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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87화 (87/251)

87화― 서문세가의 금지옥엽(金枝玉葉)(1)

“그리 아쉬우면 동행을 하지 며칠째 한숨만 내쉬는 거냐?”

검성은 낙양에서 모용연 일행과 헤어지고 약선이 있는 화산으로 가는 중이었는데, 가는 내내 은정연이 한숨만 쉬고 풀이 죽어 있어 검성이 참다가 결국 한 소리를 했다.

“죄송해요…… 아쉬운 것보다야…… 다른 일 때문에…….”

은정연은 낙양에서 그들과 헤어지고 남장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여장을 하고 모용연을 만났다는 사실이 비천회주인 자신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면서 크게 혼이 났었다.

은정연 모녀가 살아 있다는 사실은 밝혀져서는 안 될 비밀이었기에 은정연의 행동은 비천에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비천회주가 그녀의 소환까지 명했으나 검성이 은정연이 아닌 사람이 자신을 따르는 것을 거부했기에 비천에 소환까지는 되지 않고 있었다.

“비천에 돌아가는 것이야 내가 막아 줬으니 된 일 아니냐? 이제 뭐 조심하면 되지.”

검성이 남의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자 은정연은 살짝 화가 났으나, 검성의 도움 아니었으면 또다시 비천에서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니 화를 낼 계제가 아니었다.

“소식이 들어온 것은 없느냐?”

검성의 말에 은정연은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신투와 도후는 사라진 후 아예 드러나지 않아 추가적인 소식도 없는 것 같아요. 그들의 제자가 무림에 나타났다고 하여 비천에서도 소문을 추적하고 있지만, 제자를 직접 본 자는 없고 말만 무성할 뿐이라 합니다.”

“그래? 그들의 제자라도 만나 본다면 실마리라도 보일 텐데 말이야…… 일단 무림맹에 잡혀 있다는 미홍인가 하는 여인을 만나 보는 수밖에 없으려나.”

검성은 말을 하다 하늘을 보았다. 백아가 자신들의 머리 위를 뱅뱅 돌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은정연 역시 하늘을 보곤 백아를 발견했다. 그동안 주위 시선을 의식하여 말을 타고 여행했기에 백아를 잠시 잊었는데, 이리 다시 보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었다.

“백아를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요.”

“주위에 싸움이 일어난 듯하군. 저 녀석의 행동이 말이야.”

백아가 주위를 뱅뱅 돌다가 어느 한 곳으로 날자, 검성이 말의 고삐를 쥐었다.

“일단 따라가자.”

“네? 잠시만…….”

검성이 말을 몰고 먼저 달리자 은정연도 어쩔 수 없이 말을 따라 몰기 시작했고, 백아는 마치 자신들을 안내하려는 듯 어딘가로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 * *

채쟁― 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검성과 은정연은 말의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고, 이내 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화산파의 무사들 같은데요?”

은정연이 무사들의 모습을 보고 입을 열자, 검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은 분명 화산파였으나, 그들과 싸우고 있는 한쪽이 누구인지 불분명했다.

“화산파의 무사들이 왜 여인들과 저리 싸우고 있는 것이죠?”

은정연은 조금 의아한 듯 말했다. 검성은 백아가 자신들을 이끌 때부터 여인들과 연관되어 있으리라 예상했으나, 화산파와 싸우는 무사들 모두가 여인일 줄은 몰랐다.

“이거 왠지 반가운 곳의 사람들인 거 같은데…….”

검성은 화산파와 싸우고 있는 여인들을 보며 작게 읊조렸다.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한 은정연은 궁금한 듯 검성을 바라보았다.

“근데 왜 저들이 화산파와 싸우고 있는 것이지?”

검성은 여인들의 정체를 짐작했기에 화산파와 싸우는 것이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짐작하는 문파의 여인들이 맞는다면 화산파와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빼액―

검성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백아가 하늘에서 울기 시작했고 모두 그 소리에 놀라 하늘을 바라보았다.

“뭐지? 저 괴조는? 어디서 나타난 거야?”

화산파와 여인들은 백아의 울음소리에 놀라 움직이던 칼을 멈추었고, 양쪽 다 서로 물러난 채 거리를 벌렸다.

