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80화 (80/251)

80화― 서안행(西安行)(1)

화산(華山) 조양봉(朝陽峰).

조양봉의 중턱 인적이 드문 곳. 약선의 거처로 전서구(傳書鳩)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전서구는 약선의 거처를 한 바퀴 돌더니 집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날아들었고, 전서구가 날아간 곳에는 약선이 있었다.

이미 백 세가 넘은 나이였지만 외견상으로는 사십 대 정도의 중년 미부로 보였다. 직접 제조한 영약들과 검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렸을 적부터 배운 주안술(駐顔術)의 영향이었다.

거기에 약선이라는 칭호로 남들은 그녀의 무공이 강하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오절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만큼 내공도 심후하였기에 그 영향도 있었다.

푸드덕―

전서구가 그녀의 어깨에 앉자, 약선은 발에 달린 연통을 열어 작은 종이를 꺼냈다.

“멀리 날아오느라 고생했구나.”

약선은 전서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는 하늘로 날려 보내 주었다.

“흐음…… 그가 생각보다 시끌벅적하게 움직이는구나.”

종이를 펴 본 약선은 살짝 미소 지었다.

<검성의 제자 임진후, 북해빙궁의 은설풍(隱雪風) 조준혁과 일월문의 소문주 천풍 공자(天風公子)를 일 합에 패퇴시킴. 현재 목적지는 서안행(西安行).>

“서안이라면…… 설마 천무지회(天武之會)에 나서려는 것은 아니겠지?”

약선은 검성의 목적지가 서안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림맹으로 가는 것인가?”

약선도 천무지회에 대한 소문을 얼마 전 화산파에 잠깐 방문했을 때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그래도 검성이 천무지회에 참가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렇다면 무림맹을 방문하는 것이라 여겼다.

“서문세가에서도 천무지회로 나갈 것인데…… 그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약선이 속한 서문세가는 오대세가에 들지는 않았지만, 소수 정예인 일가였다.

서문세가의 일원들은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나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 명이 서문애령 약선이었다.

보통 일가를 이룬 세가들은 특출한 무예가 한 가지씩 있기 마련이다. 남궁세가의 검이나 하북팽가의 도가 그러하듯이 서문세가 역시 특출한 무예가 있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보통의 세가와 달리 서문세가는 모든 무예가 뛰어났다.

소수 정예인 서문세가의 가인 중에서도, 특히나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그 재능을 꽃피우는 경지 자체가 다른 무림인들과 달랐다.

하여 서문세가에는 그들이 남긴 많은 무공서와 비법들이 존재했다. 오죽하면 오절이었던 신투가 서문세가의 비급을 탐내어 훔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훔쳐 내지 못했고 오히려 서문세가에 갔다가 서문애령에게 반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던 화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일을 두고 황궁의 비고마저 자신의 집처럼 드나드는 신투가 서문세가에는 훔치러 갔다가 도리어 마음을 빼앗기고 왔다고 우스갯소리도 했었다.

물론 그런 대단한 서문세가의 가인이라 하더라도 검성의 상대는 되지 못할 터였다.

약선은 현 서문세가의 가주이자 자신의 동생인 서문환(西門煥)을 걱정했다.

약선의 의술로 인해 서문세가는 현재 각종 영약과 환단으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자신의 동생인 서문환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본래 나이 차가 많았던 동생인지라 아직 세수가 일백까지는 되지 않았지만, 그 나이가 적지 않지 않았다. 하여 역대 가주 중에서도 가장 오래 가주직을 수행하는 동인물이었다.

문제는, 동생을 비롯한 서문세가의 가인들이 검성을 증오한다는 점이었다.

검성에 대한 자신의 오랜 짝사랑을 지켜봐 온 그녀의 동생 서문환이나 서문세가의 장로들은 그를 거의 증오하다시피 했다.

감히 서문세가의 자랑인 약선을 희롱한다며 동생 서문환부터 시작하여 검성에게 줄줄이 도전했던 일도 있었다.

“설마…… 젊어진 그를 알아보지는 못하겠지?”

