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조우(遭遇)하다(1)
“설마 신투가 황궁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말하는 것인가?”
검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천통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저희도 벽령이라는 자를 놓치고 꽤 북평을 헤집고 다녔지만 그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단 사람들을 통해 몇 가지 소식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무슨 소식이지?”
“황궁에서는 황궁의 신축을 한 사람에게 맡겼고, 그 사람이 현재 모든 공사를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 사람의 이름이 초 대인이라 불린다고 하더군요.”
“초 대인?”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신투의 성이 초씨(楚氏)였기에 천통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희도 황궁에 관한 일까지 세세하게 살피지 않았던지라 몰랐는데, 이 초 대인이라는 자는 현재 황제가 황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를 지원해 왔다고 하더군요.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아 많은 혜택을 누리며 현재 북평의 황궁 건설도 전담하고 있다 합니다. 대충 따져 보니 저희가 신투의 행방을 잃어버린 즈음과 황궁 건설이 시작된 시점도 일치합니다. 혹 초 대인이라는 사람과 신투과 동일 인물이라면 북평에 있을 듯합니다.”
천통자는 말을 하고는 검성을 바라보았다. 현재 오절의 모든 불화와 일의 원흉은 신투 초벽의 짓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검성으로서도 현재 신투에게 가장 큰 분노를 느끼고 있을 터라 듣고 바로 달려갈 것이라 여겼는데, 검성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초 대인이라는 자와 초벽이 같은 자라면 북평에 있을 거라는 거지?”
“네. 의심이 가는 곳도 이미 파악해 두었습니다.”
“의심이 가는 곳?”
“네. 황궁의 건설이 시작되고 북평에 큰 저택이 생겨났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은 그 저택에 사람을 드나드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여 귀신궁이라고 부른다는데, 아마 그들의 본거지일 듯합니다.”
비천은 벽령의 추적은 실패했지만, 실마리를 잡고 꽤 많은 것을 조사했기에 북평의 모든 정보를 파악하고 정리하여 장소를 추려 나갔고, 귀신궁이라는 저택이 가장 의심스럽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리 잠입을 해 보려 몇 명의 비천의 일원들을 보냈지만, 저택 안에는 전혀 기척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택에 진(陳)이 설치되어 있었다 합니다. 마치 밖에서 지켜보면 아무도 없는 집으로 보였지만…… 그건 진에 가려진 상황 같다고 하더군요.”
“의심스러운 곳은 확실하군.”
검성은 천통자의 말처럼 귀신궁이라고 불리는 저택이 확실히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가 보시겠습니까?”
천통자는 검성에게 물었다.
“그자가 그곳에 있다면 가 봐야지.”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내어 건네었다.
“무엇이지?”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저희 회주께서 혹시 검성 어르신이 북평으로 가신다고 하면 건네주라고 하셨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서찰을 받아 들었고, 내용이 궁금하였기에 바로 펴 보았다.
<이 서찰을 읽으신다는 것은 신투를 만나러 가겠다고 마음먹으신 것이겠지요. 한 가지 부탁을 하고자 이렇게 천통자를 통해 서찰을 남깁니다. 저희가 신투에 대한 정보를 협조한 만큼 이 부탁만은 꼭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신투는 현재 황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 평안의 황궁 건설이 모두 그들의 지휘 아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신투를 검성께서 해치운다면 황궁에서 문제로 삼을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황궁이 다시 무림에 개입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검성은 서찰을 읽어 내려가다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다. 비천회주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에 살짝 걱정되었다. 역대 황궁에서 무림에 개입한 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현 황제가 신투를 아껴 황궁 건설을 맡길 정도라면…… 분명히 신투가 죽게 되면 황궁이 개입하게 될 것이었다.
검성은 살짝 고민하다 다시 서찰을 읽었다.
<신투를 만약 검성께서 해치운다면 그 시신과 뒤처리를 저희 비천에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되면 저희가 신투가 죽은 이후 수습을 하겠습니다. 이것은 부탁이니 거부하셔도 되지만, 저희가 검성을 돕는 만큼 검성께서도 이후 일을 생각 잘해 주시길 바랍니다.>
검성은 서찰을 다 읽고는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천통자를 노려보았다.
