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89화 (89/251)

89화― 이윤후의 성장

“호오…… 뇌정(雷霆)의 기운이 제법 느껴지는구나.”

조양봉을 찾은 검성은 자신의 제자를 가장 먼저 만나고 싶었다. 하여 약선을 만나러 가기 전 이윤후가 수련 중인 비밀 동굴부터 찾은 검성은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탄성을 질렀다.

“이 정도 뇌정의 기운이라면 벌써 후반부를 익히고 있는 것인가? 제법 진도가 빠르구나.”

검성의 비뢰검결(飛雷劍訣)은 전반부 삼 초식 후반부 삼 초식, 그리고 유일한 방어 검술인 일 초식으로 이루어진 검법이었는데, 비뢰검결을 일 초식씩 익힐 때마다 체내에 뇌정의 기운이 쌓이면서 검의 위력을 더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검성은 동굴 안에서부터 느껴지는 뇌정의 기운을 통해 제자 이윤후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벌써 후반부를 익히는 것이라면…… 일 년은커녕 육 개월 안에도 가능하겠군.”

검성은 말하며 발걸음을 안으로 옮겼다. 제자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살짝 흥분되고 있었다. 검성이 이윤후의 수련을 일 년이라고 말한 이유는 이윤후를 높게 평가해서였다.

어차피 이윤후는 비뢰검결의 검로(劍路)를 모두 이해하고 있었고 그저 내공 부족으로 인해 쓰지를 못했던 것이라 몸에 익히는 데 일 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한데 제자는 자신의 예상마저 뛰어넘는 성취를 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천재라지만 이제 헤어진 지 한 달 남짓에 불과한데 벌써 후반부를 익히다니. 무림이 경천동지할 만한 사건이었다.

동굴 안에 가까워질수록 뇌정의 기운이 더욱 강하게 느껴졌고. 검성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이내 동굴 정중앙에 가부좌를 튼 채 운공하고 있는 이윤후의 모습이 보였다.

과연, 제자의 주위로 오행의 기운이 충만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검성은 이윤후의 운공이 마무리 단계임을 알았기에 가만히 지켜보았다.

* * *

약 이각(二刻,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이윤후가 운공을 마치고 눈을 떴다.

“놀라지 않는구나?”

검성은 이윤후가 자신을 보고 놀라지 않고 담담하게 담담한 표정을 짓자 이를 물었다.

“운공을 할 때 사부님이 동굴 안에 들어오신 것을 알습니다. 놀라지만 않았지 정말 반가웠습니다. 운공을 최대한 빨리 마칠 정도로요.”

이윤후가 미소를 보이며 검성에게 말했다.

“그 정도 경지에 이른 것이냐? 운공 중에도 남을 느낄 수가 있다?”

“네.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거리를 잴 수는 없으나, 근처에 다가오는 모든 기척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윤후도 갑자기 느껴진 것이라 설명을 정확하게 하지 못했지만, 검성은 이미 경험해 본 일이었기에 이윤후가 말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성도 만상오행공을 창안하고 가장 먼저 득했던 공능이었다.

자신을 주위로 일 리(一里, 약 400m) 반경의 모든 물체의 흐름을 느낄 정도로 감각이 예민해졌고, 집중하면 모든 소리까지 들리는 경지에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이윤후는 검성처럼 일 리 정도의 거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근거리의 물체를 인지하는 정도까지는 가능한 듯했다.

“만상오행공의 공능이니라. 내가 너에게 오행을 북돋아 준 것이 다행히 효과가 있었구나.”

검성은 제자의 성장이 만족스러워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오랜 시간 제자를 가지지 않았던 그였기에 이윤후의 성장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었다.

주위에서 늘 자신에게 제자를 가질 것을 종용해 왔었지만 그것을 반려해 왔는데, 이렇게 보람 있는 줄 알았다면 진즉에 할 것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검성은 이윤후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한 달 가까이 빛을 보지 못한 탓에 피부는 더욱 하얘지고 곳곳에 제법 상흔이 보였다. 손에는 굳은살이 잡히고 벗겨지고를 반복하여 엉망이라 검성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제법 이제 무림인의 티가 나는 거 같구나. 글 냄새가 나던 모습에서 이제 많이 바뀌었어.”

