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64화 (64/251)

64화― 검성의 첫 발걸음(1)

산서성(山西省) 태원(太原).

천통자와 헤어진 검성은 바로 백아를 타고 은한과 함께 일월문이 있는 산서성 태원으로 날아와 대로를 거닐고 있었다.

외모가 워낙 뛰어난지라, 두 사람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나름 그런 시선에 익숙한 검성이야 무시한 채 걷고 있었지만, 은한은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하며 검성과 거리를 둔 채 걷고 있었다.

“배가 고프지 않으냐?”

검성이 자신과 멀리 떨어져 따라오고 있는 은한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객잔에 가서 간단하게 요기하고, 하루 묵을 곳을 찾자. 이미 어두워지고 있으니 일월문에 방문하는 것은 내일 해야 할 듯하니까 말이다.”

검성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는 하늘을 보며 이야기했다.

하늘엔 이미 어두운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기에, 검성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검성은 사람들에게 물어 가장 가까운 객잔으로 향했고, 은한도 검성의 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움직였다.

곧이어 가까운 객잔의 주렴을 걷고 들어가자, 어린 점소이 한 명이 바로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식사와 숙박 어느 쪽이십니까?”

“식사와 숙박 둘 모두.”

검성이 짧게 답하자, 점소이는 검성과 은한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방은 하나면 되겠습니까?”

“아니, 두 개로.”

“두 개요?”

점소이는 남자 둘이 다른 방을 쓰겠다고 하자 조금은 이상하게 여겼으나, 돈만 지불하면 뭐 상관없는 일이었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방은 준비해 두겠습니다. 식사부터 하시죠. 빈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점소이의 말에 검성은 구석에 빈자리로 향했고, 은한도 검성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두 사람의 모습이 조금은 특이했기에 점소이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객잔을 하다 보면 워낙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보니 이내 관심을 접었다.

“뭘 먹을 테냐?”

“저는 면 요리 중에 간단하게 요기할 수 있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또 다른 점소이가 주문을 받기 위해 다가왔다.

“이 객잔에서 가장 잘 팔리는 면 요리 두 개와…… 여기 술은 뭐가 있느냐?”

“술은 종류가 제법 있습니다만, 저희 객잔에서 가장 잘나가는 술은 백매화주(白梅花酒)입니다.”

“그럼, 술은 그걸로 하나 주도록 하고…….”

검성이 말하며 은한 쪽을 보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잔은 하나만 가져다주게.”

“네.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점소이가 주문을 받고 사라지자, 검성은 자신 앞에 앉은 은한을 빤히 보았다.

“천통자는 말이 너무 많아 별로였는데, 너는 너무 말이 없어서 재미가 없구나.”

“그럼, 천통자를 불러 드릴까요?”

“아니다. 천통자보다야 네가 좋을 듯하구나.”

검성의 말에 표정 없던 은한도 조금 미소를 보였다.

“웃으니 확실히 여자아이로 보이는구나.”

그 말에 은한은 표정이 굳은 채 검성을 보았다.

검성은 미소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남장한 이유는 모르겠다만, 웬만한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네가 여자라는 것을 금세 눈치챌 것이다. 내가 눈치가 빨라서 눈치를 챈 게 아니란 말이니라.”

“그래서 방을 두 개 잡아 주셨던 건가요?”

“그렇지. 아무리 어린애라지만 여자와 같이 잘 수는 없으니까.”

검성은 은한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녀가 여인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방을 잡을 때도 따로 두 개를 잡았던 것이었다.

은한은 말을 잃고 있었는데 음식이 나와 두 사람의 정적을 깨주었다.

“방은 2층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올라가실 때 말씀하시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음식을 다 내려놓은 점소이는 두 사람에게 말하고는 사라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 요리가 두 사람 앞에 놓여 있었다.

“도삭면(刀削麵)이로군.”

“도삭면이요?”

은한은 도삭면을 처음 봤기에 신기했다. 자신이 봐 오던 면 요리와는 무언가 형태가 달랐다.

“처음 보는 것이냐? 산서에서는 나름 유명한 요리인데 말이야.”

검성의 말에 은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비천 소속으로 많은 곳을 돌아다니긴 했지만, 산서는 처음이었다.

“몽골족의 지배를 받을 때 생겨난 면 요리지. 먹어 보도록 해라, 먹을 만할 거다.”

은한은 검성의 재촉에 젓가락을 들어 도삭면을 한참 보다가 젓가락질을 시작했고, 금세 그 맛에 빠져 젓가락질에 신을 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검성도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고, 도삭면과 같이 나온 백매화주를 자작하며 허기를 채웠다.

“엄청 맛있습니다.”

한참을 젓가락을 움직이던 은한이 절반 이상 먹고서야 검성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검성은 술을 들이켜려다가 미소를 보였다.

“나름 슬픈 역사를 가진 음식이니, 그 의미를 알고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슬픈 역사요?”

은한이 관심을 보이자 검성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몽골족들의 통치를 받던 시절, 통치 계급인 몽골인들은 한족이 반역할까 염려하여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모두 빼앗았는데, 요리용 식칼도 허용치 않아 모두 몰수를 했었다.

그렇게 요리할 수 있는 칼마저 빼앗긴 사람들은 좌절치 않고 쇳조각을 이용해 감자를 깍을 때처럼 반죽을 쳐 내어 요리를 하였는데, 그것이 지금의 도삭면의 유래가 되었다.

현재 왕조를 세운 주원장은 산서성이 고향이었는데, 이 도삭면을 즐겨 찾을 정도였다.

검성의 이야기를 듣자 은한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보였고, 조금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리며 웃기 시작하자 검성도 나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너는 소속이 그러한데 이런 사실도 모르느냐?”

