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77화 (77/251)

77화― 소천개의 제안(提案)

홍아는 자신과 눈을 맞추고 있는 검성의 눈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천무지회(天武之會)에 참가하세요.”

“천무지회?”

검성은 홍아의 말에 은한을 보았다.

“천무지회는 이번에 무림맹에서 열리는 비무 대회예요. 아, 그렇군요…… 천무지회에 참가한다면 무림맹 내에 잠입할 수가 있어요…….”

은한은 말을 하다 홍아가 말한 좋은 방법이라는 의미를 알 수가 있었다.

무림맹은 이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방파들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금화상단에서 기부해 온 천무신창을 상품으로 걸고 비무 대회를 열기로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무 대회였지만, 사실 무림맹은 이번 천무지회를 통해 정파의 주요 인사들과 유대를 쌓기 위한 자리였다.

특히 이번 첩자 색출 건에서 무림맹이 명부를 제공하며 업적을 쌓은 상황이었기에, 이번 천무지회가 정파 간의 결속을 한층 더 끌어올릴 기회였다.

이번 천무지회만 잘 마무리된다면, 무림맹의 기치 아래 정파 모두가 하나 되어 최근 세를 불려 나가는 사왕련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 터였다.

“무림맹은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하지만 검성의 후인이 천무지회에 참가한다면, 들어갈 명분이 생기겠죠.”

홍아의 말에 검성은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홍아는 놀랐지만 손길을 피하지는 않았다.

“정보와 도움. 모두 감사합니다.”

검성은 몸을 일으켜 소천개를 향해 예를 취했다.

“이것으로 검성과 취선개님과의 약조는 끝이 난 거로 생각해도 되겠지?”

소천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성을 보았고, 홍아도 방주 뒤로 달려갔다.

“네. 충분히 감사합니다.”

이 정도면 취선개와의 약조를 잘 활용한 셈이었다. 숨어 버린 도후와 신투의 정보를 들었고, 다음 목적지까지 정할 수 있었으니까.

상황을 지켜보던 은한은 만지작거리던 품 안의 서찰에서 손을 뗐다.

‘설마 회주는 검성과 개방의 취선개 간의 약조도 알고 계셨던 건가? 그래서 마지막에 나서라고…….’

은한은 회주의 명을 이제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미리 모든 것을 알려 주지 않은 점은 살짝 서운했으나, 자신이 불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천무지회에 참가할 건가?”

소천개는 자신의 뒤에 숨은 홍아를 등에 업고서는 물었다.

“생각을 좀 해 봐야겠지만 아마도 그럴 거 같습니다.”

“자네라면 천무지회의 우승도 노려볼 만하겠지. 정파의 신진고수 중 한 명인 천풍 공자를 단 일 초에 제압했으니 말이야.”

“…….”

“그런데 말이야…….”

씨익 웃는 소천개의 모습에 검성은 그가 거래를 청해 올 것임을 직감했다.

“내가 한 가지 제안을 할까 하는데, 어떤가?”

“어떤 제안입니까?”

“천무지회 상품이 천무신창(天武神槍)인데…… 자네가 우승하여 그것을 개방에 내준다면, 개방은 자네와 검성이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줄 마음이 있는데 어떤가?”

소천개의 말에 검성은 살짝 생각에 빠졌다. 검성은 어차피 천무지회에 참가하더라도 우승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단지 무림맹에 잡혀 있다는 미홍을 만나 정보를 얻으려고 했는데, 소천개의 제안은 살짝 구미가 당겼다.

비천회에서 신투와 도후의 근황을 확인해 주겠다고 했지만, 개방에서까지 정보를 계속 들을 수 있다면 일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제가 너무 밑지는 것이 아닙니까?”

“밑진다? 흠…….”

소천개는 검성의 말에 등 뒤에 안고 있는 홍아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어떻게 생각해?]

소천개가 전음을 날리자, 홍아는 소천개의 등에다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홍아는 선천적으로 무공을 익히기 어려운 몸을 타고나 전혀 무공을 익히지 못해 전음을 할 수가 없었다.

