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신투의 비밀(秘密)
“소려의 가문? 그게 무슨 소리지?”
검성은 천통자의 이야기에 놀라 물었다.
“소문에도 퍼졌듯이, 임소려의 가문에 신장의 무기가 세 개나 가지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렇지…… 나도 처음 탁헌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저도 그 사실을 듣고 이상하여 알아보았는데, 이유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유?”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관심을 가지고는 물었다. 이미 권왕에게 들었을 때부터 느꼈던 의문이었다. 그저 작은 가문이었던 임소려의 가문에 왜 신장의 무기가 세 개나 있었는지, 신투는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임소려를 죽이고 훔칠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신장(神匠)에 대해 잘 아십니까?”
“아니. 정천검도 신장의 무기이긴 하나 그에 대해선 무기를 잘 만드는 도장이었다는 것 이외에는 모르네.”
“장가철장(張家鐵場)이 신장의 후인들인 것을 알고 계시죠?”
“그건 알고 있지.”
검성도 장가철장의 전대 장주와 인연이 있었기에 그를 통해 장가철장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은 불편한 사이였으나, 검성이 상월검(霜月劍)의 주인이 되고 나서 전대 장가철장의 장주는 마음을 열고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이야기 중에는 장가철장이 상월검 등 신장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던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가철장은 신장으로 불렸던 장진이라는 인물이 한 사람에게 지원을 받아 세워진 곳입니다. 신장을 지원한 사람은 신장에게 무기 하나를 만들어 달라고 제의하고는 그 의뢰비로 장가철장을 만들어 주었죠.”
“그 의뢰인이 소려의 가문과 연관이 있는 것인가?”
검성은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알 수가 있었다. 천통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네. 그 당시 신장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무림인은 물론이고 황궁에서까지 그를 찾았기에 선대는 제의를 받아들이고 장가철장을 받았죠. 완성된 장가철장을 본 신장은 너무나도 고마웠기에 약속했던 무기와 더불어 자신이 가장 처음에 만든 홍라염도와 신월검 그리고 진천궁까지 그에게 건네었다고 합니다.”
“세 가지 무기는 신장의 무기로서 무림에 퍼져 있던 것이 아닌가? 왜 다시 신장의 손에 있었던 것이지?”
“전대의 주인들도 자신들이 신장에게 무기를 받아 들고 무림의 고수로서 일생을 살았지만, 자신들의 무기로 인해 자식들이 다투고 친구들이 무기를 노리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어 결국 모두 죽기 전에 신장에게 다시 무기를 반납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신장은 그에게 준 것이죠.”
검성은 천통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검성은 무림에서 그다지 무기에 대한 욕심이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정천검이라는 신검이 있었기에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무림에서 생활하며 무기에 대한 욕심으로 인해 무림인들이 다투고 서로를 죽이는 것은 많이 보아 왔기에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것이었다.
“내가 아는 소려의 가문은 풍족하지도 그리 유명하지도 않은 작은 무가였어. 장가철장 같은 대단한 곳을 지원할 만큼 금력이 있었다니…….”
검성은 천통자의 이야기가 조금은 낯설었다. 자신이 아는 임소려의 가문은 작은 무가였다. 무림에서도 얕볼 만큼 작았고, 근처 문파들에 치여서 작은 세력만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겉보기엔 진화장(珍話莊)이 작은 무가로 보였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임소려 님의 가문은 장가철장을 지어 줄 만큼 금력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찾다 보니까 의외의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천통자가 바로 말하지 않고 자꾸 말을 길게 하자, 검성은 답답한 듯 재촉했다.
“몽골족 황실의 핏줄이었습니다.”
“누가? 그녀의 집안이 말인가?”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 놀라 물었다.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천통자에게서 나오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몽골족의 공주가 한인의 사내와 혼인을 하여 출가를 했고, 황제는 공주를 아껴 많은 재화를 주었다 합니다. 공주도 처음엔 반려했으나, 황제의 그 마음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기에 받았고, 공주와 혼인한 사내는 단숨에 부마가 되어 신분 상승을 했죠.”
“…….”
검성은 천통자의 놀라운 말에 말을 잃은 채 듣기만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황실과 거리를 둔 채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 당시 신장이 등장했다는 소문을 들은 부마는 신장에게 장가철장을 만들어 줄 것을 약속하고 공주에게 호신용으로 선물할 단도를 받았다고 합니다. 신장은 단도를 하나 만들어 주고 현재의 장가철장을 받는 것을 과하다 여겨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무기 세 개를 모두 부마에게 내주었고, 부마는 단도만 공주에게 선물하고 나머지 물건은 보관하였습니다.”
천통자는 말을 하며 살짝 검성의 눈치를 보고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공주와 부마의 신분도 숨긴 채 조용히 살았고, 그 후손들도 자신들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흔한 작은 무가로서 신분을 숨겨 왔죠. 신장의 무기도 모두 진화장의 깊은 곳에 감추어진 채 말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왔다면 초벽(楚碧)…… 아니, 신투 그자가 어떻게 진화장에 신장의 무기가 있는 것을 알았던 거지?”
검성의 물음에 천통자는 살짝 뜸을 들이고는 답했다.
“신투의 과거를 혹시 아십니까? 출신이라든지요.”
“아니, 초형(楚兄)…… 무림에서 그자를 만난 이후만 알 뿐, 그전은 알지 못해.”
“네…… 신투의 과거는 무림에 알려지지 않았죠. 저희도 그저 작은 무가의 하인 출신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 설마…… 초벽 그자가……?”
검성은 천통자의 말에서 집히는 것이 있는 듯했다.
