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위여조로(危如朝露)(3)
“자네는 검성의 제자라던……?”
무영개가 가장 먼저 검성을 알아보고 말을 꺼내었다. 현월자는 이미 태원 일월문에서 검성을 본 적이 있었기에 무영개보다 더 빨리 알아보긴 했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모용세가의 가주 모용석은 주위를 돌아보며 사람들의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검성을 향해 물었다.
“무림맹주가 모두를 함정에 빠뜨렸습니다.”
“정말인가?”
“그럴 수가……?”
검성의 말에 다들 놀라 물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사실을 확인하자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무림맹주의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모두가 정신을 잃은 것은 그가 의도한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자네는 왜 이곳에 있는 것이지?”
듣고만 있던 현월자가 물었고, 모두 같은 의문이 있었기에 검성의 답을 기다렸다.
“개방의 방주이신 소천개님에게서 부탁을 받았습니다. 무림맹주의 의도가 의심스러우니, 가능하다면 오늘 저녁에 있을 무림맹의 회의를 감시해 달라고요.”
“방주께서 그런 부탁을 했다는 말인가? 왜 굳이 자네에게?”
무영개는 검성의 대답에 조금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로서는 개방의 방주가 검성의 제자에게 이런 중요한 일을 자신에게 언급도 주지 않은 채 맡겼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저도 그것이 궁금하군요. 개방의 방주가 왜 검성의 제자를 통해 부탁한 것인지요?”
모용석까지 마치 검성을 추궁하듯 묻자, 검성은 속으로 살짝 기분이 상했다. 기껏 구해 놨더니 따지는 듯하자 화가 난 것이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듯합니다. 개방의 방주께서 검성의 제자에게 일을 맡긴 것은 뭔가 이유가 있겠죠. 그것보다 무림맹주가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가 먼저입니다.”
현월자의 말에 무영개와 모용석도 한발 물러난 채 검성에 대한 추궁을 멈추었다.
“상황을 설명해 주겠습니까? 임 소협.”
현월자는 검성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의 말에 조금은 검성은 화를 가라앉히고는 입을 뗐다.
“우선 그쪽의 의문부터 풀어 드리죠.”
검성은 품 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었다. 그것은 개방의 거지를 통해 받은 소천개의 서찰이었다. 그것을 무영개에게 건네었다.
“방주의 직인이군…… 미안하네…… 내가 큰 결례를 범했군.”
서찰을 받아 든 무영개는 소천개의 직인과 서찰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검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무림맹주는 모두를 무색무취(無色無臭)의 향을 통해 쓰러지게 했습니다. 그가 손을 쓰기 전에 제가 그를 저지했습니다. 그를 제압하려 했는데 중간에 환영신마가 나타났습니다.”
“환영신마라니……?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고 알려진 인물이 아닌가?”
“……?”
검성의 말에 무영개가 깜짝 놀라고 말했다. 모용석이 무영개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할 만큼, 환영신마는 이미 오래전의 인물이었다.
“자네가 무림맹주를 제압했었는데 환영신마가 나타났다는 소린가?”
“네. 무림맹주의 팔을 못 쓰게 만들고 그를 데려가려 했는데 환영신마가 갑자기 나타나 그를 데려갔습니다.”
검성의 대답에 세 사람 모두 서로를 바라보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표정을 보였다. 검성은 담담하니 이야기했지만, 무림맹주를 제압했다는 그의 소리에 세 사람은 매우 놀라고 있었다.
현 무림의 최강자를 꼽을 때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는 것이 비천신검 우금, 현 무림맹주였다. 그런 그를 자신들의 앞에 있는 청년이 이겼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이야기군요. 무림맹주의 행동도 놀라운데…… 환영신마의 등장에…… 그런 마두와 무림맹주가 연관되어 있고…….”
모용석은 검성의 이야기를 듣고는 살짝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무림맹주에 대해 반감을 품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아예 정파 무림에 등을 돌린 인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상황상 우금이 다른 세력과 손을 잡은 인물이라는 소리였고, 그 세력은 환영신마와 얽혀 있는 것으로 보아 절대 무림에 호의적인 세력일 리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용석은 혼자 고민하는 것이 어려운 듯 현월자와 무영개에 물었다. 하지만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현월자는 원래 무림의 정세와 별로 관여하지 않는 인물이었고, 무영개 역시 현재 일을 판단하기에는 어려워했다.
“일단 모두를 깨우시고 무림맹부터 제대로 장악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세 사람이 고민하던 와중에 지켜보던 검성이 말했다.
“일단 임 소협의 말처럼 모두를 깨워 무림맹을 장악하는 게 우선이겠네요.”
모용석의 말에 현월자와 무영개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를 깨우기 위해 각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성은 그들이 움직이자 자기 일이 끝났다고 판단하여 그곳을 벗어났다.
모두가 일어났을 때는 검성의 모습은 사라진 후였다.
모용석이 자초지종을 설명했을 때, 모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무림맹주가 다른 의도를 품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환영신마의 출현까지 들었을 때는 모두 믿지를 못하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사실이었고, 일의 수습을 위해 의논해야 했다.
* * *
객잔으로 돌아온 검성은 자신의 방에 누군가 있음을 느끼고는 천천히 들어섰다. 방에는 천통자와 은정연이 있었다.
“생각보다 늦으셨습니다?”
천통자와 은정연은 검성의 호출을 받고 와 있었고, 검성이 무림맹에 간 것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생각보다 검성이 늦게 오자 안 그래도 왜 늦는지 궁금해하던 차였다.