그 점이 참 우려스러웠다. 물론 서문세가의 인물들이 혹시나 검성을 만난다 해도 그를 쉽게 알아보진 못할 것이다.

검성의 나이 든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지라 동생 서문환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에야 다툼이 벌어지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왠지 모를 불안감에 전서구가 떠난 하늘을 약선은 바라보았고, 이내 이윤후가 수련하고 있는 동굴로 향했다.

약선도 이제까지 제자를 두지 않고 혼인도 하지 않은 탓에 이윤후가 각별하게 느껴졌다. 물론 검성의 제자라는 점도 그런 마음의 이유 중 하나였다.

검성이 떠나고 난 후, 약선은 이윤후의 수련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었다.

특히 그녀의 단약으로 인해 이윤후의 내공은 이미 비뢰검결을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숙련도를 위해 더욱 단련하고 있을 뿐, 검성이 말했던 일 년보다 수련 기간이더욱 단축되리라는 게 약선의 생각이었다.

* * *

“낙양에 오니 확실히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군.”

검성은 갈색 말을 천천히 몰며 은한의 쪽으로 붙었다. 그들은 천진에서 개방의 방주 소천개와 만난 후 서안으로 가기 위해 말을 구매했고, 그것을 타고 낙양까지 와 있었다.

개방에서 천무지회에 참여 신청을 해 주기로 해서 검성과 은한은 여유롭게 서안으로 향할 수 있었다.

넉넉히 남은 시일 동안, 검성은 강호의 유명 객잔들을 돌며 각지의 명주를 즐기며 천천히 도후와 신투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다.

“확실히 서안에 가까워질수록 무림인들이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아요.”

은한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확실히 낙양에 들어서고부터 무림인들이 더욱 많이 눈에 띄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서안으로 향하는 길에 낙양을 거쳐 가는 상인들이 많았고, 게다가 이번엔 천무지회까지 열리니 무림인들까지 더욱 몰린 것이다.

신장의 무기인 천무신창이 상품으로 걸린 데다가 무림맹과 구파일방 간의 사이가 요원하여 비무 대회 자체도 오랜만이었던 탓에 사람들의 관심을 더욱 받고 있었다.

“객잔에 자리가 없는 게 아닌가?”

검성은 화진객잔의 설매주(雪梅酒)가 유명하다고 은한에게 들어 기대하고 있었는데, 무림인들이 다수 보이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은한은 미소를 보였다.

“미리 숙소는 잡아 뒀어요. 객잔에 자리가 없더라도 방에서 식사하면 되죠.”

“그래? 그럼, 걱정이 없겠군.”

은한의 말에 검성은 안심했다.

그런 모습에 은한은 정말 검성의 모습이 젊어지자 정말 행동까지 젊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들어 왔던 검성은 진중하고, 올바르며, 정파인의 모범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검성은 들었던 것과 전혀 달랐다.

“화진객잔은 워낙 규모가 큰 덕에 이 층에 따로 예약석이 있다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은한은 자신을 따르고 있는 비천의 은위단(隱衛團)들을 통해 화진객잔에 미리 자리와 숙실을 잡아 두었다.

얼마 가지 않아 화진객잔의 큰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객잔 앞에는 마차들과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객잔 자체도 워낙 큰 건물이었는데,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이 객잔 앞에서 들어가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말을 맡기는 곳도 따로 있어 검성과 은한은 말에서 내려 예약했음을 알리며 말을 맡겼고, 그 덕에 붐비는 사람들과 달리 바로 객잔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와, 정말 크군.”

객잔 안으로 들어간 검성은 탄성을 지르며 은한을 보았다. 은한도 검성의 말처럼 큰 규모에 놀랐다.

“어서 오십시오. 이 층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들어오자, 점소이가 다가와 안내해 왔다. 바로 뒤돌아 이 층으로 향하는 모습에 검성과 은한은 별말 없이 그를 뒤따랐다.

“우리가 예약한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밖에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 보셨잖아요. 밖을 통제하고 있었으니, 들어온 우리는 예약이 된 사람이라고 판단한 거겠죠. 일 층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아, 그렇군. 예전에 낙양에 왔을 때는 이렇게 큰 객잔은 없었는데 말이지.”

