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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62화 (62/251)

62화― 거래(去來)(2)

“좋습니다. 정보 제공을 하는 대신 저와 우리 조직이 따라다니는 것을 허락해 주셔야 합니다.”

천통자는 장고(長考) 끝에 답했다. 검성도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보였다.

“너희 조직이라는 곳이 어디인지부터 말해 보아라.”

“네? 그건 좀…….”

갑작스런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곤란한 표정을 보였다.

“너희들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야 내가 너희를 믿지 않겠느냐? 혹시 네놈들도 그쪽이랑 한패여서 날 이용하려는지 누가 알겠나.”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들의 조직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자신의 혼자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문제는 정말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위에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좋다. 하지만 대답은 빨라야 한다.”

“네. 연락하면 내일쯤 답이 올 겁니다.”

검성은 천통자가 오절의 셋과 연관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천통자가 말하는 신비지문(神秘之門)이라는 것에 짚이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려고 천통자에게 조직의 정체를 밝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일단 자리를 좀 옮기시죠. 여기에서 계속할 이야기는 아닌 듯합니다.”

천통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막이 있어 말이 새어 나갈 염려는 없었지만, 검성의 잘생긴 얼굴이 너무 시선을 집중시키는 탓에 주목을 너무 받고 있었다.

“네가 앞장서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천통자는 바로 일어나 계산하고 객잔을 나섰다. 검성도 그의 뒤를 따랐다.

검성은 나갈 때까지 객잔의 시선을 독점했다. 그가 나가자 여인들은 아쉬워하는 탄성을 지르기도 했고, 밖으로 따라 나오기까지 했다.

“여인들 시선 때문에 꽤 고달프시겠습니다.”

천통자는 뒤에서 소리까지 지르고 있는 여인들을 힐끔 보며 말했다.

“예전엔 귀찮기만 했는데 지금이야 제법 즐겨 보며 살아 볼까 한다.”

“네? 정말요?”

천통자는 검성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오자 놀라 되물었다. 검성은 젊었을 적에 임소려와 혼인을 약속했다.

사별한 탓에 혼인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검성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못 잊어 누구에게도 곁을 주지 않을 만큼 순애보였다.

도후가 화풍곡의 명까지 거역하면서 검성을 쫓아다녔지만, 결국 검성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일화 역시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런 그가 이제 여인들의 눈길을 즐기겠다고 하니 천통자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의 백 년간 그녀만 생각하며 살아왔으니, 이제 새로운 삶을 즐겨도 되지 않겠느냐? 물론 그녀의 복수와 나를 속인 녀석들에게 복수는 할 생각이다.”

“그렇습니까……?”

천통자는 검성이 농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거 많은 여인의 몸이 달아오르겠는데…… 그것보다 약선은 어떻게 되는 거지?’

검성의 태도에 천통자는 불현듯 약선이 떠올랐다. 검성에 대한 순애보는 도후만이 아니었다. 약선 역시 곁에서 바라보며 검성을 지켜 준 여인이었다.

그녀도 오절 중 권왕과 신투의 사랑을 받아 왔지만, 검성 때문에 청혼을 거절해 왔다.

오절 간의 사랑 다툼은 세간에도 유명한 이야기였는데, 이제 그 이야기의 후속편이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어디로 갈 예정이냐?”

검성은 천통자의 뒤를 따르던 중, 그저 하염없이 걷기만 하자 물었다.

“안쪽에 폐가(廢家)가 있습니다. 조금만 더 걸으시죠.”

천통자를 따라가자, 얼마 후 큰 장원이 나왔는데 사람은 살지 않는 듯했다.

장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밖에서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컸다.

“꽤 큰 장원인데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이냐?”

“원래 황궁에 있던 분이 관직을 내려놓고 귀향하여 살던 곳인데, 황제가 다시 그분에게 다시 관직을 내리셔서 급히 처분했던 집이죠. 저희가 사 놓고 일부러 폐가로 만들었다고 할까요…… 하여간 뭐 그렇습니다.”

