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검성의 속내
검성은 식사를 마친 후 운공을 한 후 명상을 가지며 생각을 정리했다.
해시(亥時)[오후9시~11시]가 지나자, 기다리고 있었던 은한이 찾아왔다.
“들어가도 될까요?”
“그래. 들어오너라.”
명상을 즐기는 검성의 감각은 아주 날카로워져 있었기에 이미 은한이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올 때부터 그녀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검성은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고는 의자에 앉았다.
은한은 방에 들어와 가볍게 인사를 하고는 검성의 앞자리에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희가 서안으로 가는 것을 보고했고, 그에 따른 정보를 계속 받기로 했어요. 천무지회가 생각 외로 규모가 커질 듯하여 저희 쪽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듯해요.”
“신장의 무기가 상품으로 걸려 있으니 그렇겠지. 거기에 다른 의도가 또 있는 듯하고 말이야.”
“알고 계셨어요?”
검성은 자세한 사항까진 몰랐으나 소천개의 마지막 말이나 은한이 그동안 해 주었던 무림의 상황상 천무지회가 조금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다른 의도가 있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림맹에서 이번 천무지회를 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해요.”
“두 가지?”
“네. 우선 표면적으론 금화상단에서 맡긴 천무신창의 주인을 가리겠다는 이유가 있지만, 사실 천무지회를 개최해 무림맹과 구파일방 및 오대세가 등 정파 간의 화합을 다지고 사왕련에 맞설 전략을 수립하기 위함이 진짜 이유예요.”
“그렇군. 정파들은 사이가 요원하다고 했으니, 이번 일을 계기로 뭉치겠다는 건가?”
“네. 그런 의도가 있는 듯해요. 사왕련이 워낙 세를 빠르게 불리고 있다 보니 정파에서도 대비해야 하니까요. 사파 외에도 사패의 눈치도 있으니 천무지회를 핑계 삼아 모이려는 거구요.”
검성은 이미 은한을 통해 정파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현재 정파의 결속력이 형편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이제야 움직이는 정파가 한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미 틀어질 대로 틀어진 이들이 위협 앞에 뭉치는 셈이겠군. 그런 모임이 잘될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마 많은 잡음이 일겠죠. 워낙 오랜 기간 동안 무림맹이 현 맹주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그에게 약점이 잡혀 아무 소리 못 하고 있었으니까요.”
“정파로서는 큰 위기인 셈이군. 이미 사파는 흑월도존이라는 자로 인해 한번 뭉쳤던 일이 있었으니, 다시 뭉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을 거야. 일 년 안에 정사가 부딪치게 되겠구나.”
검성은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은한은 그의 말에 조금은 놀란 듯 표정을 보였다.
“혹시 검성께서는 정사가 큰 싸움이 나게 되면 나서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은한은 조심스럽게 묻고는 검성의 눈치를 살폈다. 예전의 검성이라면 당연히 정파의 일에 나섰을 게 분명했지만, 지금까지 겪어 온 검성은 자신이 듣던 평가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비천은 늘 정파의 편에서 도움을 주었기에 검성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가 그들에겐 중요한 문제였다. 검성만 정파의 편에 서 준다면 사파도 절대 도발해 오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비천회주도 은한에게 이 문제를 확실히 파악하라는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검성은 그녀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은 채 조금 생각에 빠졌다. 은한은 초조하게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젠 오절의 시대가 아니니, 내가 굳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저 내가 할 일을 할 뿐. 정파가 사파에게 패하던 굴욕을 당하던 내 알바가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정파로서 많은 명성을 쌓을 때, 우리의 명성을 이용해 정파는 사파를 억압해 왔지. 그것을 도리어 반대로 당한다고 한들 정파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차라리 그때 정파로서 모습을 보였다면 사파의 분노를 사지 않았을 것이니라.”
“…….”
은한은 검성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었기에 자신은 검성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 시절 정파는 오절의 명성을 이용해 사파를 억압했고, 한층 움츠러든 사파의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채 공존을 허락하지 않았다.
정파가 정파답지 않았다. 그렇기에 흑월도존 유상휘라는 걸출한 인물의 기치 아래 사파가 뭉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흑월도존은 사파임에도 의와 협을 아는 협객이었으나, 그의 제자인 독고진은 스승과 달리 복수를 원했기에 사왕련은 사마련과 전혀 다른 성향의 조직이었다.
사왕련의 핵심은 오절의 시대에 정파에 억압을 당해 왔던 이들의 후인들이었고 원한이 남다른 자들이었다. 유상휘가 자신들의 한을 풀어 줄 거라 기대하고 모였지만, 해결하지 못했기에 그 원한이 더욱 쌓인 자들이었다.
비천은 현 무림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사왕련이 사파를 규합하고 나서면 정파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그런 그들에게 눈에 띈 것이 검성이었다. 검성만 나서 준다면 사파가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 줄 검성이 아니었다.
‘이거, 너무 회주의 말대로 가는데…….’
비천은 사왕련의 움직임을 큰 위협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부에서 검성의 존재를 이용하자는 말이 나왔을 때, 비천회주는 검성의 마음속이라도 들여다본 듯 검성은 아마 방관자가 될 것이라 예상을 했었고 검성의 이용을 일축했었다.
그래도 비천의 많은 사람들이 이전 검성의 성향이라면 정파를 도와줄 것이라 봤지만, 결과는 은한이 들은 대로였다. 비천회주의 말대로 방관자의 역할을 할 듯했다.
‘회주는 도대체 어떻게 검성의 마음과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지…….’
개방에서의 일도 그렇고, 은한은 검성의 마음을 예측하는 회주가 검성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주라는 자가 이번에 이 일을 벌이는 것이 아니냐?”
