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정천검(正天劍)
“사부님께서는 현 무림의 상황에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정사가 어떻게 되든 말이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궁인은 검성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정파 무림의 거두인 검성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사부님이 무림에 계실 때도 이미 정파의 많은 사람이 사부님의 명성을 이용하여 사파를 억압하고 이용했다고 하시더군요. 정사의 싸움에 설사 격돌이 벌어지더라도 사부님께서는 참여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런…….”
남궁인도 오절의 상황은 잘 알고 있었기에 임진후의 말에 딱히 더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오절이 있던 시절, 정파가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사파를 억압하고 많은 사건이 벌였음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 이야기는 제쳐 놓죠.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남궁세가를 찾은 것은 아니니까요.”
‘당돌하군……. 젊어 보이는데 그래도 남궁세가의 가주를 앞에 두고 긴장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야…….’
남궁인은 임진후로 알고 있는 검성의 태도에 조금은 놀라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남궁세가의 가주인 자신을 앞에 두면 나이가 적든 많든 행동과 언행이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인데, 눈앞의 청년은 거침없이 말하며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흐음, 검성이 비월검공에게 맡긴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했었지요?”
“네. 사부님이 무림을 떠나기 전에 비월검공을 만나 그에게 준 물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네. 사부님의 애검(愛劍)인 정천(正天)입니다.”
검성의 말에 남궁인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사실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기는 했지만, 검성의 제자가 지금에서야 나타날 줄은 몰랐습니다.”
남궁인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갑자기 사라진 검성께서 오십여 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기에 검성이 아버지에게 남긴 검도 사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조금은 걱정을 했었습니다. 서안으로 떠난 남궁세가의 일원들이 검성의 제자를 만났다는 이야기에 선대의 약속을 지킬 수도 있겠다 생각은 했지만, 또 다른 제자가 있을 줄은 몰랐군요.”
남궁인도 아버지인 비월검공 남궁학에게 검성의 이야기와 그가 맡긴 정천검에 대해 들을 때, 이미 죽었을지 모르는 사람의 검을 애지중지 여기고 그것을 자신에게까지 전해 주며 후에 누군가 찾아올 것을 대비하라는 아버지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미 사라진 검성이 죽었을 것이라 여겼고, 그는 사라지기 전까지 제자를 두지 않았던 인물이라 검을 찾으러 올 후인도 없으리라 여겼다.
있으면 이미 와서 가져갔을 테니까. 허망한 기다림일 뿐이었다. 되레 아버지가 불쌍하기까지 했었다. 그리 생각하며 지내왔는데.
하지만 무림에 나타난 검성의 제자가 둘. 그리고 한 명이 정천검을 찾으러 자신의 앞에 앉아 있었다.
* * *
임진후는 자신의 앞에 앉아서 이야기하는 남궁인을 보며 비월검공 남궁학과의 기억을 되새겼다.
외모는 그리 닮지 않았지만 말투와 행동거지가 많이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남궁인을 보며 남궁학을 떠올리고 있었다.
과거, 검성은 약선에게 거짓 불치병 선고를 받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 돌아다니며 작별 인사를 하고 다녔었다.
물론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검성을 만난 자들은 모두 이번이 마지막 만남임을 직감했었다.
검성은 당시 무림맹주였던 비월검공을 만나기 위해 서안의 무림맹을 찾았었는데, 원래부터 눈치가 빨랐던 비월검공은 검성의 건강이 이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고, 결국 검성을 채근하여 검성의 몸 상태를 들을 수가 있었다.
한참 어렸으나 검성을 존경했던 비월검공은 생을 포기한 채 이렇게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는 검성이 이해가 되지 않아 크게 화를 내었다.
검성도 자신에 대한 비월검공의 마음을 알았기에 웃으며 달래었다. 소년 시절부터 선망의 눈빛을 보내왔던 맹주에게 있어 자신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태산과 같았으리라.
결국, 병을 이겨 내 보이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신의 애검인 정천을 그에게 내주며 반드시 찾으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답지 않은 거짓말이었다. 사실 자신을 생각해 주는 비월검공이 고마워 자신의 검을 그가 써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넘겨주었던 것이었다.
이때 이미 자신이 기연을 얻었던 동굴에서 비뢰검제가 그랬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모든 것을 남기고 죽을 생각이었던 검성은 정천검을 비월검공에게 맡기듯 주었다.
그러나 비월검공은 죽었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기괴한 운명이었고, 애석한 일이었다.
천통자에게 듣길, 남궁세가에선 정천검을 사용한 이가 아무도 없다 하였다. 비월검공은 결국 약속을 죽을 때까지 지키며 검성이 돌아오길 기다렸던 것이다.
반드시 멀쩡해져서 검을 찾아오라고 외쳤던 비월검공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수많은 역경을 같이 헤쳐 왔었다. 언젠가 그의 검에 목숨을 구한 적도 있었다.
친우. 등을 맡겼을 때 든든했던 사내. 그렇기에 검성은 무림에 나와 가장 먼저 남궁세가를 찾았다.
그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 * *
‘아버지, 결국 당신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군요.’
남궁인은 앞에 앉은 임진후를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앞의 사람이 검성의 제자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검성의 정천검이 남궁세가에 있는 것은 전대 가주인 남궁학과 자신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의 아비는 아들인 자신에게도 정천검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남궁세가의 가인들조차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정천검을 찾으러 온 이상, 눈앞의 임진후가 정말 검성의 제자인지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창연아.”
