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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10화 (110/251)

110화― 결착(結着)(3)

마치 광인처럼 울부짖는 신투가 두 팔을 잃은 채 머리를 바닥에 찍어 대었고, 벽풍이 그것을 말리느라 두 사람이 엉켜 있었다.

믿어지지 않은 현실 앞에 신투는 정신을 놓은 듯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 모습에 검성은 측은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가 한 짓이 있었기에 마무리를 짓기 위해 다시 검을 높이 들었다.

“네 죄를 두 팔로 하기에는 너무 가볍지.”

검성이 다가서자 벽풍이 두 팔 벌려 검성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검성의 음성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바로 앞에서 그 음성을 들은 벽풍은 그대로 주저앉아야 했다.

“안…… 됩니다…… 령주를 죽이실 수는…… 없습니다.”

벽풍은 검성의 언령에 괴로워하면서도 억지로 이겨 내며 다시 앞을 막아섰다.

“죽어야 할 인물이다. 네가 지킨다고 지킬 수 있는 자가 아니다. 물러나라.”

검성은 벽풍을 타이르듯 말했고 그 말에는 힘이 실려 있지 않았기에 벽풍은 참을 수가 있었다. 검성도 충심을 보이는 벽풍이 안쓰러웠기에 그를 억압하지 않았지만 계속 막아선다면 손을 써야만 했다.

그때.

“크악…….”

“컥…….”

갑자기 주위에서 비명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벽풍이 고개를 돌렸을 때, 벽령의 무사들이 검은 무복을 입은 자들에 의해 쓰러져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성은 이미 그들의 접근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벽풍은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했지만 이미 실성한 신투를 두고 갈 수가 없었기에 지켜만 봐야 했다.

순식간에 벽령의 무사들이 모두 쓰러졌고, 검은 무복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이 주위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 중 익숙해 보이는 중년 사내가 검성에게 다가왔다.

“이 주위는 모두 처리했습니다.”

검성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보이는 중년 사내는 비천의 천통자였고 검은 무복의 사내들은 모두 비천의 은위단(隱衛團)이었다.

그는 검성이 귀신궁을 넘었을 때부터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싸움이 일어나면서부터 상황을 지켜보다가 검성이 신투를 제압하자 나선 것이었다.

“저자도 저희가 처리할까요?”

검성이 벽풍과 계속 마주 보고 있자 천통자가 검성에게 물었고, 검성은 손사래를 쳤다.

“물러나 있어라. 저 둘은 내가 처리하지.”

“네. 알겠습니다.”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바로 물러나 제압한 벽령의 무사들을 처리하는 것을 도왔다.

검성은 천천히 신투를 향해 다가갔다.

“다가오지…… 마시오…… 컥…….”

다가오는 검성을 향해 검을 휘두르려던 벽풍은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힘에 그대로 눌려 땅에 대(大)자로 누워야 했다.

벽풍을 압박하는 힘은 그를 꼼짝도 못 하게 했다. 뼈가 부서질 듯한 압박감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대로 있어라. 너를 죽이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다. 초 형(楚兄)…… 아니, 저자와 나 사이의 원한이니 참견하지 말아라.”

검성은 넙죽 엎드려 있는 벽풍을 향해 나직하니 말했다.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대로 그를 지나 신투에게 다가갔다.

검성은 벽풍을 죽이긴 아깝다 여겼기에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다.

“으흐흐…….”

이미 충격으로 정신을 놔 버린 신투의 모습에 검성은 많은 느낌이 들었지만,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모든 일의 원흉인 신투를 죽이지 않고서는 새로운 시작을 할 수가 없었다.

번쩍―

정천검을 높게 쳐올리자 달빛이 검에 반사되었다.

“지옥이라는 곳이 있다면 먼저 가 있으시오. 곧 따라가겠으니…….”

검성은 낮게 읊조리며 말했다. 그의 표정엔 많은 감정이 묻어나 있었다. 오절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같이 무림을 평정했고 오절의 맏형으로 나름 따르기도 했던 인물을 자신이 죽이리라 생각조차 해 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권왕 탁헌을 먼저 죽였고, 이제 맏형인 초벽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검성의 손속에는 망설임은 없었다.

