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71화 (71/251)

71화― 복수의 시작(始作)(1)

“황룡신기(黃龍神氣)가 제법 매서워졌군.”

검성은 권왕이 뿜어내고 있는 황색의 진기를 잘 알고 있었다. 권왕이 자랑하는 황룡신기로, 그가 뿜어내는 진기가 마치 사람들이 보기에 승천하는 황룡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었다.

이름처럼 마치 황룡이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듯한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권왕은 황룡신기를 마치 몸에 갑옷처럼 두르고 있었다.

“자네를 상대하려면 미리 황룡신갑(黃龍神鉀)을 두르고 시작해야겠지.”

권왕은 황룡신기를 두껍게 둘렀다. 내공 소모가 제법 심한 편이었지만, 상대가 검성이니만큼 처음부터 대비를 단단히 하고 시작할 참이었다.

“선수(先手)를 양보하지.”

권왕은 자세를 잡으며 검성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사양하지 않도록 하겠네.”

검성은 권왕의 선수 양보에 발검(拔劍) 자세를 잡았다. 다른 자가 상대였다면 검성이 선수를 양보해 주었을 것이다.

천풍 공자에게 삼 초를 접어주었듯, ‘오절’이었던 검성은 늘 상대에게 양보를 베푸는 쪽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선 권왕에게만큼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죽일 것이다. 아니, 복수할 것이다.

이건 비무가 아닌 생사결이자, 정인의 혈채를 갚을 복수의 순간이었다. 검성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유독 달빛이 밝지 않은 날이었기에 시야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절정의 고수인 그들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샤아악―

검성은 순식간에 검을 뽑으며 날카로운 검기를 일직선으로 권왕에게 쏘았다. 워낙 찰나에 발검한 것이라 검기가 그대로 권왕의 미간에 박히는 듯했다.

파방!

권왕은 검기를 피하지 않은 채 손바닥을 쳐올려 검기를 파훼시켰고, 바로 발을 움직여 검성에게 거리를 좁혀 갔다.

출수(出手)의 순간, 권왕의 손이 금색으로 물들었다.

“황룡진천뢰(黃龍震天雷)!”

콰과과과―

권왕의 장영(掌影)이 검성의 전신을 압박해 왔고, 엄청난 기운이 폭사되어 왔다. 그 기세에도, 검성은 당황하지 않고 정천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비뢰광망(飛雷光網)!”

촤자자자작―

검성의 검이 번쩍이자 한 줄기의 검기가 뻗어 나가더니, 펼쳐지며 장영들과 부딪치기 시작했다.

엄청난 폭음이 일었고, 두 사람 모두 충격으로 뒤로 물러났다.

찰나, 권왕은 황룡신권의 절기인 황룡진천뢰를 다시 펼쳤고, 검성 또한 그 위력을 알았기에 비뢰검결 중 유일한 방어 기술인 비뢰광망으로 맞받아쳤다.

콰과과광―

“……자네의 기술은 여전히 날카롭군.”

권왕은 나름 초반의 허점을 보고 진천뢰를 쓴 것이었는데, 검성이 손쉽게 막아 내자 조금은 아쉬워하며 말했다.

“자네야말로 여전하군. 무식하게 처음부터 이렇게 큰 기술이라니…….”

검성은 앞에 움푹 패 있는 땅들을 보며 조금 전 권왕이 펼친 기술의 여파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나름 검성의 검망이 모든 장영을 휘감아 폭사시켰음에도 기술의 흔적이 주위에 여실히 보여지고 있었다.

“틈을 보여 줄 때 기술을 걸어야 되지 않겠나? 너는 여전히 초반에 허술하군.”

권왕은 애초에 검성의 버릇을 알고 있었기에, 초반에 탐색하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바로 파훼하면서 큰 기술로 타격을 주려 했었다.

하지만 검성은 그것도 가볍게 막아 낸 것이었다.

“다시 시작하지.”

권왕은 다시 내력을 끌어올리며 대결을 준비했고, 검성도 정천검을 권왕에게 겨누면서 견제를 하였다.

샤샥―

검성이 검을 휘저으며 다시 선수를 취했다.

스아악―

검을 내지르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검성을 향해 권왕은 일권을 내질렀다. 이에 권풍(拳風)이 세차게 일며 검성을 격중하려 할 때, 검성의 신형은 흩날리듯 사라지며 어느새 권왕의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비뢰낙일(飛雷落日)!”

