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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57화 (57/251)

57화― 분열(分裂)의 조짐

“기력을 심하게 소모해서 그런 듯합니다. 혼절한 것이니 걱정 안 하셔도 될 거 같습니다.”

쓰러진 조준혁이 걱정되어 무대 위로 올라온 단지경은 의원의 말을 듣고 안심했다. 사실 임진후가 손쓴 것이 없었기에 크게 다치지 않았을 줄은 알았지만 혹시나 무리하여 몸이 상한 것이 아닌가 조금은 신경 쓰였던 차였다.

연무장 밖에선 조준혁의 패배가 아직도 믿기지 않은지 다들 소리조차 못 내고 있었는데, 진성군이 올라와 비무가 끝났음을 선언하자 다들 흩어져 자신의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사라지자 단지경은 임진후에게 다가갔다.

“꽤 허약한 아이를 데리고 있구나.”

“나름 빙궁에서 가장 쓸 만한 수하입니다. 제가 가장 아끼는 동생이기도 하고요.”

임진후의 농담에 단지경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답했다. 조금은 듣기에 기분 나쁠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단지경은 임진후가 자신을 계속 시험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잘 넘기고 있었다.

“이 정도로 괜찮은 것이냐?”

임진후는 주위를 살피며 이야기했다. 몇몇이 숨어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았기에 일찌감치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네. 제 부탁을 들어주어서 감사합니다.”

임진후의 말에 단지경은 미소를 보이며 감사를 표했다.

“덕분에 저의 자리를 노리던 사람들이 이제 감히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거 다행이구나. 한데 내 너무 저 아이를 몰아붙인 듯해 걱정이구나.”

빙궁의 사람들이라면 조준혁의 강함을 알고 있다. 그런 조준혁을 손쉽게 상대한 자가 단지경과 친분이 있다는 것은 반대파인 장로회에 커다란 압박이 될 것이었다.

임진후는 그것을 노린 것이었으나, 그것과 별개로 압도적으로 패한 조준혁은 빙궁에서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란 남을 깎아내리는 것을 좋아하기에 자신에게 패한 조준혁에 대한 평가가 박해질 수도 있었기에 그것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빙궁의 사람들이라면 준혁의 강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준혁의 스승이신 빙혼검은 빙궁 제일의 고수였으니까요.”

단지경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조준혁에 대한 평가가 걱정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조준혁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또 그래 주길 바랐다.

“이제 떠나실 예정이십니까?”

“그래야지. 빙궁에서의 볼일은 끝이 났으니 말이다.”

“이렇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지경이 극진하게 예를 표하자, 그 모습에 임진후는 조금 당황했다.

“지켜보는 눈이 있는데 너무 저자세로 나올 필요는 없다.”

임진후는 숨어서 지켜보는 눈들이 있음을 알았기에 그리 말했으나, 단지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표정을 보였다.

“괜찮습니다. 저들이 설마 검성 본인이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요?”

“흠, 넌 여러모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윤후가 널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를 알겠군.”

“이 소협이 절 좋게 봐주었나 보군요. 나중에 꼭 제 여식도 데리고 가 줬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단지경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했고, 그 모습에 임진후도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윤후는 아마 일 년의 수련 후에 무림에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빙궁을 찾겠다.”

“그때를 기다리죠. 일 년이면 그리 길지는 않군요.”

“윤후야 이미 내 무공을 전부 배웠기에 숙련도를 올리는 수련만 마치면 된다. 일 년이면 그 아이는 아주 강해질 거야. 조 대주라고 했나? 그 아이보고 일 년 후의 윤후와 제대로 겨루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고 전해 주도록 해라.”

“설마, 그 정도로 이 소협의 잠재력을 평가하시는 건가요?”

단지경은 조준혁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기에, 설마 일 년이 지난다고 그 차이가 따라잡히리라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검성’이 직접 하는 말이라면 생각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었다.

“물론이다. 너도 알겠지만 윤후는 내공이 부족해 자신이 가진 무공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녀석과 패한 것이지, 비뢰검결이나 만상오행공만 제대로 쓰더라도 그리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군요. 준혁이 들으면 자극이 되겠군요.”