남궁인이 밖에도 들릴 만큼 큰 소리를 내자, 밖에서 기척이 들렸다.
“네. 가주님.”
“미리 말해 두었던 물건을 가져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창연은 남궁인의 명에 따라 움직였다.
남궁인은 다시 임진후를 보았다.
“잠시 기다리시죠. 검을 저 아이가 가져올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정천검은 저도 본 적이 있습니다만,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네. 아는 선에서는 답해 드리죠.”
정천검에 대해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을 리 없었다.
“정천검의 검신에 새겨진 정천(正天)이라는 음각은 최근 무림에 나타나기 시작한 신장(神匠)의 표식이 맞습니까?”
최근 세간에 신장의 무기들이 하나둘 나타났기에, 검성의 정천검 역시 과연 신장의 무기인지 궁금해졌던 것이다.
더구나 무려 검성의 검이 아닌가. 그런 검을 아무나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임진후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군요. 신장이라는 이름도 처음 듣습니다.”
임진후는 진실을 말했다. 그에게 있어 정천검은 신장의 무기니 뭐니 하는 것들보다 다른 의미가 있었다.
“가주님, 들어가겠습니다.”
밖에서 창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며 들어온 그는 제법 긴 나무 상자를 들고 왔는데, 그 안에 검이 들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창연은 두 사람의 탁자 가운데 나무 상자를 두었다. 드디어 정천검이 본래 주인의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끼― 익―
남궁인이 상자를 열려 하자, 꽤 오랜 기간 손을 타지 않은 듯 불협화음을 내며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는 사 척 정도 길이의 장검이 들어가 있었다.
‘오랜만이구나…….’
검성은 검을 바라보며 약간 감상적인 느낌에 빠져들었지만, 이내 표정을 감추었다. 그 찰나의 변화를 남궁인은 눈치채지 못했다.
남궁인의 말처럼 검신에는 정천(正天)이라는 검명이 음각되어 있었고, 검병(劍柄)과 검수(劍首) 부분에 붉은 천과 수실이 매달려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그저 평범한 검처럼 보였다.
‘아직도 멀쩡했구나…….’
임진후는 검병에 감긴 붉은 천과 검수에 매달려 있는 붉은 수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손을 검으로 가져갔다.
남궁인도 선대의 약속이 지켜지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았다.
파삭―
검성이 검병을 감고 있던 붉은 천에 손을 가져간 순간, 천이 바스러지고 찢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꽤 오래전부터 무고에 있던 물건이라 천이 낡아 있었나 보군요.”
남궁인은 갑자기 바스러진 천에 놀랐는데, 바스러진 천을 바라보는 검성의 표정이 슬퍼 보이자 의아하게 여겼다.
‘특별한 물건이었나?’
임진후 반응에 남궁인은 그를 응시했는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바스러지고 남은 부분의 천을 꾸욱 잡고 있었다.
붉은 천에 시선을 두었던 이유는 그것이 죽은 정인(情人)이었던 임소려의 유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죽고 유품을 챙기던 검성은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그녀의 장신구에 달려 있던 붉은 수실을 떼어 검수에 달고 다녔고,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옷을 찢어 검병에 단단히 감고 다녔었다.
자신에게 깊은 의미가 있는 검이었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낡아 있던 데다 오십여 년 동안 창고에서 삭은 터라 손길이 닿자마자 바스러졌다. 그것이 못내 슬펐다.
“……검을 이렇게 오래 보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자신을 응시하는 남궁인의 시선을 느낀 임진후는 정신을 차리고 감사를 표했다.
“아버지께서 살아 계실 때는 직접 애지중지하며 보관하셨던 물건이긴 하나, 돌아가신 후에는 창고에다 보관해서 상태가 아주 좋지 못할 겁니다.”
아버지는 사용하지도 않는 정천검을 늘 자신의 서재에 모셔 두었었다. 틈만 나면 손질해서 광태가 흐르는 정천검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곤 하셨다.
남궁인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동정했다. 차라리 검이 남지 않았다면 아버지도 편하셨을 터인데……. 그런 마음으로 자신이 가주가 되자마자 창고에 처박아 버렸었다.
“그래도 오래 방치되어 있던 검치고 상태가 좋아 보이는군요.”
남궁인은 정천검의 상태가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는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제껏 보관하여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임진후는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더구나 비월검공이 그렇게 아껴 주었다 들으니 여러 정서가 섞이며 가슴이 진동했다.
“차후에…… 혹시나 남궁세가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제가 반드시 돕도록 하겠습니다.”
임진후의 말에 남궁인은 허허로이 웃음 지었다. 기쁘면서도 어색함이 담긴 미소였다.
사실 남궁세가처럼 큰 세력에서 검성과 그의 제자에게 도움을 받을 만한 일이 뭐가 있겠냐마는, 청년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남궁인은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런 일이 있다면 도움을 부탁하도록 하죠. 검을 보관해 주고 검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니 나름 큰 이득을 본 셈이군요.”
남궁인의 모습에 임진후는 비월검공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그 아비에 그 아들이었다.
임진후는 다시 검으로 시선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남궁세가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