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무당파(武當派)
무당산(武當山).
도가의 사대 명산 중 하나로, 호북성에 위치하며 무림인들과 일반객들이 많은 방문을 하는 곳이었다. 무림인들의 출입이 많은 이유는 바로 무당산에 존재하는 무당파(武當派)의 존재 때문이었다.
현재 무당산은 엄청난 공사로 분주했다. 영락제(永樂帝)가 자신의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을 두고 무당은 하늘의 뜻이라고 천명하며, 현 황제가 진무대제(眞武大帝)의 도움을 받았다고까지 했다.
그 덕에 무당파는 현재 황제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무당파의 건물들은 엄청난 공사 인원이 투입되며 새로 지어지고 있었다. 도관마다 영락제가 진무대제의 신상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영락제는 무당파에 새로운 도관과 공사를 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인근의 영토 이백칠십칠 경을 하사하기까지 했다.
북경으로 천도하기 위해 새로운 궁이 지어지는 와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지원인 셈이었다.
“장문인.”
도관의 공사를 지켜보고 있던 무당파의 장문인 현양진인의 곁으로 다급하게 한 도인이 달려왔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급하게 달려오느냐?”
현양진인은 길게 늘어진 자신의 수염을 어루만지며 달려온 이에게 물었다.
“현월자가 돌아왔습니다. 장문인을 뵙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오호, 그가 돌아왔는가?”
현양진인은 반가운 듯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졌다.
“그는 어디에 있느냐?”
“현재 자소전(紫宵殿)에 있습니다.”
“내가 직접 그리로 가지.”
현양진인은 직접 움직여 자소전으로 향했다. 그의 빠른 행동에 보고하던 도인이 당황하였다.
어느새 현양진인은 사라진 뒤였고, 남은 도인은 머리를 긁적이며 자기 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 * *
자소전.
먼저 건축이 완료된 자소전을 살피던 현월자는 진무대제의 상에 시선을 머무르다 누군가 다가옴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하하, 이군(李君). 어찌하여 이제야 돌아왔는가?”
자신의 어릴 때 본명을 부르며 다가오는 이는 무당파의 장문인 현양진인이었다.
그의 큰 소리에 현월자는 어울리지 않게 미소를 보였다. 다른 무당의 도인들이 보았다면 현월자가 웃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을 것이었다.
원체 표정이 없고 과묵했던 현월자가 유일하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 장문인인 현양진인 앞이었다. 어릴 적부터 현양진인의 보살핌을 받고 의지했던 현월자이기에 무당 최고수라는 평가를 받는 지금에도 현양진인 앞에서는 어린 동생과도 같았다.
“장문인, 왜 그리 뛰어오십니까?”
현월자는 다가오는 현양진인에게 다가가 예를 취했다.
“왜 뛰어오다니, 자네가 오랜만에 왔다기에 달려왔지. 자네가 근래 무당을 떠나 수행을 한답시고 얼굴을 보여 주지 않으니 내가 달려올 수밖에 있나.”
현양진인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자신을 반겨 주자 현월자는 기쁜 듯 표정을 보였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왜 돌아온 것이지? 이 근처를 지나던 중이었나?”
현양진인은 현월자가 무림과 새외를 돌며 수행 중이었기에 갑자기 무당에 돌아온 것을 이상하게 여기긴 했다.
“보고를 드릴 것이 있었습니다.”
“보고? 서신을 보내면 될 것을…… 찾아온 것을 보니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겠지?”
현양진인은 현월자가 진중하니 말을 꺼내자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검성의 제자를 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라면 나도 들었지. 두 명이라던데?”
현양진인도 이미 검성의 제자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무당은 검성과 가장 관련이 많은 일파였기에 현양진인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이는 스물이 넘어 보였는데, 보통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현양진인은 현월자의 말에 놀라 그를 보았다. 자신이 아는 현월자는 남에 대한 평가가 박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모든 기준이 그 자신이었기 때문에 현양진인이 놀란 것이었다.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궁금하긴 하군. 더 말해 보게.”
현양진인의 물음에 현월자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태원에 머물던 중에 일월문에 검성의 제자가 도전했다기에 지켜봤습니다. 일월문의 소문주를 단 일 합에 가볍게 제압하더군요.”
