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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돌아오다-53화 (53/251)

53화― 복수를 꿈꾸다

“비뢰검결의 전반부만 제대로 사용하더라도 무림에 너의 검을 막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네가 겨루었던 빙궁의 고수도 네가 일 년간 제대로 수련한다면 압도할 수 있을 게다.”

“안 그래도 수련을 마치고 가장 먼저 빙궁을 찾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과 겨루는 것이 제 발전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자신이 겨루었던 상대 중 조준혁이 가장 강한 무인이었으니, 그와 꼭 겨뤄 보고 싶었다. 그땐 내공이 부족했고, 실력도 숨겨야 했다. 하나, 다시 만난다면 다른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겨뤄서 이기리라고 결심했다.

“나도 한번 보고 싶구나. 네가 그렇게 목을 매는 상대가 누구인지.”

검성은 이윤후가 계속 빙궁의 조준혁을 이야기하자 내심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괜찮으시다면 사부님도 빙궁에 한 번 들려 주시죠. 제가 빙궁의 궁주에게 큰 신세를 졌습니다.”

“신세?”

“약선과 만날 수 있게 해 주신 게 현 빙궁주입니다. 제 내공이 부족하여 사부님의 무공을 못 쓰는 것을 알고 약선에게 말해 단약을 내주게 한 것도 그분이고요.”

이윤후는 단지경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검성에게 부탁했다. 분명 검성이 빙궁에 방문하는 것으로 단지경에게 큰 힘이 실릴 것이다.

더하여 아직 빙궁에서 입지가 불안한 단지경에게 반기를 드는 장로회 입장에선, 검성의 방문이 위협적으로 다가오게 될 터였다.

“그래. 빙궁으로 먼저 가 보마. 네가 말하는 빙궁주와 조준혁 두 사람 다 만나 보고 싶구나.”

“사부님께서는 이제 무림에 복수를 위해 나가실 겁니까?”

이윤후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넌 이미 내 무공을 전부 알고 있으니 따로 봐주는 것보다는 네가 스스로 숙련도를 높이고 이곳에서 약선의 도움을 받아 내공을 차분하게 올리도록 해라. 나는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구나.”

“그런데 사부님이 나가시면 무림이 발칵 뒤집힐 텐데요…….”

“어차피 그들이 날 찾아오게 만들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가 살아 있음을 아직 모르고 있으니, 안다면 찾아오지 않겠느냐?”

검성은 애초에 자신이 무림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무림에서 사라진 그들이 자신의 앞에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임소려를 죽인 것과 자신을 속여 왔던 것을 검성이 모른다고 여길 터이니 더욱 앞에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그것보다는 아예 정체를 숨기고 그들을 찾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정체를 숨기고?”

검성은 이윤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물었다.

“사부님 말씀대로 그들이 사부님의 정인을 살해하고 오랜 기간 속여 왔던 것도 그들의 죄지만, 그들은 음지에서 무림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여 왔다고 천통자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그들을 그냥 죽이는 것보다야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하나씩 무너뜨리면서 서서히 옥죄어 가는 편이 그들에게 더한 벌이 될 겁니다.”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검성은 이윤후의 말을 듣고 조금은 마음이 동하였다. 이윤후의 말처럼 그들을 찾아 그냥 죽이는 정도로는 성에 차지가 않을 것만 같았다.

“사부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저로서 행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겁니다.”

“너인 척한다고?”

검성은 이윤후의 제안에 놀라 물었다.

“네. 어차피 제 신분을 아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남궁세가의 인물들 몇 명과 빙궁의 인물들밖에 없죠. 어차피 제 소문이야 무림에 퍼져 있을 겁니다. 사부님이 제 이름으로 무림을 활보하시면 분명 그들은 검성의 제자에게 분명 접근해 올 겁니다. 자신들의 죄가 있고 사부님의 안위도 궁금할 테니까요.”

“그렇구나.”

검성은 이윤후의 설명을 듣고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반로환동으로 인해 자신을 검성이라 생각할 사람도 없을 터고, 그들의 경계도 덜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무엇보다, 검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내가 네 행세를 해도 되겠느냐?”

검성으로서는 제자이긴 하나 이윤후의 행세를 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윤후의 대답에 검성은 다시 한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거 제자가 이렇게 사랑스러운 줄 알았다면 진즉에 제자를 들일 것을 그랬구나.”

검성이 호탕하게 웃자 이윤후도 같이 웃음을 보였다.

“생각해 보도록 하마. 그러니 사부 걱정 말고 수련에 집중하거라.”

“네. 저도 이번 수련을 통해 사부님에게 도움이 되는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윤후의 결의에 찬 말에 검성은 웃음이 멈추어지지 않았다. 정인이었던 임소려가 죽고 오절 외엔 누구와도 정을 나누지 않았고 제자도 두지 않았던 그였기에 이윤후의 말 하나하나가 검성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래. 네가 날 찾아올 그날을 기다리마. 꼭 강해져서 찾아오너라.”

“네. 기다려 주십시오.”

검성은 마지막으로 이윤후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 주었다. 이윤후도 아버지에게 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 왔던 터라 검성의 따듯한 모습에 모습이 마냥 좋았다. 외모는 비록 자신의 형과도 같았지만.

“그런데 너 집에는 다녀왔느냐?”

검성은 불현듯 생각나서 물었다. 자신이 납치하다시피 데려와 이윤후의 집에 서찰을 나중에 전하긴 했지만, 그 이후를 몰랐기에 물은 것이었다.