“너, 이 서찰의 내용을 아느냐?”
“네…… 뭐, 자세히는 모르지만 회주께서 어느 정도 언질은 주셨습니다.”
천통자는 검성의 물음에 약간 두루뭉술하게 답했다. 이미 천통자는 서찰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비천회주가 아마 장황하게 썼겠지만, 내용은 신투가 죽고 난 후 시신 처리와 뒤처리를 자신들이 맡겠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좋게 보면 검성이 신투를 죽이고 모든 뒤처리를 비천회에서 하겠다는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상은 신투가 가지고 있던 황궁 건설이나 황궁의 권리 등 이권을 비천회에서 죽은 신투 대신 대리인을 세우겠다는 이야기였다.
검성의 반응이 이미 자신들의 뜻을 알아차린 듯 보였기에 천통자는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일월문에 권왕의 대리인을 세웠듯이 너희가 신투의 대리인을 새우겠다는 이야기인가?”
“네…… 뭐, 대충 그런 내용입니다. 어차피 신투가 사라지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현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그런 인물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황제의 성정으로 보아 무림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천통자는 주절주절 변명하듯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황제의 성격상 정말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자신의 조카를 죽이고 황위에 오른 인물이고, 무엇보다 자신이 믿고 있는 자가 무림인에 의해 죽는다면 정황을 알아내어 벌하려 들 것은 자명했다.
“알았다. 너희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지.”
“정말이십니까?”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놀라 물었다. 사실 검성이 또 거부하고 나설까 봐 걱정했던 그로서는 검성의 대답이 반가웠다.
“그래. 난 지금 당장 북평으로 가겠다. 너희도 바로 준비하도록 해.”
“네. 물론이죠. 북평 쪽에 비천의 인원들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니 바로 연락해서 준비시키겠습니다.”
천통자는 검성이 바로 백아를 타고 이동할 것을 알았기에 바로 답했다. 검성은 천통자의 대답을 듣고는 살짝 생각에 빠졌고, 그런 검성을 천통자는 잠시 기다려야 했다.
“초벽…… 기다려라. 지금 바로 널 찾아가겠다.”
검성은 나직하게 읊조렸고 그 말을 들은 천통자는 살짝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을 향한 말이 아니었음에도 검성의 말에 공포감을 느꼈다. 그만큼 검성이 뿜어내는 기운에 압도되었다.
빼액―
갑자기 백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오자 천통자는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나타난 백아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선회하더니 하강하여 내려왔다.
‘언제 나타난 것이지? 설응을 부르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인가?’
천통자는 백아의 출현에 조금 놀라 뒷걸음질 쳤고, 땅에 내려온 백아는 오랜만에 자신을 부른 검성에게 다가가 머리를 들이밀며 반가움의 표시를 했다.
검성은 그런 백아의 머리와 목을 쓰다듬어 주었다.
“오랜만에 봐서 어리광이 심하구나?”
꾸륵―
백아는 검성이 만져 주는 것이 기분이 좋은지 연신 얼굴을 비볐다. 검성이 서안에 도착한 이후 계속 부르지 않아 백아는 북해로 돌아가 있었고, 마침 검성을 찾으러 서안으로 왔다가 부르는 울림을 듣고 바로 이곳으로 날아온 것이었다.
“난 바로 북평으로 가겠다.”
검성은 천통자에게 말하고는 바로 백아에 올라탔다. 천통자는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검성을 막아서려 했지만 순식간에 검성은 백아를 타고 날아가 버렸다.
“이런…… 아무리 비천의 전서구가 빠르다 한들 북해설응의 속도를 어찌 쫓아가…….”
천통자는 날아가 버린 검성을 바라보고는 이내 품에서 호각을 꺼내어 불었고, 얼마 있지 않아 비천의 전서구가 날아왔다. 작은 종이와 붓 통을 꺼내어 무언가를 적었고 전서구 발에 매달려 있는 연통에 종이를 넣고는 다시 날려 보냈다.
