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서안행(西安行)(2)
“예전에는 무도대회가 꽤 많이 열렸었는데, 왜 오랜만이라는 거지?”
검성은 궁금한 듯 물었다. 자신이 무림을 활보할 때만 해도 구파일방에서 여는 무제도 있었고 무림맹에서 주기적으로 여는 대회도 있었다.
거기에서 무림의 새로운 고수들이 탄생하기도 했었다.
검성 역시 무림맹에서 열렸던 무제의 우승을 하면서 무림에 이름을 크게 알렸고, 거기에서 오절의 모두를 만났었다.
“음…… 현 무림맹의 맹주인 우금이 맹주직에 오른 뒤론 무림맹에서 열리던 무제가 없어졌던 거 같아요.”
“그래? 무림맹의 무제는 꽤 역사가 깊었던 무제였는데…….”
무림맹에서 십 년 주기로 여는 무제는, 원래 그해마다 이름이 바뀌긴 했으나, 정기적으로 열렸기에 그 무제에서 많은 고수가 탄생했다.
특히 몽고족이 무림을 억압할 때 무림맹이 만들어졌기에, 무림맹이 생긴 날을 기념하여 그 후 계속 열렸던 역사가 깊은 무제였었다.
“저도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니 현 무림맹주가 취임하고부터 무림맹의 무제가 없었어요.”
“제가 그 이유를 알려 드릴까요?”
은한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놀라 뒤를 쳐다보았다.
검성은 이미 그가 다가올 때부터 알고 있었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모용연(慕容延)! 아…….”
은한은 뒤돌아보고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사내를 알아보고는 큰 소리로 말해 버렸고, 이내 놀라 입을 막았다.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모용세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무림의 유명 인사, 비류검(飛流劍) 모용연이었다.
은한은 모용연과 안면이 있었기에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이름을 말해 버렸고, 이에 민망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모용연이라면 모용세가의 사람이겠군요? 무슨 이유를 알려 준다는 거죠?”
검성은 모용연을 향해 물었고, 그는 고개 숙인 은한을 한참 쳐다보다가 검성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이미 아셨지만 제 소개를 먼저 하죠. 모용세가의 모용연이라고 합니다. 일단 좀 앉아도?”
모용연은 넉살 좋게 소개를 하며 물었고 검성이 허락하자 냉큼 의자를 빼고는 앉았다. 모용연의 출현에 객잔 사람들은 안 그래도 검성 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더욱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모용연이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현 무림 정파의 후기지수 중 가장 뛰어난 인물들을 오대 공자(五大公子)라 하여 다섯을 부르는데, 검성에게 패했던 일월문의 천풍 공자 감오도 그중 한 명이었다.
오대 공자 중 대장 격인 인물이 바로 비류검 모용연이었다. 오대 공자라는 명칭도 모용연이 지어 준 것이었고, 오대 공자 모두가 따르는 것이 모용연이었다.
모용연은 자리에 앉아 은한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에 그녀는 얼굴을 숙인 채 모용연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는 사이인가요?”
검성은 은한이 모용연의 얼굴을 보고 바로 이름을 말한 것도 그렇고, 모용연이 은한을 계속 쳐다보는 것도 이상하여 물었다.
“아, 그냥 얼굴이 어딘가 익숙하여 실례했네요. 어디에서 본 것도 같은데 기억이 안 나네요.”
모용연은 검성의 물음에 답하고는 은한에서 시선을 떼었다. 은한은 속으로 그 말에 발끈했으나 얼굴을 들지는 못했다.
검성은 은한의 눈치로 보아 둘이 아는 사이일 거라 여겼다. 다만 은한이 남장을 하고 있어 모용연이 알아보지 못한 기색이었다.
“현 무림맹주가 취임하고 무림맹의 무제가 사라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 제가 여기 앉은 이유도 깜박할 뻔했네요.”
모용연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현 무림맹주인 비천신검은 사마련의 사파일통을 저지한 영웅으로서 맹주 자리에 올랐지만, 그가 무림맹주가 되고 나서 무림맹은 변질되었죠.”
