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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54화 (54/251)

54화― 검성의 무림행(1)

“아직은 안 돼요! 절대로요.”

약선은 다 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검성이 무림으로 떠난다 이야기하자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이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과 소려의 죽음을 알고 있다는 걸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걸요!”

“그게 무슨 상관이요. 난 그들을 처단하러 가는 것이니 그들이 안다고 해도 상관없소.”

“그렇지만…….”

약선은 어차피 자신이 검성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그를 오십 년 넘게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던 죄가 있었지만, 이제야 다시 만난 검성을 다시 무림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이곳에 지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대답을 이미 예상하였기에 꺼내지도 못하고 떠난다는 검성에게 억지만 부리고 있었다.

검성은 자신을 말리려는 약선을 측은하게 보았다. 이미 약선의 마음은 오래전부터 알았고 모른 척해 왔다.

도후는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내비치며 검성을 따라다녔지만 약선은 그저 멀리서 검성을 바라만 봐 왔다.

검성은 의식에 갇혀 있는 동안 많은 것을 보았고 약선이 자신을 얼마나 오래 애끓는 마음으로 지켜봤는지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실수로 오십 년의 세월을 버린 것도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애령, 날 걱정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들을 살려 둘 수가 없소. 천통자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음지에서 무림을 조종하며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하니 복수와 별개로라도 그들을 처단해야 하오.”

“하지만…… 당신이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초 오라버니도 다시 만났을 때 이전과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어요. 분명 권왕도 도후도 이전의 그들이 아닐 거예요.”

약선은 검성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기에 그를 어떻게든 잡고 싶었다. 아무리 선인의 경지까지 오른 검성이지만, 오절 모두를 상대한다는 것을 걱정 안 할 수가 없었다. 홀로 있는 이들도 아니고 각각의 세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하지만…… 제가 말린다고 들어줄 당신이 아니겠죠.”

약선은 조금은 침울해진 표정으로 검성을 바라보았다. 얼굴이 잘생겨서 호감이 가긴 했지만, 검성에게 가장 끌렸던 점은 강직하고 정의로운 점이었다. 이미 결심을 한 부분을 자신 때문에 바꿀 리가 없었다.

“미안하오.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지만, 난 이번 일로 새로운 삶을 얻었다고 생각하면서 이전과 다르게 살아 보려고 결심했소.”

“이전과 다르게라니요?”

“정파의 일원으로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에 나 자신을 너무 그 틀에 맞추어 살아왔었으니, 이제는 조금은 자유롭게 살아 보려고 하오. 이전과 같이 살지는 않을 것이오.”

약선은 자신이 검성을 막을 수 없음을 잘 알았다. 하지만 생기는 걱정은 막을 수 없어, 이후 그의 소식을 어찌 들을 수 있을까 하여 질문했다.

“강호에는 윤후의 이름을 빌려 나가시나요?”

“아니요. 혈란을 일으키려 하니, 내 제자의 이름을 쓸 순 없소.”

듣고만 있던 이윤후도 검성의 말에 의문을 느껴 물었다.

“스승님, 그럼 어떻게 무림에 나서려고 하시는지요?”

“다른 이름으로 무림에 나서려고 한다.”

“네?”

“검성의 제자가 너 혼자일 필요는 없지 않으냐? 조금은 이전과 다르게 막살아 볼까 하는데, 괜히 네 이름을 썼다가 네가 피해를 보면 안 되지 않느냐.”

검성은 이윤후에게 자신으로 무림에 나가라는 말에 혹하기는 했으나 이윤후의 이름을 쓴다는 것은 부담이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아직 무림에 제대로 활약하지도 못한 제자의 앞길을 막을 수도 있었기에 아예 다른 신분으로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신투 초벽, 권왕 탁헌, 도후 유가영. 자신은 그들을 만나 정인의 혈채를 갚을 것이다. 자신의 손에 강호는 혈란에 빠지게 될 터. 그러니, 제자의 이름을 쓸 순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젊어졌는데, 전에 하지 못했던 여자들과 제대로 좀 놀아 보려고 한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검성은 제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농담을 가장하려 했으나, 눈만은 웃지 않고 있었다. 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약선에 대한 유일한 배려였다.

