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개방을 가다(1)
“청룡(靑龍), 와 있느냐?”
우금의 외침에 그의 앞에 한 사내가 무릎을 꿇은 채 나타났다.
무림맹 사대무단 중 청룡단의 수장이자, 얼굴에 용문(龍紋)이 있는 청룡이었다.
“정리는 다 되었느냐?”
우금은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으며 말했고, 청룡은 그런 그를 올려다보지 않은 채 답했다.
“네. 무림맹 내의 파악했던 모든 이들을 제거했습니다. 하지만 무림맹 분타들에 있던 자들은 몇 명 놓쳤다고 합니다.”
“놓쳐?”
옷을 입고 있던 우금이 손을 멈춘 채 눈빛이 매서워졌고 청룡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그들끼리 따로 연락을 빠르게 전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무림맹 내에 인원들을 먼저 제압하고 분타로 확대해 나갔는데, 이미 소식이 퍼져 놓친 곳이 꽤 있었습니다.”
“그렇군. 그럴 수도 있을 거야. 그동안 우릴 뒤에서 조종하려 했던 조직이니 말이야.”
우금은 옷을 마저 챙겨 입고 창가에 다가가 창문을 열었고, 아직 잠들어 있는 미홍을 한번 쳐다보았다.
“구파일방 쪽은 소식이 없느냐?”
“그쪽도 시작했다고만 들었고 아직 결과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쪽은 어렵지 않게 처리될 것입니다.”
청룡의 말에 우금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맹에 비하면 구파일방 쪽은 상대적으로 적게 잠입해 있으니 그들의 처리가 어려울 리가 없었다.
“미홍은 일단 가두어 놓도록 해. 따로 묶거나 하진 말고, 이미 점혈로 무공을 제압해 두었으니 사람을 붙여 놓도록 해. 일어나면 물어볼 것이 많으니까 말이야.”
청룡은 우금의 말에 누워 있는 그녀를 쳐다보았다가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돌렸다.
너무나 피폐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미홍의 모습이 청룡의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충. 다른 지시 사항은 없으십니까?”
“뭐, 다른 사항이 있느냐?”
청룡의 말에 우금은 뒤돌아 그를 보았다.
“무림맹 내 소요가 좀 있습니다. 이번 일에 저희 청룡단이 다수 움직여 그들을 제압했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무림맹 인원들의 반발이 좀 있습니다. 그걸 맹주께서 수습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 그거야 당연하지. 너에게 일을 맡겨 놓고, 내가 할 일을 안 하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청룡의 말처럼, 청룡단이 제압한 인원들은 남들이 보기에 평범히 지내던 무사나 시비들이었다. 하여 청룡단의 뜻을 모르는 이들에게 반발이 일 만도 했다.
원래 그것을 우금이 나서서 처리해 주어야 했으나 미홍과 있느라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 청룡단에서 큰 수고를 했으니, 정리가 되면 크게 상을 내리도록 하마. 일단 마무리 짓고 대기하고 있거라. 나머지 일은 내가 수습할 테니.”
우금은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살피고는 맹주실을 나섰다.
청룡은 일어나 미홍에게 다가갔다. 잠들어 있는 그녀의 모습에 얼굴을 다시 붉히고는 자신의 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 주었고, 어떻게 그녀를 옮길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청룡은 이제껏 우금의 손에 거두어져 비밀리에 훈련을 받아 지금의 자리에 앉았다.
어린 시절부터 수련만 했기에 여인에 대한 면역이 없었고, 그에게 미홍처럼 색기가 넘치는 여인의 피폐한 모습은 너무나 큰 자극이었다.
잠든 채 조금씩 움직이는 바람에 덮어 준 옷 사이로 속살이 드러날 때마다 청룡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결국 청룡은 고민하다 사람을 부르기로 결심했고, 우금이 열어 둔 창문 쪽으로 가 품에서 작은 나무로 된 호각(號角)을 꺼내어 세차게 불었다.
청룡이 힘차게 불었지만, 호각에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청룡은 호각을 다시 품에 갈무리했고, 호각을 분 지 일각(一刻)이 되지 않아 그의 앞에 사내와 여인이 한 명씩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청룡단 각(角). 단주님의 부름에 자리했습니다.”
“청룡단 항(亢). 단주님의 부름에 자리했습니다.”
