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70화 (70/251)

70화―비밀(秘密)(2)

“그럼, 저희 쪽에서 발견했던 권왕의 흔적들이 모두 일월문에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군요.”

은한도 최근 갑자기 권왕의 흔적이 일월문에서 발견되었는지 검성의 말에 이해할 수가 있었다. 권왕과 양원이 한 인물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그를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는 확신을 하지 못했는데, 보니 알겠더군.”

“한데 대결 자체는 왜 파하신 겁니까? 대결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그곳에서 싸워 봐야 그를 벌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 둘이 제대로 싸웠다면 그곳의 많은 사람이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하여 따로 만나기로 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검성께서 기회를 놓치실 리 없다 생각했어요.”

은한은 이제야 검성의 뜻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싸워 봐야 싸우면 다른 자들이 휘말릴 터이니 따로 자리를 마련해 그를 벌하려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모든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권왕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어디서 언제 겨루기로 하신 건가요?”

은한의 말에 검성은 답하지 않고 열려진 창문 밖을 응시했다. 그녀는 보채지 않은 채 검성의 답을 기다렸다.

“오늘 밤에 둘이서 만나기로 했다.”

“의심은 하지 않던가요?”

“내가 모든 것을 알고 그를 처단하려 한다는 것을 알 리가 없지. 안 그러면 대결 자체를 거부했을 테니까.”

권왕은 검성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순전히 자신의 무공을 검성을 상대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였을 터다. 검성의 본마음을 모른 채.

“권왕과 겨루는 자리는 혼자 나갈 테니 따르지 말도록 해라.”

“그건…….”

은한은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검성의 눈빛이 차갑게 돌아섰기에 더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너를 따르고 있던 인원들에게도 정확하게 전하거라. 날 쫓아오면 죽을 것이라고.”

“네. 알겠습니다.”

검성은 이미 비천의 연락책 세 명이 매번 그들 주위를 따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하여 미리 그들이 자신을 따라오는 것을 막으려 은한에게 언질을 주는 것이었다.

“저는 방에 돌아가겠습니다.”

“그래.”

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조금은 아쉬운 듯 나가다가 검성을 뒤돌아보았으나, 검성에게 더는 떼를 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검성이 하려는 일은 복수. 아무리 비천과 약조가 되었으나, 이 일은 주제넘게 나설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비천회의 회주도 은한에게 그 점을 정확히 말해 주었다. 절대 검성의 심기를 거스를 행동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저 비천은 검성의 행보를 기록하고 아는 것만으로 큰 성과라고 여기고 있었다.

방을 나온 은한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이 사실은 비천회의 본진으로 연락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었기에, 그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검성의 제자가 일월문의 소문주인 천풍공자 감오를 단 일장에 쓰러뜨렸다.

―검성의 제자가 둘이나 무림에 나타났다.

검성이 임진후의 신분으로 일월문의 감오를 쓰러뜨린 일이 즉시 무림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미 드러나 있던 검성의 제자 이윤후와 검성 본인인 임진후 두 사람 모두 무림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검성의 제자가 나타나면서 오절의 제자들이 모두 무림에 나타나 오절의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돌았는데, 그중 가장 행방이 묘연했던 것이 검성이었기에 관련된 이야기가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오절의 생존은 정파 무림의 바람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 들어 사파의 사왕련이 세를 불리며 정파의 위협이 되고 있었고 사패 역시 무림에는 큰 위협이었기에 오절의 본인들은 아니더라도 제자들이 이렇게 일시에 나타난 것은 큰 무림의 홍복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정파 무림은 현재 도태되고 평화에 심취되어 있던 탓에 그 날카로움이 심하게 무뎌져 있는 상황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무림맹과 서로 협력하지 않고 있었고, 협력은커녕 서로 견제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오절과 그 후계자들의 생존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오절만 건재하다면 사파는 물론 사패의 도발 역시 걱정 안 해도 되는 일이었다.

* * *

태원에 밤이 찾아오자, 검성은 정천검을 챙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객잔을 떠나 태원 외곽의 야산으로 향했다. 이미 은한을 통해 자신을 따르지 말라고 말했기에 그 뒤를 쫓는 자는 없었고, 검성은 산을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산의 중턱쯤 오르자 넓은 지역이 나왔다. 마치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듯한 평원이 산 가운데 있었다.

검성은 그곳에 멈추어 서서 주위를 둘러보며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도 그대로였군.”

검선은 주위 넓은 곳을 확인하며 생각에 빠진 듯 이야기를 했다. 이곳은 예전에 권왕과 겨루었던 장소로, 산에 이렇게 평지가 생겨난 것도 두 사람의 격돌로 인한 일이었다.

워낙 치열했던 탓에 주위 나무가 다 부서지고 지형마저 달라져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다.

검성이 예전 추억에 조금 감상적으로 되어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자신의 친우이자 적, 권왕 탁헌이었다.

“빨리도 와 있었구나.”

권왕은 이미 도착한 자신의 친우에게 말을 건네었다. 약속한 해시(亥時)[오후9시~11시]보다도 이른 시간이었다. 하긴 그의 친우였던 검성은 언제나 준비가 철저한 자였다.

“나오다 보니 빨리 나와지더군. 그런데 그건 네 본모습인 것이냐?”

검성은 권왕을 위아래로 쳐다보고는 물었다. 권왕이 사십 대일 때도 이미 지켜봤던지라, 자신처럼 반로환동(反老還童)을 한 것이라면 이전 모습으로 돌아갔어야 했는데 지금 권왕의 모습은 전혀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사연이 있는 모습이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지냈기에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냐?”

권왕은 도리어 검성에 대해 물었다. 젊어진 검성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확실히 그에게서 듣고 싶었다.