약선에겐 많은 빚이 있다.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도 안다. 그러나 자신은 그 마음에 답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 이번 강호행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저 선을 그을 수밖에.

이윤후는 스승의 말에 괜히 약선의 눈치를 보았다. 평소 초탈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그거야…… 사부님 얼굴이면 여자들이 많이 따르긴 하겠지만, 진심으로 하시는 소리입니까?”

“농담 같으냐? 어릴 때 소려를 만나 이제까지 그녀를 그리며 살아왔는데, 이왕 이렇게 젊음을 찾았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 봐야지. 칼질도 하고 말이다.”

약선도 검성의 말이 배려임을 알았다. 그러나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렇기에 약선은 웃음을 가장하며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어디부터 가시려고 하나요?”

“빙궁부터 가 볼까 하오. 이 녀석이 말하는 조준혁이라는 자의 실력도 궁금하고, 빙궁의 궁주가 윤후를 배려했다 하니 인사해야 하지 않겠소.”

검성이 미소 짓자 약선은 잠시 그 미소에 빠졌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군요. 당신이 빙궁에 가 준다면 지경이에게도 큰 힘이 될 거예요.”

약선은 단지경의 아버지인 전대 궁주에게 부탁받은 것이 있었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지만, 검성은 내용은 몰랐기에 약선의 말에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를 빤히 보았다.

“내가 가는 것이 힘이 된다는 건 무슨 소리요?”

“아, 당신은 빙궁의 사정을 모르겠군요.”

약선은 그제야 검성에게 빙궁의 사정을 이야기 안 해 주었음을 인지하고 그를 보았다.

“전대 궁주였던 단우황(段宇煌)은 기억하시죠?”

“알고 있소. 어떻게 그를 잊겠소.”

단우황은 빙궁의 전대 궁주로 검성과 약선에게 설응을 처음 내주었고 그와 친분이 깊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말년에 얻은 자식들이 있었는데 빙궁주의 후계를 두고 빙궁 내에서 다툼이 좀 있었어요. 단우황이 적자를 궁주로 인정했지만 그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빙궁 내 존재하고 있어요.”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구려. 단우황의 적자 말고 다른 아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현 빙궁주를 흔들려 한다는 건가?”

“네. 단우황도 죽기 전까지 그것을 걱정하여 저한테 부탁까지 했었답니다.”

“그렇군…….”

검성은 약선의 말에 조금은 생각에 빠졌고 이내 이윤후를 보았다.

“네가 보기에 현재 빙궁주가 어떤 사람이더냐?”

“심지가 곧은 사람이었습니다. 백아가 현재 설응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의 입지가 어려운데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채 저를 배려해 주었습니다.”

“백아가 설응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검성은 이윤후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그도 설응의 우두머리가 어떠한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에 놀란 것이었다.

“네. 저도 몰랐는데 백아가 우두머리가 되었더라고요. 빙궁으로 갔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단 궁주는 안 그래도 빙궁 내에 자신을 반대하는 인물들이 있는 와중에 설응의 통제권마저 없어진 일 때문에 곤란한 지경이었는데 꽤 초연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후계를 잘 정했나 보구나.”

“네. 그와 대화를 나눠 보곤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대 세력인 동생을 쳐 낼 만한 힘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도 압도적인 수준으로 힘을 길러 그들을 포용하려 하더군요.”

“그건 좀 안일한 생각이구나.”

“네?”

이윤후가 반문하자, 검성이 말을 이었다.

