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비밀(秘密)(1)
“그럼, 이렇게 하시죠.”
검성이 살기를 은은하게 뿜어내는 가운데, 은한의 말에 검성과 풍천개가 동시에 그녀를 보았다.
“무엇을 말이냐?”
“이것을 먹이시죠.”
은한은 품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어 흰색의 작고 둥근 약을 검성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엇이냐?”
“환혼단(還魂丹)이라는 비약입니다.”
“환혼단?”
검성은 은한이 내민 약을 받아 들며 되물었다.
“비천(秘天)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그 상대에게 먹이는 약인데, 풍천개에게 사용해도 될 듯합니다.”
은한의 말에 풍천개는 머리에 무거운 둔기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오는 듯했다. 검성도 놀라운데 비천의 사람까지 자기 앞에 있다니, 이제 점점 자신의 명줄이 짧아지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어떤 약인 것이냐?”
“먹이고 암시를 걸어 놓으면, 비밀에 대해 발설하려는 순간 혈류가 역행하고 말문이 막히면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암시라면?”
검성의 물음에 은한은 풍천개를 한 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앞으로 풍천개는 검성에 관한 것과 비천에 관한 오늘 일을 입에 올리려는 순간, 죽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헉…….”
풍천개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집어삼키자, 두 사람 모두 그를 보았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것을 먹겠느냐?”
검성의 말에 풍천개는 짧은 시간 동안 머리를 세차게 굴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는 것보다는 약을 먹는 것을 선택해야 했다.
“먹겠습니다.”
그 답에 검성은 받아 든 약을 건넸고, 풍천개는 바로 약을 삼켰다.
“입 안에 약을 감추고 먹은 척을 해도 소용없어요. 환혼단을 먹게 되면 바로 눈빛에 약간 푸른빛이 돌거든요.”
은한의 말에 풍천개는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사실 삼키는 척하며 입 안에 감추고 있었는데, 은한이 바로 알아챈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검성이 진한 살기를 뿜어내자, 풍천개는 바로 입에 감추어 두었던 환혼단을 제대로 삼키었다.
“저, 정말로…… 먹었습니다…….”
풍천개가 자신의 입을 벌려 보이며 은한에게 보여 주기까지 하자, 그의 적극적인 행동에 은한은 눈살을 찌푸렸다. 개방의 거지답게 그가 입을 벌리자 냄새가 심했기에 은한은 진저리를 쳤다.
“됐어요. 확인했으니, 입 닫아요.”
굳이 구취 맡을 필요도 없었다. 은한은 풍천개의 눈에 푸른빛이 서려 있음을 확인하고 그가 환혼단을 먹었음을 인정했다.
“이제 내 눈을 보세요.”
은한은 풍천개를 잡아 자신의 앞에 앉혀 눈을 마주 보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한 풍천개는 이내 눈빛이 흐리멍덩해지며 눈에 초점을 잃어 갔다. 뒤이어 은한이 알 수 없는 말을 읊어 대기 시작했다.
검성은 그런 은한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주위 사람의 접근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짝―
이내 은한이 알 수 없는 말을 멈추며 정신을 잃은 풍천개의 얼굴 앞에서 손뼉을 쳤고, 그와 동시에 풍천개의 시선이 돌아오며 정신을 차린 듯했다.
풍천개는 잠시 자기가 정신을 잃었다는 것을 모른 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자, 은한은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며 일어났다.
“끝난 것이냐?”
“네. 풍천개가 오늘 저희들에 대해 안 것을 입 밖으로 내거나 글로 적으려고만 해도, 바로 혈맥이 역류하면서 터져 죽을 것입니다.”
은한의 말에 듣고 있던 풍천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몸 안에 이제 벽력탄을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럼, 넌 가도 좋다.”
“네…….”
검성의 떠나라는 말에 한편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에 인사를 꾸벅하고는 바로 자리를 피했다.
나름 개방에서 이름 있는 인사였으나 죽음을 코앞에 마주했었기에 그런 체면을 따질 수가 없었다.
