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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96화 (96/251)

96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다

“도후 어르신과 대모님을 뵙습니다.”

미홍은 살짝 음성이 떨리며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앞의 여인에게 예를 취했다.

모자의 챙에 면사가 둘리어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왕옥산에서 제자인 유형지와 함께 서안으로 온 도후 유가영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십인회의 현재 수장인 유형지가 있었다.

미홍은 검성과 헤어지고 십인회와 연락을 하기 위해 자신들만 아는 표식을 남겼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십인회의 많은 이들이 서안에 와 있던지라 바로 연락이 닿았다. 하여, 그녀는 현재 이곳으로 불려오게 되었다.

당연히 십인회 회주와 독대하리라 생각했던 미홍은 예상 밖의 인물인 도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자 놀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 여기에 직접…… 오셨습니까?”

“네가 잡혀 있다는 소식도 들었고, 제자가 닦달도 하여 어쩔 수 없이 하산하여 오게 되었구나. 신경 쓰이는 소문이 있기도 했고 말이야.”

“그렇군요…….”

도후가 자신을 위해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었지만, 자신을 언급해 준 것만으로도 미홍은 매우 고마웠다.

꽤 오래 무림맹에 잡혀 있어야 해서 조직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었지만, 도후를 직접 보고 나니 그런 마음도 풀렸다.

“고개를 들고 얼굴을 보여다오.”

도후의 말에 미홍은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도후를 길게 쳐다보지 못한 채 고개를 다시 숙였다.

“잡혀 있었다더니, 꽤 얼굴이 상한 듯하구나?”

“아닙니다. 생각보다는 편하게 있었습니다.”

“그래? 안 그래도 너를 구하러 사람을 보냈는데, 그들이 너를 발견하지 못하고 무림맹의 청룡단과 부딪치기만 했다던데…… 넌 도대체 어떻게 빠져나온 것이냐?”

도후는 유형지와 서안에 도착하자마자 미홍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있는 곳을 수소문했고, 바로 십인회의 무인들을 보내어 그녀를 구출하도록 보내었지만, 그녀는 이미 검성과 탈출한 뒤였기에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다른 이가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누가 너를 구해 주었지?”

도후는 궁금했던 부분이라 바로 물었다.

“검성의 제자라는 사람이 저를 구해 주었습니다.”

“검성의 제자?”

미홍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자 도후는 조금은 놀라 물었다.

“네. 그의 신분이 조금은 의심스러웠으나…… 그가 검성의 신물인 정천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정천검을 가진 자라…… 그의 제자가 확실하겠구나. 그가 왜 너를 구한 것이지?”

도후는 뜬금없이 검성의 제자가 미홍을 구했다는 것에 의심스러웠기에 물었다.

“저도 그것이 이상하여 물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검성께서 도후 님과 다른 오절들을 만나고 싶어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네. 검성의 제자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검성이 오절들을 찾고 있다고. 개방에서 제가 잡혀 있고 도후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구하러 온 것이라 하더군요…… 조금은 의심스럽긴 했지만…….”

미홍은 말을 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직도 자신이 만난 검성의 제자를 확실하게 믿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나를 찾고 있다…….”

도후는 미홍의 말을 듣고 생각에 빠졌다. 미홍은 도후에게 검성이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기에 그녀가 생각에 빠진 동안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검성의 제자를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아올지는 몰랐네. 검성의 제자와 연락할 방법은?”

도후는 생각을 마치고는 미홍을 향해 물었다.

“그가 현재 머무는 객잔을 알려 주었습니다. 도후의 대답을 알려 달라고요. 만나실 겁니까?”

“그가 우릴 찾는다면 만나 봐야지. 하지만 그들은 응하지 않겠지…….”

도후가 말하는 그들은 권왕과 신투를 지칭한다는 것을 미홍은 알았다.

“그래도 검성의 의도가 조금은 의심스러우니 빈틈없이 하심이…….”

“무언가 의심이 가는 구석이 있더냐?”

도후는 미홍이 만류하자 조금은 의아한 듯 물었다.

“네. 저를 구하러 온 것이 도후를 만나기 위함이라고는 했지만, 조금은 이상했습니다.”