“이만큼 했으면 이제 그 정도만 하는 게 어떻습니까?”

화산파의 중년 무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앞에 나섰다.

“흥, 우리를 욕보여 놓고 그냥 넘어가려는 것인가요? 명문 대파라는 화산파의 무사들이 파락호(破落戶)나 다름없군요!”

“뭣이라?”

여인 중 한 명이 나서서 매몰차게 말하자 중년인 뒤의 화산파 무사들이 참지 못하고 다시 나서려 했으나, 중년인이 그들을 저지시켰다.

“더는 나서지 말도록 해라. 시작부터 네놈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더냐?”

중년인의 불호령에 화산의 검수들은 검을 거두고 더는 말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저자는 화산의 사마천(司馬遷)이라네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알겠느냐?”

지켜보고 있던 은정연은 자신을 은밀하게 따르고 있는 비천의 인물들에게 저들의 정체를 들었고, 그것을 검성에게 알려 주었다.

“화산의 차기 장문인감으로 꼽히는 인물이에요. 철혈검(鐵血劍)이라고 불리는 인물이랍니다.”

“그런 자가 왜 서문세가의 여인들과 저리 다투고 있는 것이지?”

“서문세가요? 저 여인들이 서문세가의 사람들인가요?”

검성의 말에 은정연은 깜짝 놀라 물었다. 서문세가는 무림에 잘 나타나지 않는 가문으로, 천고의 기재들은 전부 서문세가에서 난다고 할 정도로 각 분야의 천재적인 인물들이 서문세가의 이름을 떨쳤다.

탁월한 용병술과 압도적인 무력으로 군부의 대장군이 된 자도 있었고, 예인(藝人)이 되어 시(詩)와 그림을 남긴 이도 있었다. 현재로써 서문세가의 인물 중에 가장 유명한 무림인은 약선(藥仙) 서문애령이었다.

무림인 사이에선 ‘서문세가의 인물이 천하제일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란 말이 떠돌 정도로 서문세가의 재능은 높게 평가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많은 무림 가문들이 서문세가의 인물들과 혼인을 맺고 싶어 했고, 수많은 무림세가와 당대 권력자들의 혼인 요청을 많이 받는 가문이었다. 특이하게도 서문세가의 방침이 가문 간의 정혼을 하지 않고 자기의 짝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가풍이라 어떤 가문도 원한다고 서문세가와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서문세가의 인물들은 무림에 나타나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들인데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요?”

“뭐 짐작 가는 곳은 하나지 않니?”

검성은 말을 하며 한쪽은 가리켰고 그곳에는 화산의 조조양봉이 있었다.

“아, 약선이요? 그렇군요. 약선은 서문세가의 어른이시니, 저들이 만나러 왔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은정연은 저들이 서문세가의 인물들이 맞다면 검성의 말처럼 약선을 만나러 온 것이라 짐작했다. 약선이 세가와 거의 등지고 사는 인물이긴 했으나, 현 가주가 약선의 친동생인 데다 나이상으로도 약선은 서문세가에서 가장 큰 어른이었다.

“저들이 애령을 만나러 온 것이 그저 집안의 어른을 인사하러 온 것은 아닌 듯하군.”

검성이 서문세가의 여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고, 은정연도 그곳을 보며 물었다.

“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저들이 보호하고 있는 듯한 소녀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으로 보아 무슨 병이 있는 듯하네. 그것 때문에 약선을 찾아온 거 같은데?”

“그래요?”

그 말에 은정연은 긴가민가하며 다시 서문세가 여인들을 살폈다. 검성의 말처럼 서문세가의 여인들은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작은 소녀를 데리고 있었는데, 확실히 안색이 좋지 못했고 여인 두 명이 소녀를 계속 보살피고 있었다.

“누군지 알겠어?”

“아니요.”

검성의 물음에 은정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비천이라 해도 서문세가에 대한 세세한 정보는 알 수가 없었고, 은정연과 은정연의 호위를 위해 따르고 있는 세 명 정도의 정보력으로는 검성의 물음에 답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검성이 마치 비천이 그것도 모르냐는 듯 쳐다보자 은정연은 울컥했으나 몰래 지켜보는 마당에 저들에게 걸릴까 봐 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참아야 했다.