검성은 계단을 오르면서도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며 신기해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예전’이란 은한이 태어나기도 전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를 알기에 은한 역시 묻지 않고 걸음을 옮겼으나, 강호 무림을 제법 돌아다닌 그녀로서도 이런 큰 규모의 객잔은 처음이었다.

이 층에 올라서자 일 층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일 층은 탁자와 의자들이 조금 빽빽하게 있었다면, 이 층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탁자와 의자가 놓였고, 자리도 널찍하여 여유롭게 보였다.

그들이 이 층으로 올라오자 그 층에 있던 모두가 검성과 은한을 보았다. 그런 시선에 익숙하지 않던 은한이었지만, 검성과 다닌 덕에 많이 단련되어 놀라지는 않았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점소이는 한쪽 구석의 자리에 그들을 안내했고, 검성과 은한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음식은 바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말을 마치고는 휑 하니 가 버렸다.

“주문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음식을 내오겠다는 거야?”

“아마도 이곳에는 기본으로 나오는 음식이 있는 모양이네요. 예약한 자리니까요.”

“그런 것도 있어?”

은한의 말에 검성은 신기한 듯 물었다.

“우리가 예약한 것만으로 자리를 맡아 둔 셈이니 최소한 시켜야 하는 음식의 양이 있는 모양이죠. 아마 술은 따로 시켜야 할 테니 음식을 가져오면 말하도록 하죠.”

“흐음…… 그렇군.”

검성은 자신들이 시선을 받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꽤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기에 검성도 살피고 있었다.

이곳은 넓고 여유로운 반면, 자리가 스무 석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중 절반 이상이 무림인들로 보였다.

“이곳에서도 주목을 받으시네요.”

은한은 사람들이 검성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옆에 있는 자신은 딱히 시선을 받고 있지도 않았다. 이미 검성에 대한 소문이 전 무림에 퍼져 있었기에 가는 곳마다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월문의 후계자이자, 정파 후기지수 중 손에 꼽히던 천풍 공자(天風公子) 감오를 일 합에 제압한 일이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었다.

거기에 북해빙궁의 은설풍(隱雪風) 조준혁도 검성에게 패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사람들이 더욱 놀랐었다.

천풍 공자가 패한 일이야 후기지수를 꺾은 정도의 일이니 그렇게까지 놀랄 일은 아니었으나, 북해빙궁의 은설풍이 패한 것은 소문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보이게 하는 일이었다.

사패 중 한 곳인 북해빙궁의 최고수라고 꼽히는 은설풍이 이제 갓 무림에 출두한 검성의 제자에게 패했다는 소문을 많은 이들이 믿지 못하고 있었다.

“소문이 소문을 더하는 데다가, 검성의 제자라는 칭호가 워낙 대단하니까요.”

은한의 말대로 현재 정파는 위기감에 고조되고 있었는데, 오절의 제자들이 속속들이 나타나면서 어느 정도 희망을 더해 가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검성의 제자의 실력이 워낙 뛰어난 것이 밝혀지면서 다른 제자들에게도 관심이 많이 가고 있었다.

도후와 신투의 제자는 나타났다는 소문만 무성하지 실제로 본 사람이 적어 둘의 이야기가 워낙 없었다. 그에 반해 검성의 제자인 임진후와 이윤후의 소식은 워낙 크게 퍼지게 되어 사파들도 관심 있게 살피고 있었다.

“천무지회에 관한 관심이 크긴 크군.”

주위에 보이는 무림인들의 복색과 소속 문양만 봐도 낙양의 근처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닌 것은 알 수가 있었다.

거의 외지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검성과 은한처럼 낙양을 거쳐 서안으로 가는 무인들인 것이다.

“워낙 오랜만에 열리는 무림의 큰 행사다 보니, 다들 들떠 있는 거 같기는 해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무림인들의 숫자가 정말 많았다. 이것만 살펴도 정파에서 이번 천무지회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정파의 화합. 거기에 신장의 무기까지 걸린 무제(武祭)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무림인이 한곳을 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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