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동상이몽(同床異夢)(1)
사파일통(邪派一統).
흑월도존(黑月刀尊) 유상휘가 이루어 내었던 대업이 그의 제자인 독고진에 의해 또다시 이루어졌다.
사실상 흑월도존이 이루어 낸 사파의 연합을 다시금 하나로 만든 것이었지만, 독고진의 위업을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정파로 인해 오랜 기간 억압받았던 사파의 인물들이 흑월도존의 그늘 아래 모여들어 하나의 울타리가 된 문파가 이전의 사마련(邪魔聯)이었다.
사마련이 사왕련으로 이름이 바뀌고, 흑월도존이 사라지고 독고진이 전면에 나서면서 많은 사파의 문파들이 독고진 곁을 떠났다.
사마련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수라마검과 흑월창제는 독고진을 따랐지만, 사마련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하던 적하문(赤霞門)과 구룡도문(九龍刀門)이 독고진을 따르기를 거부했고, 크고 작은 문파들도 사왕련의 그늘에 있기를 거부하며 떠나갔다.
하지만 독고진은 떠나간 문파와 세력들을 힘으로만 억압하지 않고 설득을 통해 많은 피를 보지 않은 채 이전의 사마련처럼 사파일통을 이루어 내었고, 그렇기에 무림인들이 독고진에 대한 평가를 다시 했다.
사왕련의 사파일통으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정파 쪽이었다. 정파로서는 최대한 사왕련이 다시 세를 불리는 과정에서 서로 부딪쳐 최대한 시간이 걸리고 서로 피해가 있기를 바랐으나 정파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사왕련이 사파의 세력을 일통하면서 정사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정파는 최대한 웅크리며 사파와의 접촉을 최대한 금하라는 무림맹의 지시가 떨어졌다. 이에 몇몇 정파에서는 무림맹의 지시에 반발하는 곳도 생겨났다.
사왕련은 사파일통을 이룬 뒤 무림일통을 위한 발걸음을 시작할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그 첫 단계가 바로 사왕련의 본거지인 황산(黃山) 일대 안휘성을 사파의 근거지로 삼는 것이었다.
황산이 있는 안휘성은 남궁세가의 세력이었고, 크고 작은 정파 문파도 많은 곳이었다. 그로 인해 안휘성 일대는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 * *
서안(西安) 무림맹(武林盟).
회의실.
회의실에는 이미 사람들로 빼곡히 차 있었고 빈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사왕련이 사파를 일통하자 부랴부랴 무립첩이 각 문파에 돌려졌고 바로 서안으로 모두들 모인 것이었다.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제 어떻게 할지…… 대책이 있습니까?”
남궁세가의 안명 선생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다들 입을 닫은 채 조용해졌다.
“일단 제가 상황을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누군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이야기하자 모두 그곳을 보았다. 그는 개방의 방주인 소천개였다. 소천개가 입을 열자 모두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조용해졌다.
“현재 사파는 모두 알다시피 하나의 세력으로서 힘을 단단히 모은 상황입니다. 이전에 흑월도존 유상휘가 있던 시절의 사마련만큼 강대해졌죠.”
소천개의 말에 조용했던 회의장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다들 이미 아는 내용이었지만, 개방 방주의 입에서 들으니 더 충격적이었다.
소천개는 주위의 웅성거림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사왕련은 이번 사파 세력의 규합에서 전혀 잃은 것 없이 하나의 세력을 구축했고, 현재 알려진 대로 황산의 사왕련에 많은 힘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공표한 대로 황산 일대…… 즉, 안휘성을 사파의 본거지로 만들려고 하는 듯합니다.”
소천개의 말이 이어질수록 웅성거림이 커졌다. 사파의 위협이 코앞으로 왔다는 게 다들 믿기지 않는 듯했다.
특히 황산 일대 특히 안휘성은 남궁세가가 자리하고 있어 늘 정파의 영역에 가까운 곳이었는데, 그곳이 싸움의 시발점이 되려 하고 있었다.
