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동상이몽(同床異夢)(3)
“검성은 신투와의 일전을 마지막으로 무림을 완전히 떠난 것으로 보였는데, 다시 무림의 일에 관여할까요?”
미홍은 도후의 말에 살짝 고개를 갸웃한 채 물었다. 검성은 무림과 완전히 등진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현재 무림을 떠난 것은 확실하나, 남궁세가가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면 분명 도우려 할 것이 분명해. 무림인들과 딱히 인연을 쌓지 않았던 그가 아꼈던 사람이 남궁학이었어. 분명히 외면하지는 못할 거야.”
미홍의 물음에 도후는 다시 한번 확신하듯이 얘기했다.
“사왕련의 본거지와 남궁세가의 위치가 멀지 않으니 분명 정사대전이 벌어진다면 무조건 부딪치게 될겁니다. 정말로 검성이 남궁세가를 위해 나선다면 사파로서도 쉽지는 않겠네요.”
미홍은 상황이 재미있어진다고 생각했다. 현재 그녀가 판단하기로는 정사대전이 벌어진다면 사파의 절대 우세였다. 평화에 물들어 있던 정파로서는 준비된 사파의 힘을 막을 억제력이 없었다.
하지만 검성이 나선다면 상황이 달라질 게 분명했다.
“그런데 화산파의 인물들이 굳이 왜 홍예루를 통째로 빌려 그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지?”
“그저 과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과시?”
“네. 화산파는 근래 정파에서도 평가가 하락한 상황이니 홍예루를 통째로 빌려 세를 과시하고 싶었던 거죠.”
도후의 물음에 미홍도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마땅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말한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을 거같았다.
가끔 홍예루를 통째로 빌려 자신들의 금력을 과시하려는 문파나 세력이 존재했기에 화산파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난 그들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일부러 흘렸다고 생각이 드는구나.”
“설마요……?”
도후의 말에 미홍은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도후의 말을 듣고 보니 이상한 점이 많았음을 깨닫고 있었다.
“무림맹의 회의에 참석할 정도의 화산파의 인물이라면 아무리 너희가 잠행을 잘했다고 한들 분명 눈치를 챘을 것이다. 그들은 일부러 정보를 흘렸다고 봐야겠지.”
“그들이 왜 이곳에서 정보를……?”
“화산파가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는 거겠지. 우리에게 이런 정보를 흘리면서까지…….”
도후는 화산파의 의도를 정확하게 짐작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홍예루를 이렇게 빌려 들으란 듯이 이야기하는 부분은 의도된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설마…… 그분이 저희의 정보를 화산에 흘렸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미홍은 불현듯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그런 거 같구나. 그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일을 꾸미는지 모르지만, 화산파가 여기를 찾아온 것은 그와 관련이 있을 거야.”
도후의 표정도 살짝 심각해졌고 미홍도 조금 충격적이었는지 말을 잠시 잃었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그의 뜻이 무엇인지는…….”
“그럼 어떻게 할까요?”
“무림맹이 어떻게 움직이지 더 지켜보고 판단하자. 무림맹에서 누가 조양봉으로 떠나는지 지켜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미홍은 도후의 명령에 답하고는 사라졌고, 홀로 남은 도후는 구름이 가려 버린 달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 * *
무림맹 맹주실.
남궁인은 며칠을 걸친 회의 끝에 결국 확연한 답을 끌어내지 못해 마음이 무거워져 있었다.
“맹주님, 안명 선생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모시도록 해라.”
남궁인은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맹주실로 들어오는 안명을 맞이했다. 안명은 무공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지만, 지모(智謀)가 뛰어나 남궁세가에서는 그를 귀하게 모셨다.
특히 남궁인은 그에게 자신 딸의 교육을 맡길 만큼 믿고 있었고, 남궁인이 무림맹주의 임시 맹주에 오르면서 안명은 그의 참모로서 자연스럽게 무림맹에 머물고 있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우리 사이에 매번 그런 예를 취하실 필요 없습니다.”
