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비천회(秘天會)
“권왕은 지금 일월문에 있습니다.”
“확실한 이야기겠지?”
검성은 천통자가 말을 질질 끈 이유가 주위에서 느껴지는 기척들 때문일 것이라 짐작했다. 아마도 전음을 통해 허락이 떨어졌기에 다시 입을 열었을 터였다.
“네. 물론이죠. 권왕이 일월문에 머물고 있은 지도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너무 이동이 없어서 저희도 이상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냥 찾아간다고 그냥 만날 수 있을 리는 없을 테지만 일단 가 보긴 해야겠군.”
“그냥 막무가내로 찾아가실 예정이십니까?”
“아니, 적당한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우선은 권왕을 찾아가 결판을 지으리라고, 검성은 자신의 행선지를 정했다.
“그런데 네가 계속 날 따라올 생각인가?”
“제가 싫으십니까?”
천통자는 검성의 물음에 자신의 염소수염을 만지며 웃어 보였다.
검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천통자는 말이 많고 귀찮은 사내였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싫어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너 같으면 늙은 능구렁이가 귀여운 척을 하는데 싫지 않겠냐?”
“뭐, 제가 늙었으면 검성께서는…….”
천통자는 말을 하려다 검성의 얼굴을 보고 끝까지 말을 마치지 못했다. 이미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외모니 자기가 무슨 말을 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제가 검성을 따라다니지는 않을 겁니다. 적당한 인물을 보내 준다고 했으니, 아마 조금 있으면 여기로 올 겁니다.”
“이미 그쪽이랑 이야기를 마친 모양이지?”
처음 권왕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뜸을 들였던 것도 그렇고,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 자들의 기세도 그렇고, 이미 천통자는 신비 단체의 지시를 받은 모양이었다.
“네. 안 그래도 조금 전에 검성께 모든 것을 말해 주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대신 사람 한 명을 붙이겠다 하고요.”
“그럼, 이야기해 보아라. 신비 단체라는 게 무엇인지 말이야.”
검성은 차에 손을 가져가며 천통자를 보았다.
천통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충은 아마 짐작하고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천통자는 말을 하며 검성의 눈치를 보았다. 천통자는 이미 검성이 어느 정도는 자신들의 조직에 눈치채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비천(秘天)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네만.”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자신의 생각을 답했다. 현 무림에서 신비지문이라고 칭할 수 있는 곳은 도후가 소속되어 있는 화풍곡(火風谷)과 비천, 두 곳이었다.
“역시, 짐작하고 계셨군요.”
“짚이는 곳이 비천뿐이라, 그곳이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검성은 차를 한 잔 들이켜며 답했고, 천통자는 미소를 보였다.
비천.
말만 무성할 뿐, 존재하는지조차 불투명한 데다 뜬소문만 있는 집단이었다.
사실 비천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무림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림의 긴 역사 속에서, 비천은 꽤 여러 번 무림의 일에 개입해 왔고, 무림의 평화를 위해 많은 기여를 해 온 신비 단체였다.
특히 그들은 정보력으로 무림에 꽤 큰 기여를 해 왔는데. 마교의 움직임이 있을 때나 새외 사패가 준동할 때나 황궁에서 무림에 관여하려 할 때마다 빠르게 무림에 그 정보를 주어 대응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워낙 음지에서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활동해 온지라, 많은 무림인이 그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하는 행동 자체가 비천이 해 오던 일이라 자연스럽게 떠올렸을 뿐이다.”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성의 말대로, 권왕과 신투 그리고 도후가 본래 만들고자 했던 단체는 비천을 닮아 있었다.
“사실 저희 조직도 처음엔 그들이 그렇게 모여 음지에서 저희와 비슷한 일을 하기에 조금은 놀랐었습니다. 하지만 금세 오절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겼고, 빠르게 갈라져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더군요.”
비천은 권왕과 신투, 도후가 만든 조직을 관심 있게 지켜봐 왔었다. 그들이 오절의 명성답게 의자제세 하는 모습이었기에 내심 응원도 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애초에 그들은 평판을 위해 협행했을 뿐, 진심으로 협의를 생각한 적 없었던 데다 욕심도 많았으니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본래 권왕과 신투는 검성에게 자격지심(自激之心)이 있었다. 사라진 검성의 업적을 이겨 보고자 의협심이 있는 척 조직을 결성하고 음지에서 무림을 위해 일을 해 왔으나 본성을 이기지 못해 관계가 틀어진 것이었다.
도후도 검성의 뜻을 이어 무림을 위해 힘을 합치자는 두 사람의 말에 속아 합류하긴 했으나, 그들이 서로 이권을 다투며 갈라서는 것을 보고 독자적인 힘을 구축하여 그들을 견제하려 했다.
그것이 십인회(十人會)라는 조직이었다. 도후를 따르는 가신 열 명으로 조직해 십인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그 이상의 세력으로 성장한 상태였다.
현재 무림맹주인 우금을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바로 도후의 십인회였다.
권왕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자체를 처음부터 탐탁지 않아 했고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는 일을 늘 꿈꿔 왔었다. 검성을 명성으로서 누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그는 특이하게도 제자를 시켜 산서성 일대의 세력을 규합하여 일월문을 세우도록 했다.
신투도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독자 세력을 구축했고, 그렇게 세 사람은 동지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입장이 되었다.
나름 이익을 나눠 먹으면서 현재는 조용한 상황이었다.