“생각보다 조금 큰 일이 있었지. 너희가 들으면 안 좋아할 소식이겠군.”
검성은 말을 하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저희가 안 좋아할 소식이요? 설마 무림맹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천통자는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림맹에서 정파 수뇌부의 회의가 열린다는 것은 비천의 정보를 통해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안 좋아할 소식이라면 무림맹에 변고가 생긴 것일 테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무림맹주가 정파의 수장들을 인질로 잡으려 한 거 같더군.”
“네? 그게 정말인가요?”
검성의 말에 은정연이 놀라 되물었다.
“일이 거기에서 끝이 난 게 아니야.”
“또 무슨 일이 있나요?”
“환영신마가 나타났어.”
“그게 누구죠?”
은정연은 환영신마가 누구인지 몰랐기에 천통자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검성의 말을 듣고는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환영신마가 정말로 나타났다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가 아직도…… 그것도 검성께서 처단했던 마두 아닙니까?”
천통자는 환영신마의 악명을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정연은 워낙 이전 인물의 이야기인지라 몰랐지만 천통자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왜 그가 아직도 살아 있는지는 나도 알지 못하겠군. 분명 그는 마지막에 내 검에 의해 가슴이 꿰뚫렸어. 그 당시 기억도 생생한데…… 나도 보고 꽤 놀랐는데 환영신마 그 마두가 맞았어.”
“이거 큰일이 아닙니까? 그 당시 환영신마를 잡기위해 구파일방은 물론 검성과 도후까지 나서서 겨우 처치했던 자라고 들었는데 그런 자가…… 살아 있다니요.”
천통자의 말에 은정연도 환영신마에 대해 잘 몰랐지만 사태의 심각성은 인식할 수가 있었다.
“비천에서도 전혀 모르고 있던 일인가? 꽤 오래 무림맹주와 환영신마가 만나 왔던 거 같은데 그들이 도대체 어떤 조직에 속해 있는지도 말이야.”
“저도 환영신마에 관해서는 전혀 금시초문입니다. 무림맹주가 수상하다는 것은 비천에서도 늘 인식해 왔던 부분이고, 그동안 도후와 신투의 조직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조종되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제 보니 전혀 그게 아니었던 거군요. 무림맹주가 도후와 신투의 조직을 쳐 낼 때 이미 의심했어야 했는데……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천통자는 이제야 우금이 한 번에 구파일방과 무림맹 내의 도후와 신투의 조직원들을 어떻게 쳐 낼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또 다른 어딘가와 결탁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쉽게 첩자들을 쳐 내고 다른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금이 손잡은 곳이 어딜까요?”
“상황으로 보면 신투와 도후는 절대 아닐 테고…… 마교(魔敎) 아니면 사패(四覇)의 세력 중 한 곳……? 어디라도 큰 문제군요.”
천통자는 은정연의 물음에 답해 주면서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것을 느꼈다. 오절의 숨은 세력만으로도 큰 위협이었는데 정파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림맹주가 마교 아니면 사패의 세력과 결탁하고 있었다니. 이건 정말 큰 위기였다.
“비천에서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면 문제가 확실히 크겠군. 환영신마라면…… 마교와는 아닐 거야. 그렇다면 사패의 한 곳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린데, 우금과 손을 잡은 사패의 세력이라면 머지않아 무림을 칠 생각이 있다고 봐야지. 오늘처럼 정파의 수장들을 잡으려 했다면 말이야.”
“그렇겠죠. 정파의 수장들을 한꺼번에 잡으려 했다는 것만 봐도 행동을 시작한 것이라 봐야 하는데…… 최근 사패의 동향에 대해 딱히 보고를 받은 것이 없기는 한데…… 본회에 알아봐야 할 듯합니다.”
천통자는 일단 비천회에 먼저 보고를 하고 공유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은정연과 눈을 마주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먼저 가 봐야 할 듯합니다. 일단 보고를 한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래. 일단 그쪽 일이 더 급할 듯하니 그렇게 하도록 해.”
검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두 사람은 인사를 하고는 방을 금세 나섰다.
검성은 그들이 나가자 검은 무복을 벗어 던진 채 그대로 침상에 누웠다.
“일이 너무 급해지는 거 같군…….”
검성은 눈을 감은 채 낮게 읊조렸다. 자기 일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데, 현 무림의 상황이 정파에게 점점 안 좋게 흘러가자 아무리 상관하지 않으려 했던 검성으로서도 머리가 복잡해져 왔다.
* * *
다음 날 무림맹주가 변절하여 정파의 수장들을 해하려 했다는 소문이 크게 퍼졌다. 천무지회는 일시 중단되었고 무림맹은 비상 체제로 돌아갔으며, 맹주 우금의 수족들은 일제히 잡혀 들어갔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다시금 무림맹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임시 맹주로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인을 세웠다.
이전 맹주였던 비월검공 남궁학이 남궁세가의 출신이기도 했고, 당장 맹주 자리를 놓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자리다툼을 할 순 없었기에 이견이 없을 남궁세가에서 임시 맹주 자리를 맡기로 되었다.
정파로서는 맹주였던 우금의 변절이 큰 위기이기도 했지만, 무림맹을 사유화했던 그가 사라지면서 다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무림맹을 주축으로 힘을 모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파의 위협이 코앞에 닥친 상황이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도 보다 신중하게 논의하기 시작했고, 세력을 규합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서로 협력하기로 말들을 맞춰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