“사부님이 그런 모습으로 그런 소릴 하니 인정하기 힘들군요.”

“내 모습이 어때서?”

“저보다 더 어려 보이기까지 하십니다. 전혀 검을 안 잡아 본 것 같은 모습은 사부님 쪽인걸요.”

“그러냐?”

검성은 머쓱한 듯 이야기했다. 자신이 처음 무림에 나왔을 때도 그런 소리를 하도 들어왔기에 이윤후가 말하자 예전 생각이 잠깐 났던 검성이었다.

“뇌정은 제법 모였느냐?”

검성의 질문에 이윤후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검성이 말하는 뇌정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직 스스로 깨우치지 못한 것이냐? 뇌정을?”

“제 몸에 느껴지는 이 기운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윤후는 비뢰검결을 익히면서 몸 안에 쌓이고 있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에 검성의 묻고 있는 뇌정이라는 것에 의문이 있었다.

“비뢰검결의 무공서 읽어 보지 않았던가? 비뢰검결의 숙련도가 올라갈수록 체내에 뇌정의 기운이 쌓이게 되는데, 뇌정의 깊이에 따라서 비뢰검결의 위력이 좌우된다고…… 아……!”

검성은 말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았고 비뢰검결의 무공서가 내용이 조금은 유실되어 그 부분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 주지도 않았었군.”

검성이 머쓱한 표정을 보이며 이윤후를 바라보자 제자는 자신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수련을 하고 있었던 이윤후는 스승인 검성의 가르침이 목마르던 참이었다.

이곳에 들어온 후부터 지금까지, 이윤후는 북해빙궁의 조준혁과 다시 만날 날만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었다.

“비뢰검결은 어디까지 쓸 수 있느냐?”

“전반부는 무리 없이 쓸 수 있고, 후반부 초식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빠르구나. 네 체내에 비뢰검결을 익히면서 느껴지는 기운이 따로 있지?”

“네. 이것이 뇌정이군요. 어느 순간부터 확실히 체내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습니다.”

이윤후도 검성이 말하는 뇌정의 기운을 체내에서 느끼고는 있었으나, 그저 만상오행공의 영향으로 생기는 기운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검성이 비뢰검결을 기반으로 만상오행공을 창안했다 보니 비뢰검결과 만상오행공의 궁합이 워낙 좋았,고 두 무공이 상호 작용하여 서로의 무공을 돕고 있었다.

“너에게 따로 알려 주지는 않았지만 비뢰검결에 만상오행공을 연계하는 방법도 있으니, 그것도 나중에 알려 주마.”

“그런 방법도 있습니까?”

이윤후는 검성의 말에 놀라 물었다.

“만상오행공은 비뢰검결뿐만 아니라 어떤 무공과도 연계할 수 있다.”

“그렇군요.”

스승의 말에 일단 대답하긴 했으나, 현재로써는 비뢰검결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벅찼기에 만상오행공의 응용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검성은 이윤후의 신체를 면밀히 살피며 입을 열었다.

이미 동굴에서 오 년간 수련하여 몸이 제법 탄탄해진 상태이긴 하였으나, 직접 오행의 기운을 자극해 준 이후 한 달 만에 제자는 더더욱 고강해져 있었다.

“내공도 정말 많이 늘었고…….”

“모두 스승님과 약선님의 도움 덕분입니다.”

내공 역시 약선이 단약을 제공하고 상월의 상승 작용까지 더해지면서 이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심후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검성의 얼굴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이윤후는 검성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 채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이상한 듯 여겨 물었지만, 검성은 계속 그를 주시한 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이 아이에게 단명(短命)의 상(像)이 보인단 말인가……?’

검성은 천통자가 말했던 이윤후의 관상 이야기가 생각나서 신경 쓰고 있었다. 관상을 볼 줄 모르는 검성이었지만, 사람들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는 그였기에 이윤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천통자의 말처럼 윤후가 강해져서 그 단명의 상이 사라지는 것이라면 좋으련만…….’