안명이 남궁인에에 깍듯이 예를 표하자, 남궁인은 손사래를 치며 자리에 앉길 권했다.
“안색이 좋지 못하시군요. 회의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자리에 앉은 안명이 상석에 앉은 남궁인을 보고는 걱정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미 며칠을 걸친 회의도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채 서로의 이해관계만 확인하고 있었다.
“안명 선생도 회의를 줄곧 지켜보지 않았습니까? 날을 거듭할수록 답답해지기만 하더군요.”
남궁 .
“사왕련과 거리가 있는 세력들은 대놓고 방관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남궁인은 살짝 인상을 찌푸린 채 말했다. 이미 그의 인내심은 회의가 며칠간 결론 없이 길어지면서 바닥난 지 오래였다. 남궁세가에게 큰일이기도 했지만, 핵심적으로는 정파 무림에 큰 위기였다.
하지만 당장 자신들의 문파에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방관하겠다는 뜻을 보이는 문파들을 보니 그동안 정파의 유대가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사왕련의 힘을 정확히 가늠하지 못하니 그 힘을 남궁세가를 희생시켜서라도 보려고 하는 것도 같더군요. 맹주께서는 단단히 마음을 먹으셔야 합니다.”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사왕련이 무섭다고 남궁세가를 버리고 다들 불러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사왕련과의 전면전은 절대 무리지 않습니까?”
남궁인이 임시 맹주의 자리에 오르면서 안명과 남궁세가의 몇 명은 그를 따라 서안에 올라와 있었지만, 그의 아내와 딸인 남궁나연이 남궁세가에 있었다. 하여 남궁인으로서는 걱정이 많았다.
“소천개의 말처럼 약선 어르신과 접촉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약선 어르신을요? 약선께서 저희의 부탁을 들어줄지 아닐지도 모르지만 서문세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안명의 말에 남궁인은 살짝 난색을 보였다.
“저희로서는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사파와의 교섭에 아무나 갈 수도 없고…… 약선 어르신만 설득할 수 있다면 그만한 적임자는 없습니다.”
“그렇기야 하지만…….”
“약선 어르신은 정파뿐 아니라 사파에서도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분명히 사왕련으로서도 그분의 말을 무시하지는 못할 겁니다. 저희로서는 무조건 약선 어르신을 설득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안명의 단호한 말에 남궁인도 수긍은 했지만 마땅히 약선을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남궁인도 약선을 만나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친분은 없었다.
“그럼, 선생께서 약선 어르신을 만나 보시겠습니까?”
“네. 제가 어떻게든 약선 어르신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남궁인의 부탁에 안명을 바로 답했다. 어차피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신 말고는 갈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신세를 지고 있는 남궁세가의 일이다 보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럼 제가 준비를 하고 바로 떠날 채비를 하겠습니다. 맹주께서는 다른 이들에게 이 일을 비밀로 해 주십시오.”
“비밀이요? 그건 왜……?”
“회의에서도 의견이 모이지 않았는데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안다면 또 무슨 말이 나올지 모릅니다. 한시가 급한 시점에 그들을 설득하기도 힘들고…… 그냥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편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선생께서 약선 어르신을 만나 주십시오. 여기 일은 제가 어떻게든 처리하겠습니다.”
남궁인으로서는 세가의 존립이 걸린 문제라 자신이 직접 약선을 만나 사정하고도 싶었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었다.
“맹주님.”
“말씀하시죠. 갑자기 그렇게 부르니 무섭군요.”
안명은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 채 남궁인을 보고 입을 떼었다.
“맹주님은 남아서 회의를 이어 나가 반드시 모두의 뜻을 모아 주십시오.”
“물론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선생께서 혹시 따로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안명의 말에 조금은 의아한 듯 남궁인이 물었다.
“사실 이번 회의를 통해 정파의 결속력이 얼마나 형편없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그들만의 결속이라도 확실했었는데…… 지금은 자신들의 문파를 위해서만 움직이는 모양새가 확연했습니다.”
