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구출(救出)(2)
“미홍이 잡혀 있는 곳은 서안의 외곽에 장안당(長雁堂)이라 불리는 곳인 듯합니다.”
“장안당? 거긴 어디지?”
“서안의 외곽 중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꽤 큰 저택이 있습니다. 거기를 사람들은 장안당이라고 부르더군요. 청룡단의 흔적을 찾기 위해 서안을 뒤지고 다녔는데, 의심스러운 제보가 있어서 장안당을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청룡단의 인물들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천통자는 막상 서안에 도착해 비천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검성의 일을 도와야 했기에 미홍의 흔적을 계속 찾았으나 실마리가 잡히지 않자 꽤 신경이 쓰였었다. 하지만 비천에서 데려온 은위단을 모두 동원하여 서안을 뒤지니 결국은 실마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미홍과 청룡단의 흔적을 찾으면서 안 사실이지만 자신들 말고도 그녀를 찾고 있는 곳이 있음을 천통자는 알았고, 그곳이 도후의 세력임을 눈치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는 검성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청룡단의 거처가 무림맹 내에 없지만, 서안을 벗어난 곳에 그들의 거처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기에 서안을 쥐 잡듯이 뒤졌는데, 정말 외곽에 있더군요.”
“그곳에 미홍이라는 여인이 있는 것은 확인해 보았고?”
“네. 그런데…….”
“그런데?”
“조금은 이상하더군요. 미홍이 갇혀 있다고 하기보다는…… 꽤 큰 방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머물고 있다? 구속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통자의 말에 검성의 의아한 듯 물었다.
“네. 저도 듣고는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 전혀 금제나 구속을 당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녀를 감시하는 자들이 꽤 많아서 도망갈 엄두를 못 낼 만도 하지만요.”
천통자도 보고를 듣고 이상하다 여겼지만, 그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미홍은 청룡단의 단주로 보이는 인물과 끈적한 관계를 즐기고 있었고, 그것을 빌미로 잡혀 있는 몸이었지만 꽤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천통자는 이것도 검성에게는 말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만나 보실 겁니까?”
“그래야지. 도후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여인이니까 말이야.”
천통자의 물음에 검성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답했다. 어차피 서안으로 온 이유가 미홍을 만나 보기 위함이었다. 현재 신투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는 지금에서는 도후와 연이 닿은 미홍을 만나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장안당에는 몇 명의 청룡단이 있지?”
“청룡단은 단주를 제외하고 7명이 있는 듯합니다. 청룡 칠숙(七宿)을 가리키는 각(角), 항(亢), 저(氐), 방(房), 심(心), 미(尾), 기(箕)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장안당에 머물고 있습니다.”
“위치를 알려다오.”
검성은 마음을 먹은 듯 천통자에게 물었고, 천통자는 검성이 그렇게 나올 것을 알았다는 듯이 품에서 약도가 그려진 종이를 내밀었다.
“아무리 검성이라고 하셔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무슨 함정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천통자는 현재 무림에 검성을 당해 낼 자가 없음을 알았지만 자신이 말하지 않은 변수가 있었기에 당부를 건네는 말이었다.
도후 측에서도 분명 장안당에 자신들이 찾고 있는 미홍이 있음을 알았을 게 분명했고, 그렇게 되면 검성과 맞닥뜨릴 가능성도 있었다.
천통자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었고, 검성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기도 했다.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군.’
검성은 대화하는 내내 천통자가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무엇을 숨기는 것이든 별 상관이 없었기에 모른 척하고는 있었지만, 무엇인지는 궁금하긴 했다.
검성은 천통자가 내민 약도를 눈으로 확인하고는 품 안에 갈무리했다.
“따라가면 안 되겠죠?”
천통자는 살짝 눈치를 보며 물었다.
“따라와서 앞장서겠다면 말리지 않으마.”
