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결착(結着)(2)
뚜욱― 뚝―
왼팔이 어깻죽지에서부터 잘려 나간 신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땅에 떨어진 자신의 팔을 보았고, 검성은 그런 신투를 차갑게 쳐다보며 정천검에 묻은 피를 소매를 찢어 닦아 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벽풍은 놀라 신투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검성이 그를 매섭게 쳐다보았기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실력이…… 더 늘었군?”
신투는 어렵사리 입을 열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검성에게 말했다. 검성의 비뢰낙일 초식을 비류직하로 맞받아치면서 막아 내었을 때는 그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검을 다시 부딪쳐 갔을 때,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시종일관 검성의 공세를 막아 내느라 공격다운 공격을 하지 못했고, 결국 방어만 하다가 한순간에 왼쪽 팔이 검성의 검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 후는 이 꼴이었다.
“그동안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않았던…… 것인가? 설마……?”
신투는 분노한 검성을 상대해 보고 알았다. 그동안 검성이 자신과 싸우면서 제 실력을 보이지 않았음을. 그리고 검성이 제대로 한다면 자신은 십초지적(十招之敵)조차 되지 않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투의 오해였다. 검성은 무당에서 수행하고 만상오행공을 창안한 후 깨달음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오해로 의도치 않은 오랜 명상과 유체이탈을 경험하면서 등봉조극(登峯造極)의 단계와 좌탈입망(座脫立亡)의 경지를 이미 넘어선 상태였다.
신투가 그동안 검성을 넘어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가 사라지고 수행을 게을리한 게 결국 발목을 잡은 셈이었다. 마지막 대결에서 검성에게 패하고 그를 넘어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검성이 사라진 후 나타나지 않자 수행을 그만둔 것이 결국 이렇게 큰 차이로 벌어졌다.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 이제 네가 죽을 일만 남았는데.”
검성은 다가가 검을 신투의 목에 겨누었다. 이미 패배를 하였기에 신투는 반항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크크…… 결국 이렇게 되는가? 너를 이기기 위해 많은 것을 버리고…… 살아왔건만…….”
신투는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네가 버린 많은 것들이 고작 나를 이기기 위함인가? 모두 네 욕심이 아니었나?”
“그럴 수도…… 있겠군…… 나의 욕심이라……?”
신투는 검성의 말에 깨달음이 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빠졌다.
애초에 어렸을 적 임소려의 가문의 종자로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 그 집안의 하인의 아이로 태어났지만, 주인집은 그들 한 명 한 명 대우를 해 주었다. 신투가 무공에 소질은 있자 무공도 배우게 해 주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고 세상을 볼수록 신투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결국 그는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무공서를 훔쳐 달아났고 무림인으로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고 강해진 신투는 스스로 만족했지만, 그의 앞에 나진하라는 벽이 나타났다. 무림의 후기지수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던 그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검성은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명성을 앗아 갔다.
최고의 기재는 자신이 아닌 나진하였고, 많은 문파와 가문들은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자신이 쌓아 놓았던 모든 것을 검성에게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몰래 연모하던 서문세가의 서문애령마저 검성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그는 더욱 검성을 질투하였다.
그리고 검성이 새로운 짝을 찾았을 때, 또다시 그는 분노하였다. 그 짝이 임소려였기 때문이었다.
검성은 임소려의 가문이 작은 무가라고 생각했겠지만 신투는 임소려의 가문이 황가임을 알았기에 검성의 운에 또다시 질투하였다.
혹시나 검성이 임소려와 혼인을 하게 되면 그가 어렸을 적 보았던 임소려 가문에 가지고 있던 신장의 무기가 그에게 돌아갈까 봐 노심초사하게 되었다. 그것마저 검성이 가지게 된다면 영영 검성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기에 신투는 결심했다. 검성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로 말이다. 권왕을 먼저 설득해 자기편으로 삼았고, 검성의 정혼에 침울해하던 도후를 끌어들였다.
임소려는 몽골 황족의 핏줄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더러운 몽골 여인에게 검성을 빼앗길 거냐고 그녀를 자극했다.
결국 도후는 임소려를 죽였고, 신투는 임소려의 가문을 멸문시켰다. 신투는 임소려의 가문에 있던 신장의 무기뿐만 아니라 많은 무공서와 재산을 차지하고 현재 벽령의 기틀을 삼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차지하고도 그는 검성을 이기지 못했다.
