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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97화 (97/251)

97화― 만남

자은사(慈恩寺).

당 고종이 어머니인 문덕황후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찰로, 검성은 해가 떨어지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은사에 당도해 있었다.

검성은 승려들의 눈마저 피해 어디로인가로 움직였다. 그가 멈춘 곳은 자은사의 자랑인 대안탑(大雁塔)의 앞이었다. 현장법사가 인도에서 가져온 경문이 대안탑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

대안탑 앞에 도착한 검성이 누군가를 찾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일찍 도착하셨군요.”

어둠 속에 청아한 음성이 들리며 백의를 곱게 입은 젊은 여인이 검성의 앞에 나타났다. 홀로 나타난 그녀를 검성은 한참을 응시했다.

나타난 여인은 도후의 제자이자 십인회의 대모인 유형지였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그녀의 흰 피부와 어울리는 백의를 입고 아름다운 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찰을 보낸 사람이 그쪽입니까?”

검성은 품 안에서 서찰을 꺼내어 보이며 유형지를 향해 물었다. 그는 미홍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점소이를 통해 보내온 서찰을 확인하고 현재 이곳에 와 있었다.

그저 만나자는 것만 적혀 있어 미홍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던 검성은 다른 여인이 나오자 조금 놀랐다.

“검성의 제자분이 맞으시다면, 제가 보낸 서찰이 맞는 듯하네요.”

유형지는 살짝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 미소가 워낙 아름다웠던지라 여인에 무심했던 검성조차 아름답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낼 뻔했다.

‘뭔가 다른 매력을 가진 여인이로군.’

유형지가 아주 빼어나게 미인은 아니었지만, 검성은 그녀의 미소에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심기를 가진 자로구나. 내 웃음을 보고도 평정심을 유지하다니…….’

유형지는 자신의 앞의 검성이 자신의 웃음을 마주하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그녀의 웃음 한 번에 힘을 잃고 방비를 풀기 일쑤였다.

그녀의 웃음을 본 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어릴 적엔 많이 사용했었으나, 사부인 도후에게 거두어지고 난 뒤, 그녀는 웃는 것을 금지당했다.

“전 검성의 제자 임진후라고 합니다.”

검성은 유형지를 향해 예를 취하며 먼저 소개했다. 이것은 너도 정체를 밝히라는 의미였다. 그것을 알았기에 유형지도 살짝 미소를 짓고는 예를 취했다.

“도후의 제자인 유형지라고 해요.”

검성은 자신의 앞의 여인이 도후와 관련된 여인일 것은 예상했지만, 제자일 줄 생각지 못했기에 놀라고 있었다.

‘이 여인이 도후의 제자라면 십인회의 수장일 가능성이 크겠군.’

검성은 십인회 수장일 게 분명한 그녀가 자신 앞에 직접 나타나자, 그 대범함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화미랑(花美郞)을 이렇게 보는군요. 소문이 과장은 아닌 거 같네요.”

“저 역시 도후의 제자에 대한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렇게 보게 되다니 영광이군요. 소문만 무성하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말입니다.”

“제 소문이 그렇게 많은가요?”

“유 소저의 소문이라기보다는 오절의 제자들에게 관심이 많으니 세인들이 많이들 이야기하는 편이지요.”

“그렇군요.”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려 상대를 살피고 있었고, 서로 그것에 대한 눈치도 채고 있었다.

“미홍에게 전해 들었는데, 검성께서 저희 사부님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게 사실인가요?”

“네. 사부님이 친우들을 만나고 싶다 하여 제가 무림에 나와 그들을 수소문하는 중입니다. 모두 소식이 묘연하여 찾기가 힘들군요.”

검성은 말을 하고는 유형지를 바라보았다.

“굳이 이제야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검성께서는 소리 소문 없이 혼자서 사라지셨다고 들었는데요. 그 때문에 저희 사부님도 검성을 찾기도 했고요.”

“사부님에게는 그 당시 사정이 있었습니다. 무림에 나올 수 없는 이유도 있었고요.”

“그 이유를 묻는다면 실례일까요?”

유형지는 말을 하고는 조심스럽게 검성을 바라보았다.