남녀가 자리하자 청룡은 미홍을 가리켰다.
“항아, 네가 주작단주를 옥에 가두고 잘 감시하도록 해라. 각이는 항이를 도와주도록 해.”
“네!”
“너희에게 맡기마.”
청룡은 항이라 불린 여인이 미홍을 데리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그녀의 앞날이 밝지 않으리라 여겼다.
무림맹에서 교류가 많지 않은 청룡이었으나, 같은 사대무단 단주 미홍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청룡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그를 따라 각과 항이 미홍을 업고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의 일은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다. 무림맹 내에 알 수 없는 세력이 첩자를 심어 두었고 맹주의 청룡단이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관련자들을 축출하였다.
문제는 무림맹뿐 아니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정체불명의 세력이 정파의 심부 곳곳에 침입해 있었던 것.
일이 퍼지자 세인들은 도대체 누가 무림맹과 구파일방 그리고 오대세가에 첩자를 심어 두었는가를 두고 설왕설래하기 시작했다.
무림맹에서도 이렇다 할 발표가 없어 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는데, 이에 세인들은 호시탐탐 무림을 노리던 사패 중 한 곳이거나 최근 세를 불리고 있는 사파의 사왕련이 아니겠냐며 의심했다.
다만 이번 일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바로 무림맹과 구파일방, 오대세가에서 협력을 하여 알 수 없는 조직의 첩자 축출을 함께했다는 점이었다.
이제 이를 계기로 관계가 나아지지 않겠냐는 희망적인 평가가 많았다.
* * *
천진(天津)의 화월각(花月閣).
검성은 권왕을 죽인 뒤 태원을 떠나 천진에 도착했다. 워낙 거리가 멀어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기에 백아를 타지 않았다.
간만의 휴식이었다. 오십여 년 세월에 대한 공백이 있었기에 천진으로 오는 동안 은한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현 무림의 강자는 누구인지, 누가 정파의 후기지수인지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직접 땅을 밟고 강호를 유람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개방의 방주였던 취선개(醉仙丐)와 나름대로 친분이 있었는데 현 방주는 아니겠지?”
검성은 낮부터 시킨 술을 한 잔 들이켜며 은한을 보고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남장하고 있었고 면 요리를 먹기 위해 젓가락을 들었다가 검성의 물음에 다시 내려놓았다.
“취선개라면…… 이미 전전 대의 방주였어요. 현재 개방의 방주는 소천개(炤天丐)로, 아마 오늘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나름 구파일방의 수장 중에는 젊은 편이에요.”
“젊다고?”
검성은 은한의 말에 조금은 의아한 듯 물었다.
“네. 현 개방주인 소천개는 사십 대랍니다.”
“정말로 젊군.”
“뜻밖에 만장일치로 모든 장로와 거지들의 지지를 받으며 개방의 방주가 된 인물입니다. 처음 개방주가 되었을 때 그의 나이는 삼십 대였어요.”
“호오, 구파일방의 수장이 그렇게 젊었던 적이 있었던가?”
검성은 은한의 말이 놀라운 듯 탄성을 지르며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검성이 알기로 구파일방이 그렇게 젊은 수장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개방이 젊은이들에게 그리 관대한 곳이 아니지 않나?”
“관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니까요. 소천개는요.”
“재미있는 말이군. 모든 논란을 잠재울 만한 인재라는 소리겠지?”
검성은 따른 잔을 들이켜며 말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젊은 나이에 방주가 된 소천개라는 자는 개방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실력자라는 소리였다.
“네. 개방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가졌고, 현재 개방 최고의 고수니까요. 알려지기로는 아기일 때 버려진 것을 당시 개방주가 제자로 거두어 키웠고, 자질이 뛰어나 약관이 지났을 때 이미 방주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고 알려졌어요.”
은한은 말을 하고는 면발이 불기 전에 젓가락질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검성은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리다가 다시 빈 잔을 채우고 한 잔 들이켰다.
같이 여행을 한 날이 길어질수록 은한은 검성을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졌고, 현재와 같이 되었다.
“그만 먹고, 더 안 말해 줄 거냐?”
검성의 말에 은한은 빙긋 웃고는 국물까지 들이켰고, 그릇을 내려놓고서야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죠?”
