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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72화 (72/251)

72화― 복수의 시작(始作)(2)

“이제 들어 봐야겠어. 도대체 왜 너희가 소려를 죽인 것인지 말이야.”

검성은 무릎이 박살 난 채 땅을 기고 있는 권왕을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고통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땅을 헤집고 있는 그의 모습에 검성은 정천검에 손을 가져갔다.

샤삭― 샥―

“커헉…….”

정천검이 선을 긋자, 권왕의 손발 힘줄이 모두 끊어졌다.

“끄아악―!”

하지만 그럼에도, 검성은 여전히 그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말해라. 너희가 소려를 왜 죽인 것인지 말이야!”

노기 섞인 검성의 말에 권왕은 핏기 올라온 두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소려를…… 죽인 것은 가영인데 왜 나에게…… 그것을 묻는 것…… 커헉!”

권왕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성의 검이 다시 움직였고, 권왕의 오른손 검지 한마디가 잘려 나갔다.

“어차피 널 죽일 생각이다만, 가장 고통스럽게 죽고 싶다면 계속 헛소리를 해 보도록 하여라. 내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면 말이야.”

검성의 차갑고 살기 섞인 음성에 권왕은 몸서리를 쳤다. 자신이 알던 검성과 아예 다른 모습에, 이제는 검성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다시 물으마. 가영이야 소려를 질투할 만하다만, 너희는 왜 가영을 자극하여 소려를 죽이게 한 거냐?”

검성은 의식 속에서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 신투와 권왕이 도후를 자극하여 임소려를 죽이게 한 것이었다.

도후 유가영. 그녀는 동기가 있었다. 절대 용납할 순 없겠으나 백번 이해를 해 본다면, 끝까지 그녀를 바라봐 주지 않던 자신을 원망하다 임소려에게 생각이 닿았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시작은 그녀가 아니었다.

도후가 행동하도록 자극한 것은 신투와 권왕이었고, 직접 나서지는 않았지만 신의(神醫)를 이용해 자신이 자리를 비우게 한 것도 그들이었다. 도후에게 방법을 일러 준 것도 역시도 그들이었다.

검성은 그 부분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한다면…… 단칼에 죽여 줄 수 있는가……?”

권왕은 호소하듯 검성에게 말했고, 검성은 그의 질문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결심한 듯한 권왕의 모습에 검성은 더 이상의 출혈을 막기 위해 권왕의 혈도를 짚어 출혈을 억제해 주었다.

“우리가 가영에게 소려의 죽음을 획책한 이유는 사실…….”

권왕은 말하고자 마음을 먹었지만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다시 숨을 고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알던 임소려 본가의 문파는 어떤 곳이었나?”

뜬금없는 질문이었으나, 검성은 답해 주었다. 필시 소려의 문파와 연관이 있으리라.

“규모가 작았지만 나름대로 내실이 있는 문파였지. 소려의 아버님께선 무공이 뛰어나시지 못했지만 말이야.”

“자네 말대로 규모가 작은 문파였지만 엄청난 물건을 소유하고 있었네. 나와 초 형은 그 사실을 알고 소려의 아버지에게 물건을 팔라고 했었지. 하지만 그는 거절했네.”

“그 물건이 무엇이기에 너와 초벽이 탐을 낸 것이지?”

검성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권왕은 몰라도, 신투라면 황궁의 보고(寶庫)조차 손쉽게 넘나들었고,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 얻을 수 있는 금력도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신투가 작은 임소려의 문파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었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하의 신투라도 탐을 낼 만한 무기가 그곳에 있었지…… 그리고 아무리 신투라고 해도 그냥 훔칠 수가 없었고 말이야.”

검성은 권왕이 뜸을 들이자 조금 화가 났으나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신장(神匠)의 무기…… 그것이 임소려의 가문에 있었다네…… 그것도 가장 먼저 만들어진 신장의 무기인 홍라염도(紅羅炎刀)와 신월검(新月劍) 그리고 진천궁(震天弓). 그것들이 임소려의 가문에 있었어.”

