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86화 (86/251)

86화― 변혁(變革)

사왕련(邪王聯).

구 사마련 건물의 이름만 바꾸었지만, 이전의 사마련과는 달리 황산과 그 일대는 사파의 영역으로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사마련 시절에는 정파와 평화로운 상황이라 사마련의 영역이라고 해도 정파들이 자유롭게 통행했지만, 사왕련으로 바뀌고는 황산과 그 일대에서 정파의 인물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무림인들이 아닌 일반인들도 무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음을 알았기에 사냥꾼들조차 황산에 발길을 피했다.

하여, 황산은 사왕련의 사람들과 사왕련을 방문하는 사람 외엔 통행이 없다시피 하게 되었다.

* * *

사천당(邪天堂).

사왕련의 가장 깊숙한 곳 가장 비밀스러운 자리의 거처로, 원래는 흑월도존(黑月刀尊) 유상휘의 거처였지만 현재는 사왕련주인 독고진의 거처로 바뀌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채비를 하고 있던 독고진이 방을 나서려는 순간 누군가 그의 등 뒤에 나타났다.

“환노(幻老), 이렇게 자꾸 제 등 뒤에 나타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했을 텐데요?”

독고진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뒤돌아 자신의 뒤에 나타난 노인을 바라보았다.

볼품없는 노인으로 보이는 그는 백 년 전 무림을 혈겁에 몰아넣었던 환영신마(幻影神魔)라 불리던 노마두였다.

“클클, 내가 설마 널 노릴까 봐 경계를 하는 것이냐?”

환영신마가 킥킥대며 웃자 독고진의 미간이 다시 한번 찌푸려졌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용건이 있으시면 빨리 끝내시죠.”

독고진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가 말을 전해 달라고 해서 찾아왔다.”

환영신마의 말에 독고진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무엇을 전하라고 하던가요?”

“최대한 일을 서두르라고 하더구나. 그는 이번 천무지회(天武之會)를 통해 일을 마친다고 했다.”

“천무지회를 통해 일을 마치겠다고요?”

독고진은 환영신마의 말에 되물었다.

“내가 들은 것은 거기까지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다면 직접 연락을 해 보도록 해라. 내가 너희 심부름꾼은 아니지 않으냐?”

“그러죠. 어차피 저희 쪽도 한 달 안에 끝이 날 것입니다. 흑룡창제와 수라마검이 발 빠르게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는 사파들을 힘으로 처리하고 있으니까요.”

현재 사왕련은 빠르게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흑월도존을 따르던 몇몇 사파들이 아직 사왕련을 부정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흑룡창제와 수라마검이 사왕련에 있는 이상 남은 사파 대부분은 결국 사왕련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거부하던 사파들도 사왕련의 두뇌인 윤엽이 나서서 최대한 싸움을 피하여 설득하였다.

“그거야 나도 알고 있지. 그도 이쪽의 속도에 맞춰서 일을 추진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환영신마는 말을 하고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의 웃음에 독고진은 살짝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노마두의 성질을 건드려 좋을 것이 없기에 참고 또 참았다.

독고진도 흑월도존의 대제자로서 누구 하나 두렵지 않은 무공 실력을 갖추었으나, 오절 중 검성과 도후가 합공하여 겨우 상대했던 환영신마를 업신여길 수는 없었다.

“그가 어떤 일을 벌일지 궁금하긴 하군요. 천무지회에서 무슨 일을 벌일 생각이라…… 흐음…….”

“그거야 보면 알지 않겠느냐? 천무지회에 많은 정파가 모이니까 그때 무슨 일을 벌일 참이겠지. 나도 그곳에 구경이나 갈까 하니까 찾지 말아라.”

“환노를 내가 찾을 일이 있겠습니까? 늘 환노가 날 찾았지요.”

“네 말이 맞는군. 클클.”

독고진의 말에 환영신마는 기분이 좋은 듯 웃었다.

“전 볼일이 있어 가 봐야 하니 환노도 갈 길 가십시오. 어차피 서안으로 가신다면, 그에게 우리 쪽의 준비는 잘되어 가니 그쪽도 일을 잘 마무리하라고 해 주시고요.”

