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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12화 (112/251)

112화― 동상이몽(同床異夢)(2)

홍예루(紅霓樓).

서안에서 가장 큰 기루로, 서안에 들르면 홍예루의 술을 맛보고 기녀를 만나 이야기를 해 봐야 서안에 다녀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만큼 서안에서는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 홍예루가 오늘 하루 문을 닫은 채 장사를 하지 않았고 홍예루를 찾은 많은 사람이 그냥 돌아가야 했다. 이유는 누군가 홍예루를 하루 독점을 했기 때문이었다.

* * *

홍예루의 심처.

마치 숲속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의 정원 한가운데 큰 정자가 있었고, 그곳에 사내들이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기루에서 전혀 여인이 보이지 않았고 무림인으로 보이는 사내들만 자리하고 있었다.

“장문인, 회의는 어떠했습니까?”

이미 질펀하게 취해 있는 자 중 한 명이 가장 상석에 앉은 인물에게 물었다. 장문인이라 불린 중년인은 화산파의 장문인 관운경이었고, 그도 얼굴이 붉어진 채 꽤 취해 있었다. 질문한 인물도 화산파의 철혈검(鐵血劍) 사마천이었다.

“다들 상황이 매우 급해지니 서로의 이익을 따지고 있더군. 하하, 그 꼴이 얼마나 우습던지…… 토악질이 나올 뻔했어.”

관운경은 웃다가 이내 표정이 굳어진 채 이야기했다.

“정파라는 것들이 사파와의 싸움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뒷짐을 지고 있는 자들도 있더군. 아무리 평화가 길어져 큰 싸움을 겪어 보지 못했다고 하나 너무 안일해.”

관운경은 빈 술잔을 따르며 말했다.

“뭐, 어차피 저희와 크게 상관없지 않습니까? 정사가 부딪친다고 한들 가장 피해 볼 곳은 남궁세가로 정해진 마당에 다른 곳들도 뒷짐지고 구경을 해 보겠다는 심산이겠죠.”

“그렇지.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곳은 남궁세가이고 말이야.”

“저희야 그저 방관하면서 적당한 선택을 하면 되겠지요.”

사마천의 말이 마음에 드는 듯 관운경은 미소를 지었다.

“무림이 어떻게 되든 내 알 바가 아니지. 화산의 일을 비웃고 멸시했던 자들을 위해 우리 화산이 전면적으로 나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야.”

관운경은 따른 술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우리야 적당히 방관하더라도, 같은 오대세가나 남궁세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문파들은 움직이지 않을까요? 임시라고는 하나, 명색이 무림맹주의 세가니까요.”

사마천의 말에 빈 술잔을 채우던 관운경이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아무리 정파가 힘을 모은다 한들 안휘성 일대는 사파의 앞마당이야. 절대 당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오랜 평화로 정파는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황. 반대로 사파는 오랜 기간 정파에 대한 원한을 품고 살아온 자들이 힘을 모아 놓은 상태지.”

관운경은 다시 술잔을 들이켜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결국 결속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무림맹은 남궁세가를 버리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 정파가 힘들어질 때 우리가 영웅처럼 나타나 모든 상황을 수습한다면 정파들도 우릴 다시 인정해 줄 거야. 그것을 대비해야지, 우린.”

관운경의 말에 사마천과 일행들이 크게 웃었다. 화산은 같은 정파에게도 무시를 당하며 울분을 참아 왔다.

관운경은 그것을 벗어날 계기를 이번 정사대전에서 찾으려 했다.

화산파는 차기 장문인을 다투던 화산칠검의 육 인의 비명횡사로 인해 어부지리로 가장 못하다고 평가를 받던 관운경이 화산파의 장문인에 오르면서 구파일방에서 마저 그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장문인 중에서 가장 어린 나이인 탓도 있었지만, 탐탁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장문인 위에 오른 그를 모두 의심하고 있었다.

화산 내부에서조차 화산칠검의 사고는 관운경의 짓이 아니냐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 다른 문파에서 말하는 것은 더 심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화산은 관운경이 장문인에 오르고 외부 행사에 거의 참여하지 않은 채 힘을 길러 왔다. 관운경은 무공에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미래를 보는 혜안(慧眼)을 가졌다. 그 덕에 무림의 평화가 길지 않음을 짐작하고 그에 대한 대비를 해 오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파가 정파에 싸움을 걸어오는 이 시점에서 다른 문파에 비해 내부적인 결속이나 싸울 전력도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것을 남궁인은 알았기에 회의에서 관운경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었다.

