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망자재배(芒刺在背)(1)
약선의 거처에 여러 사람이 어색하게 서로 눈치를 보며 있었고, 그들 중에는 이윤후와 은정연 그리고 서문세가의 여인들이 있었다.
은정연은 살짝 삐진 듯 표정을 보였는데, 검성이 자신을 화산 아래 대기하라고 시켜 놓고는 이윤후를 만나러 갔다가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탓에 한참을 화산 아래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곳에 와 있었다.
이윤후는 은정연도 모르는 사람이었고 서문세가의 여인들도 누구인지 몰랐기에 어색하게 서 있었다.
스승인 검성 역시 도착하자마자 약선에게 집 안으로 불려 갔기에, 나머지 사람 모두는 밖에서 어색히 모여 있는 상황이었다.
“오빠는 누구예요?”
서문효인이 똘망똘망한 눈을 깜박이며 이윤후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그녀로서는 서문세가 밖으로 나온 적이 없었기에 만나는 모두를 신기해했다.
서문세가의 여인들은 약선에게서 검성의 진짜 정체를 듣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이 검성의 제자라고 소개받았기에 서문효인이 이윤후에게 다가가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세문세가의 여인들도 이번에 무림에서 파란을 일으켰다는 검성의 제자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기에, 서문효인이 차라리 뭔가를 물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 아가씨는 누구인가요? 남에 관해 물을 때는 자신의 소개가 먼저지요?”
이윤후는 다가와 묻는 서문효인이 귀여웠기에 다정하게 물었다. 이윤후의 물음에 서문효인은 자신에 대해 말해도 되는지 뒤의 서문세가 여인들을 바라보았고,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이윤후를 보고 작고 앙증맞은 두 손을 펴 보았다.
“이름은 서문효인이고, 열 살이에요.”
서문효인의 모습에 이윤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무림인이었다면 서문씨라는 사실에 놀랐겠지만 이윤후는 문외한에 가까웠다.
“이제 오빠도 누군지 알려 주세요.”
“난 백학서원의 원장이신 이화운의 차남, 이윤후라고 해. 검성의 제자이기도 하고 말이야.”
이윤후는 검성의 제자라고만 말해도 되지만, 굳이 자신의 신분을 밝혀 주었다.
은정연은 이미 검성의 제자인 이윤후가 이화운의 차남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놀라지 않았지만, 서문세가의 여인 중 이화운이라는 이름을 알고는 놀라는 이도 있었다.
대학자로서 명성이 높았던 이윤후의 아버지인지라, 무림인들도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자가 있었고 서문세가처럼 문무 모두 관심이 많은 가문의 사람들이라면 더욱 이화운의 이름을 알 만했다.
“검성의 제자?”
서문효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아가씨, 아가씨의 할머니이신 서문애령님과 같이 무림에서는 오절로 명성이 드높으신 분이세요. 대단한 분의 제자분이시랍니다.”
서문세가의 여인 중 한 명이 서문효인에게 다가와 말해 주었고, 서문효인이 방긋 웃음을 보였다.
그때, 모옥 안의 문이 열리며 검성과 약선이 밖으로 나왔다. 모두 시선을 그리로 집중하였다.
“너희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약선은 서문세가의 여인 중 수장으로 보이는 여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안 그래도 인사를 드리고 떠나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약선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갖추어 말했다. 이미 서문효인에 대한 진료는 끝이 나고 처방을 받은 상황이었고, 작은 모옥에 전부 묵을 수도 없었기에 산 아래 객잔에 내려가 하루 머물고 서문세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래. 다음번에는 내가 세가로 찾겠다고 가주에게 전해다오.”
“네. 안 그래도 가주께서 많이 서운해하셨습니다. 꼭 전하겠습니다.”
현 서문세가의 가주인 서문환은 세가 외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약선을 위하고 아꼈는데, 서문환이 꽤 나이 차가 큰 동생이었지만 약선이 조용한 성격이고 검성에게 많이 휘둘려 살았던지라 서문환이 일일이 챙기고 그녀를 위하며 살았다.
