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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55화 (55/251)

55화― 검성의 무림행(2)

“이거 너무 환영 인파가 많은 게 아닌가?”

빙궁으로 날아온 검성은 능숙하게 착지하는 백아에서 내리며 주위를 보았다. 이미 빙궁의 야외 연무장에 꽤 많은 인물이 모여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도 네 녀석 때문에 우리가 올 줄 알았던 거겠지?”

꾸륵―

검성은 백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이야기했고 백아는 짧게 울었다. 이미 백아와 검성이 도착하기도 전에 하늘에 설응들이 가득 차 있었기에 다들 몰려든 것이었다.

이미 한 번 있었던 모습이기에 빙궁의 사람들은 이윤후와 백아가 올 줄 알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이가 백아에서 내리자 경계하고 있었다.

검성이 백아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빙궁의 무사들이 검성을 포위했다.

그 모습에 백아가 위협적으로 날개를 펼치자 하늘을 날던 설응들이 일제히 낮게 날며 백아의 명령을 기다리는 듯했다.

“진정하라. 네 수하들도 진정하게 하거라. 우리가 여기 싸우러 온 게 아니지 않으냐?”

꾸륵―

퍼드득―

검성의 말에 백아는 위협을 위해 펼쳤던 날개를 접었다.

빼액―

백아가 울자 빙궁의 하늘에서 순식간에 설응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설응들이 사라지자 빙궁의 무사들은 조금은 긴장을 풀었지만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성의 모습에 경계는 풀지 않고 있었다.

“어디서 온 누구십니까?”

빙궁의 무사들을 헤치고 나와 검성의 앞에 선 인물은 조준혁이었다.

조준혁은 설응이 백아임을 알아보고 적이 아니리라 생각하였지만, 처음 보는 인물이었기에 거리를 유지한 채 물었다.

“빙궁의 궁주를 만나러 왔네. 약선의 소개로 왔다고 전해 주게.”

대뜸 반말하는 검성의 모습에 조준혁은 미간이 찌푸려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눈앞의 남자가 사실 백 살이 넘었으리라곤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약선의 소개로 오셨다고요?”

“그렇다네.”

조준혁은 뭔가 의심스러웠지만 백아가 검성을 잘 따르는 모습에 일단 의심은 접기로 했다. 설응 원래 주인 외에는 거의 따르지 않는데 백아가 검성의 명령에 따라 설응들을 철수시킨 것만 봐도 빙궁에 해를 끼치러 온 것 같지 않았다.

“제가 안내해 드리죠. 절 따라서 오십시오.”

조준혁은 검성에게 정중하게 말하고는 주변에 있던 수하에게 지시를 내렸다.

“백아야, 고향에 왔으니 친구들과 놀고 있도록 해라.”

꾸륵―

검성의 말에 백아는 큰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고, 검성은 조준혁의 뒤를 따랐다.

모여 있던 빙궁의 인물들도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 한쪽에서 상황을 살피던 장로 검윤상도 두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급히 빙궁 안으로 뛰어갔다.

* * *

“누구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검성을 빙궁의 궁주 단지경에게 안내하기 위해 이동하던 조준혁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검성을 힐끔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벌써 물어봤어야 했지만, 왠지 모를 검성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안내하고 있었다.

“그를 묻고자 한다면, 자신의 이름부터 밝히는 것이 도리 아닌가?”

검성은 꼬박꼬박 반말하는 검성이 고깝긴 했지만 뭐라고 반발하기 힘든 기세가 느껴져서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것은 처음 마주했을 때부터 알았다. 저런 젊은 나이에 절대 가질 수 없는 기세였다.

그렇기에 조준혁은 검성의 반말을 군말 없이 받아 주고 있었다.

“저는 조준혁이라고 합니다.”

“아하, 자네가 조준혁이었군. 안 그래도 자네도 만나고 싶었다네.”