“어차피 안휘성 일대 모든 정파가 무너진다 한들 화산까지 넘어오기 전에 소림을 넘어야 하기에 우린 적당한 준비를 할 수 있지. 최대한 지켜볼 만큼 지켜보고 움직이는 게 좋아, 우린.”

관운경의 말에 사마천과 화산의 인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들도 관운경이 화산의 실권을 잡았을 때 불만이 있었으나, 막상 관운경이 화산의 장문인이 되자 화산은 모든 것이 잘 풀려 갔다.

실질적인 외부적인 평가는 하락했을지 모르나 관운경은 길게 보고 화산의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제자들을 착실하게 길러 내고, 화산의 재산도 불려 나가며 이전보다 화산파는 풍요로워졌다.

모두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술과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꽤 시간이 흘렀을 때, 사마천은 관운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장문인, 혹시 약선과 친분이 있으십니까?”

“약선? 화산의 조양봉에 자리 잡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 이전 장문인과 친분이 깊었지만 나와는 장문인이 되기 전에 인사를 잠깐 나눈 정도밖에 없어.”

관운경은 사마천의 물음에 살짝 의아한 듯 답하고는 그를 보았다.

“회의 때 약선을 사파와의 교섭인으로 뽑자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랬었지. 개방의 방주가 약선을 이야기하더군.”

관운경은 회의 당시를 떠올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않나? 약선은 이미 무림을 떠나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있다. 무림맹이 부탁한다고 들어줄 약선도 아니고 말이야. 약선에게 그런 제의를 한 것만으로도 서문세가에서 가만히 있지도 않을 테니 무림맹이 미치지 않고서야 약선에게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겠지.”

“그렇긴 하죠. 약선이 직접 나서 준다면 모를까? 하긴 나서 준다고 해도 서문세가의 가주가 가만히 있지 않기는 하겠군요.”

“그렇지. 서문세가가 오대세가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힘은 절대 아무도 무시하지 못해. 워낙 특별한 곳이고 대대로 황가(皇家)와도 관련이 있으니 무림의 누구도 그들을 건드리지 못해. 거기다 현 가주인 서문환이 약선을 챙기는 것은 전 무림이 알고 있으니 무림맹이라도 약선에게 말을 꺼내지 못할 거야.”

관운경의 말에 사마천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사마천이 화산으로 돌아가던 도중 서문세가의 여인들과 다툼이 생겼다가 사과를 바로 하고 빠졌던 이유도 서문세가의 힘을 두려워해서였다.

“그래도 아마 남궁인은 약선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네? 무림맹주가 설마 그런 무리수를 둘까요? 서문세가의 서문환은 전대의 남궁세가의 가주였던 비월검공조차 함부로 하지 못했지 않습니까?”

“너도 흘러가는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는구나.”

관운경은 사마천을 살짝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남궁인으로서는 어차피 세가의 존속이 걸린 문제니 서문세가가 아무리 눈치가 보인다 한들 무조건 약선을 만나려 할 거야. 서문세가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다음 문제지. 그리고 약선만 설득할 수 있다면 서문환이 아무리 날뛴다 한들 자신 누님의 말에 복종할 테고. 운이 좋으면 약선과 서문세가 모두를 이 일에 끌어들일 수 있으니 무림맹이나 남궁인으로서는 무조건 약선을 만나려 할 것이다.”

“아, 그렇군요. 제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마천은 관운경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관운경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을 관운경이 이야기해 주자 그의 생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약선이 나서 줄까요?”

“약선이 나선다고 사파가 진정될 리 없어. 무림맹도 그것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시간을 벌고 싶겠지. 하지만 무엇보다 약선이 이런 일에 나설 리가 없지.”

사마천의 물음에 관운경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관운경도 약선과 친분은 없었지만, 그에 관한 이야기는 그의 사부를 통해 많이 들어 왔었다. 약선은 무림의 다툼에 끼는 일이 다른 오절에 비해 극히 적었다.

“남궁인이 과연 약선에게 누굴 보낼지 기대되긴 하는군.”

“그야…… 안명 선생이 아닐까요? 남궁세가에 언변이 되고 발이 넓은 사람이라고는 안명 선생밖에 없지 않습니까?”