“나도 그 소식은 들었지. 천풍 공자가 일 합에 혼절을 했다는 말을 들었어.”
“네. 그 짧은 비무에서 보여 준 검성 제자의 기도는 마치 백전연마(百戰鍊磨)의 노장과도 같은 느낌이더군요.”
현월자의 말에 현양진인은 더욱 놀라며 그를 보았다. 말하고 있는 현월자가 제법 얼굴에 홍조를 띠며 흥분하고 있었다.
“설마…… 자네가 겨루고 싶을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것인가?”
“…….”
현월자는 설마 하며 물었다. 자신의 사제인 현월자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관심을 가지거나 흥미가 생기면 얼굴이 붉어진 채 눈을 반짝였는데, 검성의 제자에 대해 말하는 다 늙은 현월자가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이야?”
현양진인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보이며 다시 물었다. 답을 못 하는 현월자의 모습이 재미있었던 탓이었다. 무당의 무공을 익히고 최고의 고수로 평가받는 현월자는 무공의 갈증을 느껴 현재 새외를 돌아다니며 전국을 돌고 있었는데, 그런 그가 새파란 젊은 검성의 제자에게 호승심을 느낀다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이거 정말 놀랍군. 자네의 이런 모습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니 말이야.”
현양진인은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나도 한번 보고 싶군. 이거 무림맹의 회의에 불참하기로 했는데, 내가 가야겠는걸.”
“무림맹 회의요? 거긴 뭐 하시려고요?”
“자네, 모르는가? 무림맹의 천무지회에 오절의 제자들이 나온다는 소문에 현재 무림이 꽤 시끄러운데 말이야.”
“정말입니까?”
현월자가 관심을 가지고 묻자 현양진인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서안에 가 볼 텐가?”
“서안에 제가요?”
“그래. 난 무림맹의 회의에 가지 않고 다른 이를 보내려 했는데, 자네가 관심이 있다면 대신 가 보게. 가는 김에 자네가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검성의 제자도 다시 확인해 보고 말이야.”
현양진인은 제안을 해 놓고는 고민하는 현월자를 지켜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당파의 회의에도 귀찮다고 참석도 잘 안 하는 현월자가 무림맹의 회의에 대신 가는 것을 고민하는 상황 자체가 현양진인에게는 재미있었다.
“자네가 가는 것으로 알고 서안에 가는 사람을 뽑지 않겠네.”
현양진인이 고민하는 현월자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가죠.”
“그래. 그럼 사람을 몇 명 붙여 줄까? 무당에서도 천무지회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는 아이들이 있으니 자네가 데리고 가게.”
현양진인의 말에 순간 현월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터라 제자도 만들지 않고 사람과 어울리지도 않았던 현월자였기에 누구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은 정말 싫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장문인의 대리로 가는 것에 무당파의 인물들을 데려가는 일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자소전을 둘러보니 어떠한가?”
현양진인은 자소전 내부를 보며 현월자에게 말을 건네었다.
“훌륭하군요. 제가 무당을 떠난 지 꽤 지났는데 많이 바뀌었어요.”
현월자의 말에 현양진인이 빙긋 웃으며 그의 어깨를 쳤다.
“당금 황제께서 무당에 엄청난 지원을 해 주고 있다네. 다른 문파들은 이것을 엄청나게 부러워하고 있지. 무당의 위세를 더욱더 떨칠 수 있을 거야.”
현양진인은 제법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무당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었다. 영락제가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서 진무대제의 이름을 빌려 도움을 받아 무당에 그것을 돌려준다는 이야기로 무당에 지원하고 있었는데, 굳이 무당으로서는 그 지원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엄청난 토지와 현재 지어진 궁들과 대전 그리고 아직도 공사 중인 것들이 무당의 힘이 될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황제를 믿지 마십시오. 그는 자신의 허물을 진무대제의 이름으로 가리려고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현월자는 황제가 보내 준 지원들을 마땅치 않아 했고, 변화하는 무당도 마음이 들지 않았기에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현양진인도 그런 현월자의 마음을 알았기에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도록 하지. 안 그래도 자네처럼 반대하는 사람이 꽤 있어서 말이야.”