촤자자자작―

상대의 뒤를 잡은 검성은 정천검을 내리쳤다. 그의 검은 마치 뇌전에 휩싸인 듯 번쩍이며 권왕을 양단해 왔다.

권왕은 피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건지, 살짝 뒤로 뛰며 두 다리를 땅에 박듯이 펼치며 자세를 잡고 쌍장을 내질렀다.

“황룡강천세(黃龍降天勢)!”

쿠오오오―

권왕의 전신에서 황색 강기(剛氣)가 피어올랐고, 이내 온몸을 휘감아 그의 쌍장으로 분출되듯이 쏘아져 나갔다.

콰과과광―

권왕의 쌍장에서 쏘아진 강기와 검성이 검을 내리치며 쏟아 낸 뇌전이 부딪치며 주위를 삼키어 갔다.

엄청난 기의 폭풍이 일어나며 분진이 어지럽게 펼쳐졌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밤에 시야가 더욱 흐려졌다.

파바박―

채쟁― 채재재쟁―

하지만 투박한 소리와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분진으로 가려진 사이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검성과 권왕 두 사람은 시야가 어두운 상황에서도 검과 무투를 교환하고 있었다.

소리가 점점 커지며 그들의 부딪침에 의해 생기는 폭발로 주위는 엉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오십여 년 전 지형을 바꾸어 놓았던 두 사람이 또다시 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화악―

소리가 잦아들고 얼마 후, 세찬 바람이 일더니 분진을 모두 삼키며 날려 보냈다.

분진이 사라지자, 두 사람이 드러났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기는 했지만 큰 상처는 없어 보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건재한 검성과 달리, 권왕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는 점.

그의 두 팔을 뒤덮고 있던 옷은 다 잘려 나간 채 양팔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고, 깊지는 않았지만 검상(劍傷)으로 피가 조금 흐르고 있었다.

뚜욱― 뚝―

권왕의 양팔에 흐르던 피가 바닥을 조금씩 적시고 있었다.

“실력은 여전하군…… 황룡신기를 뚫어 내는 검도 그렇고…….”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권왕은 군데군데 피해가 있었다. 그에 비해 검성은 너무 멀쩡했다.

검성은 단지 먼지를 뒤집어썼을 뿐, 모든 공격을 회피하며 정타를 허용치 않았다.

“아직도…… 그 차이를 메우지 못했다는 말인가…….”

권왕은 이내 자신의 주먹이 검성에게 닿지 않음을 인정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검성은 본실력의 절반도 꺼내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포기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닌가?”

검성은 이미 마음이 꺾여 버린 권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권왕은 패배를 직감하고 어느 정도 포기를 하고 있었다.

“난 자네를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예정이네.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게.”

“그게 무슨…….”

권왕은 갑자기 차가워진 검성의 말투에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고, 검성이 살기를 내비치고 있음을 알았다.

“무슨 소리지? 날 죽이겠다고……?”

권왕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으나, 검성의 표정과 살기를 보아서는 허튼소리는 아닌 거 같았기에 긴장을 풀지 않았다.

이전에도 농담을 하는 검성이 아니었기에, 그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겼다.

“자네와 초벽 그리고 가영……. 너희들이 소려에게 한 짓을 보았다.”

검성은 정천검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권왕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 말에 권왕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어 버렸다.

“어떻게…… 그것을…… 설마, 가영이 모든 것을 말해 준 것이냐?”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다 보았다고.”

“그게…… 무슨……?”

권왕은 검성의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임소려를 해한 것은 세 명만의 비밀이었다.

절대 남들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을 짐작하고 있던 신의 역시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죽었다.

셋 중에 누군가 말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검성이 이를 알았다면, 필시 도후 유가영이 발설했을 터였는데, 돌아온 검성의 답은 너무나 생뚱맞은 소리였다.

“보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나와 말장난이라도 하는 건가?”

“난 얼마 전까지 의식 속에 갇혀 있었지. 내가 어떤 의식 속에 갇혀 있었을 거 같나?”

“설마…….”

검성의 물음에 권왕은 그제야 짚이는 것이 있는지 검성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했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의식 속에 갇혀 내 모든 기억과 마주할 수 있었지. 아니, 내 기억뿐만 아니라 내가 모르던 기억들과도 마주할 수가 있었어. 그리고…… 그곳에서 너희들을 보았지…….”

