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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98화 (98/251)

98화― 천무지회(天武之會) 개막(開幕)

천무지회(天武之會).

무림맹의 천무지회의 시일이 가까워질수록 서안은 사람들로 가득해져만 갔다. 사람들이 모이면 천무지회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천무지회의 참가자는 너무 많아 일정에 없는 예선을 치러야 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각 대표와 예선 참가가 필요 없는 인물들을 몇 명 제외하면, 전원 예선을 치러야 했다. 그것으로 확정된 열여섯 명에 여덟 명을 추가로 하여 스물네 명의 인원이 선발되었다.

천무지회는 스물네 명이 각 일대일로 겨루는 일정으로 확정되었다. 선발에 관하여 여타 문파들의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나름 정파를 대표하는 각 문파에서 한 명씩은 선발되어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중 가장 주목을 받은 이는 검성의 제자라고 밝힌 임진후였는데, 이미 일월문의 천풍 공자를 단 일 합에 꺽은 것이 알려져 모두의 경계 대상이었다.

그다음으로 주목받은 이는 신투의 이름으로 참가한 벽령(碧鈴)이었다.

신투는 오절 중에서도 가장 신비한 인물이었는데, 정파의 오절로 이름을 날릴 때도 그의 신분에 대해 워낙 알려진 것이 없었다.

벽령은 신투의 제자가 아닌 신투의 이름만 빌린 채 참가 신청을 했고, 모두 그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였다. 그래도 신투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으로 본선 참가가 결정되었고 이십사 인에 이름을 올릴 수가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신진고수들도 이십사 인에 이름을 올리면서, 천무지회는 정파 무림의 축소판이 되고 있었다.

* * *

천무지회 당일.

천무지회의 첫날이 밝아 오면서 서안의 거리는 무림인들로 분주했고, 이른 시간부터 대회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워낙 많은 사람이 천무지회를 보기 위해 서안에 몰려들었기에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었다.

대회장은 두 개가 마련되어 양쪽에서 동시 진행하게 되었고, 첫날에 이십사 강이 열리는 일정이었다.

삼 일 예정으로 치러지는 대회였지만, 첫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이거, 너무 경기들이 싱거운 것이 아닌가?”

“그러게 말이야 상대가 되지 않는 경기들뿐이군.”

대회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중들은 먼젓번 경기들이 빠르게 끝나자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의 두 경기가 삼십 초를 겨루기도 전에 모두 끝이나고 승패가 갈려 벌써 세 번째 비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사람들이 더 몰려드는군.”

“당연하지. 오늘 이 비무를 보려고 본 사람들이 꽤 될 테니까 말이야.”

중년인들은 비무장 위로 올라오는 두 명을 바라본 채 말했다. 그들의 말처럼 전 경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비무장을 가득 채우고 있어 공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비무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는 의미였다.

“화산파(華山派) 담휘경입니다.”

백의를 입은 건장한 사내가 포권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임진후입니다.”

담휘경의 상대는 검성이었다. 검성의 제자와 화산의 기재인 담휘경의 대결에 많은 사람이 몰려든 것이었다.

가히 오늘 비무 중 가장 많은 주목이 쏠렸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예전에 검성의 또 다른 제자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제가 운이 좋군요. 다들 만나기를 원하는 검성의 제자분들을 다 만나 보다니요.”

검성은 담휘경이 이윤후의 이야기를 꺼내자 관심 있게 그를 보았다.

“제 사제를 본 적이 있습니까?”

“네. 무림행을 마치고 본산에 돌아가던 중에 보았었죠. 약선의 부탁을 받아 사람을 데리러 왔다고 하더군요.”

“아…… 천통자를 데리러 갔을 때 본 모양이군요.”

“네. 나중에 알아보니 천통자라고 하더군요. 약선께서 그런 자를 가까이하신다는 것이 조금 놀랍긴 했지만 말입니다.”

담휘경은 가볍게 담소를 나누고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는 자세를 잡았다.

“좀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승패를 가리는 것이 먼저겠군요.”

담휘경은 자신의 검에 손을 가져가 발검의 자세를 취했다.

