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화― 불마사(佛魔寺) 활불(活佛)
서장(西臧) 창도(昌都).
최근 사천성과 맞닿은 서장의 동쪽 도시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었다. 일월신교(日月神敎)의 총본부이기도 했던 도시로, 오래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몰리는 곳이었지만, 몽골인들이 일월신교를 뿌리 뽑으면서 해산시켰고, 그 후 사패(四覇) 중 한 곳인 불마사(佛魔寺)가 자리 잡으면서 창도는 불마사의 본거지가 되었다.
무림과 대립하는 사패의 모든 곳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불마사는 그렇지 않았다. 일월신교가 무너지고 그 남은 세력들이 활불(活佛)이라고 불리던 한 소년을 상징으로 삼아 새로이 만든 것이 불마사였다.
활불이라 불렸던 소년의 힘이 성장할수록 무림에는 엄청난 재앙이 되었다. 활불이 이끄는 불마사가 서장의 세력을 이끌고 무림으로 쳐들어왔을 때, 무림은 가장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하지만 불마사도 무림 침공에 결국은 실패하면서 큰 피해를 보면서 창도로 다시 돌아와야 했고, 긴 시간을 힘을 비축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불마사의 심처(深處).
꽤 큰 불마사의 규모 중에서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이곳에 승복을 입은 승려가 주위를 살피고는 법당 안으로 들어갔다.
법당 안으로 들어온 승려는 내부를 살피고는 무릎을 꿇었다. 법당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정면에는 커다란 주렴이 쳐져 있었고 그 너머에는 누군가 앉아 있었다.
“활불을 뵙습니다.”
승려는 고개를 땅에 닿은 채 들지 않고 말했다.
“일어나라. 무슨 보고이기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냐?”
주렴 안의 사내는 불마사의 활불이라 불리는 인물이었다. 사패의 한곳인 불마사의 지존이 이렇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심처의 법당에 머물고 있었다.
“활불께서 신공을 완성 중인 중요한 때에 방해드리는 것은 죄송하지만…… 무림에 조그만 변수가 일어나 보고드려야 할 것 같아서 왔습니다.”
중년의 승려는 활불의 명에 따라 고개를 들어 주렴 안의 활불을 보고는 말했다.
“변수? 우리의 계획이 틀어졌다는 이야기인가?”
“그건…… 아니고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
활불의 음성에 노기가 섞여 있자 승려는 조금은 당황하여 변명하듯 이야기했다.
“무슨 문제? 이야기하라.”
활불이 허락이 떨어지자 승려는 활불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뗐다.
“사왕련주 독고진은 사파의 세력을 무난하게 규합하여 이제 정파와 큰 싸움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승려는 난감한 듯 말을 멈추고는 다시 한번 눈치를 살피고 입을 열었다.
“무림맹의 우금이 정파의 수뇌부를 사로잡으려는 순간 방해자가 나타나 계획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실패? 방해자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활불이 승려의 보고에 화가 난 듯 주위 공기가 떨릴 정도였고, 그 기운을 승려도 느낀 채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우금의 계획이 성사되던 찰나에 복면을 쓴 어떤 인물의 난입으로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의 무위가 우금을 가볍게 제압한 것으로 보아…… 보통 인물은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우금을 구해 온 환영신마의 말에 의하면 결코 자신의 하수로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환영신마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면 거짓은 아니겠지…… 하지만 무림에 그런 자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사마련의 각주인 흑월도존 유상휘 말고는 그다지 뛰어난 인물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활불은 승려의 보고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상휘는 현재 저희가 우금에게 건네었던 만년취(萬年醉)에 중독된 상황이라 절대 일어나지는 못할 겁니다. 복면인이 조금 젊은 목소리였다고 환영신마가 말한 것으로 보아, 절대 유상휘는 아니었을 겁니다.”
“뭐야? 유상휘는 아직 살아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게…… 독고진이 유상휘를 죽이는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합니다. 이 상황까지 왔는데도 자신을 거두어 준 유상휘를 차마 죽이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화근이 될 수 있는 인물이니 처리할 수가 있도록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활불의 말에 승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명을 받았다.