“아니, 그게 왜……? 그런 물건이 왜 소려의 가문에 있다는 말인가?”

검성은 권왕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알던 임소려의 가문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나도…… 컥…….”

권왕은 입을 열던 중 핏덩이를 뱉었으나,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나도 그 이유까지는…… 알지 못한다만, 초 형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해……. 이유를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내놓지 않는 소려의 아버지에게 자네 때문에 무력행사도 할 수 없었지…… 그래서 초 형이 너의 시선을 아예 다른 곳으로 돌려놓자고 했어…….”

“설마…….”

“그래…… 너의 시선을 완전히 돌려놓기 위해 가영을 자극해 임소려를 죽이도록 했다. 네가 죽은 임소려를 끼고 슬퍼할 때, 우린 사파를 이용해 그녀의 가문을 멸문시켜 신장의 세 무기를 얻을 수가 있었지…….”

이야기를 듣던 검성은 그제야 모든 일의 경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은 정인의 장례를 치르고 삼 년간 그녀의 무덤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의 가문이 사파에게 멸문한 일조차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신투는 임소려가 죽게 되면 검성이 그녀를 잃은 슬픔에 그곳에만 신경을 쓸 것이라고 예상했고, 신장의 무기를 얻기 위해 사파를 동원하여 임소려의 가문을 치게 한 것이었다.

이것이 사건의 전말이었다. 과연, 신투가 의도한 대로 된 것이다.

“고작 무기를 얻고자…… 소려를 죽이고…… 나를 배신했다는 말인가? 그 후에도 나의 친우인 척 행세를 하고 말이야?”

검성은 분노에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크크…… 그만큼 초 형의 욕심이 컸고, 나도 혹시 신장의 무기에 의지한다면 너를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지…… 신월검은 초 형이…… 진천궁은 내가……. 모든 것을 몰랐지만, 우린 가영의 입을 막기 위해 그녀에게 홍라염도를 주었지…… 그녀도 이용을 당한 셈이지만, 소려를 죽인 것은 자신이었기에 멈추지 않았어.”

권왕은 그 일로 인해 도후에게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있었기에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가영은…… 불쌍한 여인이야…… 자네의 사랑을 갈구했고, 그 삐뚤어진 마음을 우리가 이용했어…….”

힘겹게 말하던 권왕의 몸이 늘어지며 두 눈의 생기가 사라졌고 그대로 죽고 말았다. 이미 피를 심하게 흘렸고 내상도 심했던 터라 출혈을 막았다 해도 몸이 버텨 주지 못하고 죽은 것이었다.

검성은 이미 들을 사실을 모두 들은 터라 그의 죽음이 아쉽지는 않았지만,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후 그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하며 의지해 왔는데 고작 무기 때문에 자신을 배신하고 임소려를 죽이고 그녀의 가문까지 없애다니……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빼액―

야산의 밤하늘에 새의 울음소리가 울렸고 하늘에서 백아가 내려오고 있었다.

검성과 권왕의 싸움을 하늘에서 지켜보던 백아가 이내 상황이 끝난 듯하자 내려온 것이다.

꾸륵―

검성이 슬픈 눈을 하며 권왕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자 백아는 뒤뚱거리며 검성에게 다가가 머리를 비볐다. 검성은 그런 백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힘겨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켜보고 있었느냐?”

꾸륵―

검성의 말에 대답하듯이 백아가 울었고, 마치 위로하려는 듯 애교를 부리며 머리를 밀어 검성에게 비볐다.

“이미 각오하고 벌이는 일이지만, 친했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유쾌하지가 않구나.”

검성은 권왕의 시신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감겨 주었다. 그러나 죽었다고 해서 그를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 혈채를 갚아야 할 친우가 두 명 더 남아 있었다. 정인을 죽이고, 자신을 기만한 배신자를 처단하기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오너라.”

검성의 외침에 그의 앞에 두 명의 복면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은한의 뒤를 봐주던 비천의 인물들이었다.

“내가 분명 뒤를 밟지 말라고 했는데, 듣지 못했더냐?”