“그럼, 전 가만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듣고 있던 은정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나 해서 말한다만, 날 따라오는 것은 막지 않겠다. 하나, 거슬리는 행동을 한다면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
“설마 저희가 검성의 일에 거슬리게 할 일이 있나요? 조용히 보게만 해 주신다면 절대 눈에 띄지 않겠습니다.”
천통자는 검성이 따라오지도 못하게 할까 봐 걱정했는데, 지켜보는 것을 허락하자 냉큼 말했다.
“그럼, 떠나는 것은 자시가 지난 시각으로 하지. 알아서 따라오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답하며 은정연과 눈을 마주쳤고 두 사람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이야기를 하러 방을 옮겼으나 검성은 상관하지 않았다.
* * *
어둠이 깔리고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시각이 되자, 거리는 조용해졌다.
검성은 어둠을 뚫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 달라고 이야기한 검은 복장에 이번엔 두건까지 뒤집어써 완벽하게 얼굴까지 가리고 있었다.
“잘 따라오는군.”
검성은 자신의 뒤를 은밀하게 따르는 인영들을 확인하고는 낮게 읊조렸다. 비천의 인물들임을 알았기에 따라오는 것을 따돌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보다 더 갈 곳의 위치를 잘 알 테니 따돌릴 이유가 없었다.
꽤 오랜 시간 달려 천통자가 알려 준 서안의 외곽에 도착했다. 큰 건물이 즐비했던 서안의 중심가와는 다르게 허름하고 볼품없는 집들이 가득했으나, 그 사이 우뚝 솟아 눈에 띄는 저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로군.”
검성은 달리던 속도를 늦추고는 눈앞에 보이는 저택을 바라보았다. 저곳이 천통자가 이야기하던 장안당이 분명해 보였다.
검성은 숨을 한 차례 고르고는 저택 안으로 몸을 날렸다. 기척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신속하게 움직였다.
‘수는 고작 여섯 명…… 커다란 저택에 식솔들도 없는 듯하군.’
검성이 느끼는 기척은 여섯 명에 불과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큰 저택에 느껴지는 기운이라곤 여섯 명이었는데, 모두 상승 무공을 익힌 자들이었기에 천통자가 말하던 청룡단의 칠숙 들일 거라 판단했다.
검성은 전부 흩어져 있는 기척들 사이로, 두 명이 모여 있는 장소를 찾아 움직였다.
담을 넘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방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가 있었다.
“하앙…… 좀 더…….”
방 사이로 남녀의 교성(嬌聲)이 새어 나왔다. 안이 보지 않아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할 수가 있었다.
“미홍…….”
검성은 미홍이라는 이름이 안에서 들리자 안에 있는 여인이 미홍임을 알 수가 있었다.
일단은 몸을 숨기고 안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
‘이거…… 미홍이 청룡단에 전혀 금제를 당하지 않고 잡혀 있는 이유가 이거였나?’
천통자에게서 미홍이 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뇌옥이 아닌 집 안에 가만히 잡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상하다 여겼다. 혹시나 하고 짐작은 가지고 있었으나, 정말일 줄은 몰랐다.
‘잡혀 있는 몸이니 어쩔 수가 없었겠지.’
검성은 자신의 기운을 갈무리하며 이후 일들을 냉정하게 계획했다. 먼저는 미홍을 잡고 청룡단에게서 정보를…….
“떠나실 건가요?”
소리가 들렸다. 미홍이 이불을 감싸며 사내에게 묻고 있었다. 미홍과 사내는 생각보다도 관계가 깊어 보였다.
“맹주께서 부르셔서 가 봐야 합니다. 최근 서안에 워낙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지시가 많으셔서요.”
청룡은 옷을 챙겨 입고 침상에 앉아 있는 미홍에게 다가가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다시 일어났다.
미홍도 청룡이 떠나는 것은 아쉬웠으나, 어쩔 수가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더는 붙잡지 않았다.
청룡이 방을 나서고, 미홍은 한참 침상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창문을 열었다.