모용연의 이야기에 객잔 안의 모든 무림인이 귀를 기울이다가 놀랐다. 그가 말하는 이야기는 나름의 금기와 같은 사항이었다. 무림인들도 어느 정도 현 무림맹의 문제점을 인식은 하고 있었지만, 정파의 연합인 무림맹주에 대한 위신을 위해 모른 척 못 본 척을 해 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등과 대립각을 세울 때도 비천신검이 무림을 위해 해 온 일이 있으니 그가 하는 일이 옳다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무조건 비천신검의 반대쪽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패와 마교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막아 낸 것도 무림맹이었기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제외한 무림인들은 거의 무림맹의 편을 들어 왔었다. 그렇기에 무림맹과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의 사이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무림맹이 변질하였다?”
검성도 어느 정도 아는 이야기였지만 되물었다. 모용연의 말이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심하게 변질하였죠.”
모용연의 말에 검성은 미소를 보였다. 모용연의 당찬 기백이 꽤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는 오대세가의 사람이었기에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 무림맹에 대한 험담을 늘어놔 봐야 좋은 것이 없는 위치였다.
“무림맹의 맹주 자리는 모든 정파 무림의 문파들을 아우르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현 맹주는 제 세력만을 키우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외엔 관심이 없었지요. 무제가 열리지 않는 이유 역시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열렸던 무림맹의 무제에서 화산파의 검수가 우승하자, 맹주는 그 이후로 무제를 다신 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무제에서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인물들이 우승하면 무림맹주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무제를 없앴다는 것이오?”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지요. 아니라면 굳이 역사 깊은 무제를 없앨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모용연의 말에 검성도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현 무림맹주가 설마 그렇게까지 했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은한이 아무 말 않고 있는 거 봐서는 모용연의 말이 맞았다.
‘흐음…… 현 무림맹주가 그렇게까지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라는 건가? 그저 그들이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 세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검성은 모용연의 말에 무림맹주에 대한 생각을 조금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저 그의 모든 악행이나 행보를 신투와 권왕 그리고 도후가 뒤에서 조종해서 벌인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계속 들리는 소문을 듣다 보니 그런 것만 같지도 않았다.
“꽤 무림맹에 불만이 많은 듯하군요.”
검성은 모용연의 말에서 거리낌 없이 무림맹주와 무림맹에 대한 비난이 나오자 자세한 연유가 궁금해졌다.
“불만이야 많을 수밖에요. 인제 와서 정파의 화합을 위해 신장의 무기로 이렇게 자신이 무림을 위해 희생한다는 듯 자랑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생각이군요.”
“사실입니다. 무림맹주가 정말로 무림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이렇게 오랫동안 내버려 두며 대립하지 않았겠죠. 이제 와서 정파가 큰 위기에 빠지니 힘을 합치자고 말하는 것은 웃긴 게 아니겠습니까?”
모용연이 자신의 의견을 항변하자, 검성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보였다. 검성에게는 사실 무림의 상황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무림맹이 구파일방과 대립을 하던 화합을 하던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나 하자고 여기에 온 것은 아니지 않나요?”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은한이 고개를 들며 말했고, 모용연은 그래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 듯 살짝 웃어 보였다.
“하하, 이거 제가 흥분하여 헛소리를 너무 많이 했군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은한은 그의 말에 눈초리가 더욱 치켜떠졌다.
‘둘 사이가 제법 가까웠나 보네. 알아보지 못하니까 더 화난 거 보면…….’
검성은 은한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계속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사이 점소이가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술은 없나?”
검성은 음식을 나르던 점소이를 잡고 물었다.
“술은 종류가 제법 있는데, 혹시 찾으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설매주를 가져다주세요.”
“네. 곧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점소이의 말에 은한이 술을 주문했고, 검성은 음식들이 제법 푸짐하게 나오자 젓가락을 들었다.