이야기를 마친 천통자는 검성의 상태를 살폈다. 같은 오절의 소식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던 탓이다.
검성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었다.
‘이렇게 말 많이 하면서 상대 눈치를 보는 것도 진짜 고역이군.’
천통자는 속으로 투덜대며 검성의 반응을 기다렸다. 천통자의 이야기가 검성에게는 나름 충격적일 수도 있었다. 친우였던 자들의 또 다른 면을 확인한 셈이니 말이다.
“……도후도 그들에게 이용당한 것인가?”
한참을 침묵을 지키던 검성의 첫마디는 도후에 관한 물음이었다.
“네. 도후가 애초에 그들과 함께하게 되었던 이유는 검성께서 늘 말버릇처럼 했던 ‘의자제세’의 뜻을 지켜 주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사실 저도 방금 안 사실이지만…… 도후가 임소려를 죽인 것도 권왕과 신투가 자극하여 벌인 것이라고 합니다.”
“가영…….”
검성은 천통자의 이야기에 도후의 이름을 나직하게 읊었다. 검성에게 도후는 참으로 미안했던 사람이었다. 그녀의 의지였다지만, 늘 자신의 곁에서 떠나지 않고 검성의 무림행에 모두 동참하며 사지를 함께 건넜던, 서로를 지키는 동료였다.
더구나 끝까지 그녀의 마음을 모른 척하며 곁을 내주지 않아 미안한 마음이 늘 있었다.
검성이 의식 속에 갇혀 있을 때, 임소려를 죽인 것이 도후 유가영임을 재확인하여 배신감도 강하게 들었지만, 그녀에게만 그 책임을 묻기엔 안쓰러운 마음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임소려를 죽이고 검성 자신의 옆에서 머물러 있었다는 것에 분노가 참아지지 않았다.
“가영…… 아니. 도후는 현재 화풍곡과 연을 끊은 상황인가?”
“그런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십인회도 현재 도후가 아니라, 그의 제자인지 다른 사람인지 모르지만 대모(大母)라고 불리는 인물에 의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도후는 어디 있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권왕 외에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후와 신투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살아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천통자는 말을 하며 또 검성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를 의식에서 깨울 당시에 모두 살아 있다고 말했던 터라 이런 말을 전하는 것이 조금 조심스러웠다.
“그렇군…… 그녀를 만나고 싶으니 도후에 대해 좀 더 알아봐 주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녀가 만든 십인회라는 곳은 다른 두 곳과 성향이 다른 것인가?”
“네. 그들은 현 무림맹주인 우금이 더는 어긋나지 않게 관리를 하고 있다 할까요? 우금은 약간 미친놈에 가까운데, 십인회가 통제하는 역할을 제법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소협에게 접근했던 정황도 있었습니다.”
“윤후에게?”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놀라 물었다.
“아마도 검성의 제자가 무림에 나타나자 관심을 보이고 알아보려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 큰 접촉은 없었습니다. 안면 튼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장가철장의 현 장주도 그들의 사람입니다.”
“장가철장이라…….”
“네. 장가철장 자체가 십인회의 소속이라기보단 현 장주와 그의 아내가 도후의 사람입니다. 현 장주인 장윤호는 이 소협의 무림행에도 꽤 도움을 주었던 거 같았습니다.”
“그런가? 그럼, 그리 걱정할 부분은 아니군.”
검성은 도후의 이야기가 나름 충격이었는지 말수가 한결 적어진 채 질문을 날리지 않고 있었다. 검성은 다시 생각에 빠진 듯 말이 없어졌고 천통자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차를 마시며 그가 생각을 마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때, 갑자기 진을 뚫고 오는 자가 있어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보았다.
작은 키의 사내가 석로를 걸어 정자로 다가오고 있었다.
유난히 하얀 피부에 큰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 웃는 상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였다. 그는 정자로 다가와 검성과 천통자를 향해 예를 취하였다.
“회주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은한(銀翰)이라고 합니다.”
“이자가 오늘부터 검성을 따라다닐 아이인가 봅니다. 이후 저를 만나고 싶거나 아니면 알고 싶은 정보는 모두 이 아이를 통해서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천통자는 은한을 다시 소개했고, 검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생각에 빠졌다.
“검성 어르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말고 얌전히 따라다니기만 하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회주께서 천통자 어르신은 본회로 돌아오시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래? 귀환령을 내리다니 특이하군.”
천통자는 비천의 활동을 하며 귀환령을 받았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특이하다 여겼다. 하지만 검성을 독대하고 이야기를 듣던 것이 자신이었기에 검성에 대한 물음일 것이라 생각했다.
“저는 이만 철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아이를 통해 연락을 주십시오.”
“그래. 그러도록 하마. 계속 도움을 받아야 할 듯하니 부탁한다.”
“네.”
천통자는 검성에게 짧은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이제 그 자리엔 검성과 은한이라는 사내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우리도 이동하자.”
생각을 마치고 일어난 검성의 말에 은한은 묵묵히 뒤를 따랐다.
이내 폐가 아닌 폐가를 나선 검성은 근처 야산으로 향했다. 이미 가야 할 곳이 정해졌기에 검성은 백아를 부를 수 있는 곳을 향해 움직였다.
새로운 동행인인 은한은 묻기 전엔 스스로 말할 생각이 없는 듯했기에, 검성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천통자와 동행했다면 그의 시끄러운 목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