“이야기해 보아라.”

“사실 그의 말처럼 검성이 도후 어르신을 만나고 싶어 해 저를 찾아왔다는 것은…… 그냥 보면 이상할 것이 없지만, 제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직감이라는 것이냐?”

“네…… 현재로써는 그가 의심스럽다는 말을 드릴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미홍은 사람을 워낙 많이 대해 본 사람이라 어느 정도 사람을 보는 것과 사람의 행동에서 그 의도를 파악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그가 느낀 검성은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래…… 네 말이라면 무시할 수는 없겠지. 일단 그럼 내가 그를 한번 보고 싶기는 하구나.”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멀리서 한 번 바라보기만 할 생각이다. 어차피 검성의 제자가 머물고 있다는 객잔도 알지 않느냐?”

도후는 검성의 제자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기에 미홍의 만류에도 먼발치에서나마 한번 보고 싶었다.

“제가 먼저 만나 보는 것이 어떤가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유형지가 나서자, 도후와 미홍이 동시에 그녀를 보았다.

“검성 제자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할 수가 없으니, 제가 먼저 만나 그를 판단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궁금하기도 하고요. 검성의 제자가 둘이나 무림에 나타나 오절을 찾는 것이 조금은 수상하고요.”

유형지는 미홍과 마찬가지로 검성의 제자가 다른 의도가 있을 것으라 판단했다. 미홍의 말도 그렇고, 갑자기 미홍을 구하면서까지 도후를 만나려 한 것은 지나치다 생각했다.

“그럼, 네가 만나 보겠느냐?”

도후는 유형지까지 검성의 제자를 경계하자 더는 나설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 검성의 제자를 통해 검성과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막상 그러기에는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그 사람이 무림을 떠나 사라진 지도 오십여 년……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 우리를 찾는다는 것은 이상하긴 해…….’

도후도 검성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조금은 의아하다고 느끼고는 있었기에 유형지와 미홍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럼, 제가 검성의 제자에게 연락을 해 두겠습니다.”

“아니다. 무림맹에서 너를 놓친 것을 알고 찾고 있을 것이니, 넌 본산에 돌아가 있도록 해라.”

“그렇지만…….”

“내 말을 따르도록 해라. 안 그래도 십인회에서 네가 고립당한 것은 내 탓이 아니냐? 이렇게 네가 위험한 지경에까지 빠지게 되니, 내 마음이 무겁구나.”

“알겠습니다…….”

미홍은 도후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여 이야기하자 그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말처럼, 도후가 미홍을 아끼어 총애했기에, 다른 십인회 가신들을 그녀를 심히 질투해 왔다.

그렇기에 미홍은 도후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다른 가신들에게 철저하게 배척당해야 했고, 무림맹에 잡혀 있는 순간에도 대모인 유형지와 도후에게 소식이 늦게 들어간 것이었다.

“형지야.”

“네.”

“검성의 제자를 만나 보고 정확한 그의 뜻을 알아보도록 해라.”

도후는 유형지에게 말을 하고는 자리에 앉은 채 두 눈을 감고 생각에 빠졌다.

그녀가 생각에 빠지면 꽤 오래 명상에 빠지는 터라 유형지와 미홍은 그대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 * *

무림맹 맹주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했기에 미홍을 놓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냐?!”

우금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의 앞에 부복한 청룡단주인 청룡은 고개를 숙인 채 들지 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알 수 없는 자들이 저희의 거처를 어떻게 알고 찾은 것인지…….”

“아직 누구인지도 파악 못 한 것이냐?”

“아마도…… 미홍이 몸담은 세력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컥…….”

쿠당탕―

청룡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우금의 발길질이 날아왔고 그대로 채인 채 바닥을 뒹굴었다.

“네놈 미홍을 가까이하는 것을 참아 주었건만, 이따위로 실망하게 하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우금의 말에 청룡은 고개를 조아렸다.

“미홍의 조직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녀를 놓친 것이 얼마나 큰 실태인지는 아느냐?”

“…….”

청룡은 우금의 화에 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의 말처럼 미홍을 사로잡아 그녀에게서 알아내야 할 것이 정말로 많았는데, 그는 미홍의 미색과 몸에 취해 전혀 알아내지 못한 데다 놓치기까지 한 것이었다.