또다시 좌절해야 했던 신투는 자신이 강해지기보다는 세력에 집중했다. 검성을 이기지 못한다면 소림과 무당보다 강한 문파를 만들어 무림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몽골이란 나라가 무너지고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신투는 황실에 연줄을 대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현 황제의 야망을 알게 되고 그를 물심양면 지원했다. 황제에 오르고 그 공을 인정받아 엄청난 혜택을 보며 누구도 부러워하지 마지않을 금력에다 황제를 등에 업게 된 것이었다.
신투는 새로운 황궁의 건설이 이루어진 뒤 차후 무림을 평정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결국 검성이 자신의 앞에 나타나면서 모든 것이 틀어지고 지금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검성이었지만, 신투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 미안한 감정을 가지기보다 더욱 그를 질투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컸다.
“크크……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신투는 몸을 일으키며 광인(狂人)처럼 웃었고 그런 신투의 모습에 검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대결의 여파로 그의 백발은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단정하게 묶여 있던 머리도 난발이 되어 있었다.
“뭔가 보여 줄 것이 더 남아 있는가?”
검성은 그런 신투의 모습이 가소롭다는 듯 물었다. 이미 검을 겨룸으로써 신투의 실력에 대한 파악은 끝이 난 상황이었다. 결코 권왕과 비교해 실력이 높지 않았다. 예전에 오절 중 권왕이 가장 약했고 검성 다음은 신투였으나 너무 평화롭게 살아온 신투의 실력은 먼저 싸운 권왕에 비해 높지 않았다.
남을 얕보거나 거만하게 굴지 않던 그였지만, 신투에만은 철저하게 그의 자존심을 밟아 주고 싶었기에 신투를 무시하고 있었다.
“꽤 변했군. 그렇게 재미없다시피 정의로움을 찾던 자가 말이야.”
“변하게 한 사람이 자네들이지.”
“그렇군.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어.”
신투는 검성의 답에 실소를 머금었다. 젊었을 적의 검성은 지나칠 정도로 정의를 부르짖고 정파를 위해 희생했던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나중에 정파가 지나치게 사파를 억압하고 이익은 독점하는 모습에 큰 실망을 하기도 했다.
행동도 늘 진중했던 검성이었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검성은 자신이 알던 검성과 많이 달랐기에 말했는데 검성의 대답에 신투는 이해해 버린 것이었다.
“이미 실력의 가늠은 끝이 났을 텐데. 덤빌 건가?”
“그럼, 내가 네 손에 그냥 목을 내주어야 할까?”
신투는 신월검을 들어 겨누며 악에 받친 듯 이야기했다.
“그냥 목을 내미는 것도 재미가 없지. 아까와 같지 않기를 바랄 뿐이네.”
검성도 검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주었고, 두 사람 사이에 다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미 한쪽 팔을 잃은 신투가 남은 오른손으로 신월검을 들었지만 그 모습은 지켜보기에 딱하기만 했다.
쿠오오오―
신투의 전신에서 맹렬하게 기운들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전신의 내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내려는 듯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신투를 쳐다보며 검성은 차분하게 내력을 끌어 올리면서 대비를 하였다.
“어차피 일검승부를 낼 모양이니 받아 주도록 하지.”
검성은 신투를 향해 말했다. 이미 모양새가 신투는 이제 펼칠 한 수에 모든 것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검성은 그것을 피하지 않고 받아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크크…… 여전히 광오하군. 자네는 그랬어. 모두의 앞에서 정의롭고 의인인 척 행동했지만 늘 상대를 얕잡아 보는 면이 있었지.”
“그렇게 생각했나?”
“지금도 그렇지 않나? 피해 버리면 그만일 나의 한 수를 받아 주겠다고 하는 너의 광오함 말이다. 넌 늘 그랬었다.”
신투는 말을 하며 입가에 피가 흘렀다. 이미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탓에 속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뭔가 착각을 하는 거 아닌가? 너의 검을 받아 주겠다고 하는 이유는 굳이 피할 필요가 없음이야. 괜히 피해서 주위에 피해가 가는 것보다야 내가 받아서 파훼시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할 뿐이지.”