“사마천이라는 저 화산의 검수는 차기 화산의 장문인으로 거론된다면서 왜 서문세가와 시비에 휘말린 것이지?”

“저도 모르죠…… 지켜봐야죠.”

“저 녀석이 못 기다릴 듯한데?”

검성은 하늘을 가리켰고 백아가 주위를 선회하며 당장에라도 내려올 듯했다.

“저 녀석이 급하게 우릴 부른다 했더니, 여인들이 있어서였어. 그럴 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말이야.”

검성은 하늘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는 말했고 그 말에 은정연도 미소를 지었다. 이미 그녀도 백아가 어렸을 적부터 산에서도 여인들이 길을 잃으면 구해 주고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검성의 말에 웃음이 났던 것이었다.

빼액―

백아의 울음소리가 다시 한번 크게 울렸다. 그들이 계속 싸우면 끼어들겠지만, 화산의 무사들이 이미 사마천의 지시로 인해 검을 다 거두어들였기에 백아도 하늘에서 상황만 보고 있었다.

화산파의 무사들은 백아의 모습에 경계하고 있었으나 서문세가의 여인들은 백아를 보고는 전혀 놀라지 않은 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빼액―

빼액―

갑자기 울음소리가 여러 번 들리자 모두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선회하는 백아 외에 또 한 마리의 설응이 나타나 아래로 강하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놀랐으나, 검성은 백아 외의 또 한 마리의 설응을 보고 누가 온 것인지 알아차렸다.

북해빙궁 외에 설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약선 한 명밖에 없었다. 마치 커다란 새를 타고 하강하는 약선의 모습이 하늘에서 강림한 선녀와도 같았다. 백의를 입은 중년 미부가 설응을 타고 내려오자 화산파의 무사들은 놀라 입을 벌리고 있었고 반대로 서문세가의 여인들은 그녀를 크게 반기었다.

꾸륵―

설응이 천천히 땅에 내려온 후, 약선이 등에서 내리자 서문세가의 여인들이 그녀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약선은 그녀들을 보고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약선의 인사에 서문세가 여인 모두가 무릎 꿇었고, 그중 그녀들의 보호를 받던 소녀는 짧은 걸음으로 약선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약선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소녀를 보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두 팔을 벌려 소녀를 반겼다.

“효인(孝仁)아, 너도 오랜만이구나.”

약선은 효인이라 부른 소녀를 품에 안고는 들어 올렸고 소녀는 그대로 약선의 목을 감싼 채 포옥 안겼다.

소녀는 약선의 동생이자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환의 손녀였다.

세가로 자주 들르지 못하는 약선이었지만 최근에 세가에 간 적이 있었기에 서문효인이 약선을 알아보고 다가온 것이었다.

“어디가 아프기에 이 먼 곳까지 온 것이냐?”

약선은 서문효인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고 서문효인은 배시시 웃으며 말을 하지 않고 약선에게 안긴 채 얼굴을 묻었다.

“일어나도록 해라. 무슨 일이기에 화산파와 이렇게 대치를 하고 있는 것이냐?”

약선의 명에 무릎 꿇고 있던 여인들이 몸을 일으켰고 그중에 수장으로 보이는 여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약선을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마천이 약선을 알아보고는 다가왔다. 그로서는 약선이 나타났을 때부터 알아봤지만 나서지 못하고 있다가, 여인들이 혹시나 자신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할까 봐 끼어든 것이다.

약선은 사마천을 알아보고는 안겨 있는 서문효인을 떼어 내 서문세가 여인들에게 맡겼다.

“자네를 여기서 볼 줄은 나도 몰랐군. 화산파가 왜 서문세가의 여인들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이지?”

약선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음성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사마천과 화산파의 무사들은 약선의 등장에도 놀랐지만, 그녀들이 서문세가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고 있었다.

“오해이십니다. 저희가 서문세가의 길을 막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사마천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의 말에 서문세가의 여인들이 노려보고 있었기에 사마천은 더욱 곤란한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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