“뭐, 아마도 그렇겠지.”

관운경은 흥미가 떨어진 듯 다시 술잔을 들어 올렸고 사마천도 더는 묻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 * *

“화산파의 장문인이 홍예루를 하루 빌렸다고?”

홍예루의 외곽.

사람들이 워낙 많이 드나드는 홍예루였지만 홍예루의 외곽 사람이 드나들지 않는 곳이 있었다.

그곳을 거닐던 백의를 입은 중년 미부가 자신의 등 뒤에 나타난 여인을 보고는 물었다.

중년 미부 뒤에 무릎을 꿇은 채 있는 여인은 무림맹의 주작단주였던 미홍이었다. 그녀의 또 다른 신분은 홍예루의 루주였고, 그런 그녀의 앞에 등을 돌린 채 묻는 중년 미부는 도후(刀后) 유가영이었다.

도후는 검성과의 만남 이후 왕옥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홍예루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의 제자인 유형지가 돌아갔기에 미홍이 그녀를 모시고 있었다.

“네. 얼마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이곳을 빌렸나 했는데 그렇게 문제 되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미홍을 이야기를 하다 살짝 말끝을 흐렸고 도후는 등을 돌려 그녀를 보았다.

“무슨 일이기에 말을 하다 멈추는 것이냐?”

“이야기는 저희의 예상대로 무림맹의 회의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으나…… 그 내용 중에 약선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애령의 이야기?”

미홍의 말에 도후의 아미(蛾眉)가 꿈틀거렸다.

“네.”

“자세히 말해 보아라.”

“무림맹의 회의는 저희의 예상대로 정사대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정파에서는 사파와 교섭을 하기 위해 방안을 구상 중인 듯합니다. 그 교섭인으로서 약선의 이름이 나온 거 같습니다.”

미홍은 보고를 하며 살짝 도후의 눈치를 살폈다. 오절 중에 도후와 약선이 딱히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가 같은 사내를 좋아한 사이니 미홍으로서는 도후 앞에서 약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애령은 아직 조양봉에 있나?”

잠시 생각에 빠졌던 도후가 미홍을 보고 물었다.

“네. 약선의 곁에 현재 검성도 머물고 있습니다. 일전에 보고드렸다시피 검성의 제자가 약선의 도움을 받아 그곳에서 수련하고 있다 합니다.”

그 말에 도후는 다시 생각에 빠진 듯 침묵했고, 미홍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도후는 검성이 신투를 죽인 후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렸으나, 검성은 그녀를 찾지 않은 채 약선이 있는 조양봉으로 갔다.

미홍은 정보원들을 이용해 그곳에 이윤후가 수련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었고, 그 사실을 도후에게 보고해 둔 상태였다.

검성이 신투를 죽이고 벽령을 해산시킨 것이 십인회에 알려지자 도후의 안위를 걱정한 십인회의 가신들과 유형지는 비상이 걸려 모두 도후를 지키기 위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검성은 도후를 찾지 않은 채 사라졌다. 검성이 약선이 있는 조양봉에서 제자와 있음을 알자 모두 안심을 하고 다시 흩어졌다.

십인회로서는 안심했던 일이지만, 도후는 그렇지 않았다. 검성의 손에 죽길 원했던 도후였기에 자신을 찾지 않고 가 버린 검성이 살짝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마 자신을 찾지 못한 검성의 마음을 도후도 알았기에 직접 찾아가지는 못했다.

“네가 보기에 어떠하냐?”

한참을 침묵하던 도후가 입을 떼 미홍에게 물었다.

“무엇을요?”

“무림맹에서 애령에게 교섭인을 부탁하는 것 말이다.”

“그거라면…… 사실 약선 어르신이 응할 리 없지 않을까요? 무림에 딱히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약선이시니 굳이 나서지 않을 듯합니다. 약선은 남궁세가와 딱히 인연도 없으니까요.”

미홍의 말에 도후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가 입을 열었다.

“애령의 곁에 그 사람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검성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애령은 남궁세가나 무림과 딱히 인연이 없지만, 그 사람은 남궁세가와 깊은 연관이 있어…… 남궁세가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냥 있지는 못할 거야.”

도후는 검성과 전대 남궁세가의 가주인 비월검공 남궁학의 인연을 알았기에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검성의 성격상 남궁세가의 위기를 방관하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했고, 사파와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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