거리가 있었을 때는 소천개가 기막을 펼쳐 대화가 새지 못하게 차단했으나 너무 가까웠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가 변절된 오절을 찾아 무엇을 할진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어요. 그러니 그를 도와주어도 손해는 없어요. 게다가 그 과정에서 천무신창까지 받으면 우리에겐 큰 이득인 셈이죠. 하지만 화미랑은 정보를 더 소중히 할 게 분명하니, 더 큰 이익을 위해 일단 제안을 거둬요.>

홍아가 그의 등에 길게 적었다. 소천개는 홍아가 적은 것을 알아들었지만, 제안을 거두면 검성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봐 조금은 걱정되었다.

그런 소천개의 걱정을 안 홍아는 소천개의 등을 꼬집었고, 결국 홍아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흠…… 임 소협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가 없지. 없던 일로 하지.”

“그러지요.”

씨익, 이번엔 검성이 웃었다.

제안 자체는 소천개의 뜻이나, 제안을 거둔 것은 홍아의 뜻. 요컨대 방주가 천무신창을 원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걸 파악했기에 검성은 굳이 안달 내지 않았다. 홍아가 아무리 천재라 할지라도, 경험을 쌓은 노련한 검성 앞에선 그저 귀여운 소녀에 불과했다.

자신의 칼 같은 반응에, 과연 소천개는 바로 반응해 왔다.

“자, 잠깐. 소협은 성정이 급하구먼.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떠한가?”

소천개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참지 못하고 즉시 말을 꺼냈고, 소홍에게 등을 엄청나게 꼬집혀야 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어차피 자네나 검성께도 천무신창은 필요 없는 물건이 아니지 않은가?”

“생긴다면 그렇지요.”

소천개의 반응에 검성은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대를 이길 자는 정파 무림에 존재하지 않을 거야.”

소천개는 검성 즉 임진후의 무위라면 우승은 당연하다 여기고 있었다.

“천무신창을 우리에게 넘겨주면 현재 무림에 나와 있는 신투의 제자와 도후의 제자를 미행하여 정보를 넘겨주지. 그리고…… 다른 부탁도 하나 나중에 들어주는 것으로 하겠네. 어떤가?”

소천개의 제안에 검성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취선개와의 약조를 사용한 것이 조금 아까웠는데, 거래를 통해 개방의 적극적 도움과 함께 현 방주의 약조까지 받아 낸 셈이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제가 우승을 한다면 천무신창을 받아 개방에 드리겠습니다.”

소천개는 검성의 말에 활짝 웃었다.

“하하, 잘 생각했어.”

소천개는 웃는 동안에도 홍아에게 등을 꼬집혀야 했다. 홍아는 소천개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면 더 이득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기에 웃고 있는 그가 한심했다.

“바로 서안 무림맹으로 향할 건가?”

소천개의 물음에 검성은 은한을 보았다. 혹시 다른 일이 있을지 하고 물어본 것이었으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딱히 다른 일이 없으니 바로 서안으로 갈까 합니다.”

“그럼, 자네의 참가 신청은 개방에서 해 주도록 하지.”

“참가 신청이요?”

“천무지회가 개최되기까지 삼 주의 여유가 있긴 하나, 참가 신청은 열흘 전까지 해야지. 천진에서 말을 타고 바쁘게 가느니, 우리 쪽 사람들을 통해 신청하는 것이 편하지 않겠나?”

소천개는 검성에게 북해설응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개방의 정보력에 따르면 북해설응은 첫 번째 제자인 이윤후에게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기간이 빠듯하군요.”

“사왕련이 사파를 규합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 정파로서도 서두를 수밖에 없는 것이지…….”

검성의 물음에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소천개의 얼굴이 그리 좋지 못했다. 한 집단을 책임지는 그의 입장에선 정사파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것을 결코 반길 수 없었다.

방주의 심중을 헤아린 검성도 표정을 굳혔다.

“잘 부탁드립니다, 방주.”

이야기가 정리되자 검성과 은한은 그곳을 떠났고, 소천개는 홍아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 * *

천무지회에 대한 이야기가 무림에 파다하게 돌기 시작했고, 금화상단이 구해서 무림맹에게 맡긴 신장(神匠)의 무기인 천무신창이 우승 상품으로 걸리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다.

