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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16화 (116/251)

116화― 지은보은(知恩報恩)(3)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자 검성은 모옥을 빠져나왔다.

“또 나가는 건가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검성은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약선이 서 있었다.

“매일 이 시간에 산에 올라가 무엇을 하는 건가요?”

약선은 조금은 뚱한 표정을 보이며 물었다. 검성이 아침에도 나가서 식사를 거르고 오지 않을 때가 많았고, 저녁 시간 이후에도 이렇게 매일 나가서는 새벽에야 들어오곤 했다.

“수련을 하는 것이지. 내가 이 시간에 나가서 무얼 하겠소.”

“아직도 강해지려고 수련을 하는 건가요?”

“강해지기 위해 수련을 한다기보다는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여 몸을 쉴 수가 없다고 해야 할까…….”

검성은 살짝은 자신 없는 말투로 변명하듯 이야기했다. 자신도 설명하기 힘들었으나, 긴 잠에서 깨어난 후 권왕과 신투와 겨루면서 또다시 깨달은 것이 있었다.

“당신은 예전과 달리진 것이 없군요. 이미 당신의 상대는 무림에 존재하지 않을지 몰라요. 상대가 없는 강함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약선은 투정하듯 이야기했고, 그녀의 마음을 아는 검성을 살짝 미소를 보였다.

“상대가 없다고 한들 내가 몸을 쉴 필요가 있겠소? 내가 강해지고 느낀 것에 결과를 찾아낸다면 그것은 윤후에게 전해 줄 것이니 말이요.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지.”

“그렇게까지 윤후를 생각하는 건가요?”

약선은 검성의 말에 조금은 놀란 듯 물었다. 제자를 두지 않던 검성이 제자를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각별하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하나뿐인 내 제자이니 내가 생각해야지. 내 모든 것을 윤후에게 전할 것이요. 때가 온다면…….”

검성의 말에 약선은 이윤후가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오랜 시간 자신을 보아 주지 않던 사람이 자신의 제자에겐 이리 마음을 쓰다니. 이윤후가 부러웠다.

“그건 그렇고. 서문세가까지 이 일에 끌어들일 필요는 없었는데 괜찮겠소?”

검성은 안명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약선이 서문세가까지 힘을 보태겠다는 말에 놀랐었다. 서문세가는 무림의 일에 딱히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곳이었다.

“어차피 사파가 득세를 하게 된다면 서문세가도 무사하지는 못할 거예요. 황가와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사파들이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을 것이고요.”

약선은 약간은 즉흥적으로 이야기한 것이긴 하나 정사의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녀의 말처럼 서문세가만 그 전란을 피해 가기는 힘들 게 분명했다.

가장 큰 이유야 검성을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검성이 부담스러워할 것이 분명하기에 둘러대야 했다.

“정파 무림이 큰 위기이긴 하군요. 사파에 사패까지…….”

약선은 말끝을 흐리며 검성을 보았다.

“어차피 이 일로 정파는 큰 변화를 이루어야 하겠지. 긴 평화로 인해 나태해졌고 타인의 힘을 의존해 호의호식을 해 왔으니 말이요.”

검성도 이번 일을 돕는 것이 마냥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남궁세가의 위기를 그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

“끝까지 정파를 돕지는 않을 생각이군요?”

“물론이요. 내가 돕는 것은 이번 협상에 동행하는 정도이고, 가능하다면 남궁세가의 안전을 지켜 줄 것이요.”

“꽤 깊이 발을 들여 놔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알지요?”

약선은 검성의 말에 조금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이미 사왕련이 남궁세가의 지척에 있는 이상 정사대전이 정말로 시작된다면 남궁세가는 무사하기 힘들었다.

검성이 끝까지 남궁세가를 돕는다면 쉽게 발을 빼기 힘드리라는 점이 약선의 걱정이었다. 그렇기에 약선도 정파와 사파의 사이에 개입하려 하는 것이었다.

“정사의 싸움이라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지도…….”

검성은 작게 읊조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약선은 검성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사파와의 싸움이 또 다른 싸움을 일으키리라 생각하는군요?”

약선의 물음에 검성은 답하지 않았지만, 약선도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곳에 은거하며 무림과 담을 쌓은 채 생활하는 그녀였지만 서문세가를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

“정사대전이 벌어진다면 사패는 반드시 움직일 것이요. 그것은 누구나 알 만한 사실이니 비밀도 아니지.”

검성의 말에 약선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시탐탐 무림으로 세를 넓히려는 사패의 세력들은 정파와 사파가 서로 부딪치는 것을 기회라 여길게 분명했다.

“마교도 움직일 수 있겠네요.”

“마교의 움직임이 있소?”

약선의 말에 검성은 놀라 물었다.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은 없었지만, 마교도 정사가 부딪치는 이 기회를 놓치지는 않겠죠.”

“그렇군. 일리 있는 이야기야.”

“그렇기에 정사의 회담이 정말로 중요할 거예요.”

“그렇지. 가능하다면 정사가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검성은 말을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말하고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던 탓이었다.

