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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107화 (107/251)

107화― 조우(遭遇)하다(2)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검성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리 마을에 내려와 귀신궁의 위치와 정보를 알아보았다. 과연, 불리는 명칭답게 주위 사는 사람들조차 커다란 저택에 사람이 드나드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검성은 귀신궁 앞에 선 채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몸을 날려 담을 뛰어넘었다.

담을 넘자 천통자가 말했던 진이 발동되며 방향 감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초벽. 그자는 잡학에 능했으니 이런 진도 꽤 조예가 깊었지.”

검성은 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눈을 흩트릴 정도로 환각이 펼쳐지자 놀라며 말했다. 하지만 검성은 눈앞에 펼쳐지는 환각들을 무시한 채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걷자 검성의 눈앞을 어지럽히던 환각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내 진이 깨어지며 저택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너무 대단한 무공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싶군.”

검성은 만상오행공(萬象五行功)을 펼쳐 진의 허점을 파악하고는 그곳을 향해 걸었고 그것만으로 진이 깨어진 것이었다.

모든 진은 팔괘(八卦)와 오행(五行)에 기반을 둔다. 현재 귀신궁에 펼쳐진 진도 마찬가지였고, 무당에서 수학을 통해 창안해 낸 만상오행공 역시 팔괘와 오행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만상오행공을 운용해 안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도 진의 허점이 눈에 들어왔고, 진법의 생로(生路)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 진이 깨어진 것이었다.

침입자가 진법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행보(行步)를 조금만 잘못 걷게 되면 사로(死路)가 펼쳐지며 진 속에 갇히게 되는 진법이었는데, 검성은 생로를 따라 걸었기에 진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검성이 진을 뚫고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검성의 주위로 수많은 인영이 날아들었다.

파바박―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많은 수의 인원이 검성을 순식간에 포위한 채 무기를 뽑아 들고 있었다.

검성은 놀라지 않은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빠르게 달려오는군.”

검성은 정천검을 잡은 손에 슬며시 힘을 주었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포위한 인원을 눈으로 헤아렸다.

“열두 명인가?”

검성은 전후좌우 사방에 자신을 포위한 인원이 열두 명임을 확인했고, 정천검을 잡은 손에 힘을 풀었다. 그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검성의 제자가 아니요?”

앞서나온 사내는 신투의 심복인 벽풍(碧風)이었다. 그는 신투의 명령에 따라 천무지회에 참가했었기에 검성을 알아보았다.

“나를 알아보는가? 네놈은 누구지?”

검성은 벽풍이 천무지회에 참여했던 벽령임을 몰랐기에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검성의 반말에 벽풍은 눈살을 찌푸렸다. 한참 어려 보이는 검성이 대뜸 반말하자 기분이 나빴던 것이었다.

“당신은 이곳을 침입하였소. 검성의 제자가 왜 이곳을 찾아온 것이요?”

벽풍의 외침에 검성을 살짝 헛웃음을 보였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가? 이미 무림에 파다하게 소문이 난 것을 너희도 알 텐데? 내가 도대체 왜 여기를 찾아왔을 것으로 생각하지? 귀신궁이라는 곳을 구경하러? 아니면 초벽 그자가 숨어 있는 곳이라서? 어느 쪽일 것 같나?”

“뭣이?!”

벽풍은 검성의 말에 단숨에 검을 뽑았고 벽풍의 행동에 따라 검성을 포위하고 있던 모두가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곳에 령주님이 있음을 알고 온 듯한데……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고는 하나 무모하지 않나?’

벽풍은 검성을 훑어보았고 검성 외에 밖에도 기척이 전혀 없었기에 혼자 찾아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벽풍은 검성 본인이라고 생각하지 못 한 채 검성의 무모함에 놀라고 있었다.

파밧―

벽풍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천천히 검성의 주위를 포위하던 벽령의 무사들이 속도를 붙인 채 움직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빠른 움직임으로 검성을 옭아매려 했다.

“그래. 말보다는 진작 이랬어야지.”

