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검성재림(劍聖再臨)(3)
꾸륵―?
백아는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검성에게 의아함을 느껴 목을 쭉 빼 검성을 보았고 그 모습에 이윤후는 미소를 보였다.
젊어진 검성을 백아는 처음 보았으나,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왠지 모를 친밀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잠깐! 다 말할 테니…… 사, 살려만 주시오.”
사내는 딱히 고문한 것도 아니었으나, 스스로 불겠다고 말했다. 그 모습에 천통자는 고개를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짐작하는 곳에서 정보원을 보냈다면 절대 비밀을 누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해 보아라. 넌 누구냐?”
“전 의자(義者)…… 컥!”
사내는 말을 꺼내는 동시에 검은 핏덩이를 토해 내었고 그대로 눈이 뒤집힌 채 축 늘어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윤후는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느껴지는 기운이 없었다.
“독을 먹은 것인가요?”
“아니, 아마도 자신의 신분이나 출신을 말하면 안 되는 금제(禁制)에 당했었던 거 같구나. 아마 자신도 몰랐을 거야.”
검성은 죽은 사내의 시신과 뱉어 낸 검게 탄 내장 덩어리를 보고는 말했다.
“맹독이군요. 아마 입을 연 순간, 체내에서 맹독이 마치 폭탄처럼 터진 거 같군요. 내부가 엉망이에요.”
약선은 죽은 사내의 진맥과 상태를 살피고는 말했다.
“정말 특이한 경우군요.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약선은 신기한 듯 사내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고, 검성은 약간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 있다가 천통자를 보았다.
“왜…… 그리 보십니까?”
천통자는 검성의 시선에 괜히 어색하여 물었다. 잘생긴 남자가 자신을 이리 뚫어지라 보는 기분이 꽤 미묘해 괜히 그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이거 검성이 바라만 봐도 여인들은 다 넘어가겠는걸…… 내가 다 혹할 정도니…….’
천통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검성의 시선에 괜히 남자인 자신이 마음이 동하는 걸 느끼고는 검성의 초상화를 반드시 그려서 가야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저자가 어디 소속인가?”
“저도 잘…….”
갑자기 쑥 들어온 검성의 질문에 모른 척 천통자는 둘러대려 했으나, 검성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거짓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의자제세(義者濟世)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단체의 인물일 듯합니다.”
천통자는 검성의 질문에 술술 답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아차 했으나 때는 늦은 후였다.
“의자제세라면 의로운 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뜻 아닙니까?”
이윤후가 옆에서 천통자의 말을 듣고 물었고 천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인 인물들은 의로운 인물들이 아니나 그런 구호를 내세우며 꼭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천통자는 검성을 보며 말했고 검성은 잠시 말이 없었다. 약선도 죽은 사내가 말하려 했던 의자제세라는 말을 알고 있고 누가 그 구호를 쓰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오라버니…….”
“너에게 오랜만에 듣는구나, 그 소리는…….”
약선이 검성을 부르자 검성은 미소를 보이며 그녀를 보았다.
처음 봤을 때 낯을 많이 가렸던 약선은 명문가인 서문세가의 아가씨였고, 신의의 제자로서 자라 남자의 얼굴도 잘 못 보는 여인이었다.
검성을 오라버니라 부르며 얼굴을 매번 붉혔던 터라 검성은 예전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는 그렇게 불러 주지 않았기에 검성도 조금은 놀라 웃음을 보인 것이었다.
“의자제세라…… 오랜만에 듣는 소리구나…….”
검성은 나직하게 읊조렸다. 의자제세라는 말은 오절이 모일 때마다 나왔던 이야기로, 정의로운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세상을 구하자는 그들만의 다짐이었다.
젊었을 적부터 친분을 쌓았던 그들은 의자제세를 외치며 발전해 나갔고 오절로 불리며 무림의 절대자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느새 변했다.
“그들이 만든 단체가 맞느냐?”
“네…… 아마도요. 저도 정확하게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으나 그들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어요.”
약선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약선도 의자제세라는 구호를 앞세우며 비밀리에 움직이는 단체가 있음을 처음 알았을 때, 그녀는 검성을 의심해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움직였었다.
하지만 그 단체는 검성과 관련이 없었고, 되려 다른 오절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초(楚) 오라버니와 관련이 있는 것을 확실해요…… 다른 이들은 모르겠어요.”
약선이 비밀 단체에 대해 알아보고 있을 때, 자신이 잘 알던 인물이 그녀의 앞에 나타나 더는 단체에 대해 캐지 말 것을 경고했다.
그가 바로 신투라 불리는 초벽(楚碧)이었다.
약선은 그의 경고가 수상했으나 검성 찾기에 바빴기에 거기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너는 더 아는 바가 없느냐?”
검성의 말에 천통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약선이 말한 대로 그곳은 신투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다만, 신투뿐 아니라 권왕과 도후도 그곳과 엮여 있습니다. 약선과 검성 두 분 빼고는 오절 모두가 관련이 있는 셈이지요.”
신투, 권왕, 도후. 그들은 단체를 만들어 무림의 이면에서 무언가 꾸미고 있었다.
“그들이 왜 이곳을 감시하고 있었던 거지?”
검성은 이미 죽어 버린 사내의 시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마 감시가 아니라 저를 지켜보고 있었을 거예요.”