검성은 그의 이름을 듣고 반가워하며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조준혁은 황당했으나 너무 당당하게 행동하는 검성의 모습에 화도 내지 못했다.

“내 이름은 궁주를 만나서 알려 주지. 자네도 같이 가세나.”

“끙…….”

조준혁은 당하는 느낌이었으나 궁주를 만나게 되면 알 수 있겠지 싶어 참기로 했다.

이내 궁주의 방 앞에 도달한 조준혁은 기척을 내었고, 허락이 떨어지자 검성을 방 안으로 안내하였다.

* * *

“흐음…….”

검성은 책 내음과 독특한 향이 방 안에 가득하자 의외라는 듯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단지경을 보았다.

“약선의 소개로 오셨다고요? 저는 빙궁의 궁주인 단지경이라고 합니다.”

조준혁은 먼저 소개를 하며 극진히 예를 취하는 단지경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였다. 사패의 한 곳인 북해빙궁의 궁주가 신분도 모르는 이에게 취하는 인사치고는 과하다 생각한 것이었다.

“내가 누군지 짐작하나 보구나?”

검성은 자신을 극진하게 대하는 단지경을 보고는 말했다.

“네. 제가 생각하는 분이 맞는다면 당연히 이렇게 예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지경은 살짝 미소를 보이며 말했고 검성은 조금은 허탈한 웃음을 보였다.

‘윤후의 말대로 보통의 인물은 아닌 듯하구나. 꽤 대범하군.’

검성은 이윤후의 이야기를 듣고 유약한 인물이라 여겼지만, 직접 대해 보니 자신이 판단을 잘못했음을 느꼈다.

“요즘 것치고 눈썰미가 좋구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준혁은 더욱 궁금했다. 도대체 누구기에 단지경이 저렇게 깍듯하게 대하는지 검성은 왜 저렇게 당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약선의 소개로 설응의 우두머리인 백아를 타고 올 만한 사람. 그리고 젊은 모습이긴 하지만 풍기는 기세는 숨기기 힘들죠. 젊은 사람에게서 느낄 만한 수준의 기세가 아닌 듯합니다. 두 가지만 생각해 봐도, 전 그분이라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더군요.”

“그건 조금 빈약한 추론이지 않으냐?”

“사실 그 두 가지보다 이 소협이 떠나기 전에 같이 오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거든요. 왜 혼자 오신지 모르겠지만 그 말이 더 결정적이긴 했습니다.”

“그렇군.”

검성은 단지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의 대화에서 눈치 없던 조준혁도 검성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다. 떠나기 전, 이윤후가 그에게도 전음을 통해 검성이 살아 있음을 알려 주었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경지에 오르신 듯하군요.”

“푹 자다 깨어났더니 이렇게 변해 있더구나. 난 아무래도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검성이 너스레 떨며 이야기하자 단지경은 미소를 보였다. 단지경은 검성의 반말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북해빙궁의 궁주이긴 하나 아버지인 전대궁주와 친분이 있는 검성이었기에 자신에게 충분히 반말해도 되는 인물이었다.

“운으로만 오를 수 있는 경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죽을 고비에 운이 좋아 기연을 얻어 고수가 되었고, 죽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깨어난 데다 젊어지기까지 했으니 운이 좋은 거지.”

“그렇군요. 그 말도 맞는 거 같습니다.”

검성의 말이 약간은 억지스러웠으나, 단지경은 더는 묻지 않았다.

조준혁은 검성이 맞는지 긴가민가하면서 두 사람의 눈치를 계속 살피고 있었는데 확실하게 신분을 이야기하지 않자 조바심이 나서 계속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앉으시죠.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단지경의 권유에 검성은 자리에 앉았고 그의 앞에 향이 좋은 차가 놓였다.

“네가 마실 차가 아니었느냐?”

검성은 찻잔이 하나밖에 없자 원래 단지경이 마시려고 가져다 놓은 차인 것을 알고 물었다.