“모를 수도 있지요. ‘그쪽’께서도 모르는 것이 많아 저를 데리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검성이 장난스럽게 은한을 핀잔을 주자, 그녀는 앙칼지게 답했다. 다른 이들이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말을 편히 하라고는 하긴 했지만, 정말로 자신에게 편하게 나오자 나름 당황도 되었다.

“그래도 그쪽은 너무하지 않느냐.”

“그럼…… 뭐라고 부를지요?”

은한도 살짝 자신이 너무했다는 것을 느끼고 물었다. 자신보다 거의 백 년을 더 산 사람에게 이름을 부르기도 어색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꺼낸 게 ‘그쪽’이라는 호칭이었는데, 하고 보니 또 이상했다.

“남장을 하고 있으니 임 형(兄) 어떠냐?”

“임 소협이라 부를게요.”

검성이 또다시 장난스럽게 이야기하자 은한은 미안했던 감정이 사라진 채 차갑게 답했다. 마치 손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 듯하여 검성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검성은 도삭면을 안주 삼아 백매화주를 즐기며 여유롭게 있는 반면, 검성의 미모로 인해 객잔에서도 시선을 모으고 있는 탓에 은한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식사를 마쳤다.

“여기까지 따라오긴 했지만 당장 내일 어떻게 하실 예정이신지요. 그냥 쳐들어갈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은한의 물음에 검성은 마지막 남은 한 잔을 들이켜고는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쳐들어갈까 생각 중인데 좋은 생각인 것 같지 않느냐?”

“농담이시죠?”

은한은 검성의 장난기 섞인 말에 사실이 아닐 거라 생각하고 다시 물었지만, 검성의 눈빛은 너무나도 진지해 보였다.

“친우의 꼴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느니. 내가 친우를 보겠다는데 전략은 필요치 않느니라.”

검성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은한은 검성이 명확히 답해 주지 않고 일어서자 조금은 답답해졌다.검성이 그대로 자리 털고 일어나자 은한은 당황했다. 비천회의 지시로 검성을 따라다니고는 있었지만 자신이 들어왔던 검성의 성격과는 전혀 달랐다.

진중하고 모든 이에게 예의 바른 성격이라고 들어왔는데 전혀 딴판이었다. 방금은 마치…… 불같지 않은가.

‘회주님이 날 놀리려고 거짓을 말해 주신 건가…….’

은한은 자신을 버리고 점소이에게 물어 이 층으로 올라가는 검성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는 얼른 그를 쫓아 따라 올라갔다.

* * *

객잔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검성은 창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시켰다. 그사이에 해는 떨어져 어두워진 밤이 되어 있었다.

들어올 때부터 이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는데, 과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비로구나…….”

창문 밖의 대로에는 미쳐 비가 오는 것을 몰랐던 사람들이 급하게 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금세 도로는 한적해지고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달도 상현(上弦)이라 달빛도 어두웠고 비구름에 가려 어둠은 더욱 짙게 깔리고 있었다.

“계십니까?”

방문 밖에서 들려오는 기척에 검성은 눈길을 그리로 돌렸다.

“들어오게.”

검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처음 객잔에 들어왔을 때 맞이했던 어린 점소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무언가 들려 있었다.

“이야기하셨던 것을 구해 왔습니다. 저희 숙소에서 덩치가 맞을 만한 사람 옷이라고 가져오긴 했는데,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점소이는 수줍게 자신이 가져온 것을 내밀었다. 그것은 평범한 검은색 일상복이었다. 중간중간 해져 있었고 구멍도 군데군데 나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구나.”

검성은 옷자락을 받아 들고는 품의 전낭에서 은자를 하나 꺼내어 점소이에게 주었다.

점소이는 인사를 꾸벅하며 은자를 소중히 챙겨 들고 방을 나섰다.

“준비해 볼까.”

검성은 약간 큰 검은 옷을 바깥에 껴입기 시작했다. 곧이어 정천검을 침상 아래에 숨겨 두고는 은한이 묵고 있는 옆방의 살짝 살피며 다시 창문으로 향했다.

창틀에 올라선 검성은 순식간에 도약하여 이 층에서 뛰어내렸다.

타닥―

가볍게 착지한 후, 속도를 붙여 어디론가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리고 비까지 내리고 있어 거리에는 사람이 적었다. 그나마 상인 몇몇이 지나가긴 했지만, 검성은 사람들에 눈에 띄지 않은 채 빠르게 달려 나갔다.

* * *

빗줄기를 뚫고 적지 않은 시간을 이동한 끝에 검성은 큰 저택 앞에 멈추었다.

“설마 했는데, 정말 여기였군.”

검성은 멈추어 선 저택 입구의 현판을 확인했다.

현판에는 일월문(日月門)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검성은 객잔을 빠져나와 혼자서 일월문으로 온 것이었다.

예전 그들이 아직 젊었을 적, 권왕은 오절 모두를 데리고 이곳의 땅을 보여 주며 자신은 차후 자신만의 세력을 이곳에 세우겠다고 말한 적 있었다.

그에 친우들은 모두 웃으며 권왕의 염원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축원해 주었던, 그때의 기억이 생각났다.

당시 권왕의 말은 호기롭고 패기 넘쳤기에 검성은 진정으로 그가 꿈을 이루길 바랐다. 하지만 그때의 순수했던 권왕은 자신의 잇속만을 챙기는 노물이 되어 있었다.

후드득―

검성이 일월문의 대문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이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다. 검성은 품 안에서 검은 두건을 꺼내 얼굴을 가렸다.

‘권왕…….’

눈 아랫부분을 두건으로 가려 뒤로 묶은 검성은 비로 잘박해진 지면을 박차고 올라 일월문 안으로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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