달빛이 창으로 들어오자 미홍은 한참을 밖을 바라보다 방 안을 돌아보려던 순간, 자신의 뒤에 누군가 서 있음을 인식하고는 고개를 멈추었다.
“누구시죠?”
미홍은 자신의 등 뒤의 기척에 놀랐으나 담담하게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꽤 침착하군요.”
미홍의 뒤를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검성이었다. 미홍이 침착한 모습을 보이자 보통 여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얇은 나의를 입고 있는 탓에 풍만한 그녀의 몸매가 검성의 눈에 적나라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마치 유혹하려는 듯 돌아 있어도 엉덩이를 실룩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검성은 그저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나를 해치려고 했다면 이미 그전에 했겠죠? 침착해야 그쪽의 의도라도 알 수 있으니 억지로라도 침착해야죠.”
미홍의 말에 검성은 확실히 그녀에 관한 판단을 다시하고 있었다.
“돌아봐도 되겠죠?”
미홍은 말하고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아……!”
미홍은 검성을 마주 보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눈빛을 마주친 것만으로 가슴이 동하는 것을 느꼈다.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지는 눈빛이네요. 이곳에 복면을 쓰고 여기까지 잠입하는 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미홍은 일단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검성이 자신의 조직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살피기 시작했다. 일단 당장 자신을 죽일 의도가 없음을 알았지만 조심해야 했다.
‘맹주의 사람인가? 아니면…….’
미홍은 자신과 청룡이 이렇게 어울리는 것을 무림맹주 우금이 탐탁지 않아한다는 것을 들었기에 맹주 쪽에서 보낸 자객이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아닌 듯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꽤 먼 곳에서 왔으니, 일단 옷이나 제대로 입으시죠?”
미홍이 얇은 나의만을 걸치고 있는 탓에 큰 가슴과 중심부가 적나라하게 눈에 보이고 있었다.
미홍을 보며 딱히 음심이 동하지는 않았지만 보기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다.
“호호~ 눈빛이나 목소리는 꽤 젊어 보이는데, 이런 눈요기를 마다하는 것을 보니 남자가 아닌 건…… 헉!”
미홍은 슬쩍 말하며 검성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그녀의 목에 닿은 검에 의해 물러나야 했다.
“몇 번씩 이야기하게 하지 말기를 바라오. 참는 것은 이번 한 번뿐이오.”
검성은 살짝 목소리에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미홍이 꽤 여유롭게 현재 상황을 살피고 있자 확실한 위협을 한 것이었다.
미홍도 검성이 어린 것을 판단하고 자신이 상황을 주도하려 하다가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미홍은 한쪽에 벗어 던진 자신의 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 검성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고 있자 일부러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며 도발하기까지 했으나 검성은 그에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죽은 사내도 유혹할 정도로 매혹술을 쓰고 있건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니…….’
미홍은 검성과 눈을 마주한 순간부터 계속 자신이 익힌 매혹술을 쓰고 있었지만, 검성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었다.
향기와 눈빛, 행동 모두 사용했지만 검성은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의 매혹술에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걸 보니 심력과 내공이 모두 심후한 게 분명했다.
“됐나요?”
옷을 챙겨 입은 미홍은 검성 앞에 보란 듯이 섰고, 검성은 그제야 뽑았던 검을 다시 거두었다.
“탈출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검성은 미홍의 의도가 궁금했다. 무공을 쓰지 못하도록 한 금제도 전혀 없어 보였고, 주위를 감시하는 인원도 없었다.
미홍이 있는 곳과 거리를 둔 채 사람들이 감시하고 있었고, 꽤 미홍을 배려해 주는 듯 해 보였기에 그녀가 이곳을 나갈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당신의 의도를 모르는데, 내가 섣불리 따라가기는 어렵네요. 차라리 이곳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미홍은 복면을 쓴 검성을 믿을 수가 없었기에 당연한 말이었다. 차라리 이곳에 잡혀 있는 것이 안전했고, 자신의 조직이 구하러 올 때까지는 여기 있는 편이 그녀에게는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