원래 서문세가의 가주도 원래는 약선의 자리였으나 약선은 서문환이 세가를 생각하고 희생하는 마음을 알았기에 가주의 자리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야인으로서 살았던 것이었다.
그런 약선의 마음을 알았기에 서문환은 약선에게 늘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아왔고, 자신의 누님을 오랜 세월 마음고생시킨 검성에게 큰 반감을 품고 있었다.
서문세가의 사람들도 서문환이 검성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개인감정일 뿐 검성의 명성이 무림에 미치는 힘이 거대한 점을 알기에 서문세가의 여인들도 검성이나 이윤후에게 딱히 반감을 품고 있지 않았다.
“안녕히 계세요, 할머님.”
“그래, 또 보자꾸나.”
서문효인은 아쉬워했지만, 서문세가의 여인들이 데리고 떠나갔다.
* * *
그녀들이 떠나자 약선은 검성과 이윤후 그리고 은정연에게 눈길을 돌렸다.
“식사라고 해 봐야 간단한 고기죽과 몇 가지 정도지만, 안으로 들어가지요.”
약선은 말하고는 먼저 모옥 안으로 향했다. 이에 검성이 뒤따르자 이윤후와 은정연은 어색하게 눈치를 보며 따라갔다.
가장 이 자리가 불편했던 것은 은정연이었는데, 약선이 알게 모르게 자신을 신경 쓰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기에 때문이었다.
모옥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투박한 그릇에 채워진 고기죽에 반찬들이 식탁으로 쓰는 탁자에 놓여 있었다.
이윤후와 은정연이 빈자리에 앉자, 네 사람은 허기진 배를 조용히 채우기 시작했다.
찾아온 서문세가의 사람들 탓에 모두 식사를 하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고, 서문효인도 진료를 받아야 했던 데다 검성과 약선이 또 이야기 나누는 시간까지 해서 이미 저녁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애령, 이 아이의 수련을 꽤 잘 도와주고 있던데 고맙소.”
검성이 자신의 옆에 앉아 식사하는 이윤후의 등을 치며 약선에게 말했고, 그의 말에 약선은 살짝 미소를 보였다.
“뭘요. 저도 제자가 없다 보니 윤후에게 조금은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당신의 제자이기도 하고요.”
약선은 최근에 개발한 단약을 이윤후에게 먹이고 있었다. 그 덕에 이윤후는 부족했던 내공을 많이 채워가고 있었다.
원래 영약이나 단약으로 인해 내공을 얻을 때 모든 효능을 보기가 어려운데, 이윤후는 오행의 개방 덕에 영약과 단약의 효능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었다.
거기에 약선이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 주다 보니 동굴에서의 수련 생활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윤후가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하고 수련에만 집중하여 비약적으로 실력이 향상할 수가 있었다.
“약선 어르신의 배려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검성의 말에 이윤후도 이 자리를 빌어 약선에게 감사를 표했고, 그 모습에 약선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이윤후는 검성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마음을 주며 키워 내는 자신의 제자와 같은 마음이 약선에게는 있었다.
“너에게는 내가 빚을 진 셈이니 괜찮다.”
“빚이요?”
약선의 말뜻을 알지 못해 되물은 이윤후는 약선이 검성을 바라보고 있자, 그녀의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가 있었다.
약선으로서는 자신의 욕심과 거짓말로 인해 검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가 오랜 시간 그를 찾아 헤매야 했고, 이윤후 덕에 검성을 찾고 살릴 수가 있었으니, 약선은 이윤후에게 빚을 진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 정말로 서안 무림맹으로 갈 건가요?”
약선은 젓가락을 놓은 채 검성에게 물었다. 이미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면서 검성에게 있었던 많은 일을 들은 뒤였지만, 밖에서 많은 사람이 기다린 탓에 듣기만 했을 뿐 묻지는 못했었다.
은정연이 비천의 일원이라는 것도 이미 들은 터라 그녀의 앞에서 말을 조심하지도 않고 있었다.
“일단 도후를 만날 수 있는 실마리가 그쪽에 있으니 가 볼 생각이요.”
검성은 정확하게 서안으로 가 미홍을 구할 것이라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약선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현재 무림 상황이 심상치 않아요.”
