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회의(會議)
서안(西安) 무림맹(武林盟).
무림맹은 오랜만에 많은 방문객을 맞아 분주하게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파의 일로 전체 회의 소집이 떨어지면서 구파일방(九派一幇)과 오대세가(五大世家) 등 정파 무림의 중심 세력들도 모두 서안의 무림맹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그중, 서안의 한 객잔 큰 방에 오대세가의 인물들이 모였다. 그들은 원래 무림맹을 장악한 우금의 행태에 항의하기 위해 서안으로 오고 있었지만, 오던 도중 사파가 무너지면서 모임의 성격이 바뀌고 말았다.
현 무림맹주인 우금은 무림맹주에 오른 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인원들을 무림맹 내에서 중직에서 쳐 내었고 그 자리에 자신의 사람들로만 앉히면서 무림맹의 전권을 장악했다. 그 바람에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입김이 약해지면서 불만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오대세가에서는 이번 모임을 계기로 정식적인 항의의 뜻을 전하고 새로운 무림맹주를 뽑자는 제안을 할 생각이었는데 아예 처음부터 틀어지고 말았다.
“이거 우리의 뜻을 전하기도 전에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는 바람에 이야기도 꺼낼 수가 없을 듯한데요.”
모용세가의 모용우(慕容宇)는 난감한 듯 모두를 보며 이야기했다. 그의 말처럼 급변한 현재 상황에서 무림맹주를 물러나게 하기는 힘들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너무 미묘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입니까?”
남궁세가의 안명의 말에 산동악가의 악진율(岳珍律)이 물었다.
“우리가 모여서 무림맹주의 퇴진을 요구하려는 시점에 공교롭게도 일이 벌어진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안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고 있었지만 상황이 너무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설마 사마련이 무너지는 심대한 일을 무림맹주가 벌였다고 의심하기에는…… 사안이 너무 크군요.”
사천당가의 당인표(唐仁豹)가 말했다. 그의 말 또한 다들 일리 있다 여겼다. 사실 여기 모인 누구도 무림맹주가 자신의 자리를 위해 사마련이 무너지는 일을 도모하였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모인 모두는 무림맹주의 이면에 대해 다들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일을 벌일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안이 워낙 민감한지라 입 밖으로 내지를 않고 있었다.
“답답하군. 어차피 구파일방의 인물들도 오는 만큼 무림맹주의 퇴진을 논의해야 합니다.”
하북팽가의 팽기찬(彭綺纘)이 노기 섞인 음성으로 일갈했다. 다들 마음은 그와 같이했지만 정파 무림의 위기에 무림맹주를 물러나게 하긴 힘들었다.
“팽 대협의 기분은 알겠지만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잖소. 이런 상황에서 무림맹주의 퇴진을 주장한다면 무림을 혼란케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모용우는 흥분한 팽기찬을 안정시키며 답했다. 하지만 그로서도 답답한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었다. 우금이 무림맹의 전권을 잡고 휘두른 지 이미 오래였다. 무림맹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이권을 모두 장악했고 최근에는 황궁과의 거래도 전담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 사마련의 일이 무림맹주와 아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소. 이 일을 캐다 보면 분명 그의 구린 면이 나타날 거요.”
팽기찬이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다시 소리쳤다.
“팽 대협은 진정하시지요.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팽기찬은 자신을 말리는 목소리에 눈을 흘겼으나 상대가 안명임을 알고는 바로 표정을 풀었다.
“안 선생께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팽기찬은 한결 공손하게 안명에게 물었다. 안명이 남궁세가의 직계는 아니었지만 모두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기에 팽기찬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저도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만 일단 무림맹의 회의에 들어가면 무언가 실마리가 잡히리라 생각합니다.”
“회의에 간다고 수가 있겠습니까?”
“무림맹에서 이번 일을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확인한다면, 정말 우리가 의심하는 대로 그들이 일을 벌인 것인지 확인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서 우금을 물러나게 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게 이번 한 번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 것입니다.”
“그거야…… 잘 알죠.”
“공교롭게도 우금을 물러나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사패(四覇)가 무림을 넘어올 듯한 움직임을 보여 흐지부지된 일이 있었습니다. 이번 사마련의 붕괴도 우금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안명의 말에 다들 놀라면서도 어느 정도는 의심하고 있던 부분이라 납득이 되었다.
“그래도 설마…… 사마련까지 붕괴시키면서 무림의 위기를 만들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하겠습니까?”
당인표는 그래도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 빼고는 모두 안명의 말에 동의하는 모양새였다.
“일단 모두 무림맹으로 들어갑시다. 가서 모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리가 의심하는 부분도 확인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모용우는 무림맹으로 들어갈 시간이 가까워지자 모두를 달랬다. 여기서 더는 이야기를 계속해 봐야 결론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모용 대협의 말처럼 일단 다들 일어나죠.”
안명도 모용우의 말에 찬동하며 회의를 마치자 다들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림맹으로 들어가기 전에 의견을 조율하고 싶었지만 결국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들어가야 했다. 이렇게 무림맹으로 간다면 그들이 원하던 일은 이룰 수가 없었다.
정파는 무엇보다도 명분을 중요시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의심스럽다 하여도 사파와의 일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맹주의 퇴진을 주장할 수 없었다.
* * *
무림맹의 대회의실.
오대세가의 인물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구파일방과 여타 문파의 대표들이 도착한 후였다.
그들이 도착하고 얼마 있지 않아 무림맹주 우금이 자리에 나타나 상석에 자리하자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두 이렇게 소집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오. 워낙 이번 사안이 크다 보니 전체 소집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해 주시오.”