“그렇군.”

천통자는 다시 한참을 걸어 정원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는데, 신기하게도 정원이 꽃과 나무로 꾸며진 것이 아니라 나무와 돌로 꾸며져 있었다. 기암괴석이 곳곳에 서 있었고, 돌로 된 구조물이 많이 서 있었다.

“신기한 모습이군.”

“그렇죠? 원래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지만 저희 쪽에서 제법 근사하게 꾸며 놓은 것입니다.”

천통자는 자랑을 하듯 이야기했다.

“돌들의 위치를 보아하니 진법을 만들어 놓은 거군.”

“…….”

검성이 정원의 핵심을 꿰뚫어 보자 웃고만 있던 천통자의 표정이 조금은 바뀌었다.

“금세 알아보시는군요. 검성께서 진법까지 조예가 깊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장원에 들어와서부터 느껴지는 기척들은 자네 쪽 사람인 겐가?”

“그것까지 아셨습니까? 나름 저희 세력에서 실력 있는 자들인데, 역시 검성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군요.”

천통자는 검성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자, 놀라면서도 역시 검성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진 안으로 들어가시죠. 안으로 들어가셔서 대화를 하게 되면 누구도 들을 수 없을 테니까요.”

천통자를 말하면서 돌이 깔려 있는 석로(石路)를 따라 걸어갔고 검성도 그의 뒤를 따랐다.

얼마 가지 않아 눈앞에 돌로 만들어진 멋들어진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정자 안에는 언제 준비되어 있던 것인지, 다과가 마련되어 있었다.

“앉으시죠.”

정자 안으로 들어가자 차향이 코끝을 자극해 왔다. 진법 안에서 이렇게 차를 마시는 것은 검성에게도 제법 특별한 경험이었다.

“꽤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하는구나.”

“저희 정체를 밝히는 것과 ‘그들의’ 정보를 내주는 것이 그만큼 위험한 일이라 만전을 기하는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 주십시오.”

천통자는 검성이 기분 나빠할 수도 있는 부분이라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언행이 가볍고 천박했던 그의 평소 말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내가 알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느냐?”

검성은 차에 손도 대지 않은 채 앉자마자 본론부터 꺼내었다. 차에 손을 가져가던 천통자는 손을 다시 내려놓은 채 그를 보았다.

“정확하게 알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소재. 그리고 그들이 형성하고 있는 단체에 대한 정보.”

천통자로서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느 선까지 자신이 말해 줄 것인가가 중요했다.

“제가 하는 이야기에 따라 다음 행보가 정해지겠지요?”

“그래. 그럴 예정이다.”

“누구를 먼저 생각하고 계십니까?”

“권왕(拳王).”

천통자의 물음에 검성은 짧게 답했다.

“다행이군요.”

“뭐가 말이냐?”

“권왕이라면 소재 파악이 그래도 되는 편이라서요.”

“말해 보아라.”

천통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여기까지 검성을 데려온 이상 어느 정도 정보는 내놓을 생각이었다.

조직의 허락이 떨어지면 전부 내놓겠지만, 자기 선에서 말할 수 있는 부분까지만 이야기하려 했다.

“권왕은 현재 자신이 원래 속해 있던 곳과는 아예 단절된 채 새로운 독자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권왕의 본가에서도 권왕이 죽었다고 알고 있는 듯하고요.”

“오절의 제자들이 전부 나타났다고 들었는데, 그럼 권왕의 제자도 있는 것이 아니냐?”

검성은 이미 오절의 제자들이 무림에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던지라 그것에 대해 물었다.

“검성의 제자인 이 소협이나 다른 제자들이야 젊은 축에 속하지만, 권왕의 제자라고 나타난 자는 꽤 나이가 있습니다. 나이는 사십 대로, 나타난 지도 꽤 된 인물입니다. 그저 최근 나타난 오절의 제자들과 묶여서 화제가 되고 있을 뿐이죠.”