검성은 온몸에서 투기와 살기가 섞여서 발산하기 시작했고, 권왕은 자신과 싸울 때 이상의 기운을 내뿜는 검성의 모습에 살짝 뒷걸음질 쳤다.

“내가 가장하는 사랑하던 사람을,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자들이 해하고는…… 웃고 있더군.”

검성의 말소리가 떨렸고,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

권왕은 자신을 압박하는 투기와 살기에 저항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려야 했다.

“말도 안 되는! 그걸 믿으란 소린가? 기억에서 보았다니?”

“나도 처음엔 내가 본 것을 믿지 못했지. 하지만 의식 속에서 같은 기억을 수십 수백 번 반복했기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이 흉수라는 사실을.”

검성의 말에, 권왕은 짚이는 바가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나 꿈꾸었던, 무인이라면 바라 마지않을 경지.

“설마…… 선인의 경지에 올라, 의식 속에서 삼라만상과 합일을 이루고 과거를 되돌아보았단 말인가.”

권왕은 검성이 허투루 말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젊어진 육신, 고강해진 무공. 그의 검을 직접 상대하며 그가 이룬 경지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바르지 못한 것은 감히 바른 것을 범하지 못하며, 결국 모든 일은 반드시 정리(正理)로 돌아오게 되느니.”

츠츠츠―!

검성의 전신에서 엄청난 기운이 발산되어 나갔고, 그의 내기가 정천검을 감싸며 기묘한 파공음까지 발하기 시작했다.

“너희를 내 손으로 벌하라는 것이 하늘의 뜻이겠지.”

검성은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며 권왕에게 다가섰고 권왕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만큼 검성의 모습이 위협적이었다. 평생 무도를 익히며 스스로를 수련해 온 권왕조차 검성에게 압도당해 있었다.

“모든 것을 우리의 잘못으로 몰 셈이냐? 소려의 죽음을 막지 못한 것은 네 탓이다. 우리의 책임이 아니니라!”

쿠오오오―

물러서던 권왕은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음에 내력을 끌어 올려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한 수법을 쓰려 했고, 그의 전신에 황색 기류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검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권왕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저 걸음이 마저 이어지면 죽게 되리란 걸 직감한 권왕은 자신이 이룬 오의를 일권에 담아 내질렀다.

“황룡파천인(黃龍破天印)!”

콰과과과―

권왕은 주먹이 황룡신기에 휩싸여 내질러지자, 마치 한 마리의 황룡이 그의 주먹에서 승천하는 듯했고, 거대한 강기가 다가서는 검성을 삼키듯 덮쳐 갔다.

회심의 한 수가 검성에게 적중하려던 찰나. 검성은 정천검 대신 맨손을 내밀었다.

“너에게 가장 큰 굴욕이 바로 이것이겠지.”

권왕이 수십의 세월 쌓아 올려 이뤄 낸 무공이었다. 아무리 검성이 자신보다 높은 경지일지라 하더라도, 검을 거두고 맨손으로 자신의 오의를 상대하는 건 오만이었다.

‘네 자만이 널 죽음으로 이끄는구나!’

그리 생각한 권왕은 순간 비웃음을 지으며 검성의 팔이 박살 날 것이라 확신했다.

착―

“어……?”

강렬한 폭발음과 함께 뼈가 부서지리라 기대했던 권왕에게 들리는 소리는 검성의 쌍장과 자신의 주먹이 맞닿은 소리뿐이었다. 그가 원하던 음향이 들리지 않았다.

그의 맹렬한 황룡신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검성의 손바닥으로 흡수라도 된 것만 같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 컥.”

퍼억―!

검성의 주먹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방심하고 있던 그는 그대로 주먹을 맞고 비틀대었다.

퍼버벅― 퍼벅!

검성의 주먹이 연타로 권왕의 안면과 복부 그리고 급소를 타격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권왕은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무릎 꿇어야 했다.

“커헉…… 어떻게 황룡신기를 맨주먹…… 으로…….”

권왕은 피를 쏟아 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검성을 보았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믿을 수가 없는 일뿐이었다. 황룡파천인이 파훼된 것부터 검성의 주먹이 자신의 온몸을 타격한 것까지 말이다.

콰직―

“크학!”

주저앉은 권왕의 모습에 검성은 그대로 그의 무릎을 밟아 분질렀다.

콰직―!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