“그저 긴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이런 모습이 되어 있더군.”

“긴 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약선이 자네가 사라지고 애타게 찾아다녔었는데, 그것과 관련이 있었던 겐가?”

권왕도 자세히는 알지 못하였으나, 검성이 사라진 이후 약선이 그를 애타게 찾아다닌 일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검성은 이내 말을 끊었다.

“잡설은 그만하세. 답지 않게 말이 길어지는구만.”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듣고 싶었으나, 들을 수 없었다. 이제는 말을 섞을 수 없을 만큼 사이가 틀어졌다는 뜻이었다.

“뭐, 어차피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만난 것은 아니니 상관은 없겠지.”

권왕의 눈빛이 바뀌며 검성을 응시했다. 그가 은은한 투기를 비치기 시작하자 검성도 미소를 보였다.

“모습이 젊어졌다고 행동까지 젊어진 듯하군.”

검성은 권왕의 모습에 예전의 생각이 났다. 이전에 권왕이 검성에게 도전을 해 왔을 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다.

바로 이곳에서 결전을 벌였을 그 시절, 권왕은 지금과 같이 투기를 불태우며 주먹을 들어올렸다.

“자네와 겨룰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하지 않을 수가 없군. 예전에 초 형(兄)과도 이야기했던 부분이었지만, 차라리 자네에게 도전해서 겨루는 사파와 사패의 녀석들이 차라리 부러웠던 때가 있었지.”

권왕 또한 예전을 생각하며 말을 했다. 검성과 꽤 오랜 시간 겨루기를 희망해 왔으나, 검성은 단 한 번을 제외하면 더 이상 허락해 주지 않았었다. 그 모습에 차라리 싸울 명분이 있는 사파와 사패의 무인이 부럽기까지 했었다.

“나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건가?”

검성의 웃음에 권왕은 같이 웃어 보였다.

“언젠가부터 우리들의 목표는 자네였지. 이름은 오절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지만 세인들의 평가나 실력은 언제나 자네의 아래였고 우리는 늘 자네 등을 쫓고 있었지.”

권왕은 씁쓸한 표정을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도 그렇지만 나 말고도 모두 자네와 다시 겨루기 위해 많은 수련을 거듭해 왔을 거야. 자네가 사라졌을 때, 자네가 또다시 강해지기 위해 수련에 들어간 줄 알고 우리 또한 수련을 위해 잠적했던 거니까.”

권왕과 도후 그리고 신투는 약선에게 검성이 사라진 이유를 정확하게 듣지 못했기에 검성이 사라진 이유를 수련에 들어갔다고 착각했었고, 안 그래도 강해진 그가 더 강해질 것을 염려하여 자신들도 다 같이 수련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절 모두가 사라지는 일을 초래했고 나중에 검성의 소식이 아예 끊어지자 모두 그가 죽었다고 판단을 했었다.

“자네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해 봤네. 모두가 아쉬워했지 우리들의 목표였던 자네가 사라진 것을 말이야.”

“나를 보고 싶었단 말인가?”

검성은 살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누르고 물었다. 자신의 정인을 죽이고 모든 것을 숨긴 채 곁에 머물렀던 자들의 위선을 마주하니 화가 솟구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추궁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참아야 했다.

“보고 싶지 않을 리가 있나? 자네는 우리 모두의 목표라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나.”

“그렇군. 자네들이 나를 그렇게까지 여기고 있을 줄은 몰랐네.”

검성은 모르고 있었지만, 검성을 제외한 모두에게 검성은 가장 친한 친우이기도 했지만 넘어서야 할 벽이었다. 도저히 넘을 수가 없는.

“원래 당사자는 모르는 법이지. 여러 가지로 초 형이나 나는 자네에게 열등감이 많았네. 우리가 젊었을 적 모두가 만났던 무도 대회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말이야. 그때 자네가 우승을 하고 그 정천검을 얻었지.”

권왕은 검성이 들고 있는 정천검을 가리켰고 그의 말에 예전 생각이 나는지 검성도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모두 그곳에서 처음 만났었지…….”

검성은 권왕이 말하는 무도 대회를 회상했다. 거기에서 차라리 그들과 친분을 맺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을 기억에 갇혀 있는 동안도 수십 수백 번을 했었다.

“설마 자네와 다시 이곳에서 겨루게 될 줄은 몰랐군.”

권왕은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자신과 검성이 오십여 년 전 겨루었을 때 흔적으로 지형이 변해 있었고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실력에 자신 있나 보군.”

검성은 권왕이 은은하게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자 물었다. 자신이 일월문에서 다른 곳에서 겨루자고 제안했을 때 자신 있게 받은 점도 그렇고, 지금도 시종일관 태도가 자기 실력에 자신감이 있어 보였기에 물은 것이었다.

권왕은 검성이 반로환동하여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경지에 오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 온 실력과 경험을 믿었다.

“자네가 무림에서 사라졌을 때, 공허함을 느꼈지. 목표가 사라진 듯한 기분 말이야. 그건 초 형이나 가영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애령이야 자네에게 도전 의식 자체가 없어서 그런 기분을 느끼지 않았을지는 모르지만, 자네는 우리들의 목표였고 자네의 강함은 우리가 질투를 느낄 정도였지.”

권왕은 검성을 향해 뱉어 내듯 이야기했다. 그의 눈빛이 달라지며, 잔잔하게 표출하던 투기가 몸 안으로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난 계속 자네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돌아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지. 나의 허망한 바람이었을지 모르지만…….”

스스스스―

“자네는 지금 내 눈앞에 있군.”

권왕의 말과 함께 가라앉았던 그의 기운이 다시 방출되기 시작했다. 주위 공기가 떨릴 정도의 기운을 뿜어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