“맞습니다.”
검성의 물음에 약선이 먼저 답했고 그녀의 답에 천통자도 동의하고 나섰다.
“신투는 약선을 연모하였고 약선을 지켜보기 위해 사람을 붙여 놨을 겁니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먼 거리에서 감시를 하면서요.”
“그럴 수도 있겠군. 신투는 애령을 무척 아꼈으니…….”
천통자의 대답에 검성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신투는 서문애령을 끔찍이도 생각했었고 그 때문에 신투는 검성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기도 했다.
“초 형(兄)도 여전하시군.”
검성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오절의 전원이 살아 있다고 천통자에게 전해 들었지만 직접 그 흔적을 보고 나니 공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했던 인물들이 자신의 정인을 죽인 범인이었고, 자신을 오랫동안 기만해 온 자들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왜 비밀 단체 같은 것을 만든 거지?”
검성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그 부분이었다. 오절은 각 개인이 무림의 절대자들이었다. 정사와 새외 세력을 합쳐도 그들을 당해 낼 사람은 그 당시 없을 정도였다.
원하는 것이 있었다면 모두 가질 수 있을 그들이 왜 굳이 비밀 단체를 만들어 움직이는지 검성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거야 저도 알 수 없죠.”
천통자는 짧게 답했다가 검성이 바라보자 이내 입을 열었다.
“사실 그들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너무 위험하여…… 몇 번 접근했다가 사람이 아예 사라진 적도 있어서요. 대강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는 무림을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려 한다는 정도입니다.”
“뜻대로 움직인다고?”
“네. 검성이 사라지고 다른 오절들도 모두 그 시기에 같이 사라지고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신투와 권왕 그리고 도후가 아무도 모르게 비밀 단체를 만들어 암암리에 활동해 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거든요. 최근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셋이 한 단체를 움직이고 있기는 하지만, 또 각 개인이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데 또 그 성향이 조금씩 틀립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구나.”
“그렇죠. 저도 이 이야기를 캐다가 죽을 고비도 많았었지만, 나름대로 보람은 있었습니다.”
천통자의 성격을 잘 아는 약선이야 그런 그의 말에 덤덤히 넘어갔으나 이윤후는 천통자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오절이 사라지고 무림에 많은 일이 있었는데 그 많은 사건에 이들이 개입해 왔습니다.”
천통자가 이제야 본론으로 들어가는 듯하자 세 사람은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약선으로서도 그들이 무언가를 꾸미고 뜻을 같이하고 있음은 알았지만, 세세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일단 파악한 것은 현재 무림맹주인 비천신검(飛天神劍) 우금이 맹주가 된 일입니다.”
“무림맹주의 일에 그들이 개입했다는 이야기입니까?”
천통자의 말에 이윤후가 물었다. 여행 도중에도 계속 무림맹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던지라 그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우금은 출신이 천한 자였고, 원래는 무림맹의 말단 무사였죠. 하지만 우연히 기연(奇緣)을 얻어 상승 무공을 익히게 됩니다.”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던 거 같습니다. 그 후에 무림맹에서 중용되었다고요.”
하나 천통자는 조용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우금이 기연으로 상승 무공을 익히게 된 것도 그들의 안배였습니다.”
“…….”
이윤후는 생각지 못한 천통자의 말에 놀라 묻지도 못했다.
“그들은 정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림맹에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인물을 앉히려고 생각했고, 그중에 우금을 택한 거죠. 욕심이 많고 출세욕이 있으며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인물로요.”
천통자의 예상치 못한 말에 이윤후는 물론 검성과 약선도 조금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우금이 눈치채지 못하게 사람을 붙여 그가 오절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했고, 우금은 자신이 다른 이의 뜻대로 움직인다는 자각도 못 한 채 무림맹주가 되었습니다. 아마 그는 지금도 자신이 모두를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굉장한 이야기군.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 그들이 도대체 어떤 의도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말이야?”
검성은 천통자의 말이 놀랍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의도를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뒤에서 사람을 조종하면서 어떤 것을 노리는 것인지 의문점이 많았다.
“저도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에 대해 캐려고 하면 할수록 위험해지니까요. 저도 여기까지 알아내려다가 희생된 정보원의 수만 해도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군. 이제 직접 부딪쳐 보면 알겠지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말이야.”
검성의 힘이 실린 말에 천통자는 무림이 이제 그를 중심으로 일대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 예감했다.
“그건 그렇고, 제 부탁 하나 들어주십시오.”
천통자는 갑자기 검성에게 이야기를 꺼내었고 검성은 그를 보았다.
“내가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면 들어주지.”
“초상화를 그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초상화?”
검성은 예상치 못한 천통자의 부탁에 조금은 당황하여 그를 보았다.
“내 초상화는 뭐 하려고?”
“나름 고생도 하고 알고 싶어 하던 정보도 드렸는데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천통자의 말에 검성은 조금은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 못 들어줄 것은 없지. 하지만 초상화의 정체가 나라는 것을 밝히는 것은 안 된다네.”
“물론이죠.”
검성이 수락의 뜻을 보이자 천통자는 바로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에 웃음 짓고 있던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약선이었다. 검성의 초상화를 그리면 자신이 한 장을 가지게 될 테니 관심 있게 듣고 있었는데, 검성이 허락할 듯하자 그녀 역시 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