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검성재림(劍聖再臨)(1)
“저도 어느 정도 정보를 듣고도 긴가민가했었는데, 이렇게 보고 놀라긴 했습니다. 도후(刀后)가 흉수였다니…….”
사실 풍문으론, 검성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도후가 검성의 정인을 죽인 것이 아니냐는 말이 돈 적은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소문일 뿐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라 이내 잠잠해졌었다.
천통자도 이 정보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이것이 사실이었다. 임소려의 살해자는 도후 유가영이었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믿을 수가 없었지. 도후뿐만 아니라 이 일에는 신의(神醫)와 그 사람까지 관련되어 있었다…….”
검성의 말이 조금씩 떨려 오고 있었다.
“그 사람? 그게 누구입니까?”
천통자는 천성인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지만 검성은 입을 닫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제는 상관없는 일이다. 너는 돌아가도록 해라.”
“돌아가라니요? 검성께서는 깨어나지 않으실 겁니까?”
“내가 지금 깨어나서 무엇을 할 수가 있느냐? 소려의 원수들은 모두 죽었고, 나 역시 이미 죽었어야 했을 인물이다.”
검성은 이미 자신의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을 알고 있었다. 돌아가려 마음먹었다면 벌써 정신을 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임소려가 살아 있는 이 의식 속에서 기억을 무한 반복하고 있었다.
그저 살아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오절이라면 모두 살아 있습니다. 신의는 죽었습니다만.”
“뭐라, 모두 살아 있어? 하지만 내가 들었던 그들의 마지막 소식은…… 그게 사실인가?”
검성의 전신에서 엄청난 위압감이 솟구치기 시작했고 천통자의 전신이 찌릿해져 왔다.
‘사념체인 나에게까지 느껴지는 위압감이라니. 오절 중에 검성이 최강이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겠군.’
“살아 있다?”
검성은 천통자가 답이 없자 다시 한번 물었다. 천통자가 입을 열지 않으면 단숨에 죽일 것과 같은 살기까지 보였다.
“네. 살아 있습니다. 약선은 저를 보내셨으니 당연히 살아 있고, 도후와 신투, 권왕까지 모두 최근에 살아 있음이 파악되었습니다. 그들의 제자들도 모두 무림에 나타났고요.”
검성의 살기에 놀란 천통자는 모든 것을 고하기 시작했다. 사념체인 탓에 죽어도 본래의 몸으로 깨어나겠지만…… 그것도 확신이 없었다.
“모두가 살아 있다? 도후와 신투…… 권왕까지 모두…….”
검성은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말이 없어졌고 천통자는 그의 반응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있었다. 검성은 길지 않은 시간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뗐다.
“넌 일단 돌아가도록 해라.”
“검성께서는……?”
“난 마지막으로 소려를 보고 돌아가겠다.”
검성은 이미 죽은 임소려의 시신을 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고, 그의 마음을 이해했던 천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검성은 다시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임소려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이별을 고하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 전 먼저 돌아가 준비를 해 두겠습니다.”
“그래. 약선에게도 윤후에게도…… 곧 돌아가겠다고 전해다오.”
“네.”
천통자의 모습이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고 얼마 있지 않아 모옥의 문이 열리며 젊은 검성이 들어와 임소려의 시신을 부여잡고 울부짖었다.
그 모습을 확인하는 검성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이내 세계는 다시 한번 반복되기 시작했다.
* * *
끼익―
문이 열리고 천통자가 나오자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약선과 이윤후가 한달음에 그에게 달라붙었다.
“어떻게 되었지?”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 사람의 질문 공세에 천통자는 향에 취해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생각보다 너무 성공적이었습니다. 검성의 의식 속에서 그를 만났고 아마 곧 깨어날 겁니다.”
“그게 사실인가?”
약선은 천통자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사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천통자를 불렀는데 그의 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검성의 의식 속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자기 스스로 마무리 짓고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아마 금방 깨어나실 겁니다.”
“놀랍구나…… 정말로…….”
약선은 천통자의 말에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했지만 검성의 경지에 경외감까지 들었다.
“일단 방 안에 창문을 다 열어 환기를 해 주시고…… 원래 약선께서 피우셨던 약향으로 채워 주십시오.”
“그래. 그렇게 하마. 넌 좀 쉬도록 해라.”
약선은 천통자의 어깨를 만져 주고는 방 안에 가득 차 있는 환향초의 연무를 제거하기 위해 창문과 문을 열어 주었다.
환향초가 타고 있던 향로를 밖으로 가지고 나온 약선은 환향초를 빼내어 제거했고, 원래의 향로를 다시 방으로 가져갔다.
“사부님은 괜찮으십니까?”
환향초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앉아서 쉬고 있던 천통자의 곁으로 이윤후가 다가와 물었다.
“어떤 의도로 묻는 것이지?”
천통자는 조금은 이윤후의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물었다. 자신의 의식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괜찮냐는 질문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당신을 돌려보낸 뒤 혼자 돌아오겠다는 사부님의 말이 조금 이상해서요.”
“무엇이?”
“그 말은 사부님께서 돌아오려고 마음먹었다면 진즉에 혼자서 돌아올 수도 있었다는 말인데…… 이제껏 돌아오지 않으셨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지요?”