“그리고 복면인에 대한 정보는 없는 것인가?”
“네…… 그게…… 우금과 환영신마가 빠져나온 이후에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누구도 그의 정체를 아는 자가 없는 듯합니다. 무슨 이야기라도 나올까 해서 무림맹에 첩자들을 꽤 심어 두었는데도 전혀 언급이 없어서…….”
“우리 일의 방해가 될 수 있는 자들의 파악은 확실하게 해 두도록 해. 이전의 실패를 거듭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네. 명심하겠습니다.”
승려는 고개를 숙여 땅에 박은 채 답했다. 주위가 조용하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주렴 안에 있던 활불은 사라지고 없었다.
“휴…… 매번 대하지만 대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듯하군.”
신공의 완성을 위해 불마사의 깊은 이곳에서 수련하는 활불에게 전후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 자기 일이었는데, 매번 만날 때마다 활불의 기도가 남달라지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림은 이제 곧 혈겁에 휩싸이게 될 테니…… 우리의 일을 마무리해야겠지.”
승려는 나직하게 읊조리고는 법당을 떠났다.
* * *
무림맹(武林盟) 맹주실.
이른 시간부터 무림맹의 맹주실에 꽤 많은 인물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개방주께서 이렇게 찾아와주시니 큰 힘이 되는군요.”
새로이 무림맹의 임시 맹주가 된 남궁인은 자신의 바로 왼쪽 옆에 앉은 개방의 소천개를 보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다.
“이거 맹주의 거듭된 부름을 거절할 수가 없었지요. 어찌하여 저 같은 거지를 이런 자리까지 나오게 하셨는지요.”
소천개는 넉살 좋은 웃음을 보이며 남궁인과 자리한 모두를 쳐다보았다.
“흠…… 우금에게 모두가 당할 뻔했을 때 소천개께서 미리 눈치를 채시고 검성의 제자를 보내 주지 않았다면 모두가 위험할 뻔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묻고 싶어 계속 소천개를 이곳으로 부른 것이지요.”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석이 소천개를 보고 이야기했다. 맹주실에 모여 있는 인물은 맹주인 남궁인과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석 그리고 무당의 현월자였다. 모두 검성이 무림맹의 대회의실에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깨웠던 인물들이었다.
“흐음…… 그 일이라면 별로 할 말이 없는데 말이죠.”
소천개는 살짝은 난감한 듯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사실 이미 무림맹에서 자신을 부르는 것을 여러 차례 거절했던 이유도 이것을 물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무림맹이 되어 뭉치려는 시점에 계속 맹주의 호출을 거부하는 것은 소천개로서도 명분이 없었기에 결국은 이곳에 와 있었다.
“할 말이 없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개방이 아무리 대단한 정보를 가진 곳이긴 하나, 미리 우금의 이상한 점을 간파했다면 모두에게 알려 주는 편이 더 좋았을 텐데요.”
모용석은 소천개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피하려 하자 조금은 화가 나 다그쳤다.
“저희로서 확신이 없으니 모두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긴 갈등을 끝내고 이제야 화합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거기에 대고 확신 없이 무림맹주가 수상하다고 한들 누가 믿어 줍니까? 저희 개방을 오히려 분란을 일으키는 곳이라 비난받을 수도 있었는데요.”
“그거야…….”
소천개의 말에 모용석은 입을 다물었고, 그 모습에 소천개는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이미 소홍이 이런 일이 생길 것을 우려해 소천개에게 상황에 따라 말을 외우도록 했고, 그것을 써먹은 것이었다.
“그만하시죠. 이러려고 모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듣고만 있던 현월자가 모두를 진정시키며 한마디 했다.
“소천개께서도 조금은 정확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시죠. 그 당시 정말로 소천개께서 검성의 제자분을 보내 주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현월자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소천개를 보았다. 그로서도 이제 더는 입을 닫기는 어려웠다.