“휴.”
풍천개가 사라지자 은한은 안도감에 숨을 내쉬었고 그런 그녀를 검성이 빤히 보았다.
“넌 왜 남장을 하고 있는 것이냐?”
“네? 그걸 왜 갑자기 물으세요?”
은한은 검성의 뜬금없는 물음에 허탈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사실 검성이 환혼단이나 방금 보여 준 암시에 대한 물음을 해 올 줄 알았는데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을 하자 당황한 것이었다.
“갑자기 궁금하구나. 이목구비를 보니 오밀조밀한 것이 꾸며 놓으면 천상 여인일 얼굴인데, 왜 굳이 비천에서 고생하고 있는 게냐.”
검성이 자신을 응시하자 은한은 얼굴을 붉히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웬만하면 그렇게 여자를 쳐다보지 마세요.”
“아, 미안하구나. 예전에 도후도 그런 소리를 참 많이 했었는데…….”
은한의 말에 검성은 늘 그녀와 같은 소릴 했었던 도후 유가영을 떠올렸다. 그녀는 검성을 늘 따라다녔는데 여인들과 검성이 이야기를 나누면 꼭 나중에 와서 여인들과 눈을 마주치지 말라고 매번 화를 내었다.
모든 여자를 홀리고 다닐 거냐고 하면서 검성은 은한의 말에 도후 와의 추억을 떠올리고는 한편으로 그녀에 대한 죄스러움과 원망이 교차하는 감정을 느껴야 했다.
“남장을 한 것은 회주가 그렇게 하도록 권했어요. 선택을 한 것은 저였지만요.”
“비천회주가? 왜 굳이 남장을?”
“여인으로서 다니면 시선을 많이 받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검성의 제자와 함께 있는 여인에 대해 궁금증을 가질 테니…… 차라리 남자로 옆에 있다면 관심이 덜할 거라고요.”
“그렇군.”
검성은 그제야 비천회주의 뜻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비록 임진후의 신분이긴 하나, 여전히 시선을 주목받는 외모를 가진 검성은 무림을 다닐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가질 터였다.
그러니 동행자가 여자라면 그에 대한 관심을 많은 사람들이 가질 게 분명했다.
그것을 피하고자 은한은 남장을 선택한 것이었다. 물론 남자여도 관심을 받기야 하겠지만, 여자인 것보다는 덜할 게 분명했다.
“환혼단이라는 것은 믿어도 되는 약이냐?”
“제 정체까지 일부러 밝히고 먹인 것인데, 믿지 않으신 겁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노파심에서 묻는 거라고 생각해다오.”
젊디젊은 얼굴로 노파심이라는 말을 하니 은한으로서는 웃겼지만, 속은 백 살이 넘은 노인이니 이해하고 넘어갔다.
“문제없습니다, 어르신.”
“그렇구나.”
“그건 그렇고, 일월문주와 싸울 기회였는데 왜 무산된 건지요?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는데요. 풍천개가 도대체 두 사람의 대화 중에 무엇을 읽었기에 검성께서 이렇게까지 하셨습니까?”
은한은 이제야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두 사람이 연무대 위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었고, 풍천개는 무엇을 들었기에 검성이 개방의 인물까지 죽이려 하며 그 비밀을 지키고자 한 것인지…….
단지 검성의 비밀만으로는 이렇게 나왔을 리가 없다 여겼다.
“일단 객잔으로 돌아가자. 여기서 하루 더 묵어야 할 듯하니 말이다.”
검성은 은한의 물음에 답하지 않은 채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이에 은한은 다시 검성에게 달라붙어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은 검성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환혼단까지 썼는데 그가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자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하지만 검성은 은한의 말을 무시한 채 객잔이 도착할 때까지 답해 주지 않았고, 은한은 가슴속 화를 삭여야만 했다.
* * *
“어서 옵, 어……? 다시 오신 겁니까?”
점소이는 검성과 은한을 알아보고는 놀라 물었다. 그들이 객잔 처음 도착했을 때 안내했던 어린 점소이였다.
