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도전(挑戰)(2)
“임 소협께서도 이해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연무대로 올라와 모두에게 외쳤던 일월문의 중년인은 검성을 향해 양해의 뜻을 구했다.
이미 마음대로 사람들의 동의를 먼저 구해 버린 이상 검성이 반발하기도 꼴이 우스웠다.
“내가 뭐 할 말이 있겠습니까. 대신 하나 약속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입니까?”
“저 일월문의 소문주라는 자를 이기면 문주에게 도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검성의 말에 감오는 물론 중년인도 놀랐고, 이야기를 들은 주위 사람들도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소문주를 이기면’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이미 자신의 앞에 있는 감오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었기에 일월문의 무인들과 감오의 신경이 자극된 것이었다.
검성의 말에 당황한 중년인은 자신이 답하지 못한 채 귀빈석을 바라보았고, 일월문주인 양원과 무슨 전음을 주고받는 듯하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소문주를 이기면 문주님이 그대의 도전을 받아들여 직접 상대해 주겠다 하십니다.”
“마음에 드는군요. 그럼 얼른 시작하지요.”
검성의 말에 중년인과 일월문도들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특히 감오의 표정은 겉으로 보기에도 이미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 총관님, 시작해 주시죠.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감오는 화를 가라앉히고는 중년인을 향해 말했다. 그는 일월문의 총관인 이풍이었고, 그도 검성의 말에 감오만큼이나 화가 났으나 감오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럼, 일월문의 감오 대 검성의 제자인 임진후의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살생은 허용치 않고 한쪽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더 이상 대결을 이어 갈 수 없다 판단하면 제가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이풍은 모두가 들리도록 크게 외치고는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두 사람 다 준비되었습니까?
“준비되었습니다.”
이풍이 마지막으로 대결의 시작을 외치고는 연무대 위를 내려왔다.
그의 시작 신호와 함께 소란스럽던 주위도 어느 정도 안정되어 연무대 위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지켜보고 있는 일월문도들은 모두 감오가 검성의 제자에게 한 수를 가르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진 채 보고 있었지만, 상대가 검성의 제자인 만큼 조금은 다른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다.
“검성의 제자라는 자의 기도가 보통은 아니군요.”
연무대를 바라보며 무당의 현월자(玄月子)가 말했다. 그가 입을 열자 귀빈석의 모든 인물이 놀라 현월자를 보았다. 현월자는 무당의 장문인의 사제로 무당의 최고 고수로 꼽히는 실력자였다.
현월자는 원래 말이 없는 인물인지라 무당파의 사제들도 현월자의 음성을 일 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할 정도로 말이 없는 인물이었는데, 그런 그가 먼저 입을 열자 모두가 놀란 것이었다.
현월자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한마디를 끝으로 다시 입을 닫으며 연무대 위를 주시했다.
검성이 보통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현월자뿐만 아니라 귀빈석에 있던 몇몇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검성 제자에 대해 감상을 늘어놓는 사이, 일월문주인 양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연무대를 검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지만 그냥 닮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양원은 검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 *
연무대 위의 두 사람은 시작 소리를 듣고도 한참 움직임이 없었다.
“검을 안 뽑으시오?”
감오는 검성이 손에 쥔 검을 뽑지 않은 채 그냥 서 있자 의문을 표했다.
“그쪽의 장기는 무투(武鬪)가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죠. 그건 왜?”
감오는 검조차 뽑지 않고 묻는 검성의 말에 의아함을 느끼며 되물었다.
“저도 검을 쓰지 않도록 하지요. 굳이 쓸 필요도 없을 듯하고.”
“뭣이―!”
감오는 그 말에 인상을 다시 한번 구기며 일갈을 내질렀다. 감오뿐 아니라 말을 들은 모두가 광오(狂傲)하기까지 한 그의 말에 놀라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참고 있는데, 어린놈이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감오도 상대가 무려 검성의 제자였기에 계속 참고 있었는데, 결국 더 이상은 억누르지 못했다.
“검성의 제자라기에 그래도 곱게 걸어서는 갈 수 있게 해 주려 했지만 이제 자비를 바라지 말거라!”
감오는 내력을 끌어 올리며 전의를 불태웠다. 안 그래도 검성의 말투나 생긴 것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제대로 상대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검성에게는 그런 감오의 행동들이 우습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삼 초(三招).”
검성은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말했다.
“삼 초를 접어 달라는 소리냐? 그리 큰 소리 치더니 이제 와 겁이라도 난 게냐!”
감오는 검성의 행동에 크게 비웃었고, 그를 따라 일월문도들 역시 같이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귀빈석에 있는 인물들만은 그 행동의 의미를 알았기에 웃지 못하고 얼굴을 굳힐 뿐이었다.
“이거, 문주가 제자를 잘못 가르쳤군. 상대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 무(武)의 기본이거늘.”
귀빈석 한쪽에 앉아 준비된 다과를 게걸스럽게 먹던 중년의 거지가 혀를 차며 말했으나, 일월문주 양원은 그 거지의 말에 따로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개방 산서성의 분타주인 풍천개였다.
개방의 산서 분타는 태원에 있었는데, 검성의 제자가 일월문에 도전장을 보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일월문에 달려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역시나 자신의 감은 틀리지 않았다. 연무장 위의 있는 검성의 제자는 감오의 반응에도 서늘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 태도는 무엇이냐? 삼 초를 접어 달라는 놈이…….”
“내가 언제 삼 초를 접어 달라고 했나?”