“뭣이?!”
신투는 검성의 말에 미간이 찌푸려졌고 순간 흥분하여 내력이 흐트러질 뻔까지도 했다. 하지만 이내 진정하며 내력을 다스렸다.
“이제 제법 말발까지 늘었구나……?”
“말발이라고? 난 사실을 말할 뿐이야. 네 마지막 한 수가 어떤 식이든 내게는 통하지 않아. 그건 검을 부딪쳐 본 너도 잘 알 텐데?”
검성의 말에 신투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표정이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검성이 도발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의 말이 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신투로서는 검성에게 가만히 처분을 기다릴 수도 없었다. 최후의 한 수를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려야 했다.
그리고 이 한 수가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최소한 양패구상(兩敗俱傷)의 수로써 검성에게 큰 타격을 주고 자신의 수하들이 자신을 챙겨 도망갈 수 있는 여건은 만들려고 했다.
츠츠츠―
신투의 검에 몰린 엄청난 기운들이 주위 공기마저 떨리게 하고 있었다. 신투는 검성을 노려보며 마지막 한 수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통하지 않을 리가 없다…… 나 스스로 고민을 해서는 안 돼.’
신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자신을 암시하듯이 되뇌었다. 지금 쓰려고 하던 초식은 검성과 마지막으로 패하고 그를 이기기 위해 연구하고 수련했던 초식이었다. 하지만 검성이 사라지고 그 상대를 잃어버린 탓에 신투는 이 초식을 완성하지 못했다.
불완전한 초식이기에 신투로서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펼쳐 검성에게 막힌 지금, 이것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샤샥― 처억―
신투는 검을 움직여 다시금 자세를 잡았고, 이제 그가 펼치려는 한 수가 시작됨을 짐작했던 검성도 준비하였다.
파밧―
순간 신투의 신월검이 푸른 검광을 뿜어내며 신투의 신형과 함께 검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모습은 극쾌(極快).
신투는 질풍신뢰의 보법을 극한으로 움직여 마치 번개 바람이 날아들 듯이 움직였다.
요란하지도 않았지만, 신투가 펼친 극쾌의 무공이 신월검과 혼연일체가 되어 검성을 향해 뻗어 나갔다.
카강―
“허억…… 말도 안 되는…….”
검과 함께 날아든 신투는 검성이 내뻗은 검과 부딪치자마자 땅을 밟아야 했다. 신투가 내뿜었던 맹렬한 기운은 검성의 검과 맞닿은 동시에 검성에게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며 단순한 찌르기에 불과하게 되었다.
파아악―
“크아악…….”
넋을 잃고 검성을 바라보던 신투는 검성의 검이 번ᄍᅠᆨ이는 순간 피 분수가 솟구쳤다. 그는 하나 남은 팔마저 떨어져 나간 채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검성이 신투의 극쾌를 넘어 그의 오른팔을 어깻죽지부터 베어 버린 것이었다.
그의 팔은 신월검을 쥔 채 바닥에 덩그러니 떨어져 꿈틀대다가 이내 힘을 잃어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신투의 곁에 벽풍이 어느새 다가가 그의 혈도를 잡아 출혈을 잡으려 했다.
“어떻게…… 한 것이냐……?”
신투는 벽풍의 부축을 받으며 믿을 수가 없다는 듯 검성을 노려보며 물었다. 이미 두 팔을 잃은 그의 모습은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차력(借力)이라는 것이다.”
“차력……?”
검성의 말에 신투는 힘겹게 되물었다.
“무당에 머물 때 새로 창안해 낸 무공이지. 오랜 기간 무림에서 얻은 깨달음과 무당에서 배운 진리…… 그리고 마교의 흡성대공을 보고 만들어 낸 무공이다.”
“흡성대공…… 그렇군. 기를 빨아들인 것은 그것 때문이었구나…….”
자신이 신검합일하여 검성에게 날아들었을 때, 신투는 검성의 검과 맞부딪히자마자 자신의 기운이 흩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럴 수가…… 결국 너를 넘어 보고자 그렇게 발버둥을 쳤건만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었다는 말인가…….”
신투는 크게 좌절하며 부르짖었고, 그런 신투의 모습에 벽풍은 안쓰럽게 그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