검성은 찬찬히 주위를 경계하기 시작했고 내력을 살짝 끌어 올리며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싸웠던 무사들과 달리 확실히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무사들의 수준이 높았기에 조금은 조심하고 있었다.

촤좌좌작―

빠르게 움직이던 무사들의 움직임 속에 검과 도가 날아들었고, 검성은 따로 크게 대응하지 않고 피하기만 거듭했다. 빠른 움직임과 치고 빠지는 공방속에 검성은 살짝 인상을 썼다.

“확실히 초벽은 탁헌과 다르군.”

검성의 말에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벽풍의 눈살이 다시 한번 찌푸려졌다. 검성이 자꾸 신투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도 거슬렸는데 권왕의 이름까지 나왔기 때문이었다.

스릉―

벽풍은 검을 뽑았고 그의 모습에 검성도 뽑지 않았던 정천검에 손을 가져갔다.

채재쟁―

“크헉…….”

“컥…….”

검성의 검이 뽑히자 순식간에 검을 부딪쳐 가며 압박해 오던 벽령의 무사들이 쓰러져 가기 시작했고, 검광이 번쩍일 때마다 쓰러지는 자들이 생겨났다.

“물러나라.”

검성의 발검과 몇 차례 출수만으로 세 명이 쓰러져 나가자 검을 뽑아 든 벽령은 포위했던 무사들을 물렸고, 명령과 함께 거리를 벌린 채 물러나 검성을 경계하였다.

“설마 저들을 물리고 혼자 덤비겠다는 것인가?”

검성은 주위를 물리고 앞으로 나선 벽풍을 살짝 미소 지으며 보았다. 그가 어떤 생각에서 자신들의 수하들을 세웠든 간에 좋은 선택이었기에 검성이 웃은 것이었다. 그냥 덤비게 두었다면 먼저 희생된 세 명과 똑같은 처지로 검성은 만들어 주려 했었다.

“어차피 저들로서는 상대가 안 되는 듯하군요. 검성의 제자인 만큼 특별 취급을 해 드리죠.”

벽풍은 자신 있게 말을 내뱉었지만 표정이 조금 굳어 있었다. 검성의 움직임을 보고 자신이 판단하는 것보다 강하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기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부딪치려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선수(先手)를 양보하지.”

검성은 여유 있는 표정으로 벽풍에게 말했고, 그 말에 그는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으나 이내 무표정하게 바뀌었다. 이미 실력을 보았기에 검성이 하는 말이 오만이 아님을 벽풍은 알고 있었다.

벽풍은 검을 잡은 손을 바꿔 잡으며 자세를 취하였다.

“왼손잡이던가?”

검성은 벽풍이 검을 왼손으로 잡은 채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자 신기한 듯 물었다. 왼손잡이 검수가 무림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고수는 없었다. 좌수검(左手劍)으로 유명한 인물들은 오랜 시간 검을 수련하여 중년이 돼서야 그 위력을 보여 주기도 했다.

좌수검 자체가 흔하지 않다 보니 상대해 보지 못한 이들은 상대가 좌수검이라는 것만으로도 어려워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검성은 겉으로 보이기엔 젊은 신진고수로 보일지 몰라도 속은 백전노장이었다.

‘옛 기억이 떠오르는군.’

검성은 좌수검을 잡은 벽풍을 보고는 마교의 혈천검마를 떠올렸다. 검성이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고 며칠을 겨루고서야 겨우 반 초 차이로 이길 수 있었던 혈천검마도 좌수검이었다.

타닥―

촤자자작―

벽풍은 검성이 옛 기억의 감상에 빠질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신형을 빠르게 움직이며 검성을 사방에서 베어 왔고 검성도 정신을 차린 채 정천검을 들어 대응했다.

채쟁―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렸고 검성은 최대한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벽풍이 보여 주는 신법이 워낙 신묘하여 그의 모든 검을 피하지는 못했다.

“제법 초벽에게 잘 배운 듯하구나?”

검성은 검을 피하며 여유롭게 말했다. 그의 말에 벽풍의 미간이 깊게 주름 잡히며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이 검성 본인임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신투의 본명을 불러 대는 것에 기분이 나빴던 탓이었다.

