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발각(發覺)
무림맹은 사파의 행보를 보며, 작금이 정파의 위기라고 인정하고 각 문파에 사파의 영역에 출입을 조심하도록 전달했다. 이에 정파들은 큰 위기감에 휩싸였다.
워낙 긴 평화의 기간 동안 정파의 칼은 무뎌져 있었고 내부 분쟁으로 인해 결속력 또한 약해져 있었다. 이에 무림맹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무림맹에 협력하지 않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은 무림맹주 우금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멀리하였으나,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그 반대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최근 무림맹주 우금은 바쁘게 움직였다. 구파일방 및 오대세가의 수뇌부들과 회의 이후, 직접 움직여 소림사(少林寺)에서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을 만나 현재 무림 상황에 대한 회담까지 진행했다.
우금 행보는 무림맹과 구파일방 간의 관계 개선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 * *
무림맹(武林盟).
맹주실.
“수완이 대단하신걸요.”
자리에 앉은 무림맹주 우금을 향해 미홍이 말을 건넸다.
“수완이라고 할 게 있나?”
“저희 사이에 겸손한 척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미 맹주의 뜻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는 거 같은데요.”
미홍은 사실 자신도 예측하지 못한 최근 우금의 움직임에 조금은 당황하였다. 소림으로 찾아가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을 만난 것도 그중 한 가지였다.
그동안 우금에 대한 모든 움직임을 알고 뒤에서 지원해 왔던 미홍으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너도 사파의 일이 심상치 않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었나? 네 이야기를 듣고 행동에 옮긴 것뿐인데, 뭐.”
우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하자, 미홍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금의 태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이자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것인가?’
미홍은 살짝 그런 생각까지도 들었지만 자신이 이제껏 봐 온 우금은 그럴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무림맹 거의 모든 곳에 미홍의 세력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협력하에 있는 세력의 인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니 우금이 다른 무언가를 꾸미려 한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홍은 우금의 행보가 왠지 모르게 마음에 걸렸다.
‘맹주가 스스로 부릴 수 있는 무림맹 내 세력이라면…… 현무단(玄武團)과 청룡단(靑龍團)일 텐데. 그들을 이용하여 다른 일을 획책하고 있다는 말인가?’
미홍은 거기까지도 생각해 봤지만, 사실상 자신 모르게 우금이 일을 벌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현무단과 주작단에도 미홍이 심어 놓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금이 무언가를 벌이려 했다면 보고가 들어왔을 게 분명했다.
“……소림에서 성과는 확실히 있었던가 보죠?”
미홍의 물음에 우금은 답을 하는 대신 미소를 먼저 보였다.
“큰 성과가 있었지. 쥐새끼들도 좀 소탕을 했고 말이야.”
“쥐새끼라니요? 그게 무슨?”
미홍이 알 수 없는 그의 말에 의문을 드러냈으나, 우금이 그저 자신을 보고 웃고 있자 왠지 모를 기분 나쁨에 몸서리를 쳤다.
‘확실히…… 무언가 달라졌어. 이전의 맹주가 아니야.’
미홍은 우금의 태도에서 불안함을 느꼈다.
“요 근래 무림맹에도 그렇고 구파일방에도 쥐새끼들이 많이 판을 치고 있었던 모양이야.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들과 그 이야기를 좀 심도 있게 나누었지. 그들도 이미 파악하고 있어서 일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질 거 같아.”
“……그러니까 그 쥐새끼라는 게 도대체 무언가요?”
우금이 다시 설명을 해 주지 않고 알 수 없는 소리를 하자 미홍은 다시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우금은 자리에서 일어나 미홍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평소의 미홍이라면 다가오는 우금에게 안기며 아양을 떨었겠지만, 미홍은 우금의 다가옴에 긴장감을 느껴야 했다.
“쥐새끼들을 모르면 어떻게 하나? 쥐새끼들의 대장이 말이야.”
“그게 무슨…… 커헉!”
우금의 갑작스러운 말에 재차 물으려던 미홍은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단말마 비명을 내뱉으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녀의 허벅지에 작은 단검이 박혀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인가요? 맹주…….”
미홍은 아픔도 내색하지 못한 채 우금을 바라보며 소리쳤지만, 그는 잔혹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림맹 내 쥐새끼들의 대장인 너를 잡아야 하지 않겠나? 구파일방도 아마 이제 움직이고 있을 거야.”
“설마…… 당신, 소림에 간 이유가?”
“소림뿐만 아니라 오대세가와 무림맹 내의 쥐새끼들도 지금쯤 제거되고 있을 거야. 너 혼자 남았을 테지. 넌 내가 처리할 것이니 말이야.”