“저야 다시 가져오라고 하면 되니 먼저 드시죠. 이름 있는 차는 아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차입니다.”

“그래. 향은 좋구나.”

검성이 차의 향을 맡고는 칭찬하자 단지경은 기분이 좋은 듯 웃음을 보였다. 검성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향을 즐기고는, 차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자 녀석이 너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하기에 가장 먼저 이곳에 왔는데 오길 잘한 듯하구나.”

“이 소협이 저에게 신세를 졌다고 했습니까?”

“그러더구나. 네가 약선에게 자신의 몸 상태를 말해 주어 약을 얻을 수가 있었다고, 백아의 문제도 잘 넘어가 주었다고 말이다.”

“약선께는 제가 말만 전해 주었을 뿐이고, 설응의 문제야 설응끼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 데다 이 소협이라면 저희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괜찮다고 생각한 겁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단지경의 모습에 검성은 조금은 그에 대한 평가를 달리했다.

“너에 대해 처음 듣고서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유약한 심성을 가졌으리라 여겼는데, 내가 확실히 오판했구나. 단우황 그가 너에게 궁주의 자리를 넘긴 것이 그저 적자라서가 아닌 듯하구나.”

“과찬이십니다.”

“너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네. 제 이복동생을 중심으로 저를 반대하는 무리가 결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가만히 놔두면 뇌정궁에서 움직일 텐데 대비는 하는 것이냐?”

검성의 입에서 뇌정궁의 이야기가 나오자 단지경의 여유롭던 표정이 조금은 변했으나, 이내 제 표정을 찾고는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 걸리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아직 접촉을 안 한 것인지 몰라도 뇌정궁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이야기를 듣고 뇌정궁이 반대 세력에 접촉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이 요새는 빙궁에 대한 원한이 적은 것이냐?”

검성은 자신이 무림에 있을 때 북해빙궁과 뇌정궁의 다툼이 엄청났었기에 북해빙궁 내의 분란에 당연히 그들이 개입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이전의 빙궁과 뇌정궁이 갈라졌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이복동생 쪽을 억제하고 있지만, 뇌정궁과 접촉을 한다면 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요. 그런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단지경이 조금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이야기했지만, 그의 의지가 느껴졌기에 검성은 단지경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가 있었다.

“내가 부외자(部外者)로서 너무 참견한 게 아닌가 싶구나.”

“아닙니다. 이미 제자분에게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던 부분이니 괜찮습니다.”

“네 아버지 생각이 나서 너의 의도를 알고 싶어 물었던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아라. 네가 윤후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하니 나도 너를 도와주도록 하마. 혹시 원하는 것이 있느냐?”

검성의 물음에 단지경은 잠시 생각에 빠진 채 조용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자분에게도 이야기했던 부분이지만, 검성의 이름을 빌려주십시오, 그거면 됩니다.”

“이름이라.”

단지경은 검성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청을 건넸다. 검성의 이름엔 뇌정궁의 움직임을 막을 만한 무게가 있었다.

“제가 일차적으로 원하는 것은 반대 세력을 억제하는 것인데, 검성의 이름을 이용해 그것을 이루고자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그 정도라면 해 줄 수 있다. 그거 가지고 되겠느냐?”

검성은 생각보다 쉬운 것을 말해 오자 도리어 아쉬운 듯 말했다.

“그럼, 이 사람과 한번 겨루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단지경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조준혁은 당황하긴 했으나 이내 흥분으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검성의 가르침이라니, 백만금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값진 기연이었다.

“원하는 것이 다른 무엇도 아니고 나와의 비무라…… 좋다. 안 그래도 우리 제자를 꽤 혹독하게 다루었다 들었는데, 한 번 솜씨를 보자꾸나.”

검성이 웃으며 승낙을 하자 조준혁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검성과 검을 겨루는 일을 상상만 해 봤지 이루어질 줄은 몰랐기에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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