“약관이 지났을 때 방주에게 모두 배웠다고까지 했다.”
“아, 소천개는 이십 대 때 이미 개방의 후계자로서 모두에게 실력으로 인정을 받았고, 방주의 자리를 가지고 다투던 이들도 그의 실력 앞에 스스로 포기를 했다고 하더군요. 개방의 역사상 그렇게 시원스럽게 방주의 자리가 다툼 없이 이양된 것은 특별한 일이라고 다들 놀랐었죠.”
“꽤 흥미로운 인물이겠구나.”
검성은 은한의 이야기에 소천개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만나 보고 싶어졌다.
“그나저나 비천에서도 모르는 정보를 개방에서 알고 있을까?”
“일단 만나 보면 알겠죠. 그래도 개방과 하오문(下午門)의 정보는 무시할 수준이 아니에요. 회주님께서도 늘 그들만은 인정하셨고 저희도 개방과 하오문의 정보를 이용하기도 하니까요.”
검성과 은한은 정보를 얻기 위해 방을 방문하기로 했다. 비천에서도 신투와 도후의 흔적은 모르고 있었기에 그들이 택할 길은 개방과 하오문의 정보력에 기대는 것이었다.
비천이 무림에 대해 많은 부분 개입하고는 있었지만 정보 조직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때문에 은한의 말처럼 그들도 정보를 얻기 위해 개방과 하오문을 이용하고 있었다.
비천에서도 신투와 도후의 행적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찾고는 있었지만,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그들의 행보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검성에게 개방에 의뢰해 볼 것을 제의했고, 직접 개방의 방주가 있는 천진까지 온 것이었다.
“탁헌에 관한 이야기는 아직이냐?”
젓가락질을 바쁘게 하던 은한도 검성의 이번 물음에는 바로 젓가락을 놓고 그를 보았다.
“안 그래도 이야기드리려고 했던 부분이긴 한데…….”
은한은 주위를 살폈다. 객잔 안에서는 시선을 심하게 받는지라 그녀는 눈치 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모든 것을 알아낸 것은 아니고 일단 일부에 관한 사실을 알려 주었는데…….”
“알려 주었는데? 그게 무엇이냐?”
은한이 뜸을 들이자 검성은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검성께서도 반로환동한 거 같지는 않고, 인피면구(人皮面具)를 뒤집어쓴 거 같지도 않다고 하셨죠?”
“그랬지. 반로환동을 했다기에는 피부 자체를 속일 수가 없다. 그의 피부는 나이 든 사람의 피부였으니까. 나름 무공을 익히고 내공이 중후하여 보통 사람보다 젊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곤 해도 무리가 있지.”
반로환동을 한 자신은 아예 새로운 몸이 되어 젊은 육체로 되돌아갔지만, 권왕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보다 이전에 반로환동을 하여 나이 먹었다고 보기에도 그는 자신을 보고 너무 놀라 했었다.
자신이 반로환동을 했다면 당연히 검성을 처음 본 순간 바로 의심을 해야 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하여 권왕이 인피면구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봤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검성의 생각대로 권왕은 인피면구를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다른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던 것이지?”
“저희도 그 부분을 이상하여 많은 조사와 시체를 살폈는데,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더군요.”
“한 가지 결론이라면 무슨 소리냐? 그냥 뜸 들이지 말고 계속 이야기해라.”
검성은 은한이 계속 뜸을 들이자 화를 내었다. 이에 그녀는 살짝 미소를 짓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얼굴 골격에 심한 손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은한은 말하고는 검성을 보았다.
검성은 은한의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어리둥절했다.
“얼굴 골격을 변화시켜 아예 다른 얼굴로 만든 것이죠.”
“허, 설마…….”
골격을 변화시킨다는 말에 검성의 뇌리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공이 있었다. 놀라는 검성의 모습에 은한이 말을 이었다.
“축골공(縮骨功)은 신체와 골격을 자유롭게 변화시키는 무공인데, 서장에 이 축골공을 극한으로 연마하여 얼굴마저 변화시키는 무공이 만들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유실되었다고 알려진 무공인데, 아마 권왕이 그것을 익히지 않았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축골공으로 얼굴마저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었다니, 신기하군.”
“일단의 의심입니다만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군요. 아니면 딱히 권왕의 얼굴이 변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하네요. 굳이 그가 그렇게까지 해야 했던 이유는 더 알아봐야 할 듯합니다.”