말과 함께 우금의 커다란 손아귀가 미홍을 감싸 왔다.
“……흥, 재미있는 소리군요.”
짝―
미홍은 다가오는 우금의 손을 세차게 때리고는 그대로 쌍장을 내질렀다.
파박―
“파옥장(破玉掌)!”
파방―
완벽한 공격은 아니었지만 무방비했던 우금의 가슴팍으로 그녀의 쌍장이 격중했다. 순간 미홍의 얼굴에 환희에 찬 표정이 지어졌으나,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적중한 그녀의 장법은 우금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저 그의 가슴에 가녀린 두 손이 닿았을 뿐, 그녀가 바라던 타격음이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내가 누군지 잊은 것이 아닌가?”
짜작―
“꺄악!”
쿠당탕―
우금의 두꺼운 손이 미홍의 얼굴에 작렬했다. 아무런 내력도 실리지 않았음에도 위력이 상당했다.
그녀는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안 그래도 허벅지에 박힌 단검으로 인해 출혈이 심했는데 뺨을 심하게 맞은 탓에 얼굴도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지게 되었다.
“쥐새끼들의 대장치고는 너무 약한 것이 아닌가? 나름 기대를 했는데 형편없구나.”
미홍의 쌍장에 호신공(護身功)으로 충격을 상쇄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형편없는 위력에 놀란 것은 오히려 우금 쪽이었다.
그래도 자신을 감시하고 지시하던 가장 우두머리 격인 미홍의 무공이 이렇게 형편없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꼭두각시놀음도 오늘로 끝이다.’
청룡을 시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 숨어 있는 ‘그들’의 명단을 얼마 전부터 확보해 둔 상태였다.
쥐새끼들은 무림맹뿐 아니라 구파일방 사이에도 숨어 있었다. 하여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들을 만나 ‘그들’의 존재를 알리고 명단을 넘겼다.
그간 벌어진 무림맹과 구파일방 사이의 갈등을 모두 미홍의 세력 탓으로 떠넘긴 채 명단과 함께 화해를 청하자, 소림과 무당의 장문인들은 반색하며 기꺼이 우금의 손을 잡아 주었다.
모든 과정이 우금의 뜻대로 진행되었다.
이로써 내부 첩자를 솎아 낼 준비가 끝나자, 우금은 곧바로 대대적인 척살을 명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이미 많은 쥐새끼들이 목숨을 잃었을 터, 이제 눈앞에 대장 쥐만이 남았다.
“도움을 바랄 생각이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무림맹 내부에 숨은 쥐새끼들도 이미 처리가 끝났을 테니까 말이야.”
미홍은 우금의 말에 순간 절망했다. 혹시나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마저 그에게 간파당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직접 손을 쓴 이상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닐 터.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 나간다는 일이 힘들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눈치를 챈…… 것이죠?”
“눈치야 진즉에 채고 있었지.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모를 리가 없지. 날 돕는 척하며 뒤에서 무림맹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던 게 너희였고, 나를 이용해 너희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우금의 말에 미홍은 일이 단단히 틀어졌음을 알았다. 눈앞의 맹주는 더 이상 호색하고 욕심만 많았던 멍청이가 아니었다.
우금은 사실 무림맹에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려고 하던 욕심에 하나하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사람들을 쳐 내는 과정에서 미홍의 속한 세력의 꼬리를 밞을 수 있게 되었다.
존재를 파악한 후 분노에 차올랐지만, 모르는 척하며 그들에 대한 정보를 모아 나갔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이 권력이 스스로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 모두 그들의 뜻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았을 때, 크게 분개하며 그들의 모든 것을 부셔 주겠다는 일념하에 치밀하게 준비해 왔었다.
“애초에 네가 날 돕겠다며 찾아왔을 때 의심했어야 했는데, 내가 순진했던 거 같군.”
파바박―!
우금은 쓰러진 미홍의 혈도를 제압하여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다. 무공이 높지 않았던 그녀로서는 우금의 점혈에 속수무책이었다. 안 그래도 허벅지에 박힌 검 때문에 거동이 불편했던 그녀로서는 빠져나가기도 힘들었다.
“나를 어쩔 셈이죠?”
미홍은 제압당한 시점에서도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그간 정도 있는데 죽이기는 그렇고, 너의 입을 열어 볼까 하는데 어떠하냐?”
“흥, 내가 그렇게 입이 가벼워 보이나 보죠? 컥…….”
우금의 말에 답하던 미홍은 그의 억센 손에 양 볼이 잡힌 채 입이 벌려졌고, 순간 그녀는 당황했다.