“이야, 안 그래도 태원에 소문이 벌써 다 퍼졌습니다. 천풍공자가 검성의 제자에게 단 일장에 패한 채 쓰러졌다고요.”
점소이가 웃으며 떠들자 객잔의 모두가 검성에게 시선을 집중했고, 은한은 또다시 난감한 표정으로 시선을 피해야 했다.
“그만 떠들고 이전에 묵었던 방 두 개를 내어다오. 좀 쉬어야겠으니.”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손님들이 묵었던 방이 비어 있으니 그대로 내어 드리겠습니다. 나가신 후 바로 청소해 두었으니 바로 방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점소이를 뒤따른 그들이 이 층으로 사라지기 전까지, 객잔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식사를 하시려면 내려와서 드십시오. 필요한 것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점소이는 방을 안내하고는 두 사람에게 깍듯하게 인사한 뒤 내려갔다. 검성의 심부름 몇 가지를 하고 꽤 짭짤한 수입을 챙겼던 터라 귀하게 모시는 것이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검성의 모습에, 은한은 그저 뒷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자기 혼자 떠들며 물었지만 대꾸조차 하지 않았던 검성이었기에, 나름 은한도 악에 받쳐 있었다.
“안 들어오고 뭐 하느냐?”
“네?”
은한은 검성의 말에 놀라 물었다.
“네가 묻던 것을 들으려면 방에 들어오너라.”
“아, 네.”
은한은 검성의 말에 냉큼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선 검성은 창문을 열고 검을 내려놓은 뒤, 작은 탁자 앞의 의자에 앉았다.
은한도 검성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무엇부터 말해 주면 되겠느냐?”
“왜 패왕과 겨루지 않았는지요? 아니,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요?”
검성의 물음에 은한은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기에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패왕이라…… 단지 그곳은 그와 겨룰 장소가 아니었느니라.”
“그게 무슨……?”
은한은 두루뭉술한 검성의 대답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패왕 양원. 그자에 대해 비천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느냐.”
“그거야…… 권왕의 직전 제자이지요. 대결에 있어 삼 초 이상 쓴 것을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공이 강하고, 산서에서 사파를 몰아내어 정파의 존경을 받는 무인입니다.”
은한은 이미 일월문으로 오기 전에 권왕과 일월문에 대해 알아보고 왔었기에 이야기를 술술 해 나갈 수 있었다.
“저희도 최근에 일월문에서 권왕의 흔적을 찾아냈는데, 문파에 숨어 있거나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게 비천이 파악하고 있는 것 전부냐?”
“네…… 일단 제가 들은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은한은 검성이 이렇게 묻는 것이 이상했지만, 검성이 이유를 말해 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의 말을 기다렸다.
“일월문에서 권왕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비천의 생각대로 권왕이 그곳에 있는 것은 맞다.”
“혹시 어젯밤 일월문에 찾아갔을 때 권왕의 만난 것입니까?”
“아니. 전날에 찾아갔을 때는 권왕을 만나지 못했다. 일월문에 찾아가 그곳에서 가장 큰 기운을 감지하고 찾아갔지만 일월문의 문주의 거처였더군. 그의 호위대로 인해 소란이 일었고 말이야.”
“그거야 저도 아는 부분인데…….”
“난 일월문에서 가장 큰 기운을 느끼고 찾아갔는데, 그게 일월문주였다. 그럼, 무엇을 의미하겠느냐? 너희의 말대로 일월문에 권왕이 있는 것이 맞는다면, 내가 기를 감지하고 찾아갔을 때 권왕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검성의 말에 은한은 안 그래도 동그란 눈이 더 커지며 더 동그래졌다.
“설마……? 일월문주가 권왕 본인이라는……?”
은한은 말하면서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검성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미 백 살이 넘은 검성이 반로환동했다는 것도 믿기 어려울 지경인데, 권왕의 제자로 알려져 이십 년이 넘게 산서성의 패자로서 살아온 양원이 권왕 본인이라니.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