비천에서도 권왕이 일월문의 문주 양원으로서 아예 다른 얼굴로 생활해 왔기에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여러모로 알아봤지만, 결국 결론은 얼굴을 강제로 변화시키는 무공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확신은 아니었다. 그만큼 권왕의 일은 불가사의했고, 아직도 비천은 의심하면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정말로 권왕이 서장의 비서를 얻어 얼굴마저 변화시키고 살아온 것이라면, 그 비서를 얻을 필요가 있어 일월문의 권왕 거처를 조사하고 있었다.
“일월문에 아직 걸리진 않은 모양이지?”
“네. 일월문에도 저희 사람이 있어서 양원의 행동반경이나 습성 등은 꿰고 있거든요. 은근히 외톨이처럼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기에 저희 쪽 판단으로는 한 달은 발각되지 않을 거 같아요.”
“비천이라는 곳은 도대체 어떤 것을 얻고자 무림 일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지?”
이야기를 듣던 검성은 갑자기 궁금해져 물었다. 비천의 역사는 아무도 알지 못할 정도로 오래되었고 검성도 무림에서 비천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 듣고 기억할 뿐 그들이 드러난 일을 알지 못했다.
검성이 있던 무림은 오절의 존재로 인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기에 비천이 움직일 일이 없었다.
“제가 답하기 힘든 내용이라…… 답을 안 드려도 되겠죠?”
은한은 내려놓았던 젓가락을 다시 들었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검성도 피식 웃었다. 어차피 은한에게 들을 수 있는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대처가 검성에게 미소를 짓게 했다.
그녀도 이제는 마치 자신의 할아버지를 대하듯 검성을 대하고 있었기에 검성도 은한을 대하는 데 편해져 있었다.
“그나저나 검성의 제자에 대한 소문이 너무 크게 나고 있는데, 너무 유명해지신 거 아닌가요?”
은한은 주위를 슬쩍 가리키며 검성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객잔은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면서도 검성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저 중에는 천진에 들어오면서부터 검성을 따라 이곳으로 온 이들도 꽤 있었다.
이미 검성의 제자가 나타나 일월문의 천풍 공자를 단 일 합에 이겼다는 소문이 무림에 퍼지면서, 검성의 제자 임진후의 이름은 삽시간에 명성을 얻고 있었고 외모까지 알려져 가는 데마다 눈에 띄고 있었다.
“인피면구는 내가 쓰고 다녀야 할 거 같군.”
검성은 이미 비어 가는 술병을 마지막 잔에 채우며 말했다. 어느새 반주로 시킨 술 한 병을 혼자서 다 마셔 가고 있었다. 젊었을 적부터 유일하게 즐기던 것이 술이었기에 반주는 꼭 한 병씩 마시고 있었다.
“이미 소문날 만큼 나 버렸으니 제대로 임진후로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실 텐데요.”
“나도 그러려고 하는 중이다. 예전엔 여인들의 관심과 시선이 껄끄럽고 부끄럽기도 해서 무시하고 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남들처럼 즐기며 살아갈까 싶어.”
은한의 말에 검성은 마지막 잔을 들이켰다. 검성도 임소려를 그리며 살았던 긴 세월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또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생각했다. 생각지 못한 젊음을 새로이 즐기며 살아볼 생각이었다.
“많은 여인에게 희망을 품게 하는 소리네요. 약선께서는 많이 억울하실 거 같아요. 검성의 그런 변화는요.”
“그런가? 그래도 애령은 너무 동생 같은 기분이라…… 지금도 그렇고 말이야.”
“약선께서 들으신다면 정말 서운하실 이야기니 절대 앞에서는 그런 소릴 하지 마세요.”
은한은 검성의 말에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검성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녀는 약선이 왜 거짓말로 검성의 병을 핑계 삼아 잡아 두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나 일편단심으로 대한 남자가 자신을 여자로도 봐주지 않으니 어떤 방법으로도 잡아 두고 싶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고 남았다.
“그만 개방으로 가자. 식사도 끝이 났으니 말이야.”
검성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은한도 잠깐 생각에 빠져 있다가 그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계산하고 객잔을 나서자 또 우르르 그들을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생겼고, 객잔 한구석이 텅 비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