촤악―

벽풍의 검이 길게 베어가자 검성은 뒤로 뛰며 가볍게 피했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벽풍은 따라붙으며 검을 내질렀다.

벽풍이 뇌전과 같은 움직임으로 내지른 검은 날카롭게 검성의 목을 노렸고, 여유 있게 뒤로 뛰어 버린 검성은 살짝 공중에 뜬 모습이라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검은 검성은 목을 꿰뚫지 못한 채 허공을 찔러야 했다.

“어떻게……?”

벽풍은 검이 검성의 목에 닿았다고 확신한 순간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검성의 모습에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감쪽같이 사라진 검성의 모습에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던 벽령의 무사들도 자신들의 눈으로 본 것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제법 실력이 있구나? 초벽이 널 많이 아끼고 있나 보지?”

연기처럼 흩어졌던 검성의 신형이 다시 벽풍의 앞에 나타나며 말했다.

“그의 질풍신뢰(疾風迅雷)를 완벽하게 사용하는 것 보니 놀랍구나.”

검성은 진심으로 놀란 듯 이야기했다. 벽풍이 대결 중에 계속 사용했던 신묘한 보법은 신투의 절기인 질풍신뢰라는 것이었다. 보법이 워낙 현란하고 빨라 신투가 작정하고 움직이면 그의 모습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는데 벽풍이 그것을 재현해 내며 공격해 오자 검성은 적잖이 당황했다.

“너의 솜씨를 더 확인해 보고 싶지만 이만 끝내야겠구나.”

검성은 말을 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겨 벽풍에게 다가섰다. 너무 자연스러운 검성의 움직임에 벽풍은 조금 당황하며 검을 다시 움직였다.

촤라락―

벽풍의 검이 다시 한번 현란하게 허공을 어지럽혔지만, 검성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검을 쳐올렸다.

채쟁―

“윽…….”

현란하게 검을 휘두르던 벽풍은 검성이 쳐올린 일검에 부딪친 채 뒷걸음질 쳐야 했고 손에는 강렬한 울림이 있었다.

벽풍은 이미 검성이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인지했지만 자신이 펼친 변초를 단 일검에 깨 버리자 좌절감마저 들었다.

신투를 정식으로 사부로 모신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눈에 들어 많은 절기를 전수하였다. 신투가 자신을 제자로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벽풍은 그를 부모나 사부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벽풍은 검성의 제자에게 이리 패하자 신투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음이 꺾인 것이냐? 고작 몇 번 검을 부딪친 것에?”

“어떻게 어르신이 여길……?”

고개를 숙인 채 좌절하던 벽풍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벽풍은 그를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신투(神偸) 초벽이었다.

이미 백이 넘은 그였지만 정정했고, 백발에 긴 백염을 늘어뜨린 그의 모습은 마치 신선과도 같아 보였다. 그가 나타나자 지켜보던 벽령의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신투는 벽풍의 등을 두드려 주고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검성을 보았다.

검성도 이미 신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벽풍에게 다가서다가 걸음을 멈춘 상황이었고 신투가 나타나자 그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이거 놀랍군. 진이 깨어지고 보통의 침입자가 아닐 거로 생각했지만 너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나도 네가 내 앞에 이리 당당하게 설 줄 몰랐군.”

검성은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신투는 그의 대답에 비릿한 웃음을 보였다.

“뭐, 나도 네가 소문을 듣고 날 찾으리라 생각은 했지. 그런데 이런 예전의 모습으로 날 찾아올지는 몰랐는데…… 그리고 설마 소문을 믿고 나를 이리 적대하는 건가?”

검성은 늘 자신을 형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예를 지켜 왔는데, 말을 놓고 적대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신투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신투 본인도 이미 검성이 모든 것을 알고 찾아왔음을 알았지만, 시치미를 떼며 검성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런 신투의 말에 검성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신투는 언변이 좋은 사람이었기에 검성도 그와 대결할 때마다 그의 말에 심하게 당황한 적이 많았다.

그렇기에 오늘 신투를 만나러 오면서 검성은 그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왔지만, 그의 첫마디에 검성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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