무림맹은 십오 세에서 삼십 세까지의 신진고수들만 참여할 수 있다고 제한을 걸었다.

이내 천무신창에 관심을 가지던 정파의 많은 문파가 너 나 할 것 없이 신청하기 시작했고, 천무지회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었다.

많은 정파 무림인들이 천무지회에 참가하고 구경하기 위해 서안으로 몰려들었다.

그간 사왕련의 준동과 사파의 규합으로 인해 정파는 걱정이 많았는데, 천무지회를 핑계 삼아 정파의 수뇌부들이 모인다는 소문이 은밀하게 나기 시작했고, 많은 정파인들이 그 소식을 반겼다.

무림맹주인 비천신검 우금이 장기 집권을 하면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서로 척을 지고 있었기에, 이번 천무지회를 계기로 삼아 ‘하나 된 정파’를 바라는 이들이 많아졌다.

사왕련의 칼끝이 사파 내부를 향하고 있어 정사가 아직은 부딪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사왕련이 사파를 모두 규합하고 나면 그들의 칼끝은 바로 정파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정파 간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무림맹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도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로 간의 앙금을 풀 필요가 있었고, 무림맹은 천무지회로 그것을 풀고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소천개와 홍아를 만나고 헤어진 뒤 말없이 걷고 있는 검성에게 은한은 다가가 물었다.

“뭘?”

“천무지회에 참가하는 것과 무림맹에서 천변미호를 만나는 것. 둘 다요.”

은한의 물음에 검성은 발걸음을 멈춘 채 그녀를 보았다.

“어차피 둘 다 해야 하니 서안으로 가야지.”

“바로요?”

검성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은한은 그를 따르며 물었다.

“백아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야 말을 구해서 여행을 즐기며 가는 것이 좋겠지. 개방에서 참여 신청을 해 준다고 했으니 시간이야 넉넉하고 말이야.”

“그럼, 일단 하루는 여기서 묵고 가요.”

“그건 왜?”

“연락도 해야 하고…… 저희 목적지가 바뀌었으니 보고를 하고 의견을 들어야죠. 혹시 추가로 소식이 들어왔을지도 모르고요.”

“그렇군. 그럼 아까 식사했던 객잔으로 가지.”

은한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았다. 특히 비천에서 물어오는 정보라면 하루 정도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당장 서안으로 빨리 출발한다고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었기에 검성의 마음이 급하지도 않았다.

“아까 술이 꽤 맛이 좋았나 봐요?”

은한은 슬쩍 검성을 떠보며 말했고, 그녀의 말에 검성이 미소를 보였다. 은한은 검성이 식사했던 그 객잔으로 바로 가자고 한 것으로 보아 거기에서 마셨던 술이 마음에 들었을 것이라 예상했다.

여행 도중 계속 술을 꽤 까다롭게 즐겼던 검성이라 은한도 그가 술에 관해 욕심이 꽤 있음을 알고 있었다.

“이거, 들켰나? 아까 점소이가 말하길 유화주(柳花酒)라고 그 객잔에서만 따로 주문하는 술이라 했는데 제법 맛이 괜찮더구나.”

검성은 속마음이 은한에게 들키자 멋쩍게 웃음을 보였고, 은한도 자신의 의견에 따라 주는 검성의 모습에 딱히 불만은 없었기에 웃어넘겼다.

복수를 위해 움직이는 검성이기에 조금 더 딱딱하게 굴 것이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사소한 일상을 굉장히 즐기는 모습이었기에 은한 역시 같이 다니면서 마음이 편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전하고, 저쪽에서 연락이 오는 대로 확인한 후에 찾아갈게요.”

“찾아온다고? 할 말이라도 있나?”

“네. 서안 무림맹으로 향하면서 꼭 아셔야 할 문제가 있어요. 아직은 무림에 관해 모르시는 것이 많으니, 무림맹으로 가는 동안 최대한 사정을 다 아셔야죠.”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오십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검성은 자신이 모르고 있던 무림 정보를 들을 때마다 흥미를 느꼈다. 마치 손녀 손주들이 어떻게 장성했는지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검성과 은한은 발걸음을 서둘러 객잔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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