단지경은 임진후의 이야기가 거짓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

“어르신이 말씀하신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단지경은 품에서 서찰 하나를 꺼내어 건네었고, 임진후는 그것을 받아 들고는 품에 갈무리했다.

“어디로 가실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남궁세가(南宮世家)로 갈 예정이다.”

“남궁세가요?”

단지경은 조금은 뜻밖이라는 듯 이야기했다.

“남궁세가에 받아야 할 물건이 있다. 상월은 윤후에게 넘겼으니 원래 내 검을 찾으러 갈 예정이다.”

“아, 그 물건이 남궁세가에 있습니까?”

“그래. 사정이 있어서 남궁세가에 두었는데, 찾아야겠지.”

임진후가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않자 단지경은 궁금했으나 더는 묻지는 않았다.

“저희가 도울 일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말해 주십시오.”

“말이라도 고맙구나.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니 다른 손을 빌릴 마음은 없다.”

약간은 장난스러운 말투를 유지하던 임진후가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분위기가 바뀌자 단지경은 말을 멈추었다.

빼액―!

백아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동시에 두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백아가 하늘에서 큰 날개를 펼치며 천천히 하강하고 있었다.

“이제 가 봐야 할 듯하구나. 도움은 잊지 않으마.”

임진후는 자신의 품에 갈무리한 ‘서찰’을 툭툭 치며 이야기했고, 그 모습에 단지경은 미소를 보였다.

“제 부탁도 들어드렸는데, 그 정도는 해 드려야죠.”

“그래. 다음에 보도록 하자.”

임진후가 말을 마치고는 옆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는 백아에게 올라탔다.

곧 백아가 천천히 날갯짓하며 상승하더니, 이내 단지경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뵐 날을 기다리지요. 검성…….”

백아와 검성이 사라지자 단지경도 몸을 돌려 빙궁 안으로 이동했다.

* * *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두운 밀실(密室)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북해빙궁의 지하 장로회의가 열리는 밀실로, 임진후와 조준혁의 비무가 끝나고 급하게 소집되어 다들 모여 있었다.

다들 표정이 어두웠고 심각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 빙궁 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나마 저희 쪽으로 영입하려던 인사들도 오늘 비무를 보고 다 돌아선 분위기입니다.”

장로 위지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안 그래도 젊은 무인이 모두 궁주파인 마당에 그나마 중립을 지키던 인물들까지 궁주의 인맥에 확실히 돌아서거나 망설이고 있으니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설응의 통제권을 잃어버린 일로 그나마 궁주를 압박할 수 있었는데, 결국 검성의 두 제자가 궁주와 친분을 과시해 버리면…… 검성까지 궁주의 편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검성에게 겁을 내야 할 시점이라니…… 답답한 상황이군요.”

회의가 이어질수록 분위기가 침울해져 가고 있었다. 궁주의 반대파인 장로회는 궁주가 설응에 대한 통제권을 잃은 일로 궁주의 무능을 부르짖으며 중립 인사들을 섭외하고 있었는데, 이번 비무로 모든 것이 허사가 되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시점에 단 공자는 어디에 가신 거요?”

위지훈은 단경호가 보이지 않자 검윤상을 보며 물었다.

“누군가 만나야 한다고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하셨소. 나도 정확한 사정은 모릅니다.”

“이런……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 시점에 자리를 비우다니 답답하군요.”

위지훈이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검윤상이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뇌정궁과 한번 자리를 잡아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요?”

검윤상의 말에 다수의 장로가 발끈하며 검윤상을 향해 소리쳤다. 북해빙궁과 뇌정궁은 꽤 오랜 기간 서로 치열하게 다툼을 벌여 왔기에 빙궁에 오래 있었던 사람일수록 뇌정궁에 강한 원한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장로급들은 모두 뇌정궁과의 결전 속에 친우와 가족을 잃은 경우가 많았기에, 검윤상의 말에 다들 흥분하며 성토한 것이었다.