검성은 따로 자세를 잡지 않고 그를 보았다.

“선수(先手)를 양보하죠.”

검성의 말에 담휘경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검성이 자신을 얕보고 있음을 느낀 것이다.

“천풍 공자를 단 일 합에 꺾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전 그런 녀석과 다릅니다.”

담휘경의 음성이 조금은 떨리며 말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그쪽을 얕보아서 선수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말 그대로였다. 삼 초를 양보하는 것은 얕보는 게 아니라 배려였다.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 누가 검을 휘두를 수나 있겠는가. 하나 이를 모르는 상대들은 좋게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다.

스르릉―

검성은 마지못해 정천검에 손을 가져가 검을 뽑아 자세를 취했다. 두 사람의 사이에 대화가 사라지면서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흘렀고, 지켜보던 사람들조차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파박―!

담휘경이 먼저 발검하며 움직였고, 뽑힌 그의 검이 단숨에 검성의 목을 노리며 내질러 갔다. 검성은 몸을 비틀어 검을 피했으나, 담휘경의 검은 검성이 피하는 방향으로 휘둘러져 왔다.

이미 피할 것을 예상한 담휘경은 바로 손목을 비틀어 검성을 향해 검을 휘두른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검의 변화에 다들 담휘경의 검이 검성의 가슴을 벨 것이라 판단했지만, 상황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허, 과연…… 대단하시군요!”

자신의 검이 검성의 가슴을 벨 것이라 확신했던 담휘경은 검이 허공을 가르자 놀란 표정으로 검성을 보았다.

검성은 어느새 거리를 벌려 검의 반경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놀란 것은 담휘경뿐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담휘경의 검이 검성을 벨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담휘경의 검이 검성의 몸을 베는 순간, 아지랑이처럼 검성의 몸이 흩어지더니 마치 사라진 것처럼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기에 담휘경이 놀란 얼굴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담휘경은 검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주었다. 그는 내력을 끌어 올리며 검성을 노려보았고, 검성은 천천히 거리를 좁히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촤라라락―

거리를 좁혀 오는 검성을 향해 담휘경은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마치 홍련(紅蓮)이 피어나듯, 검기가 검성의 사방을 휘감아 왔다.

수많은 검기가 검성의 전신을 휘감아 베듯이 사방을 흩날렸다.

콰과광―!

폭음과 함께 담휘경의 검이 이번에야말로 검성을 베어 낸 듯했다. 하지만 분진만 흩날렸을 뿐, 검기가 휘몰아친 그곳에 검성이 멀쩡하게 서 있었다.

“어떻게……?”

“화산의 검은 여전히 가볍군요.”

검성은 담휘경의 검기를 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지만 실속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자리에 서서 한 손을 휘저어 검기를 파훼시켰다.

검성은 뽑아 든 정천검을 거두며 담휘경을 향해 걸어갔다. 이미 검성이 자신의 상대가 아님을 느낀 담휘경은 검을 늘어뜨린 채 덤빌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화산의 기재라 불렸던 담휘경의 무기력한 모습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놀라고 있었고, 가늠할 수조차 없는 검성의 무위에 다들 탄성을 내질렀다.

전의를 잃은 담휘경의 모습에, 결국 심판관이 종료와 함께 검성의 승리를 선언했다.

“승자는 임진후 소협이오!”

담휘경은 넋이 나간 채 비무대에서 주저앉았다. 공격을 당하지도 않았으나, 그의 심적 타격은 더욱 컸다.

무림행을 다녀옴으로써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그였다. 자기 또래의 누구와 붙어도 자신이 있었던 담휘경이었지만, 이번 비무에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 하지만…… 내가……!’

승자 선언이 끝나자 검성은 담담하게 비무장을 내려갔다. 군중들은 그의 압도적인 무위에 다들 놀라 환호성도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거…… 보고도 믿을 수가 없군. 담휘경이 누군가? 대화산파의 최고의 기재라고 모든 기대를 받던 자인데, 저렇게 아무것도 못 하고 지다니 말이야.”