“힘을 가지고 있다면 싹을 쳐 내야 한다. 특히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이라면 더욱 그렇지. 상대가 자신처럼 인간적일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가 뒤통수 맞는 경우가 허다한 곳이 무림이다. 물론 병법에도 있듯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상수(上手)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위협 요소를 아예 도려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검성은 이윤후의 이야기를 듣고서 대충은 단지경이 어떠한 사람일지 그려졌다.

“그렇군요. 전 그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했는데요.”

“네가 무림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빙궁주의 방법이 인간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효율적이지 못하다. 사패(四覇)의 한 곳인 빙궁인데, 내부적인 문제로 흔들린다면 다른 세력의 개입이 분명 생길 것이다. 특히 뇌정궁(雷霆宮) 같은 곳에서 빙궁의 문제를 안다면 당장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

검성은 빙궁이 꽤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생각했다. 철천지원수인 뇌정궁이 빙궁의 현 상황을 이용하지 않으려 할 리가 없다. 아마도 빙궁주의 반대편에서 분명 뇌정궁이 지원하고 있을 터다.

그렇다면 빙궁주의 순진한 생각대로 힘으로 억누를 상황이 아닐 게 분명했다.

“모두가 너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무림에는 교활하고 편협한 자가 존재하고, 특히 정파인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

“정파를 더 조심하라고요?”

검성의 말에 이윤후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정파니까 정의롭겠지 하는 생각은 가장 큰 착각이다. 차라리 사파들은 정의로운 척을 하지 않으니 상대하기 편하다. 믿지 않아도 되니. 네 사부의 꼴을 보아라. 정파의 절대자라던 오절의 인물들이 나의 뒤에서 일을 꾸미지 않았느냐? 음지에서 일을 꾸미고 있는 것도 그들이고.”

“그렇군요. 천통자도 사부님과 비슷한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이윤후는 얼마 전 천통자가 해 준 말을 떠올렸다. 그도 정파에 정의로운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했었다.

“너도 무림을 오래 경험하다 보면, 정작 조심해야 할 것이 사파가 아니라 정파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림에서는 절대 사람을 다 믿지 말거라. 모든 일에 의심하고 말이다.”

“네. 사부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이윤후가 답하자 검성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여전히 젊은 얼굴의 검성이 자신을 어린애 취급하는 게 어색하긴 했지만 검성이 자신을 애 취급해 주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뇌정궁의 움직임이 있기는 했어요. 지경이도 그것 때문에 민감하게 굴기도 했고요. 당신이 빙궁에 가 주는 게 그 아이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약선은 검성이 이윤후에게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서야 입을 열었다.

“말을 들어 보니 빙궁주가 무능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사람을 너무 믿나 보군. 그래도 사패 중 한 곳의 주인인데 그렇게 미적대는 거 보면 말이야.”

“……당신은 변했군요.”

“내가 말이오?”

“예전의 당신이라면 빙궁주의 행동을 더 지지해 주었을 텐데, 어리석다고 말하니까요.”

약선은 조금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검성을 보며 이야기했다. 검성이 변한 것은 아마 오절에게 느낀 배신감 탓일 터다. 바뀐 검성의 모습이 약선은 조금 안타까웠다.

“변했다기보다는 윤후가 나처럼 정파에게 속지 않았으면 할 뿐이요. 구파일방이든 오대세가든 친우인 줄 알았던 그들이든…… 모두 틈만 나면 나를 이용하려고 들었을 뿐.”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사부님도 계시는데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제자, 빨리 수련을 마치고 사부님을 찾아가겠습니다.”

이윤후는 검성이 조금 침울해하자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은근히 이런 낯부끄러운 이야기를 검성이 좋아했기에 말했는데, 역시나 검성은 미소를 보이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야기가 마무리된 듯하자 약선도 더는 검성의 무림행에 반대하지 않았고 검성의 부탁으로 이윤후의 수련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대화가 끝나고 마지막 식사를 마친 뒤, 검성은 백아를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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