‘천통자를 만나 보아야겠군.’

검성은 생각 끝에 천통자와 접촉해 비천에게 정보를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그들은 자신에게 정사대전을 막아 달라고 계속 요청해 왔기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난 산을 거닐고 올 테니 쉬시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하는 것이 좋겠군.”

“네. 그렇게 해요. 나도 내일 세가와 연락을 해야 할 듯하니까요.”

말을 마친 검성은 바로 산행에 오르기 시작했고, 약선은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다가 집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날이 밝았다.

검성과 약선이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약선의 거처로 찾아왔다. 누군가 다가오면 백아가 경계를 하지만, 백아는 이 방문자를 경계하지 않았다. 잘 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넉살좋게 웃음을 보이며 다가온 이는 천통자였다. 검성과 북평에서 헤어진 이후 이곳을 찾아오지 않던 그였지만 갑자기 방문을 해 왔다.

“당신이 부른 건가요?”

약선은 천통자를 확인하고는 검성에게 물었고, 검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이곳에 감시자를 붙여 놓은 것이겠지.”

“감시자요?”

약선은 천통자의 진짜 신분을 몰랐기에 검성이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검성의 말처럼 천통자는 검성을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약선의 거처에 비천의 인물들을 여럿 배치해 두고 있었다.

무림맹 참모인 안명이 비밀리에 맹을 떠났다는 사실을 비천이 놓칠 리 없었다. 그의 행선지가 약선의 거처라는 점이 바로 천통자에게 보고되었고, 이에 천통자는 기회라 여기며 이곳을 찾아온 것이었다.

천통자는 검성과 약선의 곁으로 가 정중하게 예를 취했고, 약선은 이 상황이 조금은 의아한 듯 검성을 보았다.

“내 생각보다는 빠르게 찾아왔구나?”

검성은 비천에서 사람을 붙여 놨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방문에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언제나 검성을 생각하고 있다 보니 왠지 찾으실 것 같아서 바로 찾아왔지요.”

천통자는 웃음을 보이며 답했고 그의 대답에 검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찾으려 하긴 했지만 천통자의 태도가 너무 능글맞았기에 조금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 무슨 말을 하는 거죠? 무언가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 건가요?”

약선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고, 그녀의 물음에 검성은 조금 난감한 듯 표정을 보였다.

비천의 일이 워낙 비밀이다 보니 약선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거 검성께서 약선 어르신에게 저에 대해 말하지 않았군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약선은 조금은 마음이 상한 듯 검성을 힐끗 쳐다보았고, 검성은 그 눈빛을 피했다. 그 모습에 천통자는 속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천통자는 약선에게 비천에 대해 설명을 했고, 그동안 검성의 복수를 도와 왔음을 말해 주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약선이 간간이 검성을 보았으나, 검성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천통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약선도 비천이라는 단체에 대해 들었을 때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사실 그녀도 천통자가 그냥 점쟁이나 그저 잡학에 능한 인물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신비지문인 비천의 소속일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도 검성이 자신에게 천통자의 정체를 말하지 않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지만, 검성이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기색을 보이자 괜히 더 화가 나 있는 척을 하고 있었다.

“당신이 신투와 권왕을 그렇게 빠르게 찾았던 이유가 비천의 덕이었군요. 조금은 이상하다 싶었어요.”

약선은 검성의 행보가 천통자의 말을 듣고서 확실히 이해가 갔다.

“저희도 검성 덕에 많은 것을 얻었으니 저희가 그냥 도운 것은 아닙니다. 우려스러웠던 오절의 세력도 검성 덕분에 처리를 했고…….”

천통자는 황궁의 이야기까지 하려다가 이내 멈추었다. 위험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기에 조심스러웠고, 검성이 눈빛을 보내왔기에 말을 멈추었다.

“당신은 천통자가 찾아올 것을 알았던 눈치네요?”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을 테니 찾아올 것이라고는 짐작하고 있었지.”

검성은 말을 하고는 천통자를 보았고,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웃어 보였다. 천통자도 비천의 인물들을 검성과 약선의 주위에 두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자칫하면 괜히 감시를 한다는 느낌을 줄 수가 있었고, 보통 인물들에게 사람을 붙이는 것이라면 들킬 염려조차 하지 않겠지만 오절의 이 인을 살펴보는 일이었기에 당연히 걸렸을 것을 알고 있었다.

검성은 그들이 산 주위에 있음을 알고도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비천에서도 최대한 검성과 약선의 심기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행동을 해 왔다.

“저희가 그렇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는 거부하시더니, 왜 마음을 바꾸신거죠?”

천통자는 대뜸 검성에게 물어 왔다. 천통자는 이미 안명에게 붙여 놓은 비천의 인물에게 검성과 약선이 무림맹을 도와 사왕련에 가기로 한 것을 들은 상태였다.

듣고는 검성이 이 일에 관여하는 것에 큰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권유를 해 왔을 때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는데, 무엇이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인지 궁금했다.

안명과 두 사람의 대화는 셋만이 알기에, 그 내용은 천통자가 보고를 듣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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