“그 정도 말이야 내가 전해 주마.”

독고진은 환영신마를 슬쩍 쳐다보고는 방을 나섰다.

혼자 방에 남은 환영신마는 방을 한 번 둘러보고는 독고진의 자리에 털썩 앉았다.

“크크, 대업의 때가 다가오는구나. 크하하……!”

환영신마의 웃음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고, 한동안 크게 웃던 그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채 사라졌다.

* * *

서안 무림맹(武林盟).

맹주실.

“천무지회의 참가 인원이 이백 명을 넘었습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보고를 받는 무림맹주 우금의 앞에 서서 보고를 하는 이는 현무단의 성지현이었다.

“꽤 몰리는 듯하구나?”

“천무신창(天武神槍)의 영향이 확실히 큰 듯합니다. 그리고 그동안 무제가 없었다 보니, 각 문파가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는 무대로서 이용하려고 하니 점점 인원이 많아지는 거 같습니다.”

“어차피 본무대에 올릴 인원은 열여섯 명이니, 예선을 준비해 그것을 추릴 방법을 생각해 보아라. 천무지회의 진행은 현무단에 맡길 테니까 말이다.”

“네. 알겠습니다.”

성지현은 우금의 말에 내심 기쁜 듯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은 무림의 인사들이 참석하는 천무지회를 잘 진행시키기만 한다면, 자신의 가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성지현의 아버지인 현무단주 성하진과 그의 집안은 우금이 무림맹주가 되면서부터 벼락출세한 터라 무림인들로부터 전혀 대우를 받지 못했다. 말만 무림맹의 사대 단주일 뿐 그 위세는 남들이 보기에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성지현은 늘 그것이 안타까웠기에 이번 천무지회를 통해 무림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가 보아라.”

우금의 명이 떨어지자, 성지현은 곧바로 인사를 올린 뒤 맹주실을 나섰다.

스윽―

그가 나간 직후, 우금의 앞에 청의를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신수가 훤하구나?”

우금의 농담에 얼굴을 붉힌 사내는 무림맹의 사대무단 중 청룡단의 단주, 청룡(靑龍)이었다. 무림맹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조직으로 무림맹주 외엔 청룡단의 일원이 누구인지조차 아는 사람이 없는 무림맹의 신비 집단이었다.

그래도 그들을 알만한 표식이 얼굴에 있었는데, 바로 용문(龍紋)이 왼쪽 눈 아래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금을 마주한 청룡에게도 얼굴에 용문이 있었다.

“미홍은 뭔가를 말하였느냐?”

우금의 말에 청룡은 살짝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묻는 것에 다 대답하고 있기는 하나 중요한 사실은 감추는 듯합니다.”

“그래? 너무 사정을 봐주는 것이 아니냐? 그들의 배후는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네…… 반드시 알아내겠습니다.”

청룡은 왠지 자신 없는 말투로 답하였고 그의 대답에 우금은 혀를 찼다.

“네놈, 설마 미홍에게 빠져서 일을 그르치는 것은 아니겠지?”

우금의 살짝 노기 섞인 음성으로 말하자 청룡은 화들짝 놀랐다. 우금은 미홍의 처분을 청룡에게 맡기었는데 청룡이 미홍에게 빠져 산다는 사실을 청룡 단원들이 우금에게 보고해 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이제껏 청룡이 자신의 명만 수행하고 살아왔기에 여색을 즐기는 것 정도야 눈감아 줄 만했으나, 자칫 개가 자신의 주제를 망각할까 하여 주의를 한마디 준 것이다.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네가 미홍과 무슨 짓을 하든 상관은 없다만…… 미홍에게서 배후에 대한 정보를 반드시 알아 내야 한다. 대충은 짐작하고 있지만, 확실한 증좌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우금의 말에 청룡은 마음이 무거운 듯 고개를 숙였다.

“네. 그녀의 입을 어떻게든 열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그래. 널 믿는다.”

