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108화 (108/251)

108화― 결착(結着)(1)

“령주님, 무슨 말이십니까? 설마 저자가 검성 본인이라는……?”

벽풍은 신투의 뒤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놀라 신투에게 물었다.

“눈치채지 못한 것이냐? 검을 맞대 본 너라면 저 녀석의 실력을 가장 잘 알 것이 아니냐?”

벽풍은 신투의 말에 그제야 자신이 검성과 대결에서 꼼짝도 못 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크게 좌절했던 그의 마음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검성 본인이라면 자신이 패하는 것이 당연했기에 크게 실망할 일도 아니었다.

“강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설마 저렇게 젊은 사내가 검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저 녀석은 언제나 좋은 것을 먼저 가지는 기분 나쁜 녀석이었어.”

“네?”

“아니다.”

신투는 침입자를 자신의 수하들이 처리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진이 깨어지고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님을 알고는 직접 이곳으로 왔다. 도착하고 그는 검성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칩입자는 예전 자신이 처음 만났던 시절의 검성의 모습이었다. 금세 저 젊은 사내가 검성 본인임을 알았다. 그리고 크게 질투심이 마음에서 피어올랐다.

‘네놈은 언제가 그랬지. 자신도 모르게 운이 좋아 모든 것을 가져갔어. 네가 얻은 무공은 우내삼존의 무공임을 알고 부러웠다. 내가 오래 지켜보았던 애령의 사랑도 네놈이 가져갔지. 그것도 모자라…… 아가씨의 사랑까지 받았어. 그런 네가 이제는 또다시 젊어진 모습으로 날 찾아오다니…….’

신투는 검성에게 심한 자격지심이 있었다. 여자와 무공 모든 면에서 검성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신투는 겉으로는 그와 친하게 지냈지만, 속으로는 늘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

“설마 내가 소문만 믿고 너를 찾아왔다고 생각하여 그리 말하는 것인가?”

검성은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힘이 실린 그의 음성은 마치 사자후(獅子吼)처럼 주위를 울렸다.

“네가 한 짓을 모두 알고 있다. 네가 가영을 이용하여 소려를 죽인 것을…….”

검성의 말에 신투는 당황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도후가 그렇게 이야기하던가? 소려를 죽인 것은 그녀다. 널 연모하여 너의 사랑을 받던 그녀를 죽인 것이지. 내가 시켰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신투의 말에 검성의 미간이 좁혀졌다. 모든 것을 알고 찾아왔다는 자신의 말에도 천연덕스럽게 부인하는 신투의 모습에서 참고 있던 분노가 끓어올랐다.

파지직―

검성이 분노로 인해 내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검성의 주위에서 서광이 일기 시작했다. 신투는 그것을 알아보고는 약간은 표정이 바뀌었다.

‘뇌정(雷霆)을 일으키는군.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찾아온 것이군.’

신투는 검성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빛이 그의 무공을 제대로 쓰려 할 때 일어나던 뇌정임을 알아보았다. 그만큼 검성이 자신의 말에 분노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초벽. 네가 소려의 가문이 가지고 있던 신장의 무기를 탐하여 소려를 죽이려 획책하고, 내가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녀의 가문을 네가 무너뜨리고 무기를 가져간 것을 모두 알고 있다. 그래도 부인할 것인가?”

검성은 토해 내듯 이야기했고 그의 말에 신투의 표정도 살짝 굳어졌다. 퍼진 소문보다 많은 것을 검성이 이야기하자 놀란 것이었다.

“네가 어찌 거기까지 아는 것이지?”

“그것이 놀라운 것인가?”

검성의 노기가 들끓자 검성의 주위에 일으켜진 기운이 더욱 맹렬히 타오르기 시작했고 그 기운만으로도 주위 지켜보던 벽령의 무사들은 압박을 느껴 뒤로 물러나야 했다.

“모두 알고 찾아온 것이 맞군. 날 제일 처음 찾은 건 아닐 테고…… 설마 탁헌을 보았나?”

신투는 더는 부인하지 않은 채 검성을 바로 보며 물었다.

“탁헌은 죽었다.”

“그렇군…….”