“사파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누군가 소천개를 향해 물었다.
“당장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금 당장 움직일 생각은 없어 보이긴 합니다만…… 침묵이 길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소천개는 모두에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고 그의 말이 끝나자 난상토론이 시작되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사파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진정된 것 아닙니까?”
“사왕련주와 이야기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의중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들 서로의 의견을 내며 어지럽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으나 특별한 결과를 내지 못한 채 말들만 이어졌다.
“사파와 이야기를 한다고 마땅한 대책이 나오겠습니까?”
“그렇다고 정말 정사대전을 시작하자는 겁니까? 싸움이 벌어진다면 양측 다 엄청난 출혈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파에서도 원하지 않을 겁니다.”
이야기는 점차 사파와 대화를 해야 한다는 쪽과 싸움을 준비하고 싸워야 한다는 쪽으로 갈리기 시작했고, 치열하게 서로의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상석에 앉은 임시 맹주 남궁인의 표정은 어두워져 갔다. 이미 사왕련과 싸움이 벌어지면 남궁세가는 그 싸움 가운데에 놓일 위기였다. 그렇기에 이번 회의를 통해 대책을 확실히 마련해야 했는데, 다들 서로의 의견만 내세운 채 대립하고 있었다.
싸워야 한다는 쪽은 대부분 사왕련의 영역과 먼 곳에 있는 문파와 세력들이었고, 대화를 하자는 쪽은 당장 싸움에 휘말릴 안휘성 근접의 문파와 세력들이었다. 지금 회의에서도 서로 문파의 위치에 따라 이기적인 대화가 오고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남궁인은 안명을 통해 회의가 시작되면 이런 식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언질을 듣긴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흘러가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소림은 정말로 이번 일에도 방관을 할 생각인가?’
남궁인은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와중에도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는 소림의 혜각(慧覺)을 보았다.
소림은 이미 마교와의 싸움 이후 무림에 딱히 움직임이 없었고, 이번 회의도 그저 혜각을 보내어 아무런 발언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결과가 나오면 그것에 따르겠다는 이야기만 전해 올 뿐이었다. 그런 소림의 태도는 남궁인을 답답하게 했다.
하지만 소림이 이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벌써 오랜 시간 같은 모습이었기에 소림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려웠다.
‘무당은……?’
남궁인은 무당의 대표로 자리한 현월자를 바라보았다. 현월자 역시 이야기 속에 끼지 않은 채 눈을 감으며 듣고만 있었다. 원래 말이 많은 인물이 아닌지라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관 장문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남궁인은 소림과 무당의 인물들을 차례로 보다가 화산파의 장문인 관운경(關雲暻)을 보고는 물었다. 남궁인의 말에 서로의 이야기로 시끄럽던 모두가 관운경에게 시선을 모았고, 시선을 받은 관운경은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맹주께서 저희 화산파의 의견까지 물으시다니 영광이군요.”
관운경은 살짝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의 말에 몇몇은 인상을 쓰기도 했다.
화산파의 장문인인 관운경은 무림에서 딱히 존경을 받는 인물은 아니었다. 화산파의 위신이 최근 땅에 떨어진 일이 발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갑자기 화산파의 장문인이 된 인물이었다.
원래는 화산파에는 화산칠검(華山七劍)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던 인물들이 있었다. 관운경은 그중 막내였다. 화산칠검 모두 워낙 출중한 무예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중 맏이가 차기 화산파의 장문인 감이라는 소리가 많았지만, 화산칠검 모두 사고로 죽고 혼자 남은 관운경이 장문인의 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그가 장문인에 오르면서 굉장히 많은 소문이 일었다. 그가 장문인이 되기 위해 다른 형제들을 모두 사지로 몰았다는 소문도 있어 무림인들은 관운경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좀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알기에 남궁인이 의견을 묻자 관운경이 그리 답했던 것이었다.
“화산파의 입장은 어떠합니까? 사파와 싸워야겠습니까? 아니면 대화를 해 봐야 할까요?”
“저희야…….”