“그런가? 계속 이야기해 보게.”

“권왕의 제자는 나름 현재 자기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일월문(日月門)이라는 문파를요. 산서 땅에서 꽤 큰 문파로서 자리 잡았는데, 보이는 것과 달리 실질적인 주인은 권왕입니다.”

“그가 왜 굳이 뒤에서 제자를 시켜 그런 문파를 만들었지?”

“아마도 처음 오절 셋은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단일 세력을 구축했지만 뜻이 갈린 듯합니다.”

“뜻이 갈렸다? 이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군.”

검성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저희가 처음 파악하기로는 의자제세(義者濟世)라는 뜻을 바탕으로 뭉친 듯했으나, 점점 갈수록 그 뜻이 변질되고 서로 간의 불화가 생긴 듯합니다.”

“…….”

“의로운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자신들이 젊었을 때부터 오절의 상징이 되었던 이 말을 나름 수행하려 했던 것 같지만…… 음지에서 무림을 움직이며 잡은 권력과 이권으로 인해 다툼이 생긴 것이죠.”

천통자는 말을 하면서도 검성의 눈치를 살폈다.

“처음 그들이 무림에서 사라지고 행했던 일들을 보면, 사패의 무림 진출을 억제하기도 했고 마교를 직접적으로 제어하기도 하며 무림을 위해 은밀히 일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변질되기 시작한 건 무림맹주 자리에 우금을 앉힌 이후부터입니다.”

“우금이라, 전에 말했던 그자인가?”

“네. 그렇죠. 하여간 그들이 실질적으로 우금에게 기연을 얻게 해 주고, 직접적으로 무림맹주의 자리로 이끌면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무림맹에서 힘쓰는 것을 약화시켰습니다. 그러곤 음지에서 더욱 활개를 치기 시작했죠. 현재 정파의 결속력이 모래알과 같은데 그것을 의도한 게 그들인 겁니다.”

검성은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다시 한번 천통자를 통해 타락한 친우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믿기지 않았다.

“말이 조금 새어 나갔는데 무림맹주로 자신들 뜻에 맞는 사람을 세운 뒤, 서로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서로 견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독자적인 세력을 세우기도 하였죠. 그중 하나가 권왕의 일월문입니다.”

“현재 셋 다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는 건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셋 다 접촉이 사라진 지 오래이고요. 무림맹 내부에 그 셋의 부하가 여럿 공존하고 있는 거 외에는 접점이 거의 없는 상태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처리하려 하니, 잘된 일이로군.”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검성의 존재를 눈치챈다면 분명히 다시 힘을 합치려고 하거나 먼저 당신을 제거하려고 움직일 겁니다.”

천통자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검성의 존재는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이미 갈라서 있는 그들을 모이게 할 구실이 될 수도 있었다.

“알아서 날 찾아와 준다면 고마운 일이지.”

“그들이 한 명씩 나설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이 안다면 다 함께 뭉치고 가인들을 떼거리로 끌고 와 검성을 공격할 것이었다. 검성 혼자서 오절 셋을 감당할 수 있다고 쳐도, 과연 수천수만의 무인들을 홀로 당해 낼 수 있을 것인가.

천통자는 회의적이었다.

“검성께서 정말 복수하고 싶으시다면, 절대 그들에게 정체를 드러내서는 안 됩니다. 혹시나 드러나더라도 절대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들켜서는 안 되고요.”

“나도 조심할 부분이겠지.”

“철저하게 숨기셔야 합니다. 복수를 마칠 때까지는 임진후로서 살아가셔야 합니다.”

검성 역시 천통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더더욱 마음을 굳혔다.

“이제 권왕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를 주게나.”

검성은 천통자의 이야기들이 제법 흥미롭고 도움이 되었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권왕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권왕은 지금…….”

천통자가 무언가의 눈치를 보며 뜸을 들이자 검성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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