“네. 그렇죠. 이번에 변절한 오절의 첩자들을 몰아낼 정보를 모두에게 준 것도 그였습니다. 아마 그것을 계기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도 조금은 마음을 연 거 같아요.”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은 것이냐?”
은한을 통해 무림맹주가 믿을 수 없는 인물이고 변절한 오절의 하수인과 같은 자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물은 것이었다.
“저희도 그 의심을 하고 있기는 한데…… 이번에 첩자들을 몰아내면서 도후, 신투와의 연결 고리를 끊어 버린 셈이라, 조금은 조심스러운 상황입니다.”
“보통 인물은 아니로군.”
“네. 사실 그자의 무공이 급상승하게 된 것도 변절한 오절들이 그가 야욕이 있음을 판단하고 기연을 가장해 무공을 얻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현재 맹주의 자리에 앉히고 뒤에서 조종을 하다시피 해 왔는데 이번 일로 도리어 뒤통수를 맞게 된 상황이니까요.”
“그럼, 신투나 도후가 그를 노릴 수도 있겠군?”
“아마도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은한은 자신이 생각지 못한 부분을 검성이 지적해 오자 당황했다. 검성의 말이 맞았다.
정보를 취합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으나, 정보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검성의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서안행이 나름대로 재미가 있을 거 같은데?”
검성이 조금은 신이 난 듯해 보였고 그것을 은한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검성은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솔직히 예전에는 너무 심각한 일들만 가득해서 책임감과 부담감이 컸는데, 지금 다시 무림에 나와 보니 정말 다른 기분이구나.”
“뭐가 그리 다른가요?”
“처음 무림에 나왔을 때, 오절이라 불렸던 그들과 함께 무림에서 명성을 얻었지. 무림을 돌아다니며 실력을 쌓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이미 많은 기대와 부담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었다.”
“…….”
“당시 마교와 사패의 힘이 워낙 강력했기에 무림은 큰 위기였다. 우리는 마교와 일전에서 오절의 칭호를 얻었지. 그렇게 정파의 상징이 되었다.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구파일방은 우리의 존재를 탐탁지 않아 했지.”
“구파일방이요?”
은한은 자신이 모르는 검성의 이야기라 관심이 생겨 물었다.
“오절이라는 칭호는 말 그대로 정파의 절대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명문 대파이자 무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구파일방에서는 오절에 단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것이 못마땅했던 것이지.”
“아, 그렇군요. 그래도 검성께서는 무당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가요?”
“맞다. 당시 무당의 장문인이 배려를 해 주어 무당에서 수련도 했고 그들의 검을 공부하기도 했었지. 새로 창안했던 만상오행공(萬象五行功)은 무당에서 배운 공부의 결과이기도 하고 말이야. 하지만 무당을 제외하고는 다른 문파들은 우리의 존재를 탐탁지 않아 했다.”
오절의 명성이 더해 갈수록 구파일방의 평가는 낮아졌기에 구파일방에서는 오절과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구파일방의 실력자들로부터 많은 도전을 받기도 했었으나, 그 결과 때문에 더욱 오절은 명성이 높아지고 구파일방의 위신은 더욱 땅에 떨어졌다.
물론 구파일방 중 무당파와 개방 쪽과 관계가 좋았으나, 다른 명문 대파들은 검성을 존경하면서도, 질시했다.
그랬던 과거가 있기에, 검성은 천무지회로 화합을 도모하려는 정파의 모습이 마치 모래알과 같아 보였다.
“어찌 되었든 간에 천무지회로 인해 그간 사이가 나빴던 무림맹과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 간의 대화가 이어지는 건 확실한 거 같아요. 저희로서는 이제라도 서로 협력하여 사왕련이 도발해 오지 못하도록 힘을 합쳐 주었으면 좋겠네요.”
은한은 정사대전을 바라지 않았기에 정파가 이번 기회로 반드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했지만, 회주나 검성의 말처럼 쉽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사대전이 일어날 상황이 된다면, ‘그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한 바가 있나?”
“네? 그건 저도 아직…….”
검성이 묻는 그들이란 신투와 도후를 뜻함을 알았다. 개방에서 이야기한 신투의 벽령이나 도후의 십인회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은한도 비천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검성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간 그들이 보여 준 행보라면 자기네들이 유리한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겠죠?”
자신 없는 말투로 은한이 답하자, 검성은 답이 없이 생각에 빠졌다.
그녀가 알기로, 변절한 오절들은 처음의 뜻을 잃어버리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음지에서 무림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 왔다.
그들이 만들어 낸 괴물이 현재 무림맹주인 우금이었고,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친우마저 배신하고 현 정사대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만들어 낸 인물이었다. 유상휘를 병들게 한 것도 우금이라는 것을 은한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은한도 우금에 대해 생각해 보니 갑자기 의문점이 들었다.
‘그가 꼭두각시에서 벗어나 변절한 오절의 첩자들을 내치고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더 위험한 것이 아닌가?’
갑자기 그 생각이 든 은한은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보면 그가 현 무림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지 않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천무지회에 대한 의심이 피어올랐다. 왠지 천무지회를 통한 회합도 다른 의도가 있지 않나 의문까지 들었다.
‘물어봐야겠어…….’
은한은 비천에서도 이미 무림맹주에 대해 의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확인하고 싶어졌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 이만 나가 볼게요. 쉬세요.”
“그래. 너도 쉬도록 해라.”
은한의 눈빛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검성은 굳이 그녀를 잡지 않았다.
은한이 나가자 검성은 좌선한 채 다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