남궁인이 다시 한번 묻자 관운경은 주위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뗐다.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인물이라 시선을 받자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싸움을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왜 그렇소?”
“어차피 결국 싸움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오?”
남궁인의 거듭된 질문에 관운경은 계속 답했다.
“사왕련의 수장인 독고진은 알려진 대로 정파에 의해 가족 모두를 잃은 자입니다. 간신히 흑월도존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였으며, 정파에 원한을 품고 있던 자이지요. 그는 절대 정파와 대화를 하지 않을 겁니다. 대화한다고 한들 결국엔 힘을 쓰려 할게 분명하고요.”
관운경의 말에 회의장에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 논리적인 그의 말에 많은 이들이 동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싸움을 최대한 피해야 하긴 합니다. 대화를 시도해 봐야 하긴 하겠지요.”
관운경이 말을 덧붙이며 남궁인을 바라보았다.
“맹주님, 관 장문인 말이 맞습니다. 어차피 결국 부딪치게 되더라도 일단 대화를 시도는 해 봐야 합니다.”
잠시 회의를 듣고 있던 남궁세가의 안명이 자신의 의견을 보태었다.
“대화를 시도한다고 그들이 응해 주겠습니까?”
안명의 말에 남궁인이 그에게 물었다. 남궁인이나 안명이나 남궁세가가 직접적인 싸움에 휘말릴 위기인지라 최대한 대화를 시도해 봐야 했다.
“적당한 사람을 찾아봐야겠지요.”
“그러한 인물이 있겠습니까?”
남궁인은 소천개를 향해 바라보며 그에게 의견을 물었다. 질문을 받은 소천개는 살짝 당황한 듯 잠깐 생각에 빠졌다가 입을 열었다.
“가능만 하다면 그분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은 합니다만…….”
소천개가 살짝 뜸을 들이며 이야기하자 모두 그의 말에 집중했다.
“그게 누구입니까?”
“약선(藥仙) 어르신 말입니다.”
소천개의 말에 다들 놀란 듯 좋다 나쁘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소천개의 입에서 워낙 의외의 이름이 나왔기에 더욱 그랬다.
“그분이 나서만 주신다면…… 좋겠지만 이미 무림과 딱히 관련이 없으신 분이 아닙니까?”
남궁인도 소천개의 말에 살짝 동하긴 했지만 약선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약선의 거처라면 개방에서 알긴 압니다만…… 무리긴 하겠죠?”
소천개도 자신이 실없는 소릴 했다고 생각했다. 약선이 이런 일에 나설 리가 없을뿐더러, 나선다고 해도 서문세가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했다.
현 세가주가 약선의 동생인데, 이런 일에 자신의 누이를 거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문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소천개는 말을 해 놓고도 아찔했다. 서문환 성격으로 봐선 자신이 이곳에서 약선의 이름을 언급한 것을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제 이야기는 잊어 주시죠. 약선은 확실히 무리일 듯합니다.”
소천개는 자신이 이야기를 꺼내 놓고 급하게 마무리 지어 버렸다. 다들 소천개가 저런 행동을 하는데 서문환이 그 이유일 것이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른 마땅한 인물이 없겠습니까? 사파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 말입니다.”
남궁인은 답답한 듯 모두를 향해 물었으나 다들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파와 오랜 시간 평화로운 생활을 해 왔다 하나, 그것은 사마련이 존재할 때 이야기였고 흑월도존이 사라진 이상 사왕련엔 정파를 증오하는 이들만 남아 있다 봐야 했다.
그런 곳에 대화를 요청한다 한들 받아 줄 리가 만무하다고 모두 생각하고 있었다. 싸움의 한가운데 놓인 남궁세가의 인물들과 안휘성에 자리 잡은 문파들만이 현 상황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을 뿐, 다른 세력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실정이었다.
남궁인의 물음에 답하는 이도, 나서는 이도 없었다.
결국 회의는 마땅한 결과를 내지도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이어졌고,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는 쪽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쪽 모두 의견만 다툰 채 날을 넘겨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