“어떤 처벌이라도 받겠습니다.”

“너를 죽여 이 일이 되돌려진다면 백 번이라도 죽이겠다만, 그것은 아니지. 당장 미홍을 찾아라.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들의 정체를 알아낼 길이 사라진다.”

“알겠습니다.”

“현무단의 도움을 받도록 해라. 현무단주에게 말을 해 두었으니 만나 보아라.”

“네. 반드시 그년을 찾아오겠습니다.”

청룡은 고개를 들어 답했다. 오랜 수련을 하며 처음 정을 준 여인이라 지나치게 의존했던 만큼, 그녀에게 큰 원망감이 들었다.

* * *

청룡이 물러가자, 우금은 자신의 자리에 앉은 채 정면을 응시했다.

“이제 나오는 것이 어떠신가?”

우금은 말이 마치자마자 그의 앞에 아지랑이 피듯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누군가 나타났다.

“끌끌. 나의 기척을 느끼다니, 네놈도 제법이구나. 처음에는 기겁하더니 말이야.”

우금의 앞에 나타난 이는 사왕련에서 환노(幻老)라 불리던 백여 년 전의 대마두, 환영신마였다.

“벌써 돌아온 것이요?”

우금은 환영신마의 출현에 놀라지 않은 채 눈을 거슴츠레 뜨며 그를 향해 물었다. 그런 우금의 태도에 환영신마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으나 자리가 무림맹이니만큼 내색치 않았다.

“너의 말을 독고진에게 전했다. 사왕련도 이제 곧 사파의 통합을 마무리하겠다고 하더군.”

“그쪽은 일의 진행이 빠른 모양이군요.”

“그럴 수밖에 없지. 독고진의 힘이라기보다는 수라마검과 흑룡창제라는 좋은 수족들이 있는 덕이지. 그의 사부였던 흑월도존의 힘이기도 하고 말이야.”

환영신마는 말을 꺼내고는 우금의 반응을 살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우금은 흑월도존의 이름이 나오자 표정이 굳어졌다.

“아직도 흑월도존의 이름을 듣는 것이 거북한가 보지?”

환영신마는 그런 우금의 반응이 재미있는 듯 웃으며 물었고, 반대로 우금은 여전히 표정을 굳힌 채 환영신마를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떻게 보면 그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것이 좋을지 모르지. 자신의 친우라고 믿었던 자네와 아끼며 키웠던 대제자가 자신을 배신한 것을 모르는 채 말이야.”

“무슨 소리요? 유상휘 그자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인가? 지금?”

우금이 환영신마의 말에 놀라 벌떡 일어나 물었다. 환영신마는 그 모습에 크게 웃었다.

“대답하시오.”

“설마 자네, 독고진이 흑월도존을 죽일 것으로 생각한 것인가?”

“그럼……?”

“그가 아무리 자네와 손을 잡았다 하나, 어릴 적 자신을 구해 주고 키워 준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흑월도존을 죽일 수 있을 리가 있나. 흑월도존은 현재 약에 취해 깊게 잠든 상태로 사왕련의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지.”

“말도 안 되는…… 나중에 그가 깨어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하려고…….”

“끌끌~ 재미있군. 재미있어~ 자네의 반응을 보니 나중에 내가 일부러라도 깨워야겠어.”

스스스―

파밧―!

우금은 환영신마의 말에 참지 못하고 진기를 끌어 올려 환영신마의 전신을 압박하려 했다.

순간, 환영신마의 몸이 우금이 발산한 기운에 마치 압살당해 터지는 듯 보였으나, 이내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자네를 놀리는 것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나를 상대로 위협을 가한 것도 뭐, 내가 자네를 놀린 것이니 이해할 거야. 하지만 다음은 용서가 없을 것일세.

사라진 환영신마의 전음이 우금의 귓가로 들려왔고, 순간 환영신마의 별호답게 환영처럼 사라져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유상휘가 살아 있다니…… 그를 처리해야 한다.”

우금은 낮게 읊조리고는 이를 갈았고, 사라져 버린 환영신마의 자리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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