안명은 표정이 심각해진 채 말했다. 그의 말처럼 무림맹 회의에서 사왕련의 영역과 거리가 있는 문파들은 하나같이 남궁세가를 비롯한 안휘성 일대 문파들의 싸움에 참여하려 하지 않고 있었다.
남궁인과 안명이 믿고 있었던 오대세가의 다른 가주들과 대표들마저도 발언을 아낀 채 지켜보았고, 그것에 두 사람은 많은 실망을 했다. 현재 정파는 그만큼 결속력이 약화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도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정파 중에도 분명 사파에서 사주를 받은 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설마…… 그런 일이…….”
안명의 말에 남궁인은 믿기지 않는 듯 부정하고 싶었다.
“제가 사왕련의 참모라면 분명히 정파 중에 몇 군데를 반드시 섭외했을 겁니다. 그리고 무림맹의 이번 회의도 알고 있겠죠. 저라면 섭외한 정파에게 뜻이 모이지 못하도록 손을 썼을 겁니다. 현재 저희 회의가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거처럼요.”
“그런…….”
“저도 사실 이 부분에 대해 경계를 하고 반대 의견을 내는 이들에 대한 조사를 하려 했지만…… 맹주께서 보시다시피 방관을 하겠다는 문파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명은 사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을 내는 곳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파에 대해 사왕련과의 연관성을 캐기 위한 대비도 했었는데, 힘을 결집하는 데 반대하고 나선 문파들이 절대다수였기에 누가 사왕련에게 넘어간 것인지 판단조차 힘들었다.
“사왕련에서도 몰랐겠지요…… 정파가 이렇게 오합지졸의 결속력을 가진지 말이죠.”
안명은 말을 하면서도 마음이 답답해졌다. 사왕련이 굳이 손을 쓰지 않아도 정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갈라져 있었다. 뜻을 모으는 데도, 며칠을 걸친 회의를 해도 다들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고 있었고, 대의를 중요치 않게 여겼다.
“뜻이 모이기 전까지는 절대 회의를 끝내지 마십시오. 오늘이 안 되면 내일. 그리고 다음 날까지 계속해서 그들을 설득하여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선생의 뜻을 알았어요. 선생께서도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와 주십시오.”
“네. 전 채비를 하고 오늘 바로 떠나겠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안명은 말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시가 급한 일이었기에 차분한 성격의 그도 마음이 급해졌다.
“저도 남아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록 허울뿐인 임시 맹주의 자리지만…… 어떻게든 해 보이지요.”
남궁인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고 그의 말에 안명도 살짝 미소 지었다. 남궁인은 남궁학의 늦둥이로 태어나 다소 남궁세가의 걱정거리였었다.
비월검공이라 불렸던 자신 아버지의 무공도 제대로 소화 못 한 채 가주의 자리를 물려받아 자신의 아버지와 비교를 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남궁인에 대한 무림의 평가는 참 박했다. 안명 역시 무림의 소문을 그대로 믿어 왔고, 직접 남궁인을 만나기 전까지 남궁세가는 이전의 영화를 유지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명이 직접 만난 남궁인은 달랐다. 다소 장난기가 있는 사람이었지만, 진중할 때는 진중했고 평가와 달리 무공의 실력 또한 남달랐다. 그렇기에 안명은 남궁세가의 빈객이 되어 그와 친우가 될 수 있었다.
“이번의 무림의 위기는 남궁세가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맹주와 제가 그 발판을 만들어 보이도록 해 보죠.”
안명은 마지막으로 말을 남기고는 남궁인을 향해 예를 취하고 등을 돌렸다. 안명이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남궁인은 그가 사라지자 한숨을 내쉬었고 남겨진 책임감에 다소 가슴이 무거워졌다.
“이제 나도 내일을 제대로 해야겠지.”
남궁인은 자리에 다시 앉으며 낮게 읊조렸다. 다른 모두가 자신을 임시 맹주의 자리에 앉힌 이유는 그가 만만해 보였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그 평가를 바꿔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남궁인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