“말을 하더라도 유 소저에게 할 말은 아닌 듯합니다. 사부님께서 모두를 만나시면 이야기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유형지는 조금은 아쉬운 듯 표정을 보였다. 그녀도 검성이 사라진 것은 꽤 의문이었기에 궁금하였다. 자신의 사부인 도후나 신투 그리고 권왕이 사라진 이유는 알고 있었고, 약선은 늘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사라진 존재는 아니었다.

“검성은 어디 계신가요?”

“현재는 조용히 혼자 은거하고 계십니다. 제자들을 키워 내고 보니 조금 쓸쓸해하시는 듯하더군요.”

유형지는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기에 계속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는 현재 상황이 너무 억지스러웠다. 검성의 제자가 갑자기 나타나 잡혀 있는 미홍을 구해 준 것도, 검성이 도후를 찾는 상황도 모두 말이다.

“도후께서는 사부님께서 찾는다는 것은 아십니까?”

“네. 미홍이 돌아오고 말을 사부님에게 전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사부님은 검성에게 애틋한 마음이 있는 분이라 만남을 기대하고 계시기도 하고요.”

“도후께서 만나기를 원하는 때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사부님에게 전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유형지가 단호하게 거절하자 검성은 조금은 놀라 그녀를 보았다.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죠. 전 그쪽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요. 그쪽이 검성의 제자라는 것도 사실 믿지 못하겠어요.”

유형지는 검성의 손에 쥐어진 정천검을 살짝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미홍은 검성의 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정천검으로 그를 검성의 제자라 확신했다고 했었다.

“모든 상황이 의심스럽기에 사부님이 다시 무림에 나오는 것을 제가 반대하고 있어요. 사부님께서는 검성께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에 당장에라도 만나려고 하시지만 제가 막았어요.”

“무엇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죠?”

“당신의 존재.”

유형지의 말을 하고는 검성을 쏘아지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검성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먼저 나타난 것은 검성의 또 다른 제자인 이윤후라는 사내였죠. 하지만 그가 나타난 후…… 또 다른 제자인 당신이 나타난 것은 왠지 모르게 억지스럽다고 느끼고 있어요.”

“무엇이 억지스럽다는 건가요?”

“그저 처음엔 의심이었는데, 직접 만나 보니 확신이 드는군요.”

유형지는 검성을 보는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고, 검성도 일이 틀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제게는 조금 특별한 능력이 있어요.”

“…….”

“사람들의 말에서 진실과 거짓을 파악하는 능력이죠.”

유형지의 말에 검성은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검성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금세 깨달았다.

‘이런…… 내가 실수를…….’

유형지가 떠보는 말에 반응을 보인 것이 자신의 실책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표정 변화에 유형지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띠고 있었기에 알 수가 있었다.

“나를 떠본 겁니까?”

“네. 하지만 이렇게 어설픈 말에 걸려들 줄은 몰랐어요.”

유형지의 웃음에 검성은 미간이 찌푸려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왠지 모를 신비한 분위기에 검성은 유형지의 말을 잠시나마 믿었던 것이었다.

“이제 다시 물을게요. 당신은 누구죠?”

“…….”

“검성의 제자라고는 하지 말아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이거, 나를 믿지 못하니 할 말이 없군요.”

검성은 유형지가 자신을 계속 의심을 하는 이상 말을 더 이어 나가 봐야 소용이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아쉽군요. 당신이 속이는 게 없었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유형지의 말에 검성은 다시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내 표정을 푼 채 미소를 보였다.

“저에 대한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군요. 도후께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께서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만나고 싶어 한다고요.”

검성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더는 유형지와 이야기해 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여겼기에 포기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검성이 떠나자 유형지는 한참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모습이 보이지 않자 등을 돌렸다.

“어떤 거 같나요?”

유형지의 말이 허공을 울렸다.

“확실히 수상한 모습입니다.”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사내의 음성이 들렸다. 그의 말에 유형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의도를 알 수 없으나 저 사람이 검성의 제자인지도 의심스러워요. 하지만 미홍의 말처럼 정천검을 가지고 있는 이상 말을 믿을 수밖에 없긴 하네요.”

“일월문에서 보여 준 무공도 초식을 쓴 것이 아니라서 검성의 무공을 배운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파악해 보니 남장을 한 여인과 같이 동행 중인데, 그의 신분도 확실치 않습니다.”

“남장 여인이요?”

유형지는 사내의 대답이 흥미롭다는 듯 표정을 보였다.