“이런, 네가 자살을 하게 둘 수는 없지.”
우금은 그녀를 잡은 손으로 볼을 눌러 입을 벌렸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입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것은 그녀의 이빨 사이에 있던 작은 맹독 주머니로, 입에서 터뜨려 자살을 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것이었지만, 우금이 그것을 눈치채고 그녀를 제압해 입 안에서 빼내었다.
“이제 재미있어질 텐데, 죽으면 안 된다. 미홍아.”
쾅―!
우금의 좌수가 그녀의 복부에 꽂혔다.
“끄으윽…….”
미홍은 그 일권에 기세를 잃고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우금이 비록 다른 세력의 힘으로 맹주 자리에 올랐다곤 하나, 그는 무림맹 정점에 서 있는 무인. 본신의 무력을 결코 괄시할 수 없는 자였다.
“내 개방과도 연이 있어, 미친개 때리는 법을 배운 적이 있단다, 미홍아.”
우금은 그녀의 옷 일부를 길게 찢어 그녀의 두 손을 묶었다. 이에 미홍의 큰 눈이 더욱 커지며 우금을 노려보았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개방의 늙은 거지가 말하길 타구봉법(打狗棒法)의 삼십육로(三十六路)를 견식하고 그 안에 담긴 이치를 깨달으면, 권법으로도 응용할 수 있다더구나.”
개를 두드려 패는 무공, 타구봉법. 맹주는 이를 권법으로 펼쳐 자신을 고문하려는 것이다.
입 안에 숨겨 두었던 독약은 빼앗겼고, 무공적으로 승산이 없었다. 자신에게 남은 건 비참한 죽음뿐.
‘정신 차려……!’
각오는 했던 일이나, 이렇게 의미 없이 사라질 순 없었다. 차라리 깔끔하게 죽는다면 모르되, 이대로 잡힌다면 비참하게 고문당하며 비밀을 누설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자신이 본 맹주는 이 방면에서 가장 확실한 자였으니까.
그렇다면 이 순간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했다.
“네년의 정체를 안 그때부터, 언젠가 네년을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준 다음 홍등가에 내던져 버리겠다고 결심했지.”
그가 다시 옷을 찢어 입에 물린 재갈을 엮었다. 그리고 그것을 미홍의 입에 가져가려는 순간.
미홍은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맹, 맹주! 다 말할게요!”
씨익―
“무엇을 말이냐?”
“모, 모든 것을 말할 테니, 나를 살려 주세요.”
그녀의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우금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해졌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자 만족한 것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죽음을 선택하리라고는 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네가 조직을 위해 죽을 인물이 아니란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포기가 꽤 빠르구나. 입 안에 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도 아마 그 이유였겠지?”
우금의 말에 미홍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였다. 이는 그녀가 날린 파옥장이 먹혀들지 않은 순간부터, 살아남기 위해 깔아 둔 포석이었다.
“알았다면 이렇게 때릴 필요도 없었을 텐데요…… 아프잖아요.”
“요망한 것.”
본회에 돌아가면, 독약을 먹고 자진하려 했으나 우금이 막았다고 변명을 놀리겠지.
“그러지 말고 저와 즐기시지요, 맹주. 오랜만이지 않나요?”
미홍은 아픔을 참으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방중술(房中術)과 매혹술도 배워 왔기에 제대로 우금을 사로잡아 줄 생각이었다.
‘살아남는다면…… 본회에서 도움이 올 거야.’
우선은 이곳에서의 일을 몸성히 끝내야 했다. 그렇기에 당장은 우금에게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대가 되는구나.”
과연 미홍의 의도대로, 우금의 눈엔 희열이 어려 있었다. 이대로 무사히 상황이 끝나는가 싶던 순간.
“네년의 신음 소리가 말이다.”
그는 이내 주먹을 쥔 채, 마치 팔을 봉처럼 움직였다.
마치 봉법을 권법으로 시도해 보는 듯한 자세.
“맹, 맹주?”
“널 죽이지는 않으니 걱정은 안 해도 좋다. 뭐, 일단 맞고 생각하자꾸나.”
주먹에 내기가 담기며, 그의 일권이 미홍의 머리를 향해 나아갔다.
퍼억!
“끄아악―!”
타구봉법 삼십육로 중 하나, 당두봉갈(當頭棒喝)의 변형이었다.
우금은 본디 여인의 고통을 즐기는 괴벽을 가지고 있었다. 하여 오늘 이를 충분히 즐길 생각이었다.
물론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와 즐거움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데, 굳이 때리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진정한 운우지락(雲雨之樂)을 함께 즐겨 보자꾸나, 미홍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