스걱―

“커헉…….”

날카로운 검의 움직임과 함께 단말마의 비명성이 터져 나왔고,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웅크리고 있던 신투의 몸이 두 동강이 나며 그의 피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잔인한 검성의 검에 지켜보던 천통자와 은위단마저 눈살을 찌푸렸으나, 이미 그들은 모든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검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천통자는 검성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검성은 말없이 검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는 검을 갈무리했다.

“저자는 어떻게 할까요?”

천통자는 대답이 없는 검성을 향해 물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엔 검성의 압박 때문에 혼절해 버린 벽풍이 있었다.

“비천에서 거둘 수가 있다면 거두도록 해라.”

“그것도 나쁘지는 않죠.”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살짝 신경 쓰였으나 더는 파고들지 않았다. 어차피 신투가 이렇게 죽고 나서 그의 대역을 시켜야 하니 오늘 사로잡은 모두를 이용할 필요가 있었다.

신투가 황궁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황궁의 신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신투가 죽은 것을 황제가 안다면 어떻게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도 비천은 신투의 행세를 하며 황궁을 완성해야 했다. 그렇게 황궁과의 관계도 유지할 생각이었다.

물론 황궁 건설을 하면서 생기는 많은 이익이 어느 정도 목적이기도 했다. 그 모든 부분이 검성과 협의가 끝난 부분이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생각에 잠깐 빠져 있던 검성은 천통자의 물음에 그를 보았다.

“무엇을? 아…… 이제 무엇을 할까?”

검성은 천통자의 물음을 곱씹으며 자조적(自嘲的)인 웃음을 보였다. 신투를 죽임으로써 그의 복수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고 봐야 했다.

막상 이것을 마치고 보니 건성 스스로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생각에 웃음이 났다.

복수를 위해 오랜 친우를 죽여야 했고 ,오랜 시간 모셨던 형님을 자신의 손으로 처단했다. 모두 그들의 잘못된 행동 때문이긴 했지만, 신투의 말을 듣고 나니 자신의 책임도 있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신투의 행동은 모두 자신을 질투하여 생긴 일이었다. 그 마음을 차라리 이전에 알았다면 소려의 죽음도, 그녀의 가문의 멸문도, 모두와 검을 겨눌 일도 없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계속 마음이 무거워져 있었다.

그런 검성의 마음을 읽었기에 천통자도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그를 계속 지켜보았다.

‘복수 때문이긴 하나 오랜 시간 함께했던 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으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지…….’

천통자는 살짝 검성의 눈치를 보며 그를 살폈다. 신투의 시체를 쳐다보는 검성의 눈에는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흠…… 도후는 만나 보실 겁니까?”

천통자의 말에 검성의 눈빛이 돌아왔고 천통자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녀를 만난다고 해도…… 그녀마저 죽이기는 힘들 거 같군.”

“그렇겠죠?”

천통자는 이미 검성이 도후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도후는 신투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니 검성으로서도 그녀마저 죽이는 것은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

도후가 임소려를 죽인 장본인이긴 하나 그 당시 사람들은 몽골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임소려과 몽골 황실과 연관이 있음을 들은 도후가 그녀를 죽인 것은 천통자로써도 이해가 갔다.

“그럼, 이제 무림을 떠나실 겁니까?”

“그래야지…… 난 무림에 존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천통자는 검성의 대답이 조금 아쉬웠다. 이미 검성이 복수를 마치고 무림을 등질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그의 실력은 너무나도 아까웠다. 같은 오절의 일인인 신투마저 손쉽게 제압하는 실력을 직접 보았으니 더욱 아까웠다.

‘검성만 우리 편이 되어 준다면 사파는 물론이고…… 사패들도 무림을 넘보지 못할 텐데…….’