이미 가 버린 검성을 전서구가 쫓아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최대한 검성이 늦게 움직이길 천통자로서는 빌 수밖에 없었다.
* * *
퍼드득―
백아가 북평의 야산으로 큰 날개를 퍼덕이며 하강하자 검성은 땅에 내려섰다.
“네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니 근처에 있도록 해라.”
꾸륵―
검성은 백아를 쓰다듬으며 말했고, 백아는 대답하듯 울고는 날개를 퍼덕였다. 그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백아를 다시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사람들 눈에 띄기 전에 하늘로 날아오르렴.”
백아는 검성의 말에 살짝 뒤로 뒤뚱거리며 물러서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백아가 하늘로 사라지자 그 모습을 지켜본 검성은 산 아래 보이는 한참 건설 중인 황궁을 보았다.
워낙 큰 공사인지라 산 위에서 거대한 규모의 건설 현장이 한눈에 보였다.
“초벽 그자는 이전부터 속을 알 수 없는 자였으니 조심하여야겠지.”
검성은 정천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오절 중 가장 강한 자는 검성이었지만, 검성이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자는 신투였다. 오절의 이름을 얻기 전과 얻은 후까지 합치면 검성과 신투는 대결할 기회가 꽤 많았다.
가장 먼저 만났던 무림맹의 비무대회에서 검성은 반 초 차이로 이길 수가 있었으나, 검성도 그 대결에서 한쪽 팔에 큰 상처를 입어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대결도 오절로 불리기 전이었다.
안휘성에서 큰 위세를 떨쳤던 천마보가 무너지고, 그 지역을 가지고 몇 개의 정파 문파들이 다투었는데, 검성과 신투는 각기 다른 쪽을 지지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대결을 해야 했다.
사실 두 사람이 대결할 필요는 없었으나 신투가 나서서 자신이 지지하는 대표로 나서고 검성을 지목하여 대결을 통해 이긴 쪽이 지역을 먹는 것으로 결론을 내 버렸다.
대결을 피하고 싶었던 검성이었지만,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신세를 진 문파가 큰 싸움에 휘말려야 했기에 나섰고, 그 대결에서도 검성이 신투를 꺾어 내었다.
첫 대결에 비해 손쉽게 검성이 신투를 이겼고, 그 대결로 인해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확연하게 갈렸다.
그때부터 신투는 검성과 은근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던 약선이 검성만 바라보면서 검성에 대한 질투심은 더욱 커지고 있었다.
세 번째 대결은 오절 모두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 대결이었다. 검성을 제외한 오절 모두가 검성에게 도전하였고 대결을 피했던 검성은 모두의 도전을 결국 받아들였다. 마지막 대결 역시 검성의 무난한 승리였다.
마교의 혈천검마(血天劍魔)를 이긴 후 큰 성과를 얻은 검성을 오절 모두 당해 내지 못했다. 검성은 신투와의 첫 대결 이외에 큰 고전은 하지 않았지만, 신투를 까다롭게 여기는 것은 그의 심계(心計) 때문이었다.
수 싸움에 뛰어난 신투는 늘 검성이 생각지 못한 공격으로 허를 찔러 오곤 했다. 그렇기에 검성은 신투와의 대결을 늘 꺼려 왔고 현재도 방심하지 않으려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백아를 보내지 않고 주변에 둔 것도 혹시나 있을 변수를 대비하고자 한 것이었다.
“초벽…… 기다려라. 이제 곧 너에게 가마.”
검성은 아직 밝은 낮이었기에 바로 신투가 있다는 귀신궁을 찾아가지는 않았다.
대신 천천히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신투를 찾아나서는 것은 밤에 해야 했기에 마을로 내려가 정보도 얻고 식사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검성은 천천히 걷던 움직임을 조금씩 빠르게 걷기 시작했고, 금세 산을 내려가 마을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