“네. 남장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인이었습니다. 은한이라고 하던데, 전혀 신분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재미있군요. 검성의 제자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운 자와 신분을 알 수 없는 남장 여인이라?”

“어떻게 할까요?”

“일단 좀 더 지켜보도록 해요. 저 사람이 천무지회에 등록한 이상 좀 더 서안에 머물 테니, 지켜보기엔 충분하겠죠.”

유형지는 점점 검성에 대한 의심이 커졌고 왠지 모를 불안감도 느끼고 있었다.

“십인회의 전원에게 총동원령을 대비하라고 전해 두고요.”

“네. 대모님.”

유형지의 명에 사내는 대답 후 기척이 사라졌다.

“최악의 경우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유형지는 먼 곳을 응시하며 낮게 읊조렸다. 기대하고 있을 도후에게 어떻게 말을 전할지 걱정되었다.

* * *

“만나 보셨습니까?”

검성이 객잔에 도착하자 은정연과 천통자는 동시에 방에 들이닥쳤다. 두 사람은 검성이 답이 없자 한참을 검성의 등만 바라본 채 기다려야 했다.

“일이 틀어진 듯하죠?”

“그런 거 같은데, 무슨 일이지? 도후라면 검성이 찾는다는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은정연의 말에 천통자는 의아한 듯 이야기했다.

“약속 장소에는 도후의 제자가 나왔더구나.”

“도후의 제자요? 그럼, 십인회의 수장 아닙니까?”

침묵을 깬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화들짝 놀라 물었다. 설마 그렇게 거물이 서안에 와 있을지는 몰랐던 것이었다.

“도후의 제자가 나왔는데 왜 일이 잘못되었습니까?”

“의심이 많은 자더군. 도후가 제자들과 측근의 사람을 잘 두었어.”

검성은 일이 틀어져서 짜증이 나긴 했지만, 유형지나 미홍이 도후의 사람들로서 도후를 걱정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천통자와 유정연은 검성의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기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교환했고, 천통자가 검성을 향해 물었다.

“도후 측에서 검성과의 만남을 거부한 것인가요?”

“결과적으로 그렇지. 정확하게는 나에 대해 의심을 하는 듯하네. 이미 윤후가 검성의 제자라고 알려진 마당에 또 다른 제자인 내가 나타났고, 거기에 도후를 찾는다 하니 상황을 의심하는 듯하더군.”

“음…… 상황이 너무 의심스럽긴 하죠. 그래도 도후라면 검성이 찾는다는 것에 반응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군요.”

“아마 다시 연락이 오겠지. 의심하고 있으니 모든 일을 알아보려 하겠지. 너희에게 관해서도 말이야.”

검성은 천통자와 은정연을 바라보고 이야기했고 천통자는 당연한 순서라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를 조사하거나 벌써 했겠군요.”

“아마도 벌써 했을 가능성이 크지. 그렇기에 더 의심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검성은 도후 측의 의심이 아마 은정연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이 은정연에 대해 조사를 했다면 없는 존재인 은한에 대해 무엇도 알아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더욱 의심을 더 했을 것이었다.

“그래도 가영은 내가 만나고자 한다는 말을 끝까지 모른 척할 수 없을 거야.”

검성의 말에 천통자도 동의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후라면 분명 검성이 살아 있음을 안다면 만나려 할 것이 분명했다.

“일단, 어차피 서안에 머물러야 하니 조용히 기다려야겠지. 이제 자네도 이곳에 드나들 때 조심하도록 해. 저들이 이곳을 감시할 것이 분명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저도 아마 한동안은 일 때문에 자주 찾지 못할 것입니다.”

“너도 일단 천통자와 가도록 해라.”

검성은 은정연을 보고 말했다. 그녀도 이미 자신이 검성에게 머물러 있는 것은 도후와의 만남에 도움이 안 됨을 대화를 통해 알았기에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 저희 쪽 사람들이 검성을 따르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알았다. 그거야 너희들과의 약속이니 어쩔 수가 없지.”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허락했고 허락이 떨어지자 천통자와 은정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혹시나 연락을 취하려거든 은위단을 통해 연락을 주십시오.”

“알았다. 너도 나중에 보자.”

“네…….”

은정연은 검성과 떨어지는 것이 아쉬운 듯 머뭇거렸으나, 결국 천통자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갔다.

그제야 검성은 조용히 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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