천통자는 검성을 보며 입맛을 다셔야 했다. 검성을 설득하려다가 이미 실패했기에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사파와 정파의 싸움은 일촉즉발의 상태로 치닫고 있었고, 언제 부딪쳐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곳은 자네들이 마무리해 주게.”

“어디로 가실 생각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일단 윤후가 있는 곳으로 가 봐야지.”

“그곳에 오래 머무실 겁니까?”

천통자는 검성이 약선이 있는 조양봉으로 간다는 소리에 안심했다. 아예 사라져 버릴까 봐 조금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후의 수련을 지켜보면서 생각을 좀 해 봐야겠지. 한 반년 이상은 아마도 그곳에 머물 것 같군.”

제자 이윤후는 자신의 생각보다도 재능이 뛰어났기에, 이전 일 년이라 여겼던 수련 기간이 반년으로까지 좁혀질 것 같았다.

오행상생으로 이윤후의 오행의 기운을 북돋아 준 탓에 이윤후의 몸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무공 수련에 큰 진전을 보였다.

“그럼, 나중에 그곳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나와 만날 일이 또 남아 있는가?”

“뭐, 그리 섭섭하게 그러십니까? 제가 나름 도움 되지 않습니까?”

천통자는 살짝 뚱한 표정으로 이야기했고, 그 모습에 검성은 미소를 보였다.

“알았네. 일이 있다면 찾아오도록 해. 하지만 이전의 그 일이라면 날 다시 찾아와 봐야 소용이 없을 것이야.”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살짝 실망한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리 단정하지 마십시오. 사람 일이란 모르지 않습니까?”

천통자는 살짝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했다. 그의 말에 검성은 살짝 신경 쓰였으나 묻지는 않았다.

‘이 소협이 수련을 마치고 나온다면 다시 무림에 나설 것이고…… 그때 이 소협을 어떻게든 설득한다면 검성도 결국 나서지 않고는 안 되겠지?’

천통자는 속으로 다른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이윤후를 설득하는 것이었다. 이윤후가 무림에 나온다면 어차피 정사대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정파도 무림맹을 새로이 장악하고 어느 정도 단합을 하며 힘을 모으고 있기는 했지만, 오랜 시간 준비한 사파에 비해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소림이 적극적으로 나서 준다면 모르겠지만 마교와의 싸움에서 장문인을 잃은 소림은 이후 소극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었고, 현 상황 속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무당도 마찬가지였다. 무당은 본산이 황제의 지원을 받아 큰 공사 중이었기에 모든 신경을 거기에 두고 있었고 무림맹에도 많은 인원을 파견하지 않았다.

그나마 무당의 최고 고수라고 할 수 있는 현월자(玄月子)가 무림맹에 머물며 무당과 상황을 조율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 할 수 있었지만, 무당 역시 현재 상황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모든 상황이 정파에게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천은 힘의 균형을 위해 어떻게서든 검성을 끌어들일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고, 천통자는 검성을 끌어들이는 데 이윤후를 생각했다.

이미 검성이 이윤후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보았기에 현재 상황에 단호한 검성이라고 할지라도 이윤후가 이 일에 휘말린다면 검성이 어떤 방법으로든 무림의 일에 개입할 것으로 생각했다.

빼액―

천통자가 생각에 빠져 있던 때, 하늘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울렸다. 검성의 부름을 받은 백아가 어느새 그들의 머리 위에서 날고 있던 것이다.

백아는 검성을 데리고 북평으로 온 후 근처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기에 검성의 부름에 바로 올 수가 있었다.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살짝 멈칫했으나 이내 무시하고는 백아에 올라탔다.

“윤후에게 돌아가자.”

꾸륵―

올라탄 검성은 백아를 한 차례 쓰다듬고는 말했고, 그 말에 백아는 반가운지 고개를 돌려 울었다. 백아도 이윤후에게 돌아간다는 소식에 반가운 것이었다.

퍼드득―

백아는 이내 큰 날개를 활짝 펼쳐 퍼덕거렸고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천통자는 백아와 검성이 사라지는 것을 한참 쳐다보다가 은위단이 뒤처리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명령을 내려 모든 것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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