검성은 천통자의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의 말처럼 이윤후에게 단명의 상이 보인다면 그 이유는 필시 전사(戰死)일 것이다.

그렇기에 검성은 이윤후가 더더욱 강해지길 바랐다.

‘윤후가 절대 나의 일에 휘말리게 할 수는 없지.’

이윤후가 누군가에게 노려진다면, 필시 그 범인은 도후나 신투일 것이다. 그렇기에 검성은 자신의 제자가 수련을 마치고 나오기 전까지 무조건 일을 마치기로 결심하였다.

긴 고민을 마친 검성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제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수련은 이 정도로 하고 오늘은 다 같이 식사나 하자. 약선에게 미리 이야기해 뒀으니 다 같이 모여 이야기나 나누면서 말이야.”

“밖으로요?”

이윤후는 성취를 보이기 전엔 바깥에 나가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괜히 왔다 갔다 하다가 수련에 게을러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윤후는 스승의 제안이 당황스러웠으나, 검성은 그런 제자에게 미소를 보였다.

“이제 네가 수련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나는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식사나 하면서 너의 이야기를 좀 듣자꾸나.”

이윤후도 검성이 재차 권하자 어쩔 수가 없었다.

“저도 스승님의 이야기를 좀 듣고 싶네요.”

이윤후도 검성이 무림에 나가 어떤 일을 했는지, 복수는 제대로 되고 있는지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너를 처음 제자로 삼기 위해 설득할 때도 꽤 고집이 있던 아이였는데 여전하구나.”

검성은 제자 이윤후와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당시 이윤후는 어린 데도 불구하고 고집과 강단이 있었다. 자신의 제자로 삼으려 한 달 가까이 꿈의 나타나 설득하고 괴롭힌 뒤에서야 산에 오르게 할 수 있었다.

“제 고집보다는 사부님의 고집이 더 강했지요. 제가 그리 안 믿는다 하여도 꿈에 계속 나타나 설득하셨으니. 덕분에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

이윤후도 처음 검성과 만났던 기억을 떠올리고 웃음을 보였다. 처음 검성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올 때는 기겁하여 어머니에게 달려가 울고불고했던 어렸던 자신을 기억하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연이었다. 비좁은 마을을 벗어나고자 마음먹었던 자신 앞에 검성이 나타나다니. 당시엔 스승의 말을 믿지 않아 한 달 가까이 옥신각신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좋았다.

“챙길 것이 있으면 챙겨서 나가자. 약선에게 손님이 와 있으니 가는 길에 넌 좀 씻고 가야겠다.”

검성은 이윤후의 행색을 보고는 말했다. 무공 수련을 하며 옷이 군데군데 찢어져 누더기처럼 되어 있고 온몸에 상처들이 가득했다.

“누가 와 있습니까? 약선께서는 이곳을 아는 자가 거의 없다고 하던데요.”

이윤후는 옷을 벗어 던지며 말했다. 한쪽 구석에 약선이 미리 가져다준 여벌 옷이 있었기에 그것으로 갈아입으려 했다.

수련을 하며 옷을 계속 찢어 먹다 보니 약선이 약을 가져다주면서 옷과 신발을 여러 개 챙겨 주었다.

“네가 말하지 않았느냐?”

“뭘요?”

“약선의 거처를 아는 자가 거의 없다고. 그건 아는 자가 있긴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

“아…… 그렇군요.”

이윤후는 누더기가 된 옷을 던져 버리고 말끔한 새 옷을 입었고 구석의 항아리에 채워져 있는 물을 떠 세안을 했다.

검성은 이윤후가 제법 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느꼈고, 약선이 꽤 많은 것을 신경 써 주고 있는 듯하여 고마움이 들었다.

이윤후도 약선의 거처까지 찾아온 손님이라면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하여 최대한 말끔한 모습으로 가고 싶었기에 옷매무새를 최대한 가다듬었다.

검성과 같이 가는 이상 괜히 자신이 검성에게 누가 될 수 있다. 여겼기에 더욱 그랬다.

결국, 검성과 이윤후가 동굴을 떠난 시각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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