“며칠 전에도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원하는 일을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 내가 너희 부모님들에게는 죄인이구나.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집에 다녀오는 것이 어떠하냐? 일 년을 여기서 지내야 할 텐데 말이다.”

검성은 이윤후의 부모에게 왠지 모를 죄스러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그리 권했고 그런 검성의 마음을 알았기에 이윤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부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식사를 다 같이 하도록 하자. 약선에게도 작별의 말을 건네야 하니…….”

“약선께서 슬퍼하시지 않겠습니까? 그토록 애타게 찾으셨는데…….”

이윤후는 약선이 꽤 힘들어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미 백 년에 가까운 외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었기에 보기 안쓰럽기도 했다. 정작 검성은 약선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검성이 깨어나고 며칠을 같이 지내는 것을 보아도 여동생을 대하듯 대할 뿐 전혀 약선을 여인으로 보지 않는 듯했고, 약선도 그저 검성과 있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지 욕심을 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지켜보는 그녀의 모습이 어쩐지 불쌍하게 느껴졌다.

“……얼른 따라오너라.”

검성은 이윤후가 물은 대답은 해 주지도 않은 채 어느새 등을 돌려 동굴을 나서고 있었고, 이윤후도 정신 차리고는 그를 따라갔다.

* * *

“아직 안 온 것인가?”

천통자는 약선과 검성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거처에서 떠났다.

그는 하산하지 않고 오히려 산 위로 올라와 반대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어느 한 곳에 도착한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큰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해가 지고 있어 이미 어둑해지는 탓에 시야도 좁아지고 있었다.

파밧―

갑자기 주변에서 흑의 복면인이 나타나 부복했다. 천통자는 그가 나타났음에도 놀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알아보란 것은?”

천통자의 말에 흑의 복면인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천통자에게 건네었다.

“꽤 큰 건의 뇌물을 주고받은 기록도 있고 아녀자들을 희롱하여 말이 많은 듯했습니다.”

“호오, 그래?”

복면인의 말에 천통자는 서찰을 받아 바로 펴 읽고는 파안대소(破顔大笑)하였다.

“하하! 그럼 그렇지. 그런 놈의 뒤가 안 구릴 리가 없지. 첨도어사(簽都御使)? 나름 목에 힘줄 만한 관직이었구나.”

“네. 알아보니 도어사와 부도어사 모르게 받아 챙긴 뇌물도 상당하고 하급 관리들을 막 부리기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내가 그 녀석에게 때문에 맞은 매질로 인해 아직도 온몸이 아픈데, 그놈에게는 더 심한 벌을 주어야겠지?”

천통자는 기분 나쁜 웃음을 보이며 복면인을 향해 물었고 복면인은 그런 상황인 나름 익숙한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천통자가 말하는 첨도어사는 화산 아랫마을에서 천통자의 점괘(占卦)가 마음에 안 든다고 복채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를 폭행한 관인이었다.

폭행에 이어, 옥에 갇히게 된 것도 첨도어사의 명을 화산에서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천통자에게는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그놈의 상관들은 어떠하냐?”

“도찰원(都察院)의 수장답게 강직하고 청렴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첨도어사는 윗선에 뇌물을 주고 그 자리에 앉은 인물로, 도어사(都御司)가 안 그래도 벼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그자에게 첨도어사 놈의 처리를 맡기는 편이 좋겠군. 수집한 그놈의 죄목과 뇌물 거래 현황, 여인들을 희롱한 증좌까지 모두 도어사에게 가져다주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잠깐.”

천통자의 명이 끝나자 복면인은 몸을 일으켜 사라지려 했으나, 천통자가 갑자기 다시 부르자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회주(會主)에게 전할 말이 있다.”

천통자의 입에서 ‘회주’라는 말이 나오자 복면인의 눈빛이 바뀌었고 다시 부복한 채 입을 열었다.

필시 무언가 중요한 정보가 나올 터, 복면인의 어조에 긴장감이 담겼다.

“말씀하십시오.”

“검성이 나타났다고 회주에게 전하도록 해라.”

“검성이요? 오절의 검성 말입니까?”

복면인의 음성이 흥분하여 되물었고 그 모습에 천통자는 미소를 보였다. 마치 귀여운 아이를 본 듯한 반응이었다.

“은살(隱煞), 너도 놀라긴 하는구나.”

천통자는 은살이란 인물의 놀란 모습이 새로운지 놀리듯이 이야기했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검성이라니…… 정말입니까?”

은살이 조금은 흥분된 음성으로 다시 묻자 천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허튼소리를 하겠느냐? 회주에게 전하는 말인데.”

“……죄송합니다.”

은살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고 천통자에게 용서를 구했다.

하나 말과는 다르게 어조에는 숨길 수 없는 흥분이 담겨 있었다. 그만큼 검성의 출현은 강호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일단 그놈의 일은 수하를 시키고, 넌 바로 회주님에게 검성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도록 해라. 따로 지시가 있다면 다시 날 찾아오고.”

“천통자께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난 일단 검성을 쫓아가 볼까 생각 중이네. 그러니 회주님의 명을 바로 나에게 알려 주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은살은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모습이 사라졌고, 그 신속함에 천통자는 혀를 내둘렀다. 언제 봐도 신묘한 보법이었다.

“과연 무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기대되는군. 검성의 출현에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천통자는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지 키득거렸고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기에 하산하며 발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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