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성, 돌아오다-56화 (56/251)

56화― 압도적인 무위(武威)

수많은 사람들이 야외 연무장의 무대(武臺)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빙궁을 방문한 인물과 설풍대 대주 간의 비무가 펼쳐진다는 소식이 궁주인 단지경으로부터 전체로 퍼졌고, 이에 빙궁의 많은 이들이 구경을 온 것이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검성 나진하는 입을 열었다.

“너는 궁주의 신임을 얻고 있구나.”

조준혁은 내공을 일으키며 검성에게 답했다. 그의 눈이 검성의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공으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궁주님은 저의 목숨과 같습니다.”

일검(一劍)으로 하늘을 가를 만큼, 검의 정점에 달한 자를 일컬어 검성(劍聖)이라 불렀다. 그런 검성 나진하에게 궁주는 다른 부탁을 포기하고 조준혁과의 비무를 청한 것이다.

그 무게를 알기에, 조준혁은 궁주가 마련해 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궁주의 제일검(第一劍)이자 설풍대 대주 은설풍(隱雪風)으로서, 그는 주위 수많은 사람이 서 있었음에도 검성만을 눈에 담았다.

진지한 조준혁의 기세에 검성은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단지경을 보았다. 과연, 전대 궁주 단우황이 궁주 자리를 맡길 만한 젊은이였다.

“그럼, 시작해 보자꾸나.”

* * *

“저 젊은이가 누구기에 은설풍(隱雪風)과 비무를 한다는 것이지?”

“조 대주의 무예를 볼 수 있어 좋긴 하나 저자가 과연 조 대주의 실력을 발휘하도록 할 수는 있겠나?”

빙궁의 사람들은 무대 위에 올라 있는 조준혁과 검성을 보고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궁금증은 과연 저 젊은 사내가 조준혁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소리가 컸으나, 무대 위에 있는 검성과 조준혁은 서로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윽고, 궁주 옆에 서 있던 호위대 대장 진성군이 무대 위로 올라와 검성과 조준혁을 한 번씩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설풍대(雪風隊)의 대주 조준혁과 검성(劍聖)의 제자인 임진후의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두 사람 모두 준비되었습니까?”

진성군의 외침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검성의 제자라니? 일전에 왔던 제자 말고 또 다른 제자가 있단 말인가?”

“젊은 제자가 둘이나 나타나다니, 검성이 정말 살아 있는 게 아닌가?”

이윤후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북해빙궁의 사람들은 진성군이 검성을 또 다른 검성의 제자로 소개하자 소란스럽게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미 검성은 단지경에게 신분을 숨기고자 뜻을 전했고, 새로운 신분인 임진후라는 이름을 쓰기로 했다.

성은 자신의 정인이었던 임소려에게서 따왔고, 이름은 제자인 이윤후와 본래 자신의 이름인 진하에서 한 자씩 따서 조합한 것이었다.

“두 사람 다 준비된 듯하니, 비무를 시작하겠습니다.”

진성군은 비무의 시작을 알리고 무대에서 내려왔고 그와 동시에 지켜보던 빙궁의 인물들은 기대감에 함성을 질렀다.

워낙 빙궁 내에서도 신기한 일인지라 많은 인물이 모여 있었고, 특히 궁주의 반대파라고 할 수 있는 장로회의 인물들이 많이 와서 지켜보고 있었다.

스르릉―

조준혁은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고는 검을 뽑았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자세를 잡았고, 그에 반해 검성은 여유로운 모습으로 아직 검을 뽑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빙궁의 인물들이 수군거렸지만, 조준혁은 신경 쓰지 않았다.

파박―

순간 지면을 박차며 조준혁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쾌검(快劍)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빙혼검(氷魂劍) 제일초, 난설(亂雪).

스아악―!

조준혁의 검이 가운데서부터 쪼개지듯 갈라지며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격해 나갔고, 검성도 그에 맞춰 발을 놀리며 신법을 전개해 나갔다.

―파팍!

허공을 터트린 첫수에 이어 조준혁이 속도를 붙여 가며 공격에 탄력을 더했고, 베기와 찌르기를 반복하며 검성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오, 역시 조 대주가 실력을 보여 주는군. 상대가 피하기 급급하지 않나?”

“괜히 빙궁의 최고수로 은설풍을 꼽는 것이 아니지.”

조준혁이 검성을 몰아붙이자 지켜보던 빙궁의 인물들은 신이 나서 응원하였다. 상대가 검성의 제자라 다들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조준혁이 우세해 보이자 다들 자부심이 든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실상은 전혀 달랐다. 검성은 검을 뽑지도 않은 채 조준혁의 검을 한 끗 차이로 피해 내고 있었고, 화려해 보이는 조준혁의 검무는 허공을 찌를 뿐이었다.