“흐음…… 어차피 우금이 수상한 것은 모두가 눈치채고 있던 문제 아닙니까? 그저 설마 그가 이런 일까지 벌일까 하는 의심이 있었을 뿐이죠. 저는 그 의심을 조금 더 하여 대비를 했을 뿐입니다. 저도 확신이 있었다면 장로인 무영개 어르신을 그 자리에 보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들이 잠들게 하는 향을 써서 다행이지, 모두 그 자리에서 죽이려 했다면 다 죽었지 않겠습니까.”
소천개의 말에 다들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그의 말처럼 개방에서 가장 큰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무영개가 그 자리에서 잘못하면 변을 당할 뻔했고, 그의 말처럼 우금에 대한 의심은 모두가 하고 있었던 부분이었다.
“그럼, 소천개께서는 어째서 검성의 제자를 감시자로서 보낸 것입니까?”
“그건 저와 임 소협이 작은 거래를 하고 있었기에 그 거래의 일환으로 임 소협에게 부탁을 한 것이죠. 저도 설마 우금이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소천개도 사실 우금이 갑자기 천무지회를 여는 것과 그와 동시에 정파의 수뇌부를 모아 대회의를 하는 것이 의심스러워 검성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탁한 것이었다. 진짜로 일이 벌어질 것은 소천개의 예상 밖이었다.
그리고 검성이 우금을 패퇴시키고 환영신마까지 물러나게 했다는 사실을 무영개를 통해 들었을 때는 소천개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임진후에 대한 평가를 더욱 올려야 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위기이지 않습니까? 우금이 몸통이 아닌 하수인에 불과하다면 말입니다.”
“그러게요. 거기에 노마두인 환영신마까지 나타났다니 점점 상황이 안 좋아지는 듯합니다. 환영신마라면 예전 구파일방의 고수들과 검성과 도후까지 나서서 겨우 잡아낸 대마두이니…… 현재 실력이 그때와 다르지 않다면 더욱 위기일 듯합니다.”
임시 맹주인 남궁인의 말에 모용석이 말을 덧붙이며 답했다. 모두 같은 생각이었기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만큼 정파 무림에는 큰 위기였다.
“오절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겠습니까?”
모용석은 소천개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오절이라고 해 봐야 소문대로 신투와 권왕 그리고 도후가 변절한 것이 맞다면, 검성과 약선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두 사람도 나서겠습니까?”
소천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소천개도 이미 오절의 도움을 받아 볼까 생각하던 시점에 그들에 대한 추문이 퍼지면서 생각을 접어야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소문은 오절에게 큰 오점이되었고, 소문이 사실이라면 오절끼리 큰 싸움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약선 어르신은 은거 중이시니 힘들지 모르지만, 검성의 제자가 둘이나 무림에 나와 있으니 그들을 통해 검성에게 도움을 청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도 그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검성께서 무림을 도우려 할까요?”
소천개는 사람들의 말에 조금은 회의적으로 이야기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검성은 무림에 활동하실 때도 오절 누구보다 정의를 외치셨던 분입니다. 무림의 위기를 외면할 리가…….”
소천개의 말에 모용석이 반발하며 이야기했다. 모용세가는 검성과 딱히 인연은 없었지만, 모용석은 자라면서 오절 중에 검성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고 그의 무용담을 들어왔기에 존경심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월자가 한마디 하자 모두 그를 보았다. 모두 자신을 바라보자 현월자는 입을 다시 떼었다.
“검성께서 무당에 꽤 오래 머무른 것을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네. 검성이 사라지시기 전에 무당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무공을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현월자의 말에 소천개가 답해 주었다. 개방의 방주로서 이미 오절의 관한 정보는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전대 무당 장문인께서 검성과 꽤 많은 문답을 가졌는데, 검성은 그 당시 정파 무림에 회의적이셨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죠? 검성께서 왜 정파 무림에……?”
모용석은 현월자의 말에 조금은 충격을 받은 듯 물었다.
“검성은 욕심이 많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정파. 아니, 무림의 절대자로서 군림할 수도 있었지만 세력을 가지지 않으셨고, 젊은 시절 정혼자를 잃은 뒤 혼인도 하지 않고 후계자도 남기지 않으셨죠. 그 당시에는…….”
현월자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여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