“이거 음식이 제법 잘 나오는구나? 여기 꽤 비싼 것이 아니냐?”
“이 정도는 부담 없이 사 드릴 수 있게 지원이 나오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음에 드는 답이구나.”
검성은 앞에 나온 음식들을 향해 젓가락질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뒷전이 되어 버린 모용연은 이 모습을 어색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도 이제 할 말 없으면 돌아가는 게 어때요?”
은한은 모용연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축객령(逐客令)이 떨어졌음에도 그는 요지부동 움직이지 않았다.
“이거, 아직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했는데 가기에는 아쉬운데요.”
넉살 좋은 모용연의 말에 은한은 다시 한번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 그의 성격을 알고 있던 그녀였지만, 오늘은 더욱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어나지 않을 거면 그쪽도 식사나 하시죠.”
“그럴까요? 그럼―”
모용연은 검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젓가락을 얼른 들었고 은한이 뭐라 말리기도 전에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의 넉살 좋은 모습에 검성은 웃음을 보였고, 은한은 못마땅한 듯 노려보다가 결국 말리지 못하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고. 화미랑(華美郞)의 소문을 듣긴 했지만 직접 보니 명불허전이군요.”
젓가락을 바쁘게 놀리던 모용연은 검성을 보며 말을 이었다.
“세가를 떠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것이 화미랑의 이야기였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습니다.”
모용연의 말에 검성과 은한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용연이 검성을 화미랑으로 알고 접근했다는 사실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모양이네요?”
“본론이요?”
은한의 말에 모용연은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우리한테 접근했던 이유도 임 소협을 알아보고 접근한 거 아닌가요?”
모용연은 자신에게 계속 까칠하게 대하는 은한이 조금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서 만난 적이 있던가요? 분명히 낯이 익은데 말이지요…….”
모용연은 은한이 계속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말투로 차갑게 대하자 그녀를 유심히 보았다. 분명히 익숙한 얼굴이긴 하나 기억이 나진 않았다.
모용연의 말은 은한을 더욱 화나게 하였다. 식사를 하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를 노려보았다.
“하고 싶은 말 얼른 하고 물러나시죠. 우린 식사를 해야 하니까요.”
은한은 한 자 한 자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날이 서려 있어 괜히 죄가 없는 검성까지도 움찔했다.
‘이거, 은한도 화가 나니 무섭군…….’
검성은 은한이 화를 저렇게 내는 모습을 처음 봤기에 둘 사이가 더욱 궁금해졌으나, 지금 물을 수가 없었기에 나중에 물어보아야겠다 생각했다.
모용연도 은한의 거듭된 축객령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검성을 보았다.
“……제가 너무 귀찮게 해 드렸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괜찮으니 할 말이나 하시지요.”
“지금 임 소협과 일행도 서안으로 가시는 게 맞습니까?”
모용연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며 물었다. 은한은 검성을 보며 대답하지 말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으나 검성은 그것을 무시했다.
“네. 현재 서안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임 소협도 천무지회에 참가를 하는 게 맞습니까?”
“네. 그러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궁금하셨던 겁니까?”
검성은 모용연이 대단한 것을 물어올지 알았는데 천무지회 참가에 대한 것을 묻자 조금은 김이 빠졌다.
“화미랑의 행보는 제법 화제가 되고 있으니 모두의 관심이죠. 천무지회에 참가한다면 그 소문의 실력도 천무지회에서 볼 수 있겠군요.”
모용연은 검성의 대답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기뻐하는 것 보니 그쪽도 참가하는가 보죠?”
듣고 있던 은한이 모용연을 향해 물었다.
“참가할 생각 없이 그저 세가의 동생들의 인솔을 위해 가는 것이었는데…… 화미랑이 참가한다고 하니 저도 나가야겠죠.”
모용연의 답에 은한은 피식 웃음을 보였다. 이미 예상했던 답이었다. 그녀가 아는 모용연은 호승심이 강한 사람이었기에 검성 제자의 소문을 듣고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