우금의 말에 청룡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미홍에게 빠져 일을 등한시한 점이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다른 보고가 있지 않으냐?”

“아…… 네.”

우금의 물음에 청룡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각 문파에서 참석하겠다는 대답을 해 왔습니다.”

청룡의 말에 우금의 표정이 조금은 진중하게 바뀌었고 청룡 또한 그 분위기를 느끼고 말을 이어 나갔다.

“오대세가에서는 가주들이 전원 참석한다고 전해 왔고, 구파일방에서는 무당과 소림의 장문인만 참석이 힘들다고 알려 왔습니다. 나머지는 다 장문인들이 오기로 연락이 왔습니다.”

“듣던 중에 반가운 소리군. 무당과 소림은 왜 장문인들이 오지 않는 것이지?”

“무당의 장문인께서는 현재 수련을 위해 면벽 수행 중이라고 알려 왔고, 소림의 장문인은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소림 내부의 사정인 듯합니다.”

“흐음……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이 오는 것이 중요한데 조금은 아쉽구나…….”

우금은 아쉬운 듯 말했다. 천무지회를 핑계 삼아 대회의를 열기 위해 각 문파들에게 무림첩을 돌린 상황이었다.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이 오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지만, 다른 곳은 모두 가주와 장문인들이 온다 하니 우금으로서는 기분 좋은 결과였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만족스러운 결과인 듯합니다. 이렇게 많은 문파들이 이번 무림첩에 응해 줄지는 예상 못했습니다.”

“그건 그렇지. 확실히 이번에 너희 청룡단의 공이 크구나.”

우금의 말에 청룡은 살짝 웃어 보였다. 이번 첩자 색출 건에 있어서 청룡과 그의 수하들의 공이 지대했다. 청룡단 덕분에 정파의 각 문파들은 내부의 첩자들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고, 이에 무림맹에 대한 신뢰 역시 다시 회복될 수 있었다.

물론 천무지회가 열린 배경에는 사왕련의 확장 역시 빼 놓을 수 없었다. 덕분에 무림맹은 위기의 순간 각 문파들의 지지를 얻으며 정파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할 수 있게 되었다.

“준비를 잘해 두어라. 이번 천무지회와 대회의가 우리의 대업에 큰 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니까 말이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독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만독문에서 왜? 서로의 일은 마친 것으로 아는데?”

청룡이 만독문의 이야기를 꺼내자 우금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일전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회의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만독문과 일을 획책했었다. 하나 그 일은 이미 끝이 났었기에 우금으로서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내용은 없고, 그냥 맹주님을 한 번 만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과 더 만날 이유는 없지. 이미 다른 쪽과 손을 잡은 지금 만독문까지 끌어들인다면 일만 복잡해질 뿐이야. 적당히 핑계를 대고 미루도록 해. 만나더라도 이번 일을 마치고 만날 수 있게 말이야.”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무지회에 우리 쪽 사람들도 참석을 시키나?”

“네. 몇 명 내보내려 합니다.”

청룡은 천무지회에 자신들의 수하 중 두 명 정도를 참가시켜 경험을 쌓게 할 생각이었기에 우금의 물음에 바로 답했다.

“네가 직접 나서는 게 어떠냐?”

“제가요?”

우금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청룡은 당황하여 되물었다.

“그래. 혹시 천무지회의 참가 인원 중에 제거해야 할 인물들이 있을지 모르니, 네가 직접 참가를 하도록 해. 예선 단계에서 그런 인물들이 꽤 있을 테니까.”

“네. 그럼 제가 참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금의 뜻을 알아들은 청룡은 조금은 당황했지만 그의 명을 따르기로 했다. 남들 앞에 자신을 드러낸 지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으나, 무대에 오른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대업의 완성이 이제 멀지 않았다. 크하하!”

우금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으나, 청룡은 그를 이해했다. 이제껏 우금이 이 일을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주 우금의 머릿속에서 자신을 비웃고 멸시하던 많은 이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 결국 최후의 승자는 자신이다.

이제 곧, 자신의 손으로 무림의 일대변혁을 이끌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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