약선이 무림과 무관하게 살고는 있었지만 소식은 듣고 있었기에, 현재 무림의 평화가 깨어지려 한다는 것과 사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와는 이제 관계없는 일이요.”
“그래도…….”
약선은 검성의 단호한 답에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검성의 눈빛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검성이 오절로서 무림에 있을 적, 사문이 없었던 검성의 존재는 모든 문파와 가문들이 눈독 들일 만했다.
검성은 모든 제의를 거절하고 혼인 요청도 사양했지만, 무림은 그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의도치 않은 일에 휘말려야 했고 그의 이름을 팔아 행세를 하는 자들도 생겨났다. 작은 친분으로 그의 명성을 이용하려는 자들로 인해 검성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많이 했었다.
그가 무당에게 몸을 의탁한 것도 그런 자와 문파들에서 그 나름대로 도망을 친 것이었다.
“나는 더 이상 정파와 사파 그런 싸움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요. 내가 돕고 싶은 사람을 도울 것이고. 윤후에게도 정사에 얽매이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소.”
검성의 이야기에 약선도 더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약선은 검성이 정파의 편에 서 주길 바랬지만, 저렇게 단호한 검성의 모습에 더는 권할 수가 없었다.
듣고 있던 은정연도 비천의 일원으로서 검성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다시는 말을 꺼내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비천은 검성의 존재를 현 무림의 혼란을 종식해 줄 인물로서 판단하고 도우려 했지만, 검성의 뜻을 이미 전에 확인한 데다 또다시 약선과의 대담에서 듣게 되니, 설득할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다.
두 여인은 본의 아니게 같은 마음이 되어 속으로 한숨을 쉬어야 했다.
이윤후도 괜히 눈치를 살피며 식사를 해야 했다. 자신이 동굴을 처음 떠나던 날에도 검성은 정사에 편견을 가지지 말고 사람을 두루 만나 보라고 말해 주었다. 그 이유를, 지금은 잘 알고 있었다.
식사 자리는 그렇게 분위기가 어색해진 채 파하게 되었다.
검성과 이윤후는 약선이 약 창고로 쓰는 방으로 갔고, 은정연은 남장을 하고는 있었지만 여인임을 알았기에 그녀는 약선과 방에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자잘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 모두 밤이 깊어지자 흩어졌다.
* * *
“잠이 오지 않나요?”
검성은 잠이 들지 못한 채 밖에 나와 있었는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냥 조금 생각을 하느라 그렇소.”
검성은 약선을 확인하고는 다시 먼 하늘을 보았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죠?”
약선의 말에 검성은 그녀를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약약선은 검성이 권왕을 죽인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저 모두를 죽이면 내 울분이 풀어질지 알았는데…… 그것만은 아닌 듯하오.”
검성이 약간은 쓸쓸한 음성으로 말하자, 약선은 괜히 마음이 아려 왔다. 검성은 무림에 그렇게 친했던 인물이 없었기에 특히 오절 간의 친분을 소중히 해 왔다.
그의 강함을 알고 접근해 왔던 사람들에게 크게 실망했던 검성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오절로 불리기 전까지 모두의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오절로 처음 불릴 때도 서로 기뻐해 주었다. 하지만 오절 간의 강함을 사람들이 논하고 누가 최고인지 세인들이 다투면서 서로 간에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신투와 권왕은 검성을 최고로 평가하는 사람들을 못마땅해했고, 안 그래도 그들이 좋아하던 약선이 검성만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은근히 싫어했던 그들이었다.
검성의 약혼녀를 죽이게 된 것도 그 당시였다. 서로 간의 믿음이 일방적으로 끊어지려던 시점이었다.
“언니를 만나면 죽일 수 있겠어요?”
그 물음에 검성은 침묵을 지켰다. 약선은 그런 검성이 안쓰러웠다. 그녀가 말하는 언니는 도후 유가영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늘 그녀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던 검성이 유일하게 약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검성과 도후는 오랜 시간 무림행을 함께한 사이였기에 둘 사이는 특별했다. 약선도 그렇게 검성에게 붙어서 다닐 수 있는 도후의 적극성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때가 온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오랜 침묵을 지키던 검성의 입이 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