“그러게. 누가 믿겠어. 담휘경이 상대의 공격을 받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꺾여서 패배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직접 보고도 두 사람의 싸움의 결과를 믿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검성의 제자가 이길 것으로 생각하긴 했지만 담휘경이 이렇게 허무하게 패할 것이라 예상하는 이는 없었다.

* * *

“대단하시더군요.”

검성은 자신의 비무를 마치고 딱히 할 것이 없어 남은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거지가 다가와 말을 건네었다.

“개방의 인물인가요?”

워낙 꾀죄죄한 모습이라 정확한 나이를 파악할 수는 없었으나, 어차피 검성의 드러난 모습은 이십 대였기에 존대해야 했다.

거지는 고개를 끄덕이곤 검성에게 다가와 비무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뗐다.

“방주님이 보냈습니다. 서안에 있는 동안 임 소협을 도와주라고 하더이다.”

검성은 그의 허리춤의 매듭이 다섯 개인 것을 확인하여 개방의 오결 제자이자 높은 직책의 거지임을 알 수가 있었다.

“도움은 필요한 것이 없으니, 약속한 일이나 지켜 달라고 전해 주십시오. 이변이 없는 한 물건은 건네줄 테니까.”

검성의 말에 거지는 살짝 기분이 나쁜 듯 미간이 찌푸렸다. 그가 보기엔 한참 어린아이가 사부와 실력을 믿고 말을 막 하는 것으로 보였다.

“방주께서 임 소협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고, 이것을 전해 달라고 했소.”

거지가 품 안에서 서찰을 꺼내어 내밀자, 검성이 받아 펴 보았다.

“이것의 내용을 아십니까?”

서찰을 확인한 검성이 묻자, 거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주의 서찰을 펴 볼 만큼 개방의 위계 질서가 엉망이진 않소.”

“그런 뜻으로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내용이 조금 놀라워서 물으려 한 것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검성은 자신이 말실수했음을 사과했고, 그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자 거지는 서찰의 내용이 궁금해졌으나 알 수가 없었기에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흐음…… 일단 알아봐야겠군요.”

검성은 서찰을 품 안에 갈무리하고는 말했고, 거지는 전 할 말을 다 전했기에 자리를 피했다.

그가 사라지자, 검성은 비무장을 바라보았다.

비무대 위에는 모용세가의 모용연과 곤륜파의 장한공이라는 검객이 겨루고 있었는데, 꽤 싸움이 길어지고 있었다.

친분이 있는 모용연의 비무라 지켜보기도 했지만, 검성의 다음 상대가 두 사람 중 승자인 점도 그가 지켜보고 있는 이유였다.

곤륜파의 검객이 공세를 주로 취하고, 모용연이 그것을 되받아치는 형세였는데 꽤 긴 비무치고는 승패가 확연하게 보이긴 했다.

“모용세가의 사내답게 제법 실력은 있군.”

검성은 모용연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을 하며 비무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기엔 두 사람이 호각으로 보일 수도 있었으나, 모용연은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내며 힘을 크게 들이지 않고 받아치고 있었다.

모용연이 빨리 끝내고자 마음먹었다면 스무 합 이내 승부가 났을 터였다.

결국 백 합이 넘어서야 승패가 결정 났다.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공격했지만, 승기를 잡지 못했던 장한공이 모용연의 검에 패배를 인정해야 했다.

앞의 싸움들과 다르게 긴 합의 싸움이라 사람들이 즐거워했고 대회장의 열기도 올랐다. 하지만 정작 이긴 모용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경험이 부족하군.”

모용연의 실력은 또래와 비교해 확실히 뛰어났고, 자신과 싸웠던 화산의 담휘경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모용연은 담휘경보다 결단력이 부족했고 싸움 내내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것은 다 경험 부족에서 오는 것이기에 검성은 모용연이 이기고도 개운치 않은 표정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천무지회의 첫날 오전 경기가 마무리되자, 다들 식사를 하기 위해 돌아가기 시작했고 검성도 더는 대회를 지켜볼 필요가 없었기에 객잔으로 발길을 돌렸다.

소천개가 전해 준 서찰의 내용을 고민해 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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