“아, 그런 의미였군.”
천통자는 생각 외로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 이윤후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약선조차 그런 부분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돌아올 검성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검성께서는 자신의 의식 속에서 과거의 모든 자신의 모습과 죽기 전까지의 기억을 보고 계셨네. 그러다 보면 자기가 알기 싫은 기억도 사실도 확인하게 되지…… 그것 때문에 자신의 기억에 머물고 계셨던 거야. 이미 털어 버리셨으니 돌아오실 거야.”
“그렇군요…….”
사부님 알기 싫었던 기억을 보게 되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천통자에게 물을 질문은 아닌 듯하여 참았다.
“설마 알기 싫었던 사실이라는 것이 소려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냐?”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던 약선이 그들에게 다가서며 물었고 천통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검성의 의식에 들어갔을 때도 그때의 기억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천통자의 말에 약선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설마…… 그 사람이 모든 사실을 안 것이냐? 소려의 죽음에 대해……?”
갑작스러운 약선의 태도에 이윤후는 당황했지만, 천통자는 약선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았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네. 그때의 일에서 못 빠져나와 자신의 의식 속에 갇혀 사셨던 거 같습니다. 자신을 사랑한 여인을 죽인 것이 자신들의 친우들과 관련이 있음을 아셨으니까요.”
“…….”
천통자의 말에 약선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자 이윤후는 대충 상황을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사부님 정인의 죽음에 약선께서 관련되어 있다는 뜻인가? 친우들이라면…… 설마 또 다른 오절들까지?’
이윤후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져 왔다. 유인경을 통해 치정 문제로 오절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듣기는 했지만, 검성 정인의 죽음에 오절들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고민하던 그때, 집 안에서 알 수 없는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슨 일, 어라…….”
파바밧―
눈 부신 빛이 집 안을 감싸기 시작했다. 상서로운 기운에 그들은 집에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빛이 잠잠해지자 집으로 세 사람 다 다가섰고, 뿌연 연무가 집 안에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이윤후는 영문을 몰라 약선을 바라보며 물었으나, 약선 또한 상황을 알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두 사람은 혹시나 검성이 잘못되었을까 봐 걱정했지만 천통자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검성께서 깨어나신 듯하군요.”
집 안에서 강하고 억센 기운이 느껴졌기에 약선도 이윤후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낯선 기운이 팽창했다가 점차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이내 처음부터 그런 기운이 없던 것처럼 잠잠해졌다.
그리고 얼마 후 집에서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사부님……?”
이윤후는 나오는 사람이 당연히 검성일 거로 생각하고 달려갔지만, 전혀 처음 보는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것도 알몸이 된 채.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니겠지……?”
사내를 보고는 약선은 믿기지 않는 듯 천통자를 보며 물었다. 그들의 눈앞엔 천통자가 의식 세계에서 보았던 젊은 검성이 서 있었다.
“애령. 그리고 윤후…… 자네는 나의 의식 속에 들어왔던 자로군.”
사내는 다름 아닌 검성 나진하였다. 그의 모습은 젊었을 적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윤후는 사내의 음성이나 느껴지는 모습에서 분명 사부인 검성이라고 생각은 되었지만 젊은 모습에 긴가민가했다.
“자네의 사부님이 맞네. 이미 입공화령(入空化靈)의 경지에 드신 분이니 반로환동(反老還童)하여 젊은 모습이 된다 한들 당연한 것이 아닌가?”
천통자의 말을 듣고서야 이윤후는 상황을 알 수가 있었다. 이미 선인의 경지에 든 검성이 의식을 찾으면서 반로환동 하여 젊은 모습이 된 것이었다.
“일단 옷부터 구해 드리게.”
천통자의 말에 그제야 검성이 알몸이란 사실을 인식한 이윤후는 그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약선은 그들이 나오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검성이 임소려의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게 안절부절못하실 필요 있습니까? 임소려의 죽음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으시지 않습니까?”
약선의 모습에 천통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그가 본 것은 도후가 임소려를 해하는 모습이었기에 약선이 이렇게 떠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소려의 죽음에 연관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천통자가 알고 있기로는 두 명이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설마…… 오절 전부가 연관된 것인가?’
천통자는 약선의 모습에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려의 죽음과 관련이 많지는 않지만, 아주 없지는 않아…….”
약선의 알 수 없는 말에 천통자가 궁금해진 그때, 집 안으로 들어갔던 검성과 이윤후가 밖으로 나왔다.
“빛이 나는군요.”
천통자는 말끔하게 옷을 입은 검성의 모습에 감탄했다. 검성은 무림에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미남으로서 유명했었다.
재비송옥(才比宋玉), 재주는 송옥과 겨루고.
모사반안(貌似潘安), 용모는 반안과 닮았다.
세인들은 검성이 젊었을 적 그를 송옥과 반안에 견주며 상찬했다. 그만큼 검성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자였다.
그가 나타나면 그 주위 여인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 젊은 여류 고수뿐 아니라 중년의 여인들도 그를 유혹해 보겠다며 도전할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뿌리친 그는 작은 문파의 셋째 딸로 태어난 임소려와 사랑에 빠지며 많은 여인을 좌절케 했었다.