‘빙혼검(氷魂劍) 제이초, 현빙중천(懸氷重穿)……!’

푸른 안광을 흘리던 조준혁이 자세를 고쳐 잡자, 그의 검이 순간 얼어붙으며 거대해지더니, 중검(重劍)이 되어 검성을 향해 짓쳐 내려갔다.

―쾅!

그의 중검이 검성의 발치 일 자(尺) 앞에서 깊은 구덩이를 만들며 멈춰 섰다. 불과 한 끗 차이지만, 이번에도 닿지 못했다.

조준혁은 검을 회수하며 신법을 멈춘 채 기세를 갈무리했다. 검성은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을 뽑지 않으실 겁니까?”

조준혁은 숨을 고르며 검성에게 물었고, 그제야 조준혁의 화려한 공격에 취해서 그가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던 빙궁의 인물들도 상대가 검도 뽑지 않은 것을 인지하고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검을 잡은 지 오래라 손이 잘 가지 않는군.”

자칫 오만으로 보일 수 있는 말. 검성의 대답은 모두가 이상하게 여길 만한 대답이었다.

조준혁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사내가 마치 빙궁의 대주를 압도하고 있는 듯한 인상까지 주고 있었기에 빙궁의 지켜보던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꼭, 검을 뽑게 해야겠군요.”

조준혁은 검을 잡은 손에 다시 힘을 주며 결의를 다졌다.

지켜보던 모두가 그들의 말과 행동에 조금씩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장로회는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분주한 움직임에 단지경도 그들을 주시하며 진성군에게 따로 무언가를 지시하기도 했다.

조준혁을 상대하면서도 그런 움직임을 모두 살피고 있던 검성은 살짝 미소를 보였다. 앞에 선 젊은이를 무시한 것은 아니나, 이왕이면 이 비무가 궁주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그렇기에, 자신은 압도적으로 이길 생각이었다.

자신이 봐준다면 검성의 이름을 궁주에게 빌려준 의미가 없었다.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 검성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검성이 궁주의 편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반궁주파에게 똑똑히 알려 주어야 했다.

‘이걸로 도리는 지켰소, 단우황.’

반대파인 장로회 인물들은 조준혁이 밀리자 이 사태를 가만두고 있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곤 하나 겉으로 약관을 갓 넘긴 듯한 젊은이가 빙궁 최고수를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이미 조준혁의 존재만으로도 무력적으로 궁주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한데 여기에 조준혁보다 더한 고수가 빙궁에게 붙는다면?

이미 검성의 제자로 먼저 빙궁을 방문했던 이윤후가 궁주와 친분을 과시한 후였기에, 새로 온 검성의 제자마저 실력을 보여 주고 궁주와 친분을 보인다면 자신들이 빙궁에서 입지가 더 좁아질 수가 있었다.

오절 중 약선도 이미 궁주와 친분을 과시하고 있지 않은가. 검성의 두 제자마저 궁주의 편이라면 자신들이 반궁주파를 포섭하는 데에 있어 치명적으로 작용할 게 명약관화했다.

단지경이 이 비무를 크게 키운 이유도 바로 그것을 노린 것이었다. 검성이 당연히 이기겠지만, 반대파나 중립을 지키는 이들에게 검성이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과시할 수가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상대가 될 줄 알았는데 전혀 상대되지 않는구나.”

“조 대주의 스승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겁니다.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검성의 무위에 경탄하는 단지경에게 호위대장 진성군이 답하였다. 진성군도 이미 검성의 정체를 들었기에 답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도 단지경이 미리 말해 주지 않았다면 눈앞의 모습에 어리둥절했을 게 분명했다.

두 사람은 다시 무대로 눈을 돌렸다. 조준혁은 검을 휘저으며 큰 기술을 준비하는 듯 내력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는 조준혁의 모습에 검성은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으며 무심히 마주하고 있었다.

쏴아악―

서로의 눈빛이 맞닿은 일순, 조준혁은 순간 검을 휘둘러 날카로운 검기를 검성을 향해 날렸고, 검성은 빠르게 허공을 밟으며 피해 내었다.

하나 검기를 피한 찰나의 순간, 어느새 조준혁은 검성의 바로 앞에 거리를 좁혀 오며 벼락처럼 검을 내리쳤다.

“설상폭(雪霜爆)!”

콰과과광―!

조준혁의 검에서 마치 우박이 떨어지는 듯한 무수한 검기가 빗발치며 검성을 뒤덮었고, 검기는 그대로 검성과 무대 위에 폭격했다.

“성공했나?”

