그들에게 잡혔다면 정파는 사파에게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채 무너져야 했을 테죠.”

“그리고 사왕련이 정파를 모두 제압한다 한들 피해를 볼 테고 불마사와 만독곡이 무림을 장악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었겠지.”

천통자의 말에 검성이 의견을 보탰다.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지는군요. 이제 검성께서는 그럼 사왕련으로 가시는 겁니까?”

천통자는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주변 공기를 환기하듯이 다른 질문을 했다.

“안명이라는 자가 다녀갔으니, 그자가 준비를 하는 대로 움직일 생각이다.”

“흐음…… 그럼…….”

천통자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에 빠지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아참, 이 소협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제가 정신이 없어 이제야 묻는군요.”

“윤후는 수련 중이다. 뭔가 생각에 빠진거 같더니 갑자기 웬 윤후의 안부를 묻는 것이냐?”

검성은 뜬금없는 천통자의 말에 살짝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이제 할 이야기가 이 소협과 관련이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사왕련과의 협상에 중요한 일이 될수도 있고요.”

“윤후가 사왕련의 협상과 무슨 상관이냐?”

천통자의 조금은 뜬금없는 소리에 검성은 되물었다.

“정확하게는 이 소협이 사왕련 협상에 필요한 인물은 아니고요. 혹시 이 소협이 무림에 나와서 처음 동행한 이가 누구인지 들으셨습니까?”

“아…… 그렇군. 그 아이가 있었어.”

천통자의 질문에 약선은 유인경을 떠올렸다. 그녀는 이윤후와 유인경 모두를 북해빙궁에서 보았고, 유인경의 신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현재 사왕련주가 척살령을 내린 것이 아니었나? 죽을 위기를 윤후가 구해 줬다고 들었는데?”

“나도 그 아이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왕련과의 협상에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거지?”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이거 검성께서는 금세 제 의도를 파악하실지 알았는데, 나름 놀랍네요.”

천통자는 검성이 이번엔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물어 오자 기분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그간 천통자 자신이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검성이 이미 모두 파악한 상태였기에 기분이 살짝 상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엔 의외로 자신의 의도를 몰라 하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고, 천통자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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