한 문파의 소문주라면 마땅히 그 어깨에 문도들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눈앞의 젊은이는 소문주의 자격이 없다. 하룻강아지 주제에 범의 아가리를 몰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친우였던 권왕이 세운 일월문이었기에, 되레 실망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가 너의 삼 초를 받아 주겠다는 소리였는데, 왜 개소리를 하고 처웃는 것인지 모르겠군.”
“뭣이…… 이놈이 미친 것이냐!”
검성의 말에 감오는 물론 일월문의 모든 인물이 당황해했다.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지만, 일월문의 후계자에게 삼 초를 접어주겠다니. 직접 듣지 않았다면 믿지 못할 말이었다.
산서성에서 일월문은 가히 최강의 문파였다. 최근 위세로만 보면 구파일방에 버금간다 할 수 있었다. 그런 일월문의 후계자가 얕보이는 것이었으니 일월문도들이 발끈 안 할 수가 없었다.
당사자인 감오는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어이가 없어 하고 있었고, 일월문의 사람이 아닌 자들은 검성의 행동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특히 귀빈으로 초대받은 각 파의 인사들은 검성의 기세를 주의 깊게 바라봤다.
“삼 초를 접어줄 필요 없으니 그냥 덤비도록 해라! 누가 누구를 봐주겠다는 건지, 어이가 없구나.”
“후회할 텐데 괜찮은 거냐?”
감오는 검성의 말에 미간이 찌푸려졌고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참고 또 참았다.
“그 오만방자한 입…… 더는 놀리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감오는 이를 꽉 물며 말했다. 두 사람 사이 대화가 사라지면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미 열을 받을 대로 받은 감오가 먼저 움직였다.
파방―!
단번에 신형을 날린 감오가 내기를 집중해 일권(一拳) 전개했다. 가히 일류고수들조차 막지 못할 검강이 날아왔으나, 검성은 그저 한 보를 내디뎌 피해 내었다.
“어딜!”
상대가 손쉽게 피해 내자, 감오는 좌수(左手)로 지강(指剛)을 쏘아 내었다. 검지와 엄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환격(幻擊).
하나 이 모든 건 우수(右手)에 내력을 모아 연격(連擊)을 노림일지니!
“금선장(錦線掌)!”
촤자자작―!
그가 내지른 일장(一掌)은 그대로 검성의 옆구리에 박히는 듯했다.
그 순간.
콰과광―
“크헉!”
쿠당탕―!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며 폭음과 함께 누군가 연무장 밖으로 떨어졌다.
주위의 모두는 그 모습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비명성과 함께 굴러떨어진 것은 공격을 한 감오 쪽이었다.
그는 그대로 기절한 채 대자로 뻗어 버렸다.
감오는 검성의 허점을 공략하여 옆을 잡고 큰 공격에 성공했다고 여겼지만, 그의 일격이 검성의 느린 일장과 부딪치는 순간, 큰 충격과 함께 감오만 튕겨져 나가떨어진 것이었다.
검성의 일장(一掌).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감오가 무너지자, 일월문도들은 할 말을 잃고 동요하기 시작했고, 장내는 침묵만이 가득했다.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던 은한은 나름 기뻐하며 검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검성도 그 모습에 미소를 보였다.
“끝이 난 듯한데, 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요?”
검성이 무대 아래서 입을 벌리며 놀라고 있던 이 총광에게 묻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연무대 위로 올라갔다.
“대결의 승자는 임진후입니다.”
이 총관의 선언에도 환호성은 들리지 않았고, 되레 침울한 분위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기절한 감오에게 많은 사람이 달라붙은 채 그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역시, 대단한 실력자였군.”
귀빈석에서 지켜보던 풍천개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감탄했다. 중소문파의 문주와 사람들은 일월문주 양원의 눈치를 보느라 내색조차 못하고 있었지만, 개방 소속인 그는 일월문주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은 채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현월자께서는 어떻게 보셨습니까?”
풍천개는 혼자 감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결을 말없이 지켜보고만 있던 현월자에게 질문까지 했다.
그 모습에 나머지 사람들은 양원의 눈치를 보며 살얼음판 위에 올라선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저 나이 대에 가질 수 있는 무위(武威)가 아닌 듯하오. 임진후라고 했소? 당장 내가 연무장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구려.”
“하하. 이거, 직접 듣지 않았으면 누구도 믿지 않을 말이군요. 천하의 현월자가 겨루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니…….”
풍천개는 현월자의 말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현월자가 검성에게 관심을 가지기에, 혹시나 반응이 있을까 해서 물은 것이었다.
현월자가 대답해 준 것도 놀랐지만, 그 말은 더더욱 놀라웠다.
무당 제일 고수로 평가받는 현월자가 직접 겨루고 싶어 하는 싶어 할 정도라니? 게다가 저 청년은 약관조차 갓 지난 젊은이가 아닌가.
풍천개는 지금 이 순간, 무림에 신성이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저 아이는 현월자 대협이 아니라 다른 자를 보고 있으니, 그 바람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습니다.”
풍천개의 말마따나 검성은 대결의 끝이 선언된 후부터 귀빈석의 양원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이거, 약속대로 패왕께서 나서셔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풍천개는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말했으나, 그의 말에 괜히 다른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대결을 지켜본 모두는 저 젊은이가 일월문주 양원을 도발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자칫하여 문주가 진다면, 금일로써 무림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었다.
“…….”
양원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검성을 한참 쳐다보고는 천천히 연무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행보에 모두가 긴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