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거래(去來)(1)
임진후는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들고 가도 괜찮을지요.”
“물론이지요. 하나 오래 방치되었던 검이니 한번 손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궁인의 말에 검성은 검날을 한번 살피고는 검집에 칼을 회수했다.
씨익―
겉보기와 달리 검날의 상태는 괜찮았다.
“그렇게 쉽게 망가질 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방치되어 날이 무뎌질 검이었다면, 사부께서 찾지도 않으셨겠지요.”
임진후는 스스로를 사부라 칭하는 게 조금은 어색했지만, 남을 속이는 일에 나름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검성의 또 다른 제자는 서안으로 가고 있다 들었는데, 임 소협은 어디로 가실 예정이십니까?”
“누구를 좀 만나러 갈까 생각 중입니다.”
“누구를요?”
남궁인은 궁금하여 묻기는 했지만 자신이 과했다는 것을 느끼고는 민망한 표정을 보였다.
“천통자를 좀 찾아볼까 합니다.”
“천통자요? 그 무당 출신의 점쟁이 말입니까?”
“네. 그가 정보에 능통하다고 들어서요.”
“정보에 능통하다고요? 금시초문이군요. 그저 무당에서 쫓겨나 점괘나 봐주고…… 성격이 괴팍하여 꽤 사고 치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말입니다.”
그 말에 남궁인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그 반응에 임진후는 천통자가 꽤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이 많은 인물이라고 느꼈다.
“그런가요? 제가 잘못 알았나 보군요.”
“그래요. 정보를 얻고 싶다면 개방(丐幇)을 찾는 것이 좋을 겁니다.”
“네. 그래야겠군요.”
임진후는 천통자에 대해 더 이야기해 봐야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 남궁인의 말에 따르겠다고 답했다.
“전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같이 식사나 술이라도 한잔하면 좋을 텐데요.”
떠난다는 그의 말이 아쉬운 듯, 남궁인이 식사를 권해 왔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러도록 하죠. 제가 다른 선약이 있어서 오늘은 가 봐야 할 듯합니다.”
임진후는 정천검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남궁인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다음 기회를 기약하죠. 다음에는 소개해 줄 사람도 있을 겁니다.”
“소개요?”
“다음 기회가 있으면 그때 소개해 드리죠.”
남궁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자, 임진후도 그게 누구일지 궁금했으나, 딱히 상관하지 않았기에 더 묻지는 않았다.
“그럼, 다음에 뵙죠.”
* * *
“너를 다시 만날 줄은 몰랐구나.”
남궁세가를 나온 임진후는 자신의 손에 쥐인 정천검을 들어 어루만지며 나직하니 말했다. 사랑했던 임소려가 죽은 뒤 목표를 잃고 막연하게 살아왔던 그였기에, 약선에게 죽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슬프다고 하기보다는 이제 죽을 수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임소려가 죽고 미친 듯이 싸움터에서 살았고, 그런 싸움터에서 살아 돌아올 때마다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마교와의 일전에서 혈천마검(血天魔劍)을 이기자, 사람들은 그를 무림제일검(武林第一劍) 검성(劍聖)이라는 칭호로 부르기 시작했다.
싸울수록 강해졌고 죽을 고비를 넘길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경외하며 친우들과 함께 오절(五絶)이라 불렀다. 그렇게 검성은 절대자로서 무림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의 호적수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이름을 같이 올리고 있었던 오절들조차 검성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약선에게 죽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검성은 그 소리가 반가웠다.
드디어 죽을 수 있다고 안심하며 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는데. 분명 그랬는데, 이렇게 다시 정천검을 들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이제는 내가 죽을 때까지 놓지 않으마.”
임진후는 정천검을 향해 다짐한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가 찾으려 하는 인물은 멀리 있었기에 서둘러야 했다.
* * *
화산(華山) 조양봉 아래 작은 마을.
허름한 객잔에서 천통자는 독한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아오, 이 멍청한 놈!”
천통자는 술을 마시고는 자신의 머리를 스스로 쥐어박았고, 주위 사람들은 그를 미친놈 취급하며 피하고 있었다.
“어떻게 뻔히 설응이 있는 것을 알면서, 아오―”
천통자는 계속 자신의 머리를 계속 때렸다. 그는 산 아래 마을에서 검성이 하산하길 기다렸다.
검성이 이윤후의 백아를 이용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채 마을에서 죽치고 있다가 검성이 다른 곳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술을 들이켜며 자책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나 ‘그곳’에 이미 검성의 뒤를 밟겠다고 보고까지 올린 마당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뭐 하느라 그리 자학하는 것이냐?”
“에잉, 이 어른이 오늘은 기분이 안 좋으니 썩 꺼지도록 해라.”
이미 취기(醉氣)가 오를 대로 오른 천통자는 자신에게 말 거는 사람이 누군지 쳐다도 보지도 않은 채 손사래를 치며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상대는 물러나지 않은 채 자신의 앞자리에 앉았다. 이에 천통자가 그를 보며 소리를 치려는 순간, 먹은 술이 깨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 검서…… 헉!”
천통자는 놀라서 검성을 입에 올릴 뻔한 것을 참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화산 아랫마을이었기에 무림인들이 객잔에 꽤 있었다.
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앞에 앉은 검성을 보았다.
“다른…… 곳으로 떠나셨다 들었는데 어떻게 여길……?”
천통자는 자신의 앞에 앉은 검성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이미 검성이 자신의 앞에 앉은 순간부터 객잔의 모든 시선이 그들을 보고 있었기에 최대한 목소리를 작게 내려 했다.