신투는 검성의 말에 더는 묻지 않은 채 살짝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 검성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신투는 검성이 권왕을 먼저 찾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자신과 도후는 오래전부터 몸을 숨긴 채 운신하지 않았으나 권왕은 무림에 그대로 활보하고 다녔기에 검성이 모든 사실을 알고 찾았다면 권왕을 먼저 찾아갔을 터였다.

“가영은 만나 보았나?”

신투의 물음에 검성은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녀도 죽인 것인가?”

검성은 답하지 못한 채 한참은 있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겠지. 네가 가영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신투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이야기했다. 안도의 웃음이었다. 신투는 자기 일의 성공을 위해 권왕과 도후를 이용해야 했다. 그들을 이용하고서 그들에게 똑같은 죄를 지우기 위해 신장의 무기를 나누었다.

도후는 자신이 벌인 일을 후회했다. 홍라염도를 받는 것도 망설였으나 신투는 그녀에게 억지로 그것을 건네었다. 나누었던 신장의 무기는 자신들이 공범이라는 증거였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느끼게 하는 물건이 되었다.

하지만 세 사람 모두 그 물건을 버리지 못했다. 신장의 무기를 사용하고 안 하고의 실력 차이가 확연히 났기 때문이었다. 권왕이 가져간 진천궁은 직접 사용할 수 없었지만, 신투가 가져간 신월검과 도후가 가져간 홍라염도는 두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신투로서는 유가영의 마음을 이용했다는 일말의 죄책감이 있었기에 검성이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했다. 도후가 자신들을 견제하려 세력을 구축하고 감시할 때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았던 이유도 그때의 죄책감 때문이었다.

“모두 물러나라.”

신투는 마음을 먹은 듯 자신의 뒤에서 검성이 내뿜는 기운에 간신히 정신을 유지하는 벽풍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차피 너희들이 날 지켜 줄 수도 없다. 오랜만에 친우의 실력을 보아야겠으니 너희는 최대한 멀리 떠나도록 해라.”

벽풍은 잠시 망설였으나 신투의 명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기에 이내 물러나 벽령의 무사들과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들이 사라지자 신투는 검성을 마주 보았고, 검성도 그들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들끓던 기운을 가라앉혔다.

“너의 뇌정은 여전하구나?”

“너에게 그따위 말이나 듣자고 찾아온 것은 아니니 준비하여라.”

검성은 차갑게 내뱉고는 정천검에 손을 가져갔고, 그 모습에 신투는 어디서 꺼내었는지 어느새 꺼내든 검을 뽑아 들었다.

촤앙―

맑은 금속성이 울렸다. 신투의 검이 뽑히자 푸른빛이 주위를 밝혔다. 신장의 무기이자 그의 상징인 신월검(新月劍)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신월검의 서광에 검성은 눈을 찌푸리며 정천검을 뽑아 들었다.

“네가 사라졌다고 했을 때 조금 아쉬웠지. 호적수였던 네가 사라지고 의욕을 잃고 있었는데…… 이렇게 내 앞에 다시 나타나 주니 조금은 반갑군.”

신투는 기분이 좋은지 이야기했지만, 그런 신투의 반응에 검성은 더욱 화가 날 뿐이었다. 신투는 뻔뻔스럽게도 자신을 보고도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우인 듯 대하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성은 스스로 화를 다스려야 했다.

모두 신투가 일부러 도발하는 것임을 알기에 최대한 마음을 다스린 채 검을 잡았다.

‘예전과 성격이 조금 바뀐 듯하군. 도발이 꽤 먹힌다 싶더니 이내 차분해지는군.’

신투는 검성의 모습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젊어진 검성의 모습에 조금은 걱정스러웠으나 성격마저 젊어진 듯하여 예전 처음 만난 그때처럼 계속 말로 신경을 긁고 있었는데 이내 차분해지자 아쉬워했다.

“여전히 모자란 실력을 입으로 메우려 하는 걸 보니 실력에 자신이 없는가?”

검성의 말에 신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동안 검성이 차마 말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검성은 그런 말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더는 말을 나눌 필요가 없을 듯하군.”