“네. 신투는 진화장의 하인으로 일하던 자들의 자식이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진화장에 신장의 무기가 있는 것을 그때 알았던 거 같습니다. 그가 신투로서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무공 역시 진화장주의 배려로 익혔던 거 같습니다.”
“기가 막히는군. 설마 자신을 배려해 준 주인을 배신하고 주인의 물건을 탐한 것인가?”
검성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들을수록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아 내고 있었다.
천통자도 그런 검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따로 답하지 않은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아마도 무림인으로서 명성을 얻었을 때만 해도 그 물건들에 욕심을 내지는 않았습니다만…….”
천통자는 검성의 눈치를 다시 한번 살피고는 입을 뗐다.
“어르신의 존재로 인해 신장의 무기에 욕심을 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 설마……?”
“네…… 짐작하시는 대로 신투는 어르신을 만난 뒤, 자신이 뛰어넘지 못할 벽이라고 여기고는 신장의 무기에 욕심이 낸 듯합니다. 질투의 대상이었던 어르신과 사랑을 하게 된 여인도 진화장의 금지옥엽인 임소려였으니…… 어르신에게 상처를 주면서 무기도 얻으려 한 것이죠.”
빠드득―
말을 하던 천통자는 검성에게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자 놀라 말을 멈추었다. 검성의 표정이 심하게 굳어 있었고 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천통자는 검성이 걱정되어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충격이 크겠지…… 임소려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는 소리니까…….’
천통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검성의 마음을 짐작하기조차 힘들었다.
“초벽이…… 소려의 가문을 망하게 한 것이 나 때문이라고……?”
검성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고, 천통자는 검성이 걱정되어 그를 쳐다보았다.
“결과는 그렇게 되었지만…… 어차피 신투의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그의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천통자는 검성을 위로하며 이야기했고 그의 이야기에 검성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행방? 신투의 행방을 말인가?”
“네. 정확하게 알아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천무지회에 참가하여 몰래 사람을 붙여 두었습니다. 미행 중에 있으니 며칠 안에 그가 어디로 가는지 확인한다면 뭔가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빨리…… 최대한 빨리 확인하고 바로 말해 주게.”
검성은 천통자의 어깨를 붙잡고 그의 눈을 바라본 채 말했고, 그의 분위기에 천통자는 압도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저희 부탁을 좀 들어주십시오.”
천통자는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검성을 향해 용기를 내어 이야기했다.
“부탁? 무슨 부탁을 말이냐?”
검성은 천통자를 잡은 손을 놓아주고는 그를 보았다. 천통자는 검성의 눈치를 살피고는 어렵게 입을 뗐다.
“이미 도후는 만나셨으니 더 찾으실 필요는 없으실 테고…… 신투의 행방은 저희가 무조건 찾아서 알려 드릴 테니…… 저희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이야기해 보아라.”
“무림을 도와주십시오.”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냉큼 이야기했고, 말하고는 다시 검성의 눈치를 살폈다. 애초에 검성이 무림의 위기에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도왔었지만 검성이 그럴 뜻이 없음을 확인하고 비천회는 조금 난감해했다.
다시 검성에게 거래를 제안한 셈이었다. 그들은 존재의미는 오랫동안 무림의 평화를 위한 활동이었다.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정파가 견뎌 내기에는 힘겨웠기에 거래를 통해서라도 검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비천회주도 이번 기회에 검성을 억지로라도 끌어들여 사파나 사패의 도발을 막아 내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천통자를 통해 정보를 내주며 거래를 하라고 말한 상황이었다.
‘응하지 않으려나…….’
천통자는 말하고는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한 마음으로 검성의 대답을 기다렸다. 검성으로서는 현재 모든 것을 알아 버린 이상 신투의 정보를 빌미로 자신들과의 거래를 거부하긴 힘들게 분명했다.
검성에게 모든 사실을 알린 이유도 거래를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검성이 신투에게 분노할수록 자신들의 거래에 응할 것이라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어떤 식으로 도우란 말이냐? 난 이미 말했듯이 무림을 떠난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무림을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현재 무림의 상황은 검성께서 방관하신다면 속절없이 사파는 물론 사패에게 유린당할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싶으신 겁니까?”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조금은 무거운 표정을 보이며 입을 닫았다. 자신이 지켜본 정파의 상황으로는 천통자의 말처럼 될 가능성이 컸다.
전대의 마두인 환영신마까지 수하로 둔 사패의 세력이 어느 곳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들의 힘은 예측할 수 없었고, 사파가 하나가 되어 정파와 싸움을 걸어올 때 정파는 그 힘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게 분명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인제 와서 뭉친다 한들 그들의 힘은 한없이 약해져 있습니다. 이미 오랜 평화에 이미 나태해져 버린 그들은 사파의 힘을 당해 내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한들 내가 나설 수는 없다. 무림을 책임질 사람들은 그들이지 내가 아니다. 사파의 발아래 정파가 무릎 꿇는다 하여도 그것은 시대의 흐름일 뿐이다. 애초에 정파들이 제대로 해 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지 않았느냐?”
“그거야…….”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검성의 말처럼 현재 사태를 초래한 것은 정파들이었다. 평화에 취해 나태해진 것도, 오절의 시대에 자신들의 힘인 양 사파를 억압했던 것도 그들이었다.
“너희가 정보를 주지 않는다 해도 신투는 내가 직접 찾겠다. 이제는 너희도 나를 따르지 말도록 해라.”
검성은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등을 돌렸다. 천통자는 검성을 잡으려 했지만 이내 몸을 날려 사라지는 검성을 잡을 수는 없었다.
“이런…… 회주에게 뭐라고 말을 한담…….”
천통자는 보고를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하며 검성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