현양진인은 혹시나 현월자의 이야기를 누가 들었을까 봐 주위를 살폈다. 그의 말처럼 조카를 죽이고 황위에 앉은 황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무당파의 인원들도 꽤 있었다. 그렇기에 공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도 말이 많았다.
“언제 떠날 생각인가?”
“괜찮다면 당장 떠나려고 합니다.”
“당장? 이거 나와 차도 한잔하지 않고 가려는 건가?”
현양진인은 아쉬운 듯 말했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사제를 이렇게라도 잡아 두지 않는다면 또 몇 년 뒤에나 볼지 몰랐다.
“어차피 자네가 데려가야 할 아이들도 준비해야 하니 출발은 내일 해야 할 거야.”
“그런가요?”
현월자도 현양진인의 말에 더는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 그러니 오늘은 나와 식사도 하고 차도 한잔하며 자네가 돌아다닌 이야기 좀 들어 보지. 아니면 공사 중인 곳을 나와 함께 돌아보러 갈 텐가?”
“그건…… 싫습니다. 그냥 차를 하도록 하죠.”
“그런데 자네. 보고할 것이 검성의 제자에 관한 것뿐인가?”
현양진인은 현월자가 설마 이것을 말하러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물었다.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현월자도 사실 검성 제자의 이야기를 하다 깜박했으나 현양진인의 이야기에 생각해 내었다. 말을 꺼내려던 현월자의 표정이 다시 무표정하게 변했다.
“불마사(佛魔寺)의 행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들이 움직이고 있던가?”
현월자의 이야기에 현양진인도 장난기 있던 표정이 사라진 채 물었다.
“네. 이번에 서장에 다녀왔는데 그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군요. 근래 전혀 미동도 없던 그들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현월자의 말에 현양진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불마사의 이름이 주는 의미 때문이었다.
불마사는 사패 중 한 곳으로, 불마사라는 절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불교적인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악하다 여겼으며, 이들을 갱생하려면 죽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이념을 추구하는 집단이었다.
불마사가 무림을 침공했을 때, 그 당시 무림은 피에 얼룩져야 했다. 그들의 광오하고 압도적인 힘 앞에 무림은 속수무책이었다. 스스로 활불(活佛)이라고 말하던 인물에 의해 무림은 풍비박산이 났었다.
하지만 난세에 영웅이 나는 법이라고, 무당의 선인이 나타나 불마사를 몰아내었고, 그 일로 무림은 다시금 평화를 찾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불마사로 인해 무림은 크나큰 피해를 보았고 복구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했었다.
“제가 정말 위험하다고 느낀 소문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현양진인이 묻자 현월자는 살짝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활불이 재림했다는 소문이 서장에 파다하게 돌고 있었습니다.”
“뭣이라?!”
현월자의 말에 현양진인은 놀라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 그만큼 놀라운 말이었다.
“저도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소문을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갑자기 불마사가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과 활불의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이…… 갈라진 불마사의 세력을 규합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군…….”
현양진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소문일 뿐이지만 불마사의 활불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이 사실이면 무림에 큰 위기였다.
다행히 이전 무림을 침공했던 불마사 역시 피해가 컸기에 현재는 강력함을 많이 잃은 상태였다. 게다가 무당의 선인이 나서 그들을 토벌하기까지 하여 불마사가 몇 개의 세력으로 갈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활불이 나타났다면, 활불이 흩어진 불마사를 규합해 무림으로 침공하는 건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자네, 무림맹에 가거든 반드시 이 소식을 모두에게 전하도록 해. 나도 소문을 파악하고 준비를 할 테니까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현양진인은 마음이 무거워진 채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그 당시 자신이 겪은 일은 아니었지만, 불마사의 혈겁이 무림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 기록을 통해 알고 있었다.
“다시 그들이 움직이도록 해서는 절대로…….”
현양진인은 낮게 읊조렸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는 현월자를 보고는 웃었다.
“일단 내 거처로 가지. 식사 전에 차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더 나눔세.”
현양진인과 현월자는 자소전을 그렇게 떠났다.
심각했던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이내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