신투는 더는 말을 나누어 봐야 자신에게 득이 될 것이 없다고 여겼다.

츠츠츠―

신투의 주위에서 푸른 기운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그 모습에 검성도 내력을 끌어 올렸다.

신투의 독문무공인 벽천신공(碧天神功)은 시전자의 내력에 따라 푸른 기운의 색이 짙어졌는데 신투를 감싸는 푸른 기운이 아주 짙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마주 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적막을 깬 것은 검성이었다.

파박―

검성은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검을 휘저어 갔다.

쏴악―

매섭게 휘둘러진 검성의 검은 날카로운 검기를 발산해 신투를 향해 쏘아져서 갔다. 가볍게 펼친 일검이었지만 그 기운은 보통이 아니었다.

신투는 날아오는 검기에 검을 들어 겨누었다.

“벽월검광(碧月劍光)!”

촤촤촤촤―

신투의 외침과 함께 신월검에서 푸른 검기가 쏘아져 나갔고, 검성이 날린 검기를 가볍게 삼키며 상대에게 날아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푸른 달빛이 쏘아져 가는 형상이었다.

검성은 검을 들어 검기를 막을까 생각을 잠깐 하다가 이내 피해 버리며 다시 신투를 향해 몸을 날렸고, 순식간에 근접한 그의 검이 신투의 목을 향해 내쳐져 갔다.

채앵―

신투는 자신의 목을 향해 베어져 오는 검성의 검을 신월검을 들어 막아 내었다.

검을 맞닿은 채,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이 되었다.

촤앙―

서로를 한 차례 노려보고는 검을 동시에 튕겨 내어 거리를 벌린 뒤, 동시에 다시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서로의 허점을 노려 검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고, 푸른빛이 도는 신월검과 백색의 기운을 내뿜는 정천검이 어우러지자 청(靑)과 백(白)이 하늘에 어지럽게 수놓이는 듯 보였다.

순식간에 수십여 초를 겨루었지만, 서로의 검은 상대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 이에 검성이 먼저 움직였다.

파지직―

정천검이 순간 뇌정을 휘감기 시작했다. 검성의 눈빛이 달라지며 신투를 노려보았다.

“비뢰낙일(飛雷落日)!”

촤자자자작―

검성의 검을 휘감던 뇌정의 기운이 폭사되며 신투의 전신을 향해 쏘아져 갔다. 하지만 신투는 당황하지 않은 채 신월검을 쳐올렸다.

“늘 같은 초식으로 날 시험하는구나.”

신투는 검성이 펼친 비뢰낙일의 초식에 살짝 기분 나쁜 듯 내뱉었다. 이전 검성과의 대결에서 가장 처음 제대로 펼쳐졌던 초식이 바로 비뢰낙일이었다.

비뢰검결의 일 초식이었던 탓도 있었지만, 상대를 가늠하는 첫수였다.

신투는 늘 이 첫 공격을 늘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렇기에 검성은 비뢰낙일을 안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신투는 마음을 다잡고는 검을 내질렀다.

“비류직하(飛流直下)!”

쿠오오―

날아드는 뇌정의 폭풍을 향해 신투는 검을 뻗었고, 내뻗은 그의 검에서 맹렬한 기운이 솟구치며 유성우가 떨어지듯 검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검기는 뇌정과 맞부딪치며 동시에 검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과과광―

파바바밧―

두 개의 기운의 맞부딪침에 굉음이 일었고 그 충격에 흙먼지가 흩날려 퍼져 어지럽게 날리기 시작했고 주위의 기물들이 부서져 갔다.

엄청난 기의 폭풍에 이미 멀리 물러나 있던 벽령의 무사들도 놀라 더 멀리 물러나야 했다.

채쟁― 챙―

흙먼지가 흩날려 퍼져 시야가 어지러운 가운데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가 엉망이 된 가운데 검성과 신투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요란하게 들리던 검의 부딪침이 갑자기 조용해졌고, 벽풍과 그의 수하들은 시야가 걷히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기다림 속에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왼팔이 잘린 채 고통스럽게 몸을 지탱하는 한 사람과 그런 그를 내려다보는 또 다른 한 사람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