“말소리 낮출 필요 없다. 주위에 기막을 쳐 두었으니 말을 편하게 하도록 해라. 앞으론 임진후라 부르고.”
“아…… 그렇습니까? 역시 주도면밀하시군요.”
먹은 술이 이미 깬 듯, 천통자의 취기 어렸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어졌다.
“그런데…… 진짜 왜 제 앞에 계신 거죠?”
천통자는 검성이 자신이 앞에 나타난 게 반갑기는 했지만, 왜 자신을 찾아온 건지 궁금했다.
그의 질문에 검성은 미소를 보였다.
“자네를 왜 찾아왔을 거 같은가?”
“뭐, 그거야 저한테 물은 게 있다거나…… 아, 그렇군요.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신 거군요.”
천통자는 그제야 검성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았다. 검성이 쫓고 있는 자들은 이미 무림에서 사라진 인물들이다. 더구나 영향력도 상당하기에 개방이나 정보 집단에 의뢰하는 것은 되레 그들에게 정보가 새어 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 그런데 자네, 무림에 꽤 숨기는 것이 많은 인물이더군.”
“그게 무슨 말씀인지요?”
천통자는 검성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반문했다.
“남궁세가에서 자네 이야기를 했더니, 말 그대로 무당에서 쫓겨난 인물 정도로만 알더군. 내가 아는 자네와 많이 다르게 말이야.”
“아, 그 이야기였군요.”
검성의 이야기에 천통자는 살짝 주위를 살폈다. 이미 검성이 기막을 펼쳐 말소리가 새어 나가지는 않겠지만, 자신이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그만큼 비밀스러운 이야기였다.
“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단체에 속해 있고, 그 단체는 무림의 많은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신비 단체 소속이라는 이야기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천통자를 보고는 검성은 그제야 남궁인이 천통자에 대해 다르게 평가했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는 어설픈 점쟁이로 행색을 하고 있다는 건가?”
“어설프다니요…… 점은 진짜인데요. 제가 얼마나 점괘를 잘 보는데 그러십니까?”
천통자는 진짜 억울한 듯 이야기했고, 그 모습에 검성은 다시 한번 웃음을 보였다.
“그런가? 그럼 미안하네.”
“아…… 점 이야기 하니까 생각났는데 말이죠.”
천통자가 갑자기 검성을 보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제자이신 이 소협을 보았을 때 관상을 좀 보았는데…….”
“보았는데?”
“약간…… 좋지 않았습니다…….”
천통자는 이윤후를 만났을 때 그의 얼굴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관상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좋지 않다니?”
“단명할 상을 타고났더군요.”
“윤후가 단명을 한다?”
“네…… 그게 뭐 제가 관상 전문가는 아니고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이 소협의 얼굴에 안 좋은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갑자기 점괘 하니까 생각나는군요.”
“잘못 본 게 아닌가?”
“잘못 본 거라면 좋겠지만…… 일단 제가 본 바로는 그랬었습니다. 제가 뭐 제대로 본 건 아니니 신경을 쓰지 마시지요.”
천통자는 말하면서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이미 검성은 자신을 단숨에 죽일 듯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니, 그게…… 제가 잘못 본 거일 수도 있으니…….”
온몸이 찌릿하고 떨려 오는 것을 느끼며 천통자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고, 말을 괜히 꺼냈다는 생각에 자책했다.
“정말로 윤후가 단명할 상인 것이냐?”
“그게, 그때 보았을 때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관상이라는 게…… 살면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니 모르죠…….”
천통자는 검성의 눈치를 보며 둘러대었으나 검성의 표정은 여전히 화가 난 듯해 보였다.
“무림인들에겐 단명할 상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소협은 수련에 들어갔으니, 더 강해지면 단명의 상이 바뀔 수도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천통자는 다시 한번 둘러대며 이야기했다. 다행히 이 말이 검성에게 통했는지 조금 표정이 풀어지자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저에게 알고 싶은 게 정확하게 무엇입니까?”
천통자는 빨리 무거운 분위기를 피하고 싶었기에 화제를 바꾸었다.
검성은 아직도 찝찝한 듯한 표정을 떨쳐 내지는 못했지만, 천통자의 말에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기분을 털어 내려 했다.
제자에게 죽을상이 보인다고 해도, 일 년간 수련을 마친다면 아예 다른 무공 수준이 되었을 테니, 천통자의 말처럼 죽을상이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속한 단체에 대한 정보를 좀 얻고 싶다.”
“그게, 그 정보는 제가 마음대로 취급할 수가 없는지라 위에 허락을 좀 구해야 하는데요…….”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난감한 듯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그의 말처럼 검성이 얻고자 하는 정보는 극비(極秘) 중의 극비인지라 마음대로 발설하고 다닐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이미 말해 줄 만큼 말해 줘 놓고, 이제 와 비밀이라는 것이냐?”
“그거야 너무 분위기에 휩쓸려서…….”
“이미 너도 나에 대한 정보를 계속 보고해야 할 텐데, 내가 그냥 널 따돌리고자 하면 어쩔 테냐?”
“그걸 어떻게……?”
“네가 자학하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었지.”
검성은 이미 객잔에 들어오면서 천통자가 자학하며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기에 천통자가 자신의 뒤를 밟으려 했다는 것도 알아챈 상황이었다.
“음, 그럼 정보를 드리면 제가 따라다녀도 됩니까?”
“대신, 계속 정보를 준다는 조건이라면 허락하마.”
천통자는 검성의 말에 세차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고 손익을 따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자신이 이미 불어 버린 정보가 있었기에 검성은 어떻게든 그 정보에 도달할 것이다.
얻을 것을 얻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금세 내렸다.
‘그래, 줄 건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