우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그동안 흑월도존이 사파임에도 불구하고 협(俠)과 의(義)를 알아 평화가 유지되었으나, 그의 제자 독고진이 이에 반기를 들고 사마련을 사왕련으로 재편하였소. 그는 정파에 혈채가 있는 자이니 아마도 전면전을 피하긴 어려울 것이오.”
우금의 말에 다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말처럼 사마련이 사왕련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평화를 유지할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비치고 있었다.
“사왕련의 움직임을 무림맹에서는 파악하고 있소이까?”
무당의 운학자(雲鶴子)는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나서서 우금에게 물었다. 현 무당의 장문인과 동배분인 운학자는 무림에서도 존경받는 고수였고 현재 회의에 참석하는 모두를 통틀어 가장 어른이었다.
그가 질문하자 웅성거렸던 회의장도 금세 조용해졌고 운학자의 말에 집중했다. 우금은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옆에 서 있던 현무단주(玄武團主) 성하진을 바라보았다.
“현무단주 성하진이라고 합니다. 운학자께서 물으신 부분은 제가 답하겠습니다.”
성하진은 모두에게 예를 취하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사왕련은 현재 몸집 불리기에 전념하는 모양새입니다.”
“몸집 불리기를 한다?”
“네. 사왕련의 련주 독고진은 정식으로 사마련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반란으로 쟁취한 것입니다. 하여 모든 사파가 사왕련을 지지하는 상황은 아닙니다. 일부 사파는 사왕련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그들을 설득 중이라는 것인가?”
운학자가 성하진의 말뜻을 이해하고 물었고 성하진은 말을 이어 나갔다.
“네. 물론 사마련을 지지하던 사파 대부분의 문파가 사왕련 아래로 편입되겠지만,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입니다.
“사파는 흑월도존(黑月刀尊) 유상휘의 힘으로 결집되어 있던 것이 아닌가? 그가 행방불명된 지금, 모든 사파들이 사왕련을 따르지 않을 거 같은데.”
종남의 전뇌검(電雷劍)이라는 명호로 불리는 노만기(盧萬祺)가 물었다. 장내에 많은 이가 그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사파는 본래 각 개인 문파로 흩어진 모래알 집단이었고, 흑월도존이 나타나 사마련의 휘하에 거의 모든 사파의 문파를 두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었다.
“저희도 독고진이 그리 쉽게 이전 사마련의 위세를 재현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만…… 사마련의 핵심 세력들은 이미 사왕련과 뜻을 같이하고 있고, 수라마검(修羅魔劍)과 흑룡창제(黑龍槍帝)가 사왕련인 이상 사파일통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입니다.”
성하진의 말에 다들 동요하기 시작했다. 정보가 빠른 문파들이야 사왕련에 수라마검과 흑룡창제가 함께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모르는 문파들이 더 많았기에 성하진의 이야기에 놀라고 있었다.
수라마검과 흑룡창제는 흑월도존의 휘하에서 두 번째와 세 번째의 고수들이었다. 독고진의 휘하에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면 사왕련도 사마련과 같은 위세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겠군요. 사왕련이 사파를 모두 통합하는 데 얼마나 걸릴 것으로 파악하고 있죠?”
듣고만 있던 남궁세가의 안명이 물었다.
“짧으면 한 달, 길면 반년까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반년 후…… 아니면 더 빨리 사파가 정파를 도발해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군요.”
안명은 성하진의 대답에 자기 생각보다 더 일이 심각함을 인식했다. 사왕련이 사파를 통합하게 되면 그 칼끝은 정파 무림으로 향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습니다. 흑월도존이 있을 때는 정사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으나, 독고진은 정파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 자. 사파일통이 끝나면 반드시 정파에 싸움을 걸어올 것입니다.”
“…….”
“모두 아시다시피 정사파 간의 원한은 깊습니다. 이를 힘으로 억제해 주던 흑월도존의 생사 역시 불투명합니다. 분명 사파 대부분은 독고진을 중심으로 모여 정파에게서 혈채를 받으려 할 것입니다.”
성하진의 말에 다시 한번 큰 동요가 일어났다.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성하진이 이를 다시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오절 시절부터 사파는 오랜 시간 정파에 쌓인 게 많았다. 사파의 새로운 련주 독고진이 복수를 부르짖으며 사파를 설득한다면, 정사대전은 이미 코앞에 다가왔다 여겨야 했다.
[이거…… 저희들의 뜻을 펼치기는 힘들 듯합니다.]
안명의 귓가에 한 줄기 전음이 들려왔다. 모용우였다.
[그렇군요. 저들이 겁주려고 상황을 부풀리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큰 일인 듯합니다. 당장 사파와의 일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군요.]
안명의 전음에 모용우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이미 회의장의 많은 이들이 성하진의 말에 동요한 채 시끄럽게 토론을 거듭하고 있었다. 안명은 계속 우금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는데 성하진의 말에 회의장의 인원들이 동요할 때마다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정말 생각하기 싫은 부분이었지만…… 무림맹주가 모든 일의 배후일 수도 있겠구나…….’
안명은 무림맹도, 우금도, 성하진도 믿지 않았다. 모두가 의심스러웠다. 그는 회의장을 나가는 대로 남궁과 개방의 정보망을 이용하여 정보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의는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했고, 다음 날 다시 논의하기로 한 채 마칠 수밖에 없었다. 워낙 많은 사람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는지라 분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