“어차피 궁주파가 이대로 굳건해진다면 우리의 입지가 점점 좁아질 겁니다. 가뜩이나 젊은 빙궁의 무사들이 장로회 일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판인데, 오늘 일을 계기로 더욱 심해질 겁니다.”

검윤상은 일단 말을 꺼내기는 어려웠지만, 꺼내고 나니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뇌정궁은 빙궁과 같이 존재할 수 없는 존재요. 그들을 끌어들인다면 우리 일의 정당성을 잃는 잃게 될 것이오.”

“그렇소. 어떻게 철천지원수 같은 뇌정궁의 도움을 받는단 말이오. 설령 도움을 받는다고 한들, 그들의 목적은 결국 빙궁을 없애는 것일 텐데, 우리의 목을 스스로 죄는 꼴이 될 겁니다.”

다수의 장로가 반대의 뜻을 전하자 말을 꺼낸 검윤상은 약간 곤란해졌다.

“다들 진정하시오. 우리끼리 이렇게 말소리를 높여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입니까.”

위지훈은 진정을 시킨 채 회의를 이어 나가려 했다. 검윤상은 한마디 했다가 다수에게 비난을 당하자 말을 아꼈다.

‘저 능구렁이가 뇌정궁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 혼자만의 생각일 리가 없는데…… 설마 단 공자가 안 보이는 이유에 뇌정궁이 관련 있는 것인가?’

위지훈은 검윤상의 평소 행실로 보아, 그가 자신의 의견을 이렇게 장로가 다 모인 상황에서 낼 리는 없다 생각했다. 분명 뇌정궁과 연계는 단경호의 뜻이리라.

‘단 공자의 뜻이 정말로 뇌정궁과 연계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뇌정궁이 배신하는 건 시간문제인데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사실상 장로회는 단지경을 믿지 못해 궁주로서 인정 못 하고 있는 것이지, 단경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약한 단지경보다는 그나마 단경호가 낫다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단경호를 적극 지지하고 있는 것은 검윤상과 위지훈 둘이었는데,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단지경이 이미 알려진 것과 달리 상승 무공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고, 검성에 약선, 그 외 무림 유명 인사들과 단지경을 지지하고 있었다.

회의는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다들 의견이 다르니 결론 나는 것이 없었고 분위기는 더욱 심각해지고만 있었다.

“궁주가 저렇게 약선에 검성까지 인맥을 보여 주고, 사대주와 젊은 무인들에게 인정받고 있으니, 우리도 생각을 달리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조용히 듣고만 있던 장로 갈중호(葛㳞浩)의 말에 다들 바라보았다.

“갈 장로, 그게 무슨 말이요?”

위지훈은 그의 말에 놀라 반문했고, 갈중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를 보며 말했다.

“장로회가 그동안 궁주를 반대해 온 이유는 유약하고 무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소. 하나 이미 궁주의 무공이 우리가 알던 것과 다르게 고강한다는 게 드러났고, 무능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고 생각하오. 우리가 왜 궁주의 맞은편에 서서 이렇게 반대만 해야 합니까?”

갈중호의 말에 다들 조용해졌고, 위지훈과 검윤상은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최근 궁주의 반대파들이 점점 궁주의 편으로 돌아서고 있었는데, 장로회에서마저 서서히 궁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었다.

“저는 더 이상 이런 회의에 나오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궁주를 반대해 왔다고는 하나, 이는 빙궁의 발전을 위해 고민하는 것이었소. 원수와 같은 뇌정궁의 힘을 빌리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마당에 더는 있을 수가 없군요.”

갈중호는 말을 마치고는 회의실을 나가 버렸다.

“갈, 갈 장로…….”

뒤돌아 나가는 모습에 위지훈과 검윤상은 그저 망연해질 뿐이었다.

“오늘은 이만하도록 하죠.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지신 듯합니다.”

위지훈은 장로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폐회를 선언했다. 괜히 갈중호의 말에 호응하여 더 이탈하는 사람이 생기기가 두려웠음이다.

다들 표정이 한층 어두워진 채 회의장을 벗어났고, 위지훈과 검윤상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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