검성의 불호령에 복면인들은 고개를 숙인 채 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나름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지만 검성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내 말을 가벼이 듣지는 않았을 터. 죽을 각오는 하고 왔겠구나.”

“…….”

복면인들은 등이 흥건해질 만큼 식은땀이 젖어 있었다. 권왕이 죽은 후에도 검성의 노기와 살기가 거두어지지 않았기에, 복면인들은 생사지로의 공포를 느꼈고 잠시 잠깐임에도 검성의 앞에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죄송해요.”

무릎을 꿇은 복면인들 사이로 은한이 나타났다. 검성은 그녀가 와 있는 것도 알았기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저희도 위의 지시를 무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겠다만, 다음번에도 내 말을 무시하고 이렇게 따라붙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은한의 말에 검성도 살기를 가라앉혔다.

“권왕의 시신은 어떻게 할까요?”

은한은 조심스럽게 물으며 검성의 눈치를 살폈다.

“너희들이 조용히 처리하거라.”

“네. 그럼 저희 쪽에서 시체의 처리와 수습을 맡겠습니다.”

검성은 권왕의 죽음을 최대한 무림에 드러나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이 일이 신투나 도후에게 전해질 가능성은 적었지만, 만약 그들이 권왕의 죽음을 알게 된다면 경계를 할 게 분명했다.

권왕의 말속에서 남은 두 사람은 양원과 권왕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양원의 죽음이 무림에 알려진다면 그들이 문제를 파악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알려진다 하여도 권왕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양원의 죽음으로 알려지겠지.”

“네. 아마도요…… 권왕은 사실상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누가 양원이 권왕이었다고 의심할까요…… 저희조차 생각 못 했던 부분인데요.”

천하의 비천조차도 일월문주 양원이 권왕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무려 이십여 년 동안 권왕은 아무도 모르게 양원의 행세를 해 온 것이었다.

“도대체 그는 왜 양원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그 행세를 해 온 것이지? 반로환동 한 것은 아닌 듯했고, 그렇다고 인피면구를 뒤집어쓴 것도 아닌 거 같았는데 말이야.”

검성은 권왕에게 더 많은 정보를 듣지 못했던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저희도 일단 권왕의 시신을 가져가 조사를 좀 해 보려 합니다. 한동안 일월문에는 대역을 세울 생각이고요.”

“대역?”

“네. 양원이라는 인물은 일월문 내에서 그리 활동성 있던 인물이 아닌지라 대외 활동이 많지 않았습니다. 문파 내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서재에서 나오는 일이 적었다고 합니다. 그 점을 이용해 잠시 대역으로 양원의 죽음을 늦게 알려지게 하고, 그동안 그의 시신을 비천에서 회수해 조사를 하려고 합니다.”

은한과 그를 따르던 비천의 인물들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 검성의 말대로 양원과 권왕이 동일 인물이라면 이유를 알기 위해. 혹 이유를 듣지 못한다면 그의 시신이라도 거두기 위해 따라온 것이었다.

“괜히 양원의 죽음이 지금 알려지면 검성께서 오늘 비무를 한 것과 연관되어 의심을 받을 수도 있고 하니, 최대한 늦게 알려지는 편이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회주께서…….”

은한은 말을 하며 검성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뒷말은 사실상 거짓말에 가까웠고 검성도 모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검성도 딱히 그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았다. 비천의 의도와 자신의 의도가 부딪치지 않는 이상 그들의 일에 문제 삼고 싶지 않았다.

“처리는 비천에게 맡기도록 하지. 탁헌의 시신의 조사에 관한 것은 나에게도 알려다오.”

“네. 알겠습니다.”

검성이 권왕의 시선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백아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백아는 다시 하늘로 날아올라 갔다.

백아가 사라지자 검성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가 사라지자 은한과 비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복면인들은 권왕의 시신과 검성에게 잘린 손가락을 회수했고, 은한은 주위를 살피며 싸움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너무 심한 손상이 있었기에 자칫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만큼 지형이 많이 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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