조준혁은 자신이 펼친 한 수가 만족스러운 듯 얼굴에 살짝 미소가 걸려 있었다. 워낙 큰 기술이라 검기로 검성의 공간을 점한 뒤 근접하여 초식을 펼쳤는데, 처음으로 먹혀들어 갔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무대에 자욱하게 깔린 분진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설상폭의 여파로 무대가 부서지며 일어난 분진이 아직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그때.

휘잉―

갑자기 바람이 일며 먼지와 돌가루들이 바람에 날려 사라졌고, 그곳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서 있는 검성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옷깃 하나 상하지 않은 검성의 모습에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가장 놀란 것은 회심의 한 수를 펼쳤던 조준혁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검이라고 했더니 빙혼검(氷魂劍)의 절기였군.”

검성은 조준혁의 검이 계속 어디에선가 보았던 검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방금의 초식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제 스승이십니다.”

조준혁은 자신의 한 수가 무위로 돌아가자 조금은 충격을 받았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고 몸을 추스르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스으.

검성은 주위에 기막을 펼쳐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며 입을 열었다.

“윤후가 너에게 당했다고 하던데, 당연한 결과였구나.”

검성은 자신의 제자가 조준혁에게 밀린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윤후가 천재이기는 하였으나, 상대는 오랜 수련을 통해 업(業)을 쌓아 올린 무인이었다.

물론 이윤후가 쉽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나, 그 과정이 어떻든 끝을 보려 했다면 결국 조준혁이 이겼을 것이다.

과연, 빙궁 제일검이라 인정할 만한 젊은이였다.

“마지막 한 수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조준혁이 무언가 결심을 한 듯 결연한 눈빛으로 이야기해 오자, 검성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보여다오. 네 마지막 한 수를.”

이번 일격은 분명 그가 쌓아 올린 무의 극의일 터. 검성 역시 조준혁과 제대로 마주하기 위하여 검집에 손을 가져갔다.

스르릉―

검성이 오랜만에 접한 감각을 느끼려는 듯 왼손과 오른손에 번갈아 검을 들어 보였다.

“검을 하도 오랜만에 쥐니 새롭구나.”

검성이 검을 뽑아 든 사이, 조준혁은 마지막 한 수를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렸다.

사부인 빙혼검이 무론을 정립하였으나, 끝내 완성하지 못했던 비기. 그 검법이라면 검성에게 닿을지 모른다.

조준혁의 안광이 푸르게 타올랐다. 이내 그의 검 주위로 수만의 눈꽃이 흩날리더니, 곧 빙정과 같이 얼어붙으며 빛을 반사하여 광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검성의 눈빛이 번뜩였다.

‘만변(萬變)이 불변(不變)하는 경지에 다다랐구나.’

이불변응만변(以不變應萬變).

변하지 않는 것으로 만 번의 변화에 대응한다.

이는 그의 스승인 빙혼검조차 보여 주지 못했던 경지.

“가겠습니다.”

조준혁이 검성을 향해 마치 활시위 당기는 듯한 모습으로 검첨을 겨누었고, 검성 역시 기세를 끌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빙혼검과 싸울 때는 본 적이 없는 자세. 과연,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은 게로군.’

일순 시간과 소리마저 얼어붙으며, 조준혁의 기세가 절정에 오른 순간.

“설풍섬(雪風閃).”

촤자자자작―!

조준혁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그의 검에서 검기가 폭사 되었고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한 줄기 빛이 되어 검성을 향해 날아들었다.

쿠웅―

조준혁은 검기를 날림과 동시에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모습에 일부가 놀라긴 했으나, 다수의 시선은 조준혁이 날린 검기에 더 관심이 가 있었다.

빙궁의 고수들은 다들 눈앞의 젊은이가 검기에 두 동강이 나리라 직감했다. 대장로들조차 비무에서 피를 보게 되리라 예감하였으나.

슥―

섬광처럼 날아든 조준혁의 검기를 향해 검성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움직임으로 검을 내질렀다. 검기와 검이 만나는 순간, 검기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

압도적 격차에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빙궁 제일검 조준혁은 일격에 모든 내력을 끌어 올린 후 기절해 버렸으나, 상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대 위에 고고히 서 있었다.

검성의 압도적인 무위에 연무장에 모여 있던 빙궁의 인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마지막 일검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 강대한 검기를 무위로 돌리다니?

게다가 은설풍 조준혁은 빙궁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고수였다. 빙궁의 무인 그 누구도 조준혁을 상대로 승기를 확신하지 못한다. 한데 그런 고수가 상대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고 패한 것이었다.

“……어서, 의원을 불러오도록.”

충